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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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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비지(武備志)》는 명(明)나라 말기의 병학자인 모원의(茅元儀)가 지은 240권의 대규모 종합 병서로서, 다른 이름으로 ‘무비전서(武備全書)’라고도 한다. 17세기 초 명의 내우외환과 군사력의 부족을 절감한 모원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역대 2천여 종의 병학 관련 서적을 15년간 수집하여 1621년(명 천계(天啓) 원년)에 완성되었다. 중국의 역대 주요 병서의 내용과 당시의 무기 등을 정리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2천 점에 달하는 많은 각종 도보(圖譜)를 첨부하여 독자의 이해를 편리하도록 하였다. 이 책은 18세기 중엽 조선에 입수되어 평안 병영(兵營)에서 50책으로 간행되었고, 영조대(英祖代) 이후 각종 전투용 수레 등 무기와 각종 성곽 제도를 도입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2. 저자

(1) 성명:모원의(茅元儀(1594~1640))
(2) 자(字)·별호(別號):모원의의 자는 지생(止生), 호(號)는 석민(石民), 또는 동해파신(東海波臣), 몽각주인(夢閣主人)이다.
(3) 출생지역:절강성(浙江省) 귀안(歸安(현 절강성 오흥(吳興)))
(4) 주요활동과 생애
젊은 시절 그의 부친 모국진(茅國縉)이 북경에서 관직에 있을 때 이마두(利瑪竇(마테오 리치))에게서 서학(西學)을 배우고, 서광계(徐光啓)와 함께 수학하였다. 관직 생활 초기에는 병부우시랑(兵部右侍郞) 양호(楊鎬)의 참모로 있다가, 그 뒤 병부상서(兵部尙書) 손승종(孫承宗)의 막하로 들어갔다. 그 뒤 영원성 (寧遠城)에서 원숭환(袁崇煥)을 도와 수성에 성공하자 그 공으로 부총병(副總兵)으로 승진하여 복건성의 각화도(覺華島)를 지켰다. 1640년(숭정 10) 청나라 군이 남하하여 북경 남쪽을 공략하고 정흥(定興)이 함락되자 근왕(勤王)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도리어 병부상서 장봉익(張鳳翼)의 탄핵을 받아 복건(福建)의 민후수소(閩侯戍所)로 잡혀서 돌아왔다.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5) 주요저작:《무비지(武備志)》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모원의가 명나라 말기의 사람으로 청나라에 대항해 싸웠으므로 《무비지》의 내용에 여진족과 후금(後金)에 대한 적대감이 높았으므로 이 책이 매우 가치 있는 병서임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청나라 건륭(乾隆) 연간까지 금서(禁書)로서 금서총목(禁書總目) 등에 들어가 있었으므로 1621년 초기 판본은 널리 퍼지지 못하고 중국의 북경 도서관, 중국 과학원 도서관 등 큰 도서관에만 이 판본이 있을 뿐이다. 남아 있는 판본도 청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말을 빼버려 많이 변개되었다. 예를 들어 모원의 자서에서 ‘동호(東胡)’를 ‘병과(兵戈)’로, 낭문환(郞文㬇)의 서에서 ‘동이소축(東夷小丑)’을 ‘역중소축(域中小丑)’으로, 그리고 228권의 사이(四夷) 중의 여진고(女眞考)의 내용을 빼버리기도 하였다.
19세기 들어 청나라 도광(道光) 때에 이르러 금서로 묶였던 것이 풀려서 이 책이 공개적으로 인쇄되었는데, 이때의 인쇄본은 목활자본으로, 책 앞에 명사절록(明史節錄)과 모대조소전(茅待詔小傳) 등이 덧붙여졌다. 이 판본은 청나라 초기의 인쇄본에서 빼고 인쇄한 것에 따라서 권 앞머리에서 이유정 등 여섯 사람의 서를 없앴고, 자서(自序)에서 ‘동호’를 ‘간과(干戈)’로 고쳤으며, 내용 중에 청나라에 거슬리는 말에 검은색으로 덮어 버렸고, ‘여진고’도 빼내었다.

4. 내용

《무비지》는 240권, 200여만 자와 738폭의 그림 등으로 이루어진 대형 병서로서 모두 다음과 같은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병결평(兵訣評)은 18책으로 중국의 역대 병법인 《손자병법》, 《오자병법》, 《사마법》, 《삼략》, 《육도》, 《울료자》, 《이위공문대》와 《태백음경》 등 9종의 병서를 설명하고 평가하였다. 다음으로 전략고(戰略考)는 춘추 시대부터 원대(元代)에 이르기까지 역대 중국 군사사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다루었고 모두 31권이다. 세 번째 진련제(陣練制)는 중국의 역대 진법과 진도(陣圖), 장수와 병사를 교련시키는 법, 무기를 다루는 방법 등을 소개하며 모두 41권이다. 넷째 군자승(軍資乘)은 군영과 성곽을 건설하고, 행군, 기치, 군율, 전함, 화약 병기, 둔전, 마필 등의 여러 문제를 다루며 55권이다. 점도재(占度載)에서 ‘점(占)’은 음양술과 기문육임(奇門六壬) 등 음양 점복의 내용을 두룬다. ‘도(度)’는 방여(方舆) 해안 방어, 강안 방어, 사이(四夷), 항해 등과 병가로서 갖추어야 할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모두 96권에 달한다.

5. 가치와 영향

《무비지》는 후금의 위협이 점차 심각해지던 17세기 초 모원의가 중국의 역대 병서 2,000여권을 종합적으로 참조하여 편찬한 대규모 병서로서 그 내용의 방대함과 정교함은 매우 우수하다. 그러나 출판되고 20여 년 만에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에서는 이 책의 내용에서 후금에 대해 멸시하는 부분이 적지 않아 금서로 취급하였으므로 출판되지 못하여 내용이 충분히 소개되지 않았다. 조선에서는 1737년(영조 13) 청나라 사행에서 이 책을 구입하여 가지고 들어와 평안 병영에서 50책으로 출판하였다. 이 책의 내용은 이후 조선의 병학을 풍부하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는데, 대표적으로 조선후기의 각종 전투용 수레 제작이나 18세기 말 정조대에 수원 화성(華城)의 건설 당시 각종 성곽 제도에 대한 내용은 무비지에서 많이 참조하였다는 점에서 조선의 병학사에도 중요한 서적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지금의 기예 중에 실제로 익힐 만한 것은, 장기(長器)가 모두 두 가지로 궁(弓)과 노(弩)이고, 단기(短器)는 모두 여섯 가지로 검(劍), 도(刀), 창(槍), 당파(鎲鈀), 패(牌), 낭선(狼筅)이다. 곤(棍)은 수족(手足)을 훈련하기 위한 것으로 단기(短器)의 근본이 되며, 권(拳)은 옛날의 수박(手搏)이다. 비록 사용하는 데 절실하지는 않지만, 또한 신체를 단련할 수 있기에 아울러 수록했으며 이것들에 대한 비교(比較)의 법으로 마쳤다.[今藝之實可習者 長器 凡二等 曰弓 曰弩 短器 凡六等 曰劍 曰刀 曰槍 曰鎲鈀 曰牌 曰狼筅 而棍者 所以習夫手足 爲短器之本 拳者 卽古者之手搏也 須不切于用 而亦可習其身臂 故幷載之 而終以比較之法]” 《무비지(武備志)》 권84 〈교예(較藝)〉
• “옛말에 ‘강한 노(弩)로 쏘더라도 화살이 끝에 가서 〈힘이 떨어지면〉 노(魯)나라의 고운 비단도 뚫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궁(弓)은 궁(窮)이니, 활과 사람의 힘을 각자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궁(弓)의 힘이 40근인 것은 사람들이 모두 쓸 수 있고, 5전이나 되는 무거운 화살을 쏠 수 있으니 어찌 된 것인가? 화살 길이가 2자 3치이고, 화살을 시위에 올리면, 현은 궁배(弓背)에서 5치 떨어져 있으니, 5치를 빼면 나머지가 1자 8치에 이르면 활은 깊이 결합되어 힘이 다하게 되는 데다가 사수(射手)의 〈화살을 쏠 때〉 놓아주는 기교와 힘이 더해진다. 그래서 백 보에서 화살을 쏘더라도, 여전히 적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古云 强弩之末 不能穿魯縞 是也 弓者 窮也 弓與人力 各得窮盡也 如弓力四十 人皆可用 能發五錢重箭 何也 箭長二尺三寸 搭上弓弦 弦去弓背五寸 除去五寸 仍餘一尺八寸 滿至觳 弓來合深力盡 又加射者撒放之巧力 故箭發百步 仍能殺敵]” 《무비지》 권84 〈교예(較藝)〉
(2) 색인어:모원의(茅元儀), 무비지(武備志), 여진고(女眞考), 화성(華城)
(3) 참고문헌
• 《武備志》(世華)
• 《武備志》(《中國兵書集成》 所收, 解放軍出版社)
• 《中國兵學》(宋元明淸 卷)(山東人民出版社)
• 〈조선후기 兵書와 戰法의 연구〉(盧永九,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노영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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