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명말(明末)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여곤이 지은 《신음어(呻吟語)》는 그가 오랫동안 지방관으로 복무하면서 경험한 치자(治者) 계급의 부패를 바로잡고, 또 백성들의 실질적인 삶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사상과 객언 및 교훈들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고원한 공리공담(空理空談)보다는 실천궁행(實踐躬行)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어 오늘을 사는 우리 삶에도 적용 가능한 풍부한 자료들을 담고 있다.
2. 저자
(1) 성명:여곤(呂坤)(1536~1618)
(2) 자(字)·별호(別號):자는 숙간(叔簡), 호는 신오(新吾)·심오(心吾)·거위재(去僞齋)·포독거사(抱獨居士)
(3) 출생지역: 영릉(寧陵)(하남성(河南省) 영릉(寧陵))
(4) 주요활동과 생애
여곤은 어릴 때 자질이 노둔(魯鈍)하여 독서를 해도 별반 성과가 없자 일체를 포기하고 마음을 맑게 하여 깨달음[體認]을 얻고자 했는데, 그 결과 오래되자 깨달음을 얻었고 이후에는 보는 것 마다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15세에 성리서(性理書)를 읽고 문득 이해하고서는 《야기초(夜氣鈔)》와 《확량심시(擴良心詩)》를 짓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오경(五經)과 사서(四書)를 가까이하며 과거에 응시할 준비를 하여 1571년 36세에 예부시(禮部試)에 급제하고, 3년 후인 1574년에 처음으로 양원현지현(襄垣知縣)이 되었고, 이듬해에 대동현지현(大同縣知縣)(1575)을 거쳐 이부주사(吏部主事)(1578), 이부낭중(吏部郞中), 산동참정(山東參政)(1578), 산서안찰사(山西按察使)(1589), 섬서포정사(陜西布政使)(1591), 순무산서첨도어사(巡撫山西僉都御使)(1592), 형부우시랑(刑部右侍郞) 등을 역임했다.
그는 지방관으로서 민초들과 직접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 결과 타락할 대로 타락한 벼슬아치들의 횡포를 목도했고 곤고(困苦)한 가운데 신음하는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그래서 1579년에 《성심기(省心紀)》를 지어 관리로서 자신의 체질을 개선하여 인심을 바로잡고자 했다. 또 57세 때 관료들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실정록(實政錄)》도 그의 민생에 대한 고민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일찍이 만력(萬曆) 18년(1590)에 그가 협서안찰사로 있을 때, 《열녀전(列女傳)》을 읽고 그 중에서 표본이 될 만한 여성 117명을 뽑아 《규범도설(閨範圖說)》을 지었는데, 마침 이 책이 태감(太監)인 진구(陳矩)의 눈에 띄어 신종황제에게 알려졌다. 황제는 그것을 보고는 자못 기뻐하여 총애하는 정귀비(鄭貴妃)에게 선물로 주었는데, 정귀비는 거기다가 또 서문을 붙여 다시 출판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황태자 옹립문제와 얽히면서 혹독한 곤혹을 치루게 된다. 여곤이 정귀비에게 영합하여 은밀히 정귀비의 아들 상순(常洵)을 황태자로 옹립하고자 한다는 비난이 일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뒤얽힌 가운데 62세 때인 만력 25년(1597)에 여곤은 국가의 앞날을 근심한 나머지 장문의 상소를 올렸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우위소(憂危疏)〉이다. 그런데 이러한 여곤의 상소는 받아들여지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빌미로 모함하는 자들이 생겼는데, 이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그가 죽기 전까지 20여 년간 후진을 양성하면서 저술에 힘썼다.
(5) 주요저작: 《사례의(四禮疑)》, 《사례익(四禮翼)》, 《교태운(交泰韻)》, 《규범(閨範)》, 《실정록(實政錄)》, 《음부경주(陰符經注)》, 《신음어적(呻吟語摘)》, 《소궤어(小几語)》, 《무여(無如)》, 《거위재문집(去僞齋文集)》 등
3. 서지사항
《신음어》는 여곤이 30여 년의 긴 기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책으로 1593년 만력 21년에 출판되었다. 모두 6권으로 예집(禮集), 악집(樂集), 사집(射集), 어집(御集), 서집(書集), 수집(數集)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의 3권은 내편(內篇)이고 뒤의 3권은 외편(外篇)이다. 내편에 속한 권1 예집에는 〈성명(性命)〉·〈존심(存心)〉·〈윤리(倫理)〉·〈담도(談道)〉라는 4편의 글이, 권2 악집에는 〈수신(修身)〉·〈문학(問學)〉이라는 2편의 글이, 권3 사집에는 〈응무(應務)〉·〈양생(養生)〉이라는 2편의 글이 실려 있다. 그리고 외편에 속한 권4 어집에는 〈천지(天地)〉·〈세운(世運)〉·〈성현(聖賢)〉·〈품조(品藻)〉라는 4편의 글이, 권5 서집에는 〈치도(治道)〉라는 1편의 글이, 권6 수집에는 〈人情인정〉·〈물리(物理)〉·〈광유(廣喩)〉·〈사장(詞章)〉이라는 4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만력 21년에 처음 출판되었지만 교정이 부정확하여 여곤 자신이 첨삭을 가하기도 하고 원고를 바꾸기도 하여 만력 44년에 다시 출판되기도 했다.
4. 내용
《신음어》는 여곤의 철학사상 및 그의 인생에 대한 사고와 탐색을 풍부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중에는 특히 그가 추구한 중심사상이 체현되어 있는데, 송명이학자들이 ‘도(道)’와 ‘기(器)’, ‘이(理)’와 ‘기(氣)’를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기일원론(氣一元論)’적 철학사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즉 “천지만물은 다만 일기(一氣)의 모이고 흩어짐일 뿐이다.[天地萬物只是一氣聚散]”(〈천지(天地)〉)라는 그의 주장이 이에 해당한다. 또 중국전통의 ‘음양징응설(陰陽徵應說)’과 불교의 ‘윤회설(輪回說)’에 반대하면서 사물이 변화·발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며 우연한 규율이라 본 것도 그의 사상의 한 측면이다.
또 인성론에서도 선과 악이 모두 사람의 본성이라고 생각하여 “의리(義理)의 성(性)에는 선(善)만 있고 악(惡)은 없다. [그러나] 기질(氣質)의 성(性)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으니, 기질도 역시 하늘이 사람에게 명하여 생(生)과 더불어 함께 생(生)한 것인데, 그것을 성(性)이라 하지 않으면 되겠는가.[義理之性, 有善无惡;氣質之性, 有善有惡. 氣質亦天命于人而與生俱生者, 不謂之性可乎?]”(〈性命〉)라고 하였다. 또 ‘양지양능설(良知良能說)’을 반대하고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탐구하는 ‘학지(學知)’를 강조했다. 그리고 특히 당시의 부패한 귀자(貴者)와 현자(賢者)의 수양을 강조하면서 주희와 왕양명의 치우침을 보충하기 위해 도문학(道問學)과 존덕성(尊德性)의 균형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들은 그가 다년간 지방관으로 복무하면서 공리공담이 백성의 실질적인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목도하면서 내놓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신음어》에는 백성의 실질적인 삶이라는 관점에서 그의 인생경험의 총결 혹은 그가 삶에서 심사숙고한 수많은 격언들이 담겨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인생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처세방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독자의 마음과 안목을 더 넓게 열어주는 맛이 풍부하게 우러나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바로 이러한 측면 때문이다.
5. 가치와 영향
오늘날 《신음어》는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과 함께 지혜의 보고라 여겨져 많은 사람들이 읽는 책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여곤이 오랫동안 지방관으로 재직하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30년 동안 심사숙고하여 적은 책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문집에도 이 책에 대한 언급이 보이는데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林下筆記)》나 조긍섭(曺兢燮)의 《암서집(巖棲集)》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책은 오늘날의 중국이나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많이 읽히는 고전이 되었는데, 한국에서 이 책에 대한 번역본이 약 6종류 있고, 일본에서는 번역본뿐만 아니라 이 책을 지혜의 보고라 보고 이 책을 저본으로 새롭게 현실에 맞게 재구성한 경우도 보인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이 책이 유의미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사군자는 단지 네 가지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곧 진실된 마음과 진실된 입 및 진실된 귀와 진실된 눈이 〈그것이다.〉 진실된 마음은 망념(妄念)이 없는 것이고, 진실된 입은 잡박한 말이 없는 것이며, 진실된 귀는 간사한 들음이 없고, 진실된 눈은 잘못 식별하는 것이 없다.[士君子只求四眞 眞心眞口眞耳眞眼 眞心無妄念 眞口無雜語 眞耳無邪聞 眞眼無錯識]” 〈수신(修身)〉
• “온 세상이 모두 내 마음이다. 이 나의 〈이기적〉 마음[我心]을 제거하면 곧 〈모든 것이〉 사통팔달하게 되고 동·서·남·북·상·하가 조금의 한계도 없게 된다. 나의 〈이기적〉 마음을 제거하고자 하면 반드시 시시각각 이 생각(마음)이 천지만물을 위하는 것인지 나〈의 이기심〉을 위한 것인지 반성하고 검사해야 한다.[擧世都是我心 去了這我心 便是四通八達 六合內無一些界限 要去我心 須要時時省察這念頭是爲天地萬物 是爲我]” 〈존심(存心)〉
• “세 사람(공자(孔子)·노자(老子)·석가(釋家))이 전한 마음[心]의 요법(要法)을 총괄하면 하나의 〈고요할〉 ‘정(靜)’ 자(字)를 벗어나지 않고, 그 시작하는 곳[下手處]은 모두 욕망의 절제(制欲)이고, 최종 목적지[歸宿處]는 모두 다 욕망이 없는 것[無欲]이다. 이것이 바로 〈세 사람이〉 동일한 점이다.[三氏傳心要法 總之不離一靜字 下手處皆是制欲 歸宿處都是無欲 是則同]” 〈담도(談道)〉
(2) 색인어:여곤(呂坤), 신음어(呻吟語), 기일원론(氣一元論), 수양론(修養論), 인성론(人性論), 학지(學知), 격언(格言), 교훈(敎訓)
(3) 참고문헌
• (국가를 경영하는 요체) 신음어(呂坤 著, 김재성 解譯, 자유문고)
• (新譯) 呻吟語(呂坤 著, 안길환 編譯, 명문당)
• 신음어(呂坤 지음, 柳斗永 編譯, 자유문고)
• 신음어:공직자들의 지침서(이준영, 자유문고)
• 세상을 보는 지혜:呻吟語(後篇)(뤼신우 著, 박인용 譯, 아침나라)
• 냉철한 자기성찰 그리고 인생에 필요한 지혜(呂坤 著, 朴勝燮 譯, 삼익미디어)
【박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