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중국 송(宋)나라 설두중현(雪竇重顯)이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조주록(趙州錄)》, 《운문록(雲門錄)》 등에서 100개의 고칙(古則)을 선별하여 각각에 게송(偈頌)을 붙인 《송고백칙(頌古百則)》에 송나라 원오극근(圜悟克勤)이 수시(垂示), 착어(著語), 평창(評唱)을 한 불교서적이다.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嚴錄)》 또는 《불과벽암파관격절(佛果碧嚴破關擊節)》, 《원오노인벽암록(圜悟老人碧嚴錄)》이라고 하며, 《벽암집(碧巖集)》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 특히 임제종(臨濟宗)의 공안집(公案集)의 하나로 10권으로 되어 있고, 1125년에 완성되었다.
2. 저자
(1)법명:원오극근(圜悟克勤)(1063~1135)
(2)자(字)·별호(別號):원오는 호이고 극근은 이름이다. 성은 낙(駱)이고 자(字)는 무착(無著)이다. 원오는 생전에 남송(南宋)의 고종(高宗)이 하사한 호이고, 불과선사(佛果禪師)는 휘종(徽宗)이 하사한 호이다. 시호(諡號)는 진각선사(眞覺禪師)이다.
(3)출생지역:중국 사천성(四川省) 팽주(彭州) 숭녕현(崇寧縣)
(4)주요활동과 생애
어려서 묘적원(妙寂院) 자성(自省)에게 출가하여 문희(文熙), 민행(敏行)을 따라 경론을 연구하다가 중국 임제종(臨濟宗)의 제5조 법연(法演)의 제자가 되어 그의 법(法)을 계승하였다.
혜근불감(惠勤佛鑒), 청원불안(淸遠佛眼)과 함께 법연 문하의 삼불(三佛)로 꼽힌다. 원오극근은 법연의 법을 계승한 후 임제종 양지파(楊枝派)에 속하여 휘종과 고종의 칙명에 따라 천녕만수선사(天寧萬壽禪寺), 금산신유사(金山新遊寺), 운거산진여원(雲居山眞如院) 등에서 선풍(禪風)을 크게 떨쳤고, 호북성(湖北省) 오조산(五祖山), 사천성 성도(成都) 소각사(昭覺寺), 호남성(湖南省) 협산사(夾山寺)와 도림사(道林寺) 등 각지에서 활약하였으며, 고급 관료의 귀의를 받기도 하였다. 후에 그는 협산영천원(夾山靈泉院) 등에서 설두중현(雪竇重顯)이 저술한 《송고백칙(頌古百則)》을 강연하고, 여기에 주석을 더하여, 《벽암록(碧巖錄)》 10권을 저술하였다. 안사부(安沙府) 도림사에서 불과선사라는 호를 받고, 금릉(金陵)의 장산(蔣山)에서 원오선사라는 호를 받았다. 만년에는 소각사로 돌아가 소흥(紹興) 5년(1135) 73세로 입적하였다.
《벽암록》이 편찬된 시기는 중국사상사의 일대 전환기였다. 한대(漢代) 훈고학(訓詁學) 일변도의 유학(儒學)이 노불사상(老佛思想)에 주도적 지위를 내준 이후, 당대(唐代)에 이르러 한유(韓愈)와 이고(李翶)를 필두로 배불(排佛) 기풍의 고취와 유학(儒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흐름이 송대(宋代)에까지 이어져 마침내 유학이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는 시점이었다.
(5)주요저작:《벽암록(碧嚴錄)》, 《원오불과선사어록(圜悟佛果禪師語錄)》
3. 서지사항
중국 송나라 시대 숭유배불(崇儒排佛)의 분위기가 무르익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원오극근은 불교의 특징을 재정립해보려고 하였는데,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하에 불교에 대한 새로운 변신과 새로운 시도가 《벽암록》의 편찬으로 구현되었다.
《벽암록》의 정확한 명칭은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嚴錄)》이며, 《불과벽암파관격절(佛果碧嚴破關擊節)》, 《원오노인벽암록(圜悟老人碧嚴錄)》, 《벽암집(碧巖集)》이라고도 한다.
송나라의 도원(道源)이 1004년에 과거칠불(過去七佛)에서부터 석가모니불을 거쳐 달마(達磨)에 이르는 인도 선종(禪宗)의 조사(祖師)들과, 달마 이후 역대 선종의 조사들, 오가(五家) 52세(世)에 이르기까지 법등(法燈)을 전한 법계(法系)를 차례로 기록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저술하였다. 이후 중국 선종 5가(禪宗五家)의 일파인 운문종(雲門宗)에 속하는 설두중현은 《경덕전등록》, 《조주록(趙州錄)》, 《운문록(雲門錄)》 등의 1,700칙(則)의 공안 중에서 선의 전통적 사상에 의거하여 달마선(達摩禪)의 본령을 발휘하여 학인(學人)의 수행에 중요한 지침이 되는 100칙을 골랐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에 종지를 높이 받들어 올리는 격조 높은 운문(韻文)의 송(頌)을 달았는데, 이것이 《송고백칙》이다.
후일 임제종의 원오극근이 협산 영천원 등에서 《송고백칙》을 강연하고, 이 송에 대하여 각 칙마다 서문적인 조어(釣語)(수시(垂示)), 본칙(本則)과 송고(頌古)에 대한 단평(短評)(착어(著語)), 전체적인 상평(詳評)(평창(評唱))을 가하여 10권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이 《벽암록》이다. 그 뒤 극근의 제자 대혜선사(大慧禪師)가 이 책으로 인해 선을 형식화하고 흉내만 내는 구두선(口頭禪)에 빠질까 우려하여 간본(刊本)을 회수하여 태워버렸다. 이 책이 불태워진 지 한참이 지나 원(元)나라 대덕 연간(大德年間)에 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장명원(張明遠)이라는 사람이 이 책의 사본을 찾아내 다시 간행을 했는데, 이때 표제를 ‘종문제일서원오벽암집(宗門第一書圜悟碧巖集)’이라고 붙임으로써 최고의 가치를 부여했다. 그 뒤 《벽암록》은 이를 저본으로 다시 여러 사람들에 의해 널리 공간(公刊)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암록》의 텍스트는 서너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는 것은 장명원본(張明遠本)이고 이 외에도 명본(明本)과 가흥장속장본(嘉興長續藏本), 건륭장본(乾隆藏本), 대청광서본(大淸廣書本) 등이 있다.
4. 내용
원오극근이 협산 영천원 등에서 설두중현의 《송고백칙》을 강연하고, 이 송에 대하여 각 칙마다 수시, 착어, 평창을 가하여 《벽암록》을 저술하였는데, 수시란 취급하는 그 칙의 종지나 착안점을 간단히 제시하는 서문적인 것이고, 착어란 그 칙이나 송고에서 구사되는 낱낱의 어구에 대한 부분적인 단평이며, 평창이란 그 칙과 송고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이다. 따라서 이 책은 설두의 문학적 표현과 원오의 철학적 견해가 혼연일체 되어 종교서인 동시에 뛰어난 문학서로도 평가받고 있다.
《벽암록》은 《송고백칙》 중에서 제6, 14, 18, 26, 28, 30, 34, 36, 44, 48, 52, 58, 64, 67, 71, 72, 78, 80, 83, 93, 96칙의 21개 본칙에 대해서는 수시를 생략하였다. 반면 본칙과 송에 대한 짤막한 단평인 착어와, 해설에 해당하는 평창은 전편에 걸쳐 빠짐없이 써넣었다. 착어는 냉소와 질타, 풍자와 독설로 이루어진 반면, 평창은 비교적 온건한 문투로 고사를 인용해가며 자세한 해설을 곁들여 크게 대비된다. 이 가운데 특히 착어는 평자들에 의해 촌철살인의 선기(禪機)를 격발하는 ‘용의 눈’과 같다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벽암록》에 등장하는 인물을 살펴보면 주로 중국인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본칙에는 140여 명의 인물이 나오며, 이 중 130명이 중국인이다. 유명한 선승 90명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으로 운문화상이 16회, 조주화상이 12회 등장한다.
5. 가치와 영향
《벽암록》은 중국 불교의 5대 종파 중 하나인 임제종에서 최고의 지침서로 꼽혔던 것으로, 원오극근의 제자에 의해 편찬·간행된 뒤,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에서 여러 차례 간행되었으며, 선종(禪宗)에서는 가장 중요한 전적으로 여긴다. 또한 이 책은 문학적으로도 매우 밀도 있게 완성되어, 중당(中唐) 이후 문단의 중심 사조인 돈오무심(頓悟無心) 사상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더구나 송대의 《창랑시화(滄浪詩話)》 등의 시평어집에서 당대(唐代)에 유행하던 돈오돈수(頓悟頓修) 사상을 근거로 당시(唐詩)를 평한 것을 상기할 때에 《벽암록》이 갖는 불교문학사적 위치는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선(禪)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영미권에서는 《벽암록》이 《Blue Cliff Record》라는 명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벽암록》은 우리나라 선가(禪家)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책으로, 오늘날까지 스님들의 수행에 길잡이 구실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유통된 것은 장명원본 계통의 것으로 이 책은 조선 세조 11년(1465) 을유자(乙酉字)로 간행되었다. 을유자는 세조 11년(1465) 《원각경》을 찍기 위하여 왕명에 의해 동으로 만든 활자인데 그해의 간지를 따서 을유자라고 부른다. 이 책은 현존 국내 최고본으로 보물 제1093호로 지정되었으며,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至道無難]” 〈제2칙 조주지도무난(趙州至道無難)〉
• “한 점 티끌 일어도 온 대지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고, 꽃 한 송이 피어도 온 세상이 일어난다.[一塵舉 大地收 一花開 世界起]” 〈제19칙 구지일지(俱胝一指)〉
• “금부처는 화로를 건너지 못하고, 나무부처은 불을 건너지 못하고, 진흙부처는 물을 건너지 못한다. 참된 부처는 오직 마음속에 있다.[金佛不渡鑪, 木佛不渡火, 泥佛不渡水, 眞佛內裏坐.]” 〈제96칙 조주삼전어(趙州三轉語)〉
(2)색인어:원오극근(圜悟克勤), 설보중현(雪竇重顯), 임제종(臨濟宗), 공안(公案), 달마(達摩).
(3)참고문헌
• 碧巖錄(圜悟克勤 著, 李喜益 譯, 상아출판사)
• 碧巖錄(圜悟克勤 著, 尙之煜 校注, 中州古籍出版社)
• 碧巖錄(雪竇重顯 頌古, 圜悟克勤 編撰, 鄭性本 譯解, 韓國禪文化硏究院)
• 벽암록 세트(원오극근 저, 석지현 역, 민족사)
• 벽암록 上‧中‧下(圜悟 著, 백련선서간행회 역, 藏經閣)
【함현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