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중국 선진(先秦) 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대표적인 신화집 및 지리서. 우(禹)의 협력자 백익(伯益)의 저서라고하나 이것은 가설이고, 춘추 시대부터 한대 초기까지 걸쳐서 호기심 많은 학자들이 한 가지씩 첨가한 것인데, 현전하는 최고본(最古本)은 사고전서에 들어있는 진대(晉代) 곽박(郭璞)(276~324)이 부주(附注)한 《산해경》으로, 이는 남산경(南山經)에서 시작하여 해내경(海內經)으로 끝나는 총 18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2. 저자/편자
(1)성명:백익(伯益)(생몰년 미상)
(2)자(字)·별호(別號):백예(伯翳), 백예(柏翳), 백예(伯鷖), 대비(大費) 등으로도 불린다. 전설에 그는 새들과 말을 한다고 하여 ‘백충장군(百蟲將軍)’으로 불렸다.
(3)출생지역 : 미상(未詳)
(4)주요활동과 생애
고대 전설상의 인물이다. 상고 시대의 부족연맹장이며, 구주목(九州牧)을 지냈다. 그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집을 건축하고 우물을 판 인물로 알려져 있다. 순(舜)임금의 명령으로 우(虞)가 되어 초목조수(草木鳥獸)를 관장했다. 또 우(禹)임금 밑에서 치수를 도운 공으로 영(嬴)씨 성을 하사받아 영씨 성을 가진 제후의 조상이 되었다. 우임금의 밑에서 재상으로 봉직했는데, 우임금이 그를 선양(禪讓)할 사람으로 지목했으나, 우임금의 아들 계(啓)에게 임금 자리를 양보하고 기산(箕山)의 남쪽에 숨어 살았다. 일설에는 왕위를 다투다가 계에게 살해되었다고도 한다. 우물 파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서 정신(井神)으로도 불린다.
(5)주요저작 : 미상(未詳)
3. 서지사항
《산해경》은 선진(先秦) 시대의 서적으로 주요 내용은 고대 신화, 지리, 동물, 식물, 광물, 무술(巫術), 종교, 고사(古史), 의약, 민속, 민족 등의 분야로 이루어졌으며 원래 《산해도경(山海圖經)》이라고 불리는 지도책이 같이 있었으나 위진(魏晉) 이후에 유실되었다고 한다.
《산해경》의 작자와 제작기간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과거에는 우(禹)를 도왔던 백익(伯益)이 지은 것으로 여겼으나 현대 중국학자들은 이 책이 한 사람에 의해 일시에 쓰인 것이 아니라 대략 전국시대 초기부터 한나라에 걸쳐 파촉(巴蜀), 산동 및 제(齊) 지방 사람이 쓴 것을 서한(西漢) 시대에 합쳐서 편집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원래는 32편이었으나 현재는 18편만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서한의 유향(劉向), 유흠(劉歆) 부자가 간추려 교정(校定)하고 곽박이 주를 단 것이다.
현전하는 《산해경》은 일반적으로 18권이며, 크게 〈산경(山經)〉과 〈해경(海經)〉으로 나뉜다. 〈산경(山經)〉은 〈오장산경(五藏山經)〉 5권(〈남산경(南山經)〉‚ 〈서산경(西山經)〉‚ 〈북산경(北山經)〉‚ 〈동산경(東山經)〉‚ 〈중산경(中山經)〉)으로 이루어졌고, 〈해경(海經)〉은 〈해외사경(海外四經)〉 4권(〈해외남경(海外南經)〉‚ 〈해외서경(海外西經)〉‚ 〈해외북경(海外北經)〉‚ 〈해외동경(海外東經)〉)과 〈해내사경(海內四經)〉 4권(〈해외남경(海內南經)〉‚ 〈해외서경(海內西經)〉‚ 〈해외북경(海內北經)〉‚ 〈해외동경(海內東經)〉)과 〈대황사경(大荒四經)〉 4권(〈대황동경(大荒東經)〉‚ 〈대황남경(大荒南經)〉‚ 〈대황서경(大荒西經)〉‚ 〈대황북경(大荒北經)〉) 및 낱권인 〈해내경(海內經)〉으로 되어 있다. 총 5부 18권, 약 31,000여 자로 이루어져 있고, 100여 개의 주변 국가, 550개의 산, 300개의 수도(水道)와 주변 국가의 산수와 지리, 풍토물산 등의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남산경(南山經)〉 이하의 〈오장산경(五藏山經)〉 5편이 가장 오래된 것이며, 한(漢)나라 초인 B.C. 2세기 이전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한다. 그 다음으로 〈해외사경(海外四經)〉 4편, 〈해내사경(海內四經)〉 4편이 이어졌고, 한대(漢代)의 지명을 포함하였으며, 〈대황사경(大荒四經)〉 4편, 〈해내경(海內經)〉 1편은 가장 후대의 것으로 보인다.
유흠의 〈상산해경표(上山海經表)〉에 의하면 《산해경》의 고본(古本)은 원래 32편이었는데 유흠에 의해 18편으로 정리되었다고 하지만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13편으로‚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와 《신당서(新唐書)》 〈예문지(藝文志)〉에는 23권으로‚ 《구당서(舊唐書)》 〈경적지(經籍志)〉에는 18권으로 전하는 등 그 체제에 대해 여러 가지로 다르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전하는 18권의 체제를 바로 유흠이 정리한 18권의 체제와 동일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현재 전하는 18권 체제는 곽박이 주를 달면서 유흠의 18권 체제를 재구성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듯하다. 《산해경》의 세부적인 구성에 대한 여러 가지 사정은 복잡하지만 본서의 체제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산해경》은 크게 〈산경(山經)〉과 〈해경(海經)〉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서술체제나 내용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산해경》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이다.
원래 《산해경》에는 《산해도경》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그림과 설명이 함께 있었다고 하는데‚ 그림은 전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문자로 된 설명만이 남아 있다. 남조(南朝) 양(梁)의 장승요(張僧繇)와 북송(北宋)의 서아(舒雅)가 그림을 그려넣었다고 하지만 그것도 중간에 산일되어 전하지 않는다. 《산해경》이라는 서명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대완전(大宛傳)〉에서인데,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 책에 대해 “감히 말할 수 없는 기서”라고 하여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진대의 곽박이 여기에 주를 달았으며, 이후 송나라, 명나라, 청나라의 많은 학자들에 의해 《산해경》과 관련한 문헌 고증, 지리, 민속, 역사, 의술 등 다방면의 연구가 이루어졌고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그 중 청나라 때 유명한 사학자이자 문학자인 필원(畢沅)은 곽박의 주석에 다른 학자들의 주석을 증보하여 《신교정산해경》을 펴냈으며, 특히 1980년 중국신화학의 석학인 원가(袁珂)가 《산해경교주(山海經校注)》를 출간한 이후 이 책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자리 잡게 되었다.
4. 내용
《산해경》은 외형상으로는 지리서나 박물지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주로 동식물, 이인(異人), 이역(異域)에 관한 내용을 수록하였고, 일부 신화도 실려 있다. 18권 각각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산경〉 부분에 해당하는 〈오장산경〉 중 〈중산경〉은 분하(汾河)의 하류 및 이하(伊河)와 낙하(洛河) 사이의 지방‚ 즉 지금의 산서성 남서부로부터 하남성 북서부 및 낙양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을 다루고 있고‚ 그 주변의 서방 및 북서방의 섬서성과 감숙성 방면은 〈서산경〉과 〈북산경〉에‚ 북방 및 북동방의 산서성과 하북성 방면은 〈북산경〉에‚ 남방의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 강소성‚ 절강성 방면은 〈남산경〉에 기록되어 있다. 동방 및 남동방의 산동성에서 강소성‚ 안휘성 북부에 걸친 지방은 〈동산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중간에 없어진 부분이 있는지 내용이 매우 소략하다.
이들 〈오장산경〉의 내용은 산맥 특히 주요한 봉우리 상호간의 방향과 거리‚ 산출되는 광물 및 서식하는 동식물과 그 주술적인 능력‚ 흐르고 있는 하천의 방향과 주입구 등을 거의 한결같은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각 산맥에 대한 설명의 마지막 부분에는 해당 산맥의 수미(首尾)와 산의 수‚ 총 길이‚ 산에 사는 주신(主神)의 형상‚ 그 신에 대한 제사의 구체적인 방법 등을 서술해놓고 있다. 이외에도 〈산경〉에는 역대 무사(巫師), 방사(方士)와 사궁(祠官)의 조사기록이 장기간에 걸쳐 편찬되었으며 제례 의식 또한 다수 기술되어 있어 주례(周礼)의 기록 및 새로 발견된 자료들과 함께 중요한 연구 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내용면으로는 비교적 단조롭고 인문지리서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해경〉 부분인 〈해외사경〉과 〈해내사경〉 및 〈대황사경〉‚ 그리고 낱권으로 되어 있는 〈해내경〉의 명칭들만을 가지고 보자면 〈해내사경〉 및 〈해내경〉은 사해 안의 지역‚ 즉 중국 내에 대한 기록이 될 것이고 〈해외사경〉 및 〈대황사경〉은 중국 밖의 넓은 세계의 풍속과 사물, 영웅의 행적, 신들의 계보, 괴물에 대한 묘사 등 기괴한 이야기들이 주된 내용으로 신화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실제 내용은 꼭 그렇지는 않다. 이 중 〈해내동경〉의 끝에 양자강 이하 26개 주요 하천의 수원(水源)‚ 하구(河口) 등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해경〉 부분의 기술방식은 〈산경〉 부분과 다르긴 하지만 그 나름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내용은 이국의 풍속과 사물‚ 영웅의 행적‚ 신들의 계보‚ 괴물에 대한 묘사 등 다양하여 〈산경〉이 지리서에 가까운 것에 비해 신화서에 가까운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산해경》은 지리, 역사, 종교, 문학, 철학, 민족, 민속, 동물, 광물, 의약 등을 포괄하는 백과전서 성격의 문헌이다. 따라서 그 내용이 복잡하고 방대해서 현대적 학문 장르로는 구분하기 어렵다. 《한서》 〈예문지〉에서는 술수략(術數略)의 형법류(刑法類)로 분류했고 《수서》 〈경적지〉에서는 사부(史部) 지리류(地理類)로 《송사》 〈예문지〉에서는 팔백오십삼부(八百五十三部) 오행류(五行類)로, 청대 《사고전서총목제요》에서는 이 책을 ‘소설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하면서 자부(子部) 소설가류(小說家類)로 분류했다.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였던 노신(魯迅)은 이 책을 좋아하여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여러 가지 《산해경》 판본을 수집하여 소장하였다고 하는데, 그는 《중국소설사략》에서 이 책을 ‘옛 무서’라고 하여 샤머니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책으로 보기도 하였다. 산신에 대한 제사에서 쌀을 바친다든가, 곤륜산(昆侖山)이나 건목(建木)과 같은 산과 나무에 대한 숭배, 가뭄 때 희생되는 무녀(巫女)의 존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러한 판단이 더욱 확실해진다. 또한 《산해경》은 다른 고서에는 잘 보이지 않는 왕해(王亥), 제준(帝俊) 등은 왕조의 조상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동이계(東夷系) 민족의 특징적인 문화현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산해경》이 한국의 고대 문화와도 상관관계가 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5. 가치와 영향
《산해경》은 중국 고대의 지리‚ 역사‚ 신화‚ 민족‚ 동물‚ 식물‚ 광산‚ 의약‚ 종교 등 다방면에 관계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중국 고대사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산해경》이 갖는 가치는 단순히 중국의 신화와 관련된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인근의 여러 민족들, 한국·일본·월남·티베트·몽골 등 동아시아 전역의 고대 문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 마디로 《산해경》은 동아시아 고대인의 꿈과 무의식에 뿌리를 둔 원형적 이미지들을 집대성한 상상력과 환상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동아시아 고대인들이 가졌던 세계관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조선(朝鮮)·숙신(肅愼)·맥(貊) 등 옛 한국과 관련되는 지명들이 등장하고 이른바 동이(東夷)계 문화가 적잖이 포함되어 있어 우리 상고사의 수수께끼를 풀어갈 단서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규보(李奎報)가 〈산해경의힐(山海經疑詰)〉, 〈산해경의어(山海經疑語)〉 등을 남겨 산해경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였고, 신흠(申欽)은 광해군 때 춘천에 유배하면서 〈독산해경(讀山海經)〉 13수를 지었으며, 박지원(朴趾源)은 《산해경》의 내용을 소재로 삼은 그림인 〈산해도(山海圖)〉를 열람해보고 〈수산해도가(搜山海圖歌)〉를 지었으며, 이덕무(李德懋)는 〈산해경보(山海經補)〉를 지었다. 또 정약용은 〈송진택신공유백두산서(送震澤申公游白頭山序)〉에서 “백두산은 《산해경》에서 말한 불함산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렇듯 《산해경》은 조선의 선비들에게도 꾸준히 읽혀져 왔다.
최근 일본에서는 소설과 애니메이션으로 인기를 끌었던 《십이국기》의 저자 오노 후유미(小野不由美)도 자신의 작품의 근거를 《산해경》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우리가 《산해경》을 중국의 신화집으로만 보지 않고 동아시아 고대문화의 원천이자 상상력의 뿌리로 간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동구라는 산에 군자국이 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찬다.[有東口之山 有君子之國 其人衣冠帶劍]” 〈대황동경(大荒東經)〉
• “제준에게는 여덟 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이들이 처음으로 가무를 행하였다.[帝俊有子八人 是始爲歌舞]” 〈해내경(海內經)〉
•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조선과 천독이라는 이름의 나라가 있는데, 그곳의 사람들은 물가에 살면서 남과 친하게 지내고 사랑한다.[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之]” 〈해내경(海內經)〉
(2)색인어 : 산해경(山海經), 산경(山經), 해경(海經), 백익(伯益), 곽박(郭璞), 산해도경(山海圖經), 유향(劉向), 유흠(劉歆), 필원(畢沅), 원가(袁珂), 산해경교주(山海經校注).
(3)참고문헌
• 산해경(정재서 역주, 민음사)
• 산해경-중국 최고의 지리·의학·역술·보물·신화의 판타지(예태일, 전발평 저, 김영지, 서경호 역, 안티쿠스)
• 산해경(장수철 역, 올재클래식스)
• 산해경(장수철 저, 현암사)
• 산해경 연구(서경호 저, 서울대학교출판부)
【함현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