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은 송(宋)나라 때 진백(陳栢)이 지은 잠(箴)이다. 《조석잠(朝夕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선비의 하루 일정을 수양 공부에 초점을 두어 시간 순서에 따라 이상적인 방식으로 묘사 혹은 규정하여 둔 글로서, 기본적으로 주자학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2. 저자
(1) 성명:진백(陳栢) (?~?). 백(栢)은 혹은 백(柏)으로 표기되기도 한다.3. 서지사항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숙흥야매잠》과 관련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은 원(元) 정단례(程端禮)( 1271∼1345)의 《독서분년일정(讀書分年日程)》에 실려 있는 것이다. 정단례는 경원(慶元)(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영파시(寧波市) 지역) 은현(鄞縣) 사람으로서 자(字)는 경숙(敬叔)이고, 호(號)는 외재(畏齋)이다. 《원사(元史)》에 의하면 경원(慶元) 지역에는 송말(宋末)부터 모두 주희(朱熹)보다는 육구연(陸九淵)의 학문을 존상(尊尙)하였는데, 그가 유독 사몽경(史蒙卿)(1247∼1306)을 종유(從遊)하여 주자(朱子)의 명체달용(明體達用)의 사상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의 저작인 《독서분년일정》은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성장하기까지 공부해야 할 책들을 나이 순서에 따라 소개한 책으로서, 기본적으로 주자의 교학관(敎學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진백의 《숙흥야매잠》은 15세 지학(志學) 이후 읽어야 할 글로서, 정자(程子)의 《사물잠(四勿箴)》, 주자의 《경재잠(敬齋箴)》, 서산(西山) 진덕수(眞德秀)의 《야기잠(夜氣箴)》과 함께 제시되어 있고, 그 전문(全文)이 수록되어 있다. 정단례는 또한 “옛날 금화(金華)의 노재(魯齋) 왕(王)선생(이름은 백(栢)이고 자는 회지(會之))이 이 잠(箴)을 사용하기에 매우 절실한 것이라 여겨 상채서원(上蔡書院)의 학생들에게 가르쳤고, 사람을 시켜 한 부를 베껴 쓰도록 하여 좌우(左右)에 두고 보았다.”라고 하여 《숙흥야매잠》이 전해지게 된 데에 노재(魯齋) 왕백(王栢)(1197∼1274)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금화(金華)는 곧 절강성 지역이고, 왕백은 주자의 사위이자 제자인 면재(勉齋) 황간(黃榦)(1152∼1221)의 제자인 북산(北山) 하기(何基)(1188∼1269)의 제자로서, 이른바 ‘금화주자학(金華朱子學)’의 중심적인 인물이었다. 이것은 원(元) 오사도(吳師道)(1283∼1344)의 〈제정경숙독서공정후(題程敬叔讀書工程後)〉라는 글에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오사도는 또한 《오예부시화(吳禮部詩話)》에서 “노재 왕선생이 천태 남당 진백의 숙흥야매잠을 기록해 두었다[魯齋王先生 既錄天台陳南塘柏茂卿夙興夜寐箴]”라고 전하고 있기도 하다.4. 내용
《숙흥야매잠》은 기본적으로 주자학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여, 사대부가 일상의 하루의 시간 진행에 따라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지고 자신을 단속하고 공부할 것인가를 잠(箴)의 형태로 간략하게 서술하여 제시한 글이다. 총 208자(字)로 되어 있다. ‘숙흥야매’란 이른 아침에 일어나고 밤늦게 잠든다, 곧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을 형용한 것으로 《詩經》 〈大雅·抑〉에 나오는 말이다.5. 가치와 영향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숙흥야매잠》은 원래 송대 말 절강 지역의 유학자인 진백에 의해 창작되고 이후 주로 절강 지역의 유학자들에 의해 중시되면서 전승되어 오던 것으로서, 이른바 금화주자학(金華朱子學)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글이다. 기본적으로 주자학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또한 도교(道敎) 수양론이나 선학(禪學)의 용어와 관념을 채용한 측면도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 《숙흥야매잠》의 학술적 실천적 의의에 주목한 최초의 학자는 소재(穌齋) 노수신(盧守愼)(1515∼1590)이었다. 그는 1560년경, 거기에 상세한 주해(註解)를 덧붙여 《숙흥야매잠해(夙興夜寐箴解)》를 저작하고, 그것을 퇴계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에게 보내 자문을 구하여 그들의 수정 견해들을 대폭 반영하였으며, 그렇게 수정된 원고를 조정에 건의하여 교서관(校書館)에서 출판함으로써 당대에 공적(公的)인 인정을 받도록 하였다. 퇴계는 후에 자신의 《성학십도(聖學十圖)》 제10도에 그 전문(全文)을 수록하고, 제9도 〈경재잠도〉(王栢 作)를 본떠서 직접 〈숙흥야매잠도〉을 그렸다. 퇴계는 이 잠의 핵심이 경(敬)에 있다고 보고, 주자의 《경재잠》이 공간적 지점[地頭]에 따라 해야 할 경(敬) 공부를 제시한 것이라면, 이 《숙흥야매잠》은 시간적 흐름[時分]에 따라 해야 할 경 공부를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여, 경 공부에서, 더 나아가서는 도학(道學)에서 이 잠이 차지하는 의미와 의의를 자리매김하였다. 퇴계에 의하면 경 공부의 이러한 두 측면은 도(道)의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보편적 편재성에 대응한 것이다. “대저 도(道)는 일상생활 사이에서 유행(流行)하여 없는 곳이 없어서, 어느 한 곳도 이(理)가 없는 곳이 없으니 어느 곳엔들 공부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어느 한순간도 멈추는 때가 없어서 어느 한순간도 이(理)가 없는 때가 없으니 어느 때인들 공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夫道之流行於日用之間 無所適而不在 故無一席無理之地 何地而可轍工夫 無頃刻之或停 故無一息無理之時 何時而不用工夫]”(《성학십도》 〈제10 숙흥야매잠도〉) 이후 퇴계 학맥에 속하는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1815∼1900)는 이 잠에 대한 주해를 모아 《숙흥야매잠집설(夙興夜寐箴集說)》을 저작하였다.6. 참고사항
(1) 명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