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유마경(維摩經)》의 범어명칭은 ‘비마라끼르티 니르데샤 수트라(Vimalakīrti nirdeśa sūtra)’인데,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유마힐경(維摩詰經)》,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정명경(淨名經)》, 《불법보입도문삼매경(佛法普入道門三昧經)》, 《불가사의해탈경(不可思議解脫經)》이라고도 불린다. 《유마경》은 반야부 경전 이후에 성립된 것으로 중기 대승경전에 속하며, 반야개공(般若皆空)의 사상에 근거하여 대승보살의 실천을 보여주고 있다. 불법은 출가와 재가의 구별이 없다는 보편성을 잘 보여준 경전이다.
2. 저자
경전의 편찬자는 특정되어 있지 않다. 다만 주인공인 유마힐(Vimalakīrti) 거사는 불멸 이후 백여 년 무렵에 있었던 상좌부(上座部)와 대중부(大衆部)의 분열을 전후하여 당시의 자유분방한 대중부 교도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베살리성의 거사였다. 이 점을 감안하면 《유마경》은 대중부의 사람들 혹은 대중부의 사상과 일정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편찬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3. 서지사항
한역(漢譯)으로 7본이 있었지만, 현재 3본만 전한다.
① 엄불조(嚴佛調), 《고유마힐경(古維摩詰經)》, 후한(後漢) 영제(靈帝) 중평(中平) 5년(188) 소실됨.
② 지겸(支謙), 《유마힐경(維摩詰經)》 2권 혹은 《불법보입도문삼매경(佛法普入道門三昧經)》 오(吳) 황무(黃武) 2년(223)부터 건흥(建興) 연간(252-253) 현존 최고(最古).
③ 축숙란(竺叔蘭), 《이비마라힐경(異毘摩羅詰經)》 3권, 서진(西晉) 혜제(惠帝) 원강(元康) 원년(291) 소실됨.
④ 축법호(竺法護), 《유마힐소설법문경(維摩詰所說法門經)》 대안(大安) 2년(303) 소실됨.
⑤ 지다밀(祗多密), 《유마힐경(維摩詰經)》 4권, 동진(東晉). 소실됨.
⑥ 구마라집(鳩摩羅什),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3권, 후진(後晉) 홍시(弘始) 8년(406) 상대안사(常安大寺). 현존함.
⑦ 현장(玄奘),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 6권, 당(唐) 영휘(永徽) 원년(650) 장안(長安) 대자은사(大慈恩寺). 현존함.
기타 티베트어 번역본 및 티베트어 번역본을 근거로 한 만몽어(滿蒙語) 번역본이 현존한다. 주석서로는 승조(僧肇)의 《유마경주(維摩經注)》, 혜원(慧遠)의 《유마의기(維摩義記)》, 지의(智顗)의 《유마경현소(維摩經玄疏)》, 길장(吉藏)의 《유마경의소(維摩經義疏)》 및 《유마경현론(維摩經玄論)》 기타가 전한다. 《유마경》이 우리나라에는 고려대장경 가운데 구마라집본(K119), 현장본(K120), 지겸본(K121)에 현존의 3본이 모두 수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일찍이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4. 내용
《유마경》은 이처사회(二處四會)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는 첫째는 암라원처(菴羅園處)이고, 둘째는 방장처(方丈處)이다. 암라원은 곧 부처님의 주석처이고, 방장은 보살의 주석처이다. 또한 암라원은 출가자가 머무는 곳이고, 방장은 재가인이 머무는 곳이다. 사회는 첫째는 암라원회(菴羅園會)이고, 둘째는 방장회(方丈會)이며, 셋째는 방장에 중집(重集)한 것이고, 넷째는 암라원에 재회(再會)한 것이다.비록 사회(四會)가 있지만 삼시(三時)를 벗어나지 않는다. 첫째는 처음부터 〈불이법문품〉의 끝까지 식전(食前)의 설법이고, 둘째는 〈향적불품〉의 일품은 식시(食時)의 설법이며, 셋째는 〈보살행품〉부터 〈견아촉불품〉 끝까지는 소위 식후(食後)의 설법이다.
사회(四會)를 처소에 의거하면 무릇 삼장(三章)으로 나뉜다. 첫째는 처음부터 〈보살품〉 끝까지 실외의 설법이고, 둘째는 〈문수사리문질품〉 이후 〈향적불품〉에 이르기까지 실내의 설법이며, 셋째는 〈보살행품〉부터 이후에 다시 실외의 설법이다.
경문의 내용을 보면, 베살리의 대부호인 유마거사가 몸져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병문안을 권유하였지만 모두 감당할 수 없다고 사양한 끝에 문수보살이 문병을 간다. 유마의 거처에 도착한 문수보살과 유마거사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주제로 담론한다. 32명의 보살이 견해를 마치자, 문수보살은 유마의 견해를 듣고자 하였다. 이에 유마는 침묵을 보임으로써 문수보살의 찬탄을 자아낸다. 바로 이 유마거사가 보여준 침묵의 불이법문은 후대 선승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5. 가치와 영향
《유마경》은 유마힐이라는 거사가 부처님의 직제자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그들에게 설법해준다. 이런 점은 일찍이 부파불교(部派佛敎)가 교리에 집착하고 권위를 내세워 불법의 근본에서 벗어나 활동하는 것을 초월하여, 사회적이고 인간적인 측면에서 중생과 구원자가 함께 호흡하는 사상을 전개한 것으로 대승불교의 새로운 면모를 제시해주고 있다. 이처럼 《유마경》은 기존의 출가교단주의 및 권위주의에 반대하고 부처님의 참뜻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어 있다. 따라서 《유마경》의 사상은 집착과 편견 등 세속적인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관계를 불이(不二)의 변증법으로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사상을 현실적으로 일체의 중생에게 실천하고 있다. 이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세계가 바로 불국토임을 일깨워준 경전이다.
《유마경》은 후대에 선종의 계통에서 널리 보급되었다. 그것은 일체의 도그마와 격식과 형식주의를 타파하는 종지와 맞물림으로써 선이 추구하는 일심의 세계와 《유마경》이 추구하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세계가 통섭되어 일미(一味)의 경지를 지향하는 데에 원용되었고, 지(智)와 행(行)을 일치시키는 논리로 인식되어간 점은 《유마경》이 추구하는 골자이기도 하였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유마힐이 말했다. ‘어리석음으로부터 애착이 생겼고 곧 제 병이 발생하였습니다. 일체중생이 병에 걸렸습니다. 이런 까닭에 저도 병에 걸렸습니다. 만약 일체중생의 병이 소멸하면 곧 저의 병도 소멸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한 까닭에 생사에 들어가고, 생사가 있으므로 곧 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생이 병에서 벗어나면 곧 보살도 또한 병이 없어질 것입니다.’[維摩詰言 從癡有愛則我病生 以一切眾生病 是故我病 若一切眾生病滅則我病滅 所以者何 菩薩為眾生故入生死 有生死則有病 若眾生得離病者則菩薩無復病]” 《유마경》 권중 〈문수사리문질품(文殊師利問疾品) 제오(第五)〉
• “이에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각자 설명을 마쳤습니다. 그대는 장차 어떤 것을 가리켜 곧 보살이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하겠습니까.’ 그때 유마힐은 묵연하게 말이 없었다. 문수사리가 찬탄하여 말했다. ‘훌륭합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에 문자와 언설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곧 진실로 불이법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於是文殊師利問維摩詰 我等各自說已 仁者 當說何等是菩薩入不二法門 時維摩詰默然無言 文殊師利歎曰 善哉善哉 乃至無有文字語言 是真入不二法門]”
(2) 색인어:유마힐(維摩詰), 반야개공(般若皆空), 불이법문(不二法門), 침묵(沈默), 암라원처(菴羅園處), 방장처(方丈處)
(3) 참고문헌
• 김호귀 역, 《역주유마힐소설경》, 중도, 2020
• 김호귀 역, 《유마경의소(維摩經義疏)》, 중도, 2018
• 무비 역, 《유마경》, 만족사, 2019
• 박용길 역, 《유마경》, 민족사, 1995
【김호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