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서보(書譜)》는 당나라 손과정(孫過庭)이 수공(垂拱) 3년(687)에 저술하여 자필 초서로 기록한 서법 이론서이다. 원본은 세로 27.2㎝에 가로 898.24㎝의 종이에 351행 3,500여 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 70여 자는 연문(衍文)이며 ‘漢末伯英’의 아래에 30자가 결락되어 있고, ‘心不厭精’의 아래에 다시 30자가 결락되어 있다. 《서보》는 송나라 내부(內府)에 상·하 2권으로 남아 있었으나 하권이 산실되어 지금은 상권만 대만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
2. 저자
(1)성명:손과정(孫過庭)(?~?)
(2)자(字)·별호(別號):자는 건례(虔禮).
(3)출생지역:관적(貫籍)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현재의 개봉(開封) 지역에 위치하던 진류(陳留) 출신이라는 설과 현재의 항주(杭州) 서남쪽에 위치하던 부양(富陽) 출신이라는 설이다. 대체로 부양(富陽)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손과정 자신은 오군(吳郡), 곧 지금의 소주(蘇州) 출신이라고 하였다.
(4)주요활동과 생애
그의 벼슬은 솔부록사참군(率府錄事參軍)에 이르렀다.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草書) 3체에 능하였으며 우군(右軍)(왕희지(王羲之))의 법을 깊이 얻었다. 임모(臨模)에 뛰어나 진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베껴냈다. 수공(垂拱) 3년(687)에 《서보》를 지어 정서와 초서 2체의 필법(筆法)과 장법(章法) 및 작자 본인의 경험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송나라 고종(高宗)이 “《서보》는 문사(文詞)가 화려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초서의 법이 겸비되어 있다.”라고 평하였듯이, 손과정은 단지 서법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문사가 훌륭하여 스스로 깨달은 정미한 이치를 《서보》에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5)주요저작:미상(未詳)
3. 서지사항
《서보》의 진적(眞籍)은 송나라 내부(內府)에 소장되어 ‘선화(宣和)’와 ‘정화(政和)’의 인장이 찍히고 휘종(徽宗)의 제첨(題籤)이 기록되었다. 이후 손승택(孫承澤)의 소유가 되었다가 안기(安岐)의 소유가 되었고 다시 청나라 내부로 들어갔다. 현재는 대만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
말미에 “이제 6편으로 엮어 나누어 두 권으로 만든다.[今撰爲六篇 分成兩卷]”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가 다소 엇갈린다. 첫째로 따로 2권의 정문(正文)이 있고 이는 그 서문을 쓴 것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다. 《선화서보》에 ‘書譜序上下二’로 되어 있는 것을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 둘째로 이것이 정문(正文) 전체에 해당하고 이를 상·하 2권으로 나누어 엮었을 뿐인데, 이후 여러 차례 새로 장정하는 과정에 권차의 구분이 사라져 하나로 되었다고 하는 견해가 있다. 《비각속첩(秘閣續帖)》과 《대관첩(大觀帖)》 및 《三希堂帖》 등에 모각본(模刻本)이 전해지고 있다.
4. 내용
《서보》는 왕희지 이후로 전승되고 있는 서법의 근원을 논한 서학 이론서이다. 약 3,700여 자로 이루어진 장편이다.
손과정은 《서보》에서 “처음에 분포(分布)를 배워 평정(平正)을 추구하고, 평정을 이해한 뒤에는 험절(險絕)을 힘껏 추구하고, 험절에 이른 뒤에는 다시 평정으로 돌아간다.”라고 하여 서법 학습의 과정을 세 단계로 제시하였다.
또한 기존에 서법을 논한 것들에 대해 “매우 부화(浮華)하여 겉의 외형을 묘사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이치를 이해하지는 못하였다.[多涉浮華 莫不外狀其形 內迷其理]”고 비평하였는데, 《서보》에서 특히 운필(運筆)에 대하여 자세히 서술하여 작자(作字)의 법을 제시하였다. 이 때문에 후인들이 《서보》를 운필론(運筆論)이라고 일컬으며 운필의 지침으로 삼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다만 붓을 급속(急速)하게 쓰기를 좋아한 점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병통으로 여겼다고 한다. (《선화서보(宣和書譜)》 권18 〈손과정(孫過庭)〉)
5. 가치와 영향
당나라 고종(高宗)이 “손과정의 작은 글씨는 이왕(二王)(왕희지 부자(父子))의 글씨와 구별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왕의 글씨를 완벽하게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서보》는 이런 바탕 위에서 완성되었다.
손과정은 글씨 쓰기에 적당한 때와 적당하지 않은 때를 다섯 가지씩 꼽았는데, 이를 ‘오괴오합설(五乖五合說)’이라고 한다. ‘마음이 편하고 일이 한가할 때’, ‘느낌이 순조롭고 지각이 민첩할 때’, ‘날씨가 화창하고 기운이 생동할 때’, ‘종이와 먹이 잘 어울릴 때’, ‘우연히 쓰고 싶어질 때’가 적당한 때이며, ‘마음이 급하고 몸이 굼뜰 때’, ‘뜻이 어긋나고 기세가 꺾일 때’, ‘바람이 건조하고 태양이 뜨거울 때’, ‘종이와 먹이 어울리지 않을 때’, ‘마음이 늘어지고 손이 게으를 때’가 적당하지 않은 때이다.
손과정의 행초서, 특히 그가 남긴 《서보》는 이왕(二王)의 행초서와 함께 우리나라 서단에서 오랫동안 최고의 법서로서 추종되었다. 《서보》는 현재도 우리나라 서단에서 반드시 학습해야 하는 핵심 법서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힘껏 험절함을 추구한 뒤에 다시 평정함으로 돌아간다.[務追險絶 復歸平正]” 〈서보(書譜)〉
• “절묘함이 신선에 견줄 수 있다.[妙擬神仙]” 〈서보(書譜)〉
• “정신이 편안하고 일이 한가하다.[神怡務閒]” 〈서보(書譜)〉
• “느낌이 순조롭고 지각이 민첩하다.[感惠徇知]” 〈서보(書譜)〉
• “때가 조화롭고 기운이 윤택하다.[時和氣潤]” 〈서보(書譜)〉
• “종이와 먹이 서로 잘 발휘한다.[紙墨相發]” 〈서보(書譜)〉
• “우연히 글씨를 쓰고 싶어지다.[偶然欲書]” 〈서보(書譜)〉
(2)색인어:손과정(孫過庭), 건례(虔禮), 서보(書譜), 무추험절부귀평정(務追險絶復歸平正), 묘의신선(妙擬神仙), 달기정성형기애악(達其情性形其哀樂), 오괴오합(五乖五合).
(3)참고문헌
• 손과정 서보 역해(임태승, 미술문화)
• 〈孫過庭《書譜》研究文獻述略〉(裴芹, 《內蒙古民族師院學報》, 1997)
• 〈孫過庭《書譜》的書法理論闡述〉(趙赫男, 遼寧師範大學碩士學位論文, 2013)
• 〈손과정의 《書譜》에 있어서 창조의 문제〉(민주식, 《美學》, 1985)
• 〈손과정의 《서보》에 나타난 서예사관과 서예론〉(曺松植, 《泰東古典硏究》, 1997)
【신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