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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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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경총요(武經總要)》는 북송(北宋) 시대인 1047년 증공량(曾公亮)과 정도(丁度) 등이 편찬한 40권의 종합 병서(兵書)이다. 주된 내용은 장수의 선발인 선장(選將), 훈련, 편성, 진법, 보병과 기병의 응용, 수전(水戰), 성곽 축조 및 성곽 전투, 무기와 장비 등 병학 전반에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책은 중국 병서 역사상 최초로 북송시대까지 개발된 각종 화약 무기와 화약의 사용 및 제조 방법 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2. 저자

(1) 성명:증공량(曾公亮)(999~1078)
(2) 자(字)·별호(別號):증공량의 자는 명중(明仲), 호는 혹은 맹제(孟諸), 시호는 선정(宣靖)이다.
(3) 출생지역:천주(泉州) 진강현(晋江縣(현 복건성(福建省)))
(4) 주요활동과 생애
송나라 인종 천경(天經) 2년(1024)에 진사시에 합격하여 회계지현(會稽知縣)에 임명된 이후 지제교(知製敎), 한림학사(翰林學士), 참지정사(參知政事), 추밀사(樞密使) 등의 관직을 맡았다. 가우(嘉祐) 6년(1061) 이부시랑(吏部侍郎),‎집현전대학사(集賢殿大學士)로 정식으로 재상이 되었다. 영종(英宗) 즉위 후에는 중서시랑(中書侍郎) 겸 호부상서(戶部尙書)으로, 신종(神宗) 즉위 후에는 다시 문하시랑(門下侍郞) 겸 이부상서(吏部尙書), 소문관(昭文館) 대학사가 되고 노국공(魯國公)으로 봉해졌다. 이후 태부(太傅)로 치사하였다가 1078년 향년 80세로 서거하였다. 이후 태사(太師), 중서령(中書令)에 추층되었다.
(5) 주요 저작:《무경총요(武經總要)》, 《신당서(新唐書)》, 《당병지(唐兵志)》 등 다수의 편저가 있다.

3. 서지사항

최초 북송의 당시 판본은 북송의 개봉(開封)이 금(金)나라에 함락될 때 소실되어 현재 전하지 않으며 남송(南宋)에서 몇 가지 부본을 토대로 간행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명나라 정통(正統) 간본과 만력(萬曆) 간본이 전하고 있으며, 《사고전서(四庫全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전법에는 국가전략에서부터 세부적인 전술까지 여러 상황을 100가지 항목으로 묶어 열거하고 《무경칠서(武經七書)》 등에서 거기에 부합하는 구절을 뽑아 결구(結句)로 인용한 다음 이를 잘 응용할 수 있도록 각 항목마다 적절한 역사적인 사례를 부기하였다. 전법 각 항목의 결구는 《손자》에서 60건을 인용한 것을 비롯하여 《무경칠서》에서 모두 88건을 인용하였고, 아울러 《논어(論語)》, 《서경(書經)》, 《후한서(後漢書)》 등에서도 5건이 인용되었다. 출전이 불분명한 것이 7건이다. 그 사례는 고대 춘추시대부터 중세 송나라 시대까지의 중국 역사에서 인용하였다. 이 두 판본은 모두 정운자(正韻字)로 인쇄하였다.

4. 내용

《무경총요》는 전집(前集)과 후집(後集)으로 크게 구분되는데, 전집은 제도(制度) 15권과 변방(邊防) 5권으로 편성되어 있다. 후집은 병전(兵戰)의 주요한 사례, 즉 고사(故事) 15권과 천문관측 등과 관련된 내용을 기록한 점후(占候) 5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법총서는 서론적 성격을 띠고 있으나, 전법총론은 전법을 요약하여 그 의미를 재 강조한 것이다. 전법총론에는 주제문에 덧붙여 간주(間註)가 소자쌍행(小字雙行)으로 문장의 사이사이에 부기되어 있다. 초간본에는 본문과 함께 어영대장, 금위대장과 무위소의 책임자인 도통사(都統使)를 거친 김기석(金箕錫) 등의 발문이 실려 있다. 그 내용은 무용위들이 이 책을 간행하게 된 경위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이듬해 간행된 중간본에는 황필수(黃泌秀)의 서문과 박영세(朴永世)의 후기가 추가되어 있다.

5. 가치와 영향

《무경총요》는 군사의 훈련, 편성, 진법, 보병과 기병의 응용, 수전, 성곽 전투, 및 각종 무기와 장비 등 병학 전반을 기술한 종합적인 병서로서 가치가 높다. 송대 이전 군사사상이나 군사제도 및 무기발달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있다. 특히 중국 병서사상 최초로 당시까지 개발된 각종 화기(火器)와 화약의 사용과 제조 방법 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어 당시의 과학기술 수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1547년(명종 2) 4월 명나라에 사신으로 북경에 간 조선의 정응두(鄭應斗)가 이 책을 구입하여 조선에 유입되었다. 이에 명종은 곧바로 이 책을 인출(印出)하게 하였다. 그러나 《무경총요》는 곧바로 조선에 널리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이는 이 책의 분량이 너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기존 전술과 다소 다른 측면이 있었던 점과도 관련이 있다.
16세기 말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구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에 의해 《무경총요》의 중요성이 재인식되었고, 아울러 이 책을 요약하고 교정을 가한 8책의 《무경요람(武經要覽)》도 함께 중요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7세기 중엽에는 이 책을 요약한 7권 1책의 《무경절요(武經節要)》가 간행되기도 하였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장수는 5재(五才)를 근본으로 삼고, 5근(五謹)을 응용하여야 한다. 오재란 지(智)·신(信)·인(仁)·용(勇)·엄(嚴)이다. 오근은 첫째가 이(理), 둘째가 비(備), 셋째가 과(果), 넷째가 계(誡), 다섯째가 약(約)이다. 이라는 것은 무리를 다스림에 약한 듯 적은 듯하게 함이며, 비라는 것은 문을 나섬에 마치 적을 본 듯이 함이며, 과라는 것은 적을 보아도 살 것을 생각하지 않음이며, 계라는 것은 비록 이겼으나 싸움을 시작하는 것과 같이 함이며, 약이라는 것은 법령을 간략히 하여 번잡하지 않게 함이다.[凡將 以五才爲體 五謹爲用 五才者 智信仁勇嚴 五謹者 一理 二備 三果 四誡 五約 理者 理衆如寡 備者出門 如見敵 果者 見敵不懷生 誡者 雖克如始戰 約者 法令省而不煩也]” 《무경총요(武經總要)》 〈전집(前集) 택장(擇將)〉
• “병법에 이르기를 산악 지대의 높은 곳을 천주(天柱)라 하고, 소택 지대의 넓은 곳을 지주(地柱)라고 한다. 천주의 아래를 천옥(天獄)이라 하고, 지주의 아래를 지옥(地獄)이라고 한다. 구릉의 위와 큰 산의 입구를 사지(死地(또는 호구(虎口)))라고 하며, 큰 산의 끝자락을 용두(龍頭)라고 한다. 무릇 이러한 지형의 땅을 지날 경우에는 모두 떠나버리고 머물지 말아야 한다.[兵法曰 山中之高 謂之天柱 澤中之高 謂之地柱 高中之下 謂之天獄 下中之下 謂之地獄 丘陵之上 大山之口 謂之死地(或曰虎口) 大山之端 謂之龍頭 凡過此地 竝去無留]” 《무경총요》 〈전집 지리(地利)〉
(2) 색인어:증공량(曾公亮), 정도(丁度), 무경절요(武經節要), 무경칠서(武經七書)
(3) 참고문헌
• 《武經總要》(《中國兵書集成》 所收, 解放軍出版社)
• 《中國兵學》(宋元明淸 卷)(山東人民出版社)
• 〈조선후기 兵書와 戰法의 연구〉(盧永九,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노영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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