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예문유취》는 100권으로, 당(唐)나라 구양순(歐陽詢) 등이 고조(高祖)(이연(李淵))의 명을 받고 편찬한 관찬유서(官纂類書)이다.2. 편자
(1) 성명:구양순(歐陽詢)(557~641)·영호덕분(令狐德棻)·원랑(袁朗)·조홍지(趙弘智)·배구(裴矩)·진숙달(陳叔達) 등 10여 명3. 서지사항
《예문유취》는 당 고조가 무덕(武德) 5년(622)에 구양순 등 10여 명에게 이 책을 찬수토록 명하였으니, 7년에 완성을 하게 되었다.4. 내용
이 책은 고적(古籍)을 인용하고 분류하여 편찬되었는데, 대부분이 문학작품으로 되어 있다. 천(天)·세시(歲時)·지(地)·주(州)·군(郡)·산(山)·수(水)·부명(符命)·제왕(帝王)·후비(后妃)·저궁(儲官)·인(人)·예(禮)·악(樂)·직관(職官)·봉작(封爵)·치정(治政)·형법(刑法)·잡문(雜文)·무(武)·군기(軍器)·거처(居處)·산업(産業)·의관(衣冠)·의식(儀飾)·복식(服飾)·주거(舟車)·식물(食物)·잡기물(雜器物)·교예(巧藝)·방술(方術)·내전(內典)·영이(靈異)·화(火)·약(藥)·향(香)·초(草)(상(上))·초(草)(하(下))·보옥(寶玉)·백곡(百穀)·포백(布帛)·과(果)·목(木)·조(鳥)·수(獸)·인개(鱗介)·충치(蟲豸)·상서(祥瑞)·재이부(災異部) 등 모두 48부(部)로 분류하였다. 혹은 47부라고도 하며, 또한 46부라고도 하는데, 그중의 양(藥)·향(香)·초부(草部)의 분합(分合) 계산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각 부는 또한 약간의 자목(子目)으로 나누었는데, 모두 727개의 자목이 있다. 각 자목 아래에는 먼저 사실(事實)을 열거하고 다음에 시문(詩文)을 나열하였다. ‘사(事)’ 부분은 경서(經書)·사서(史書)와 자서(子書) 중에서 관련 자료를 적록(摘錄)하고 아울러 인용한 서명(書名)을 명기하였다. ‘문(文)’ 부분은 관련 시문을 인용하고 아울러 그것의 시대·작자와 제목을 밝혔다. 그리고 서로 다른 문체는 [詩]·[賦]·[贊]·[箴] 등으로 분별하여 표기하였다. 《예문유취》에서부터 시도된 이 체제는 현대의 사전적인 의미에서 말하면, ‘사’는 어떤 한 항목의 설명 부분에 가깝고, ‘문’은 그 항목에 해당하는 인용문에 가깝다. 이처럼 ‘사+문’이라는 편찬 체제가 《예문유취》에서 시도된 것은 그 책의 성격 자체가 ‘문’을 주요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유서의 본래적 체제인 ‘사’ 부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것과 관련된 ‘문’ 부분을 추가한 것은 새로운 유서 체재의 시도일 뿐만 아니라,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유서의 이용효과를 제고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이 ‘사문합편(事文合編)’ 체제는 이 책의 일대 특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체제는 후대의 일부 유서에 채용되었다.5. 가치와 영향
《예문유취》는 전서(全書)에서 1,400여 종의 고적을 인용하였는데, 대부분이 당대 이전의 전적(典籍)들로 현존하는 책은 10분의 1, 2에 불과하다. 이러한 진귀한 자료들은 이 책의 수록으로 인해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기에 고적의 교감(校勘)과 일문(逸文)의 집록(輯錄)에 대한 근거 자료로 활용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문학사 연구자들이 이 책을 더욱 중시하고 있다. 송(宋)나라 섭대경(葉大慶)은 《고고질의(考古質疑)》에서 그중 “정월 십오일에 소미도(蘇味道)의 〈야유시(夜遊詩)〉가 있으며, 낙수문(洛水門)에 이교(李嶠)의 〈유락시(遊洛詩)〉가 있으며, 한식문(寒食門)에 심전기(沈佺期)·송지문(宋之問)의 시가 있는데, 이 네 사람은 모두 후인(後人)들로서 구양순이 어찌 그들을 미리 편입시켰는가?[正月十五日有蘇味道夜遊詩 洛水門有遊洛詩 寒食門有沈佺期宋之問詩 四子皆後人 歐陽安得預編之也]”라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것은 대개 모두 후에 전사(傳寫)하면서 찬입(竄入)된 것이다. 이 밖에 일부 다른 오류들도 있다. 왕무(王楙)는 《야객총서(野客叢書)》에서 “그 《한서(漢書)》 ‘장릉일부토(長陵一抔土)’에 관한 사항에서 ‘抔’를 ‘杯’로 잘못 알고 ‘배(杯)’문(門)에 수록하였다.[其以漢書長陵一抔土事 誤抔爲杯 收入杯門]”라고 지적하였다.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에서는 “책 중의 문목(門目)의 번간(繁簡)이 자못 마땅함을 잃었으며, 분합(分合)도 타당하지 않다. 예를 들면, 산·수부의 ‘오악(五嶽)’은 삼악(三嶽)만이 있으며, ‘사독(四瀆)’은 하나가 빠져 있다. 제왕부의 삼국(三國)에는 촉한(蜀漢)을 수록하지 않았으며, 북조(北朝)에는 단지 고제(高齊)만이 기재되어 있다.[其中門目 頗有繁簡失宜 分合未當 如山水部五嶽存三 四瀆缺一 帝王部三國不錄蜀漢 北朝惟載高齊]”는 등의 결점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 유서 중에서 체제가 가장 완전하다.[諸類書中體例最善]”라고 했으며, 또한 이 책이 보존하고 있는 자료는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였다.6. 참고사항
(1) 명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