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소창유기(小窓幽記)》는 명(明)나라 진계유(陳繼儒)를 대표로 한 일군(一群)의 인사들이 고래의 명언명구를 모아놓은 책이다. 만명(晩明) 청언소품(淸言小品)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받아, 명대 홍응명(洪應明)의 《채근담(菜根譚)》, 청대 왕영빈(王永彬)의 《위로야화(圍爐夜話)》등과 함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3대 필독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 저자
(1) 성명:진계유(陳繼儒(1558~1639))
(2) 자(字)·별호(別號):자는 중순(仲醇), 호는 미공(眉公) 또는 미공(麋公)이다.
(3) 출생지역:송강(松江) 화정(華亭(현 중국 상해시(上海市)))
(4) 주요활동과 생애
《명사(明史)》 〈은일전(隱逸傳)〉에 보면 “나이가 갓 29세였을 때, 유생의 의관을 가져다 소각시키고 곤산(昆山) 북쪽에 은거하였으며……마침내 동사산(東佘山)에 집을 짓고 틀어박혀 저술에 전념하며 그곳에서 생을 마감할 뜻을 품었다,[年甫二十九 取儒衣冠焚棄之 隱居昆山之陰……遂築室東佘山 杜門著述 有終焉之志]”고 하였다. 실제로 그 후 50여 년간 줄곧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민생에는 큰 관심을 기울여, 인근 지역에 큰 재해가 날 때마다 해당 관청에 식량 원조, 세금 감면 등을 호소하며 구휼에 앞장섰다.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고 특히 간결한 필치로 산림에 은거하는 멋과 여유를 잘 묘사한 풍치가 넘치는 소품문을 잘 지었다. 천하에 명성이 난 뒤로는 사방에서 글을 구하는 이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벼슬아치들과도 폭넓게 교유하며 ‘산중재상(山中宰相)’이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기도 하였다. 글씨는 소식(蘇軾)과 미불(米芾)을 배웠고 그림에도 능하였다.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높은 예술적 안목으로 당대 화단의 영수인 동기창(董其昌)과 교유하며 주목할 만한 예술적 견해를 밝히기도 하였다. 그 명성은 황제에게까지 알려져서 당권자들에 의해 누차 추천을 받았으나 병을 이유로 거절하였고 동림서원(東林書院)을 이끈 고헌성(顧憲成)으로부터 역시 초빙을 받았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82세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풍류와 문필로 자유로운 일생을 보냈다.
(5) 주요저작:《진미공선생전집(陳眉公先生全集)》, 《황명서화사(皇明書畵史)》, 《태평청화(太平淸話)》, 《숭정송강부지(崇禎松江府誌)》, 《보안당비급(寶顔堂秘笈)》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사실 이 책의 작자가 진계유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의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논의를 간추려서 정리하면, 이 책은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라는 책을 새롭게 엮은 것으로, 청대의 출판상이 진계유의 명성에 의탁하여 출판한 것이다. 원래 《취고당검소》는 명대 육소형(陸紹珩)이 엮은 것으로, 책에 열거된 많은 감수자 가운데 첫 번째 감수자가 바로 진계유였다. 청대의 출판상은 육소형의 명성이 크지 않다는 점을 우려하여 첫 번째 감수자로 당시 널리 알려진 진계유를 제1저자로 내세웠다.
《소창유기》의 최초 판본은 청(淸) 건륭(乾隆) 35년(1770)에 간행된 것으로, 12권 4책으로 이루어졌다. 최유동(崔維東)이 출판하였으며 표지에는 “미공진선생집(眉公陳先生輯)”, 곧 “진계유 선생이 엮음”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또한 진본경(陳本敬)은 그 서문에서 진계유 선생은 일대 명성을 떨쳤으며 지향이 고상하여 일찍이 《소창유기》를 엮어 즐거움으로 삼았다고 소개하였다. 더불어 《취고당검소》의 중복된 내용들을 편집하고 항목이나 순서를 바꾸었고, 자구 또한 손을 봤으며 항목별 안배 또한 조정하였다. 특히 시대적 상황의 변화로 인해 비판적 내용을 순화하는 등 내용에도 수정을 가하였다. 하지만 청대 사고관(四庫館) 학자들이 견지했던 명말 소품문에 대한 비판 기조가 당시 출판된 《소창유기》에도 타격을 미쳐 이후 더 이상의 재출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최근에서야 소품문에 대한 관심과 함께 활발하게 출판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시중에 출판되고 있는 책들의 저자 표기와 학계의 논의에 비추어보면, 위에 기술한 당시의 출판 상황과 함께 진계유가 일정 부분 관여하기는 하였으며 또한 이 책의 내용 기조가 기본적으로 진계유의 사상, 인생 태도 등과 일치한다는 점, 그간의 사료 기록 등으로 인해 대체로 진계유의 저작으로 묵인하는 분위기라 할 수 있다.
4. 내용
이 책은 성(醒), 정(情), 초(峭), 영(靈), 소(素), 경(景), 운(韻), 기(奇), 기(綺), 호(豪), 법(法), 천(倩) 등 12권으로 나누고 각 주제에 맞춰 관련 명언들을 엮은 책으로, 도합 천오백 여 명언들이 수록되어 있다. 명언들은 여러 책에서 발췌하여, 위로는 선진에서 아래로는 명말까지 유교, 불교, 도교, 제자백가, 시, 문장 등 여러 형식의 글을 두루 망라하였다. 인용한 책 가운데에는 명대의 저작이 가장 많으며, 그중 진계유의 《암서유사(巖棲幽事)》, 《안득장자언(安得長者言)》, 도륭(屠隆)의 《파라관청언(婆羅館淸言)》, 《속파라관청언(續婆羅館淸言)》, 《명료자유(冥寥子游)》, 오종선(吳從先)의 《소창사기(小窓四紀)》, 홍응명(洪應明)의 《채근담(菜根譚)》, 원굉도(袁宏道)의 《병사(甁史)》, 당인(唐寅)의 《낙화시책(落花詩冊)》, 범립본(範立本)의 《명심보감(明心寶鑑)》, 이지(李贄)의 《분서(焚書)》 등이 대표적이다. 책의 구절을 인용하는 방식은 원문을 그대로 옮기거나 아니면 부분 절취를 하고 또는 순서를 도치시키거나 생략하는 등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각 장에서 내세운 주제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주제어들은 명말 문인들이 매우 관심을 가진 것들로, 이러한 책의 구성은 명말의 문화와 사상 관념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주된 내용을 간추려본다면, 문인들의 독서 방법을 소개하거나 명말 문인들의 품덕을 기리고 인간 본연의 진실한 감정을 중시하며 위진풍도(魏晉風度)를 예찬함으로써 문인 문화를 누리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구가하는 지향 등등을 담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명 중엽 이후 상품 경제의 발달로 시민 계층이 확대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사상, 문화적 조류에 있어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소창유기》는 당시의 분위기를 살피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우선 사상적 측면에서 상대적인 자유 추구와 개방적 분위기, 그리고 유·불·도의 융합의 조류 등 당시 사상의 변화를 인식하는 데 도움을 주며, 문화적 측면에서도 자신의 취향에 따라 각종 취미활동에 몰두했던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이러한 분위기는 문학적 측면에서도 통속적인 작품에 대한 긍정과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한편으로 수필, 잡기, 일기, 서찰, 유기 등 소품 형식의 문학형식의 유행을 불러왔는데, 이 책은 그러한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내용 면에서도 ‘성령(性靈)’을 주창하고 있어서, 중국 소품문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빈곤함은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 아니지만 빈곤하면서 포부까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비천한 것은 싫어할 만한 일이 아니지만 비천하면서 능력마저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싫어할 만한 일이다. 나이를 먹는 것은 탄식할 만한 일이 아니지만 나이를 먹었으나 이루어놓은 것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탄식할 만한 일이다. 죽는 것은 슬퍼할 만한 일이 아니지만 죽으면서도 세상에 보탬이 된 것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슬퍼할 만한 일이다.[貧不足羞 可羞是貧而無志 賤不足惡 可惡是賤而無能 老不足歎 可歎是老而虛生 死不足悲 可悲是死而無補]” 〈권(卷)1 성(醒) 1.160〉
• “선비는 가난하여 물질적으로 남을 구제할 수는 없으나, 어리석어 헤매는 경우를 만나면 말 한마디로 깨우치고, 위급하여 곤란을 겪는 경우를 만나면 말 한마디로 도와줄 수 있으니 이 또한 한없이 큰 덕행이다.[士君子貧不能濟物者 過人痴迷處 出一言提醒之 遇人急難處 出一言解救之 亦是無量功德]” 〈권(卷)4 영(靈) 4.128〉
• “밤은 하루 중에서 여유로운 시간이고, 비 오는 날은 한 달 중에서 여유로운 날이며, 겨울은 일 년 중에서 여유로운 계절이다. 이 세 가지 여유로운 때에는 인간사가 매우 드무니 참으로 온 마음을 쏟아 학문을 닦아야 한다.[夜者日之餘 雨者月之餘 冬者歲之餘 當此三餘 人事稍疏 正可一意問學]” 〈권(卷)4 영(靈) 4.122〉
(2) 색인어:진계유(陳繼儒), 청언소품(淸言小品), 소창유기(小窓幽記),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
(3) 참고문헌
• 《小窓幽記(揷圖本)》(陳橋生 評注, 中華書局, 2011)
• 《小窓幽記》(安慧眞, 고려대학교 인문정보대학원, 2007)
• 〈《醉古堂劍掃》와 《小窓幽記》에 대한 有感〉(姜炅範, 《中國文學硏究》제32집, 2006)
• 〈《小窓幽記》的獨特價値〉(張瑞君, 鄭夏泉, 《井岡山大學學報》, 2019)
• 〈論《小窓幽記》在中國小品文史上的地位和影響〉(魯儀, 閆語婷, 《安徽文學》382, 2015)
• 〈從《醉古堂劍掃》到《小窓幽記》-板本變化及其背後的文化風尙變遷〉(成敏, 《中國文化硏究》, 2014)
⦁〈陳眉公著述僞目考〉(李斌, 《學術交流》, 2005)
【백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