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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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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서는 송대(宋代)의 걸출한 유학자이자 사상가인 주희(朱熹)의 저술로서 스승 이통(李侗)과의 문답과 편지를 엮은 것이다. 통행본의 경우 본문 1권, 부록 1권으로 되어 있으며, 전자는 주희가 손수 편정한 것이고, 후자는 후세 사람들이 덧붙인 것이다. 1163년 이통이 세상을 떠났을 무렵에 집필, 완성하였다.

2. 저자

(1) 성명:주희(朱熹)(1130~1200)
(2) 자(字)·별호(別號):자(字)는 원회(元晦), 중회(仲晦), 호(號)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산인(雲谷山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 등
(3) 출생지역:복건성(福建省) 우계(尤溪)
(4) 주요활동과 생애
주희는 송대 신유학의 집대성(集大成)을 이룬 철학자이자 사상가이다. 남송(南宋) 초에 태어나 관료이자 교육자로서 평생을 헌신했다. 14세 때 아버지 주송(朱松)을 여윈 후 아버지의 친구인 호헌(胡憲), 유면지(劉勉之), 유자휘(劉子翬) 등의 가르침을 받았다. 19세에 과거에 급제했으며, 24세 때 처음 이통을 대면하면서 유학에 더욱 침잠하게 되었고, 이른바 도남학(道南學) 계열의 학문을 접했다. 1163년 이통이 세상을 떠난 뒤 장식(張栻)과 밀접하게 교유하면서 이정(二程)에서 사량좌(謝良佐)를 거쳐 호굉(胡宏)으로 이어진 이른바 호남학(湖南學) 계열의 학문에 경도되었다. 이후 중화구설(中和舊說)을 건립했지만 재차 도남학과 호남학을 종합한 이른바 중화신설(中和新說) 체계를 확립하여 학문적, 사상적 종지를 세웠다.
주희는 관료로서도 다양한 업적을 쌓았지만, 생애의 많은 시간을 서원(書院)을 짓고 강학(講學)에 헌신하는 등 연구와 저술에 종사했다. 예컨대 여조겸(呂祖謙)과 함께 《근사록》을 편찬하여 주돈이(周敦頤), 정호(程顥), 정이(程頤), 장재(張載)의 학문을 정리, 종합했으며, 《사서집주(四書集註)》를 편찬하여 경학(經學) 체제의 혁신을 이루었다. 또한 이기(理氣), 심성(心性), 격물궁리(格物窮理), 주경함양(主敬涵養) 등의 개념을 통해 본체론, 심성론, 공부론을 아우르는 방대한 성리학(性理學) 이론을 완성했다. 이밖에 공맹(孔孟) 이래의 도통(道統)의 성격을 둘러싸고 육구연(陸九淵), 진량(陳亮) 등과 학술적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경원(慶元) 6년(1200) 71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5) 주요저작:그의 저술로는 《사서집주(四書集註)》를 비롯하여 《주자문집(朱子文集)》, 《주역본의(周易本義)》, 《시집전(詩集傳)》, 《태극도설해(太極圖說解)》, 《통서해(通書解)》, 《서명해(西銘解)》, 《사서혹문(四書或問)》 등이 있다. 한편 여정덕(黎靖德)은 주희의 어록을 종합하여 《주자어류(朱子語類)》를 편찬했다.

3. 서지사항

주희는 소흥(紹興) 23년(1153) 24세 때 동안(同安)의 주부(主簿)로 임명되어 부임하는 길에 이통을 처음 만났다. 이후 융흥(隆興) 원년(1163) 이통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지나 몇 차례의 대면을 통해 가르침을 얻었으며, 그 내용을 기초로 《연평답문(延平答問)》을 편찬했다. 통행본은 본문 1권, 부록 1권의 체제이다. 주희는 이통과 문답한 편지를 정리하고, 여기에 이통이 유평보(劉平甫)에게 보낸 편지 두 통을 덧붙여 《연평답문》을 완성했다. 부록은 훗날 주희의 문인들이 이통에 대해 주희가 평소에 언급한 내용과 제문(祭文), 행장(行狀)을 묶어서 본문에 덧붙인 것이다.

4. 내용

시기별로 주희의 질문과 이통의 대답을 엮어서 편집했다. 《논어》의 장절이나 개념에 대한 문답이 가장 많고, 《맹자》 등 기타 유학 경전에 대한 토론, 이정(二程)·장재(張載) 등의 언설에 대한 해석과 음미, 성현의 기상(氣象)과 공부 방법에 대한 논의 등이 담겨 있다.
사승 관계를 살펴보면 이통은 나종언(羅從彦)에게 배웠고, 나종언은 양시(楊時)에게 배웠으며, 양시는 이정(二程)의 고제(高弟)이다. 양시에서 이통으로 이어지는 학맥을 일반적으로 도남학(道南學)이라 일컫는데, 특히 미발함양(未發涵養) 공부를 중시했다. 한편 《주자문집(朱子文集)》 권97에 실린 〈이연평선생행장(李延平先生行狀)〉을 참고하면, 주희 자신은 이통 사상의 종지를 크게 “묵좌징심(默坐澄心)”, “쇄연융석(灑然融釋)”, “미발체인(未發體認)”, “이일분수(理一分殊)”로 요약했으며, 여기에 관련된 내용들이 《연평답문》 곳곳에 수록되어 있다.

5. 가치와 영향

젊은 시절 주희는 이통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불교와 도가(道家) 사상과 뚜렷하게 결별할 수 있었다. 한편, 이정(二程) 사상의 전승과 주희 철학의 형성 과정을 추적하는 데에도 《연평답문》은 중요한 참고를 제공한다. 예컨대 찰식(察識)을 강조하는 사량좌(謝良佐) 이래의 호남학(湖南學) 이론이 이른바 주희 중화구설(中和舊說)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면, 미발함양을 중시하는 이통의 학설은 양시(楊時) 이래의 도남학(道南學) 계보가 주자에게로 흡수되면서 이른바 중화신설(中和新說)을 성립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였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오늘날 학자들의 문제점 중에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아직도 쇄연(灑然)하게 얼음이 녹아 풀리는 것과 같은 경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설령 애써 잡아 지키는 것이 있더라도 단지 명백한 허물과 후회를 겨우 면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今學者之病 所患在於未有灑然氷解凍釋處 縱有力持守 不過只是苟免顯然尤悔而已]” 〈己卯年 夏至 이후 세 번째 날의 서신〉
‧ “‘(만물을 모두) 모두 하나로 보아 똑같이 어질게 대하는’ 기상을 보려고 하는 것은 도리어 어렵지 않습니다. 반드시 분수(分殊)를 이해해서 조금이라도 잘못하지 않아야 비로소 유학자의 기상입니다.[要見一視同仁氣象却不難 須是理會分殊 雖毫髮不可失 方是儒者氣象]” 〈庚辰年 七月 서신〉
‧ “학문의 방법은 말을 많이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직 묵묵히 앉아 마음을 맑게 하고 천리를 체인(體認)해야 합니다. 만일 비록 한 터럭일지라도 사욕(私欲)이 일어난다면 또한 스스로 물러나서 〈천리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學問之道不在於多言 但黙坐澄心體認天理 若見雖一毫私欲之發 亦自退聽矣]” 〈劉平甫에게 보내는 서신〉
(2) 색인어:주희(朱熹), 이통(李侗), 연평답문(延平答問), 미발체인(未發體認), 리일분수(理一分殊), 쇄연융석(灑然融釋), 묵좌징심(默坐澄心)
(3) 참고문헌
‧ 朱子全書(朱傑人 等 主編, 上海古籍出版社)
‧ 朱子大傳(束景南, 福建敎育出版社)
‧ 心體與性體(牟宗三, 正中書局)
‧ 朱子哲學硏究(陳來, 華東師範大學出版社)
‧ 스승 이통과의 만남과 대화:연평답문(성광동 등 편역, 이학사)

【임헌규】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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