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하 《은중경》)은 부모의 은혜를 중하게 여기라는 가르침을 담은 불교의 효행 경전이다. 일반적으로 불교 경전은 부처가 설법한 말씀을 많은 아라한들이 한자리에 모여 체계화한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을 말한다. 그러나 《은중경》은 이러한 결집 과정에 따라 만들어진 불경이 아니라, 중국 민간에서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성립된 민중 불교 경전이다. 본래 《은중경》의 완전한 서명은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며, 이를 ‘불설부모은중경(佛說父母恩重經)’ 혹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으로 약칭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당송(唐宋) 시대의 필사본과 석각본은 ‘불설부모은중경’으로 표기되었으나, 고려 우왕 4년(1378) 간행본부터는 ‘대보(大報)’ 2자가 증입되어 있어 경명(經名)을 통해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2. 저자
미상이다.
3. 서지사항
(1) 형성 과정
후한(後漢) 시대 서역에서 전래된 불교가 당대(唐代) 초기에 중국 전역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은중경》은 효 중심의 유교 사회에 새로운 외래 종교인 불교가 정착하기 위해서 두 문화가 융합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불교의 효행 문헌이다. 이러한 사실은 《은중경》의 성립 초기에 중국 한나라의 효자로 알려진 민간의 고사들이 포함된 필사본들이 다수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은중경》은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졌는데 현재 통행되고 있는 판본과는 다른 돈황사본과 석각본에는 여러 이본이 존재하고 있다. 이를 연구자에 따라 이를 ‘정난본(丁蘭本)’・‘산삭본(刪削本)’・‘강경본(講經本)’・‘증익본(增益本)’으로 분류하며, 단순히 갑본(甲本)・을본(乙本)・병본(丙本)・정본(丁本)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의 통행본(通行本)에 수록된 경문의 내용은 당송 때 유통되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인다. 그렇다고 과연 한국본이 중국본을 번각이나 중간하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독자적으로 편찬된 것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집역본(什譯本)에는 경제 다음 행에 ‘구마라집(鳩摩羅什)’이라는 중국의 한역자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중국본을 입수하여 간행하였을 개연성이 있다. 그러나 중국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아직 고려본보다 앞서 간행된 목판본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2) 유통
중국에서는 당송 시대에 《은중경》이 필사본과 석각본의 형태로 다수 유포되었으나, 이 시대에 목판에 새겨 인쇄한 목판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목판본은 오히려 12세기 무렵 중국 변방의 서하(西夏)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는데, 그동안 미궁으로 남아 있던 통행본의 형성과정에 있어서 한국본의 등장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중기에 대덕본(大德本)이 목판으로 처음 간행되었으며, 고려말에 이르러 비로소 경문과 도상이 완전하게 갖추어진 통행본이 등장하여 조선시대에 널리 유통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은중경》이 고려 초기부터 사본(寫本)으로 유통된 이래로, 고려 말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목판으로 간행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는 원나라로부터 유학의 새로운 사상이념인 성리학이 우리나라에 본격 수용되어 일대 사상적 전환을 가져왔다. 표면적으로는 사상의 전환과 국체의 교체가 이루어졌던 변혁의 시기에 불경 중 민중의 효행 경전으로 알려진 《은중경》은 왕실의 부녀자와 민간의 서민을 중심으로 부단히 간행되었던 경향을 보였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은중경》은 대략 1백여 종에 달하고 있다. 이들 간행본은 고려말에 간행된 집역본과 무오본(戊午本)을 저본으로 번각한 판본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널리 유행한 판본은 1443년에 전라도 고산(高山)의 화암사(花岩寺)에서 간행된 판본과 태종(太宗)의 후궁인 명빈(明嬪) 김씨의 발원(發願)으로 1451년에 왕실에서 간행한 판본이다. 이후 이들 판본을 모본(母本)으로 조선시대에 전국의 주요 사찰에서 4유형의 주요 판본 50여 종이 중간되었다. 그리고 종래의 한문본 위주의 출판 형태에서 벗어나 민간의 기층민과 부녀자를 위한 새로운 유형의 언해본이 출현하였다. 언해본은 1545년에 전라도 완주에 살았던 오응성(吳應星) 조부가 간행한 원암사본(圓岩寺本)을 저본으로 처음으로 언해하여 간행한 이후 이를 모본으로 전국에서 50여 종이 중간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은중경》의 전반적인 유통 양상은 아래의 표와 같다.
한국 간행본 《은중경》의 유통 양상
구 분 | 한문본 | 언해본 | 한글본 | 합계 |
무오본계통 | 집역본계통 | 합부본계통 | 화암사본계통 | 독자본 | 초역본계통 | 조원암계통 | 금산사계통 |
14세기 | 1 | 2 | | | 1 | | | | | 4종 |
15세기 | 5 | 4 | 2 | 6 | | | | | | 17종 |
16세기 | | 1 | 13 | 9 | 1 | 11 | | | | 35종 |
17세기 | | 1 | 1 | 2 | | 19 | 1 | | 1 | 25종 |
18-20 | | | 2 | | 3 | 5 | 1 | 4 | 6 | 21종 |
합계 | 6종 | 8종 | 18종 | 17종 | 5종 | 35종 | 2종 | 4종 | 7종 | 102종 |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은중경》 102종 중에 조선시대 전국 8도의 사찰에서 간행된 사찰본 중 간기가 확인되는 판본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비록 전 지역에서 간행되었으나 전라, 경상, 경기의 3개 지역에서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구 분 | 강원 | 경기 | 경상 | 전라 | 충청 | 평안 | 함경 | 황해 | 합계 |
한문본 | 1 | 9 | 9 | 9 | 6 | 2 | 3 | 6 | 45종 |
언해본 | 3 | 8 | 9 | 13 | 6 | 3 | 2 | 1 | 45종 |
합계 (%) | 4 (4%) | 17 (19%) | 18 (20%) | 22 (24%) | 12 (13%) | 5 (6%) | 5 (6%) | 7 (8%) | 90종 |
4. 내용
조선 정조 때 간행된 용주사본(龍珠寺本)은 현행본 중 유일하게 일반 불경의 편찬체제와 같이 서분(序分)・정종분(正宗分)・유통분(流通分)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분은 부처로부터 대중들과 설법을 들은 연기(緣起)를 밝히고 있으나, 정작 《은중경》은 중국에서 편찬된 위경(僞經)에 해당하므로 진경의 형식을 빌려온 것이다. 정종분은 법문을 설한 본론으로 〈보은인연(報恩因緣)〉・〈역진은애(歷陳恩愛)〉・〈광설업난(廣說業難)〉・〈과보현응(果報顯應)〉에 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는데, 여기에 수록된 ‘10은(恩)’과 ‘8비유(譬喩)’ 등은 나중에 도상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유통분은 설법을 마무리하는 단계로 제자와 대중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이 경을 설하여 널리 유통시킬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5. 가치와 영향
우리나라는 동아시아 국가에서 《은중경》을 가장 많이 간행 유포한 나라이다. 이는 국가의 교체와 사상적 변화와 함께 효행을 강조하는 조선의 성리학 사회의 특수한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출판 현상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현재 살아있는 자신의 복덕과 죽은 부모와 조상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공덕의 신앙적 행위가 투영되어 있을 것이다.
조선에서 불경의 간행은 비록 사찰에서 주관은 하고 있으나, 그에 소용되는 비용은 대부분 민간 시주자들의 기부로 충당되었다. 아무래도 시주의 기본적인 의도는 가문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기복적 성향이 강하였다. 비록 간행 동기가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기복적인 의도가 보이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조선 사회에 부모에 대한 은혜와 효행 의식을 민간에 널리 전파하였던 긍정적인 측면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특히 조선시대 전국적으로 간행된 언해본이 50여 종에 이르고 있어, 언어지리학적 측면에서 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단지 언해본이 지역적으로 어느 특정 지방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전국 8도의 사찰에서 고루 간행되었으며, 또한 시기적으로도 16세기 중반으로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 동안 지속적으로 개판되었다는 점에서 기록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 한국의 서적 간행사에 있어서 단일 불경으로 시공간적 측면에서 이처럼 간행의 빈도가 높은 사례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죽은 남자의 뼈는 희고 무거울 것이며, 혹시 여자의 뼈라면 검고 가벼울 것이다.[若是男子骨頭 白了又重 若是女人骨頭 黒了又輕]” 〈여래정례(如來頂禮)〉
• “부모를 두 어깨에 갈라 메고 수미산을 백천 번 돌아 살갗이 닳아서 어깨뼈가 드러나고 닳아도 부모의 깊은 은혜를 다 갚지 못하리라.[左肩擔父 右肩擔母 研皮至骨 骨穿至髓 遶須彌山 經百千劫 血流没踝 猶不能報 父母深恩]” 〈주요수미(周遶須彌)〉
• “부처가 이르길 그대들이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거든, 부모님을 위해 《은중경》을 쓰고 읽어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부처님을 맞이하여 재계하고 보시를 행해서 복을 지어라.[佛言弟子欲得報恩 爲於父母 書寫此經 爲於父母 讀誦此經 爲於父母 懴悔罪愆 爲於父母 供養三寳 爲於父母 受持齋戒 爲於父母 布施修福 〈계발참수(啓發懺修)〉
(2) 색인어: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불설부모은중경(佛說父母恩重經),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은중경(恩重經), 화암사(花岩寺), 오응성(吳應星), 초역본(初譯本)
(3) 참고문헌
• 〈韓國本 《父母恩重經:漢文》의 板本에 관한 硏究〉(송일기, 《書誌學硏究》 19, 2000)
• 〈韓國本 《父母恩重經:언해‧한글》의 板本 및 한글서체에 관한 연구〉(송일기, 《도서관》 55, 2000)
• 〈《佛說大報父母恩重經:諺解》의 初譯本에 관한 硏究〉(송일기, 《書誌學硏究》 22, 2001)
• 〈韓國本 《父母恩重經》 形成에 관한 硏究:西夏本 및 高麗本의 板本學的 接近〉(송일기,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37, 2006)
• 〈敦煌寫本 《父母恩重經》의 校勘學的 硏究〉(송일기, 《書誌學硏究》 35, 2006)
• 〈四川 安岳 臥佛院 59號窟 《佛說報父母恩重經》의 校勘 硏究〉(송일기, 《書誌學硏究》 55, 2013)
【송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