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음부경(陰符經)》은 전설상으로는 황제(黃帝)가 전한 고대의 도경(道經)이라 이야기되고, 《도덕경(道德經)》,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와 더불어 대표적인 도경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도서목록에 등장하는 것은 모두 당대(唐代) 이후이며, 구양순(歐陽詢)의 정관(貞觀)6년(632) 사본의 탁본과 저수량(褚遂良)의 영휘(永徽) 5년(654) 사본의 탁본이 현존하는 《음부경》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당대(唐代) 이전(李筌)의 주석본, 장과(張果)의 주석본 등 여러 주석본이 존재한다. 황정견(黃庭堅)은 《음부경》이 이전이 위작한 것이라 비판했으나, 소옹(邵雍)과 정이천(程伊川) 등 북송 신유학자들은 전국시기 이전의 고서로 평가했다. 주자학자 채원정(蔡元定)의 주석본 《음부경해(陰符經解)》는 조선을 포함하여 동아시아의 문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 본 해제는 채원정 주석본에 대해 설명하도록 한다.
2. 저자
(1) 성명:채원정(蔡元定)(1135-1198)
(2) 자(字)·별호(別號):자는 계통(季通), 호는 서산선생(西山先生), 시호는 문절(文節).
(3) 출생지역:건주(建州) 건양(建陽)(현 복건성(福建省) 남평시(南平市) 건양구(建陽區))
(4) 주요활동과 생애
채원정은 주자학의 역학(易學)과 상서학(尙書學)에 있어서 주요한 부분을 담당했던 학자이다. 부친 채발(蔡發)(목당노인(牧堂老人))이 원래 박학하였고, 《정씨어록(程氏語錄)》 및 소옹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장재(張載)의 《정몽(正蒙)》을 채원정에게 전수했다. 주희(朱熹)의 명성을 듣고 제자가 되기를 청했을 때 주자가 동학[老友]으로 존중한 것으로 유명하다. 주자와 함께 사서(四書) 및 《역경(易經)》・《시경(詩經)》의 주석, 《통감강목(通鑑綱目)》 등을 함께 교열했고, 《역학계몽(易學啓蒙)》은 채원정의 원고를 바탕으로 완성하였다. 경원(慶元) 2년(1196) 심계조(沈繼祖)가 주자학을 위학(僞學)으로 탄핵하여, 주희와 더불어 귀양을 가기도 했다.
(5) 주요저작:《대연상설(大衍詳說)》, 《율려신서(律呂新書)》, 《연악(燕樂)》, 《원변(原辯)》, 《황극경세서(皇極經世)・태현잠허지요(太玄潛虛指要)》, 《홍범해(洪範解)》, 《팔진도설(八陣圖說)》 등. 모두 주자가 서문을 썼다.
3. 서지사항
《음부경》은 약 300언으로 이루어진 짧은 경전이다. 채원정의 주석본 《음부경해》는 《주자유서(朱子遺書)》에 수록된 《음부경고이(陰符經考異)》, 명대 《정통도장(正統道藏)》에 수록된 《황제음부경주(黃帝陰符經註)》(DZ117)와 같은 책이다. 원(元)나라 지정(至正) 원년(1341) 황서절(黃瑞節)에 의해 간행된 《주자성서(朱子成書)》 수록본 《음부경해》가 선본으로, 여기에는 “당 이전 술, 서산선생 채원정 계통 해, 회암선생 주희 원회 교정(唐李筌述, 西山先生蔡元定季通解, 晦庵先生朱熹元晦校正)”이라 기록되어 있어, 채원정이 주해하고 주희가 교정했음을 밝히고 있다. 원판(元版) 《주자성서》는 중국 북경의 국가도서관(國家圖書館)에 소장되어 있고 2005년, 《중화재조선본(中華再造善本)》(금원편(金元編)・자부(子部))으로 영인되었다.
《주자성서》본 《음부경해》는 황서절이 채원정의 주석 뒤에 각각 〈부록(附錄)〉을 써서 주석 내용을 고증하고 분명히 했다. 주자의 유작을 모은 《주자유서(朱子遺書)》가 황서절본을 《음부경고이》라는 이름으로 수록했기 때문에 이후 채원정의 서문과 주석이 모두 주자의 것으로 오인되었다. 청대의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 역시 “주자(朱子) 선(撰)”이라고 저록하고 있고, 이러한 오인은 청대 이래 현대까지 계속되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서문은 “순희(淳熙) 을미년(乙未年)” 즉 1175년에 쓰여졌는데 이 역시 주자가 아니라 채원정이 지은 것이다. 남송의 왕응린(王應麟)(1223-1296)의 《옥해(玉海)》가 이를 “채씨의 서문[蔡氏序]”으로 발췌하고 있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채원정은 서문에서 《음부경》의 유래를 둘러싼 여러 설에 대해 논의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당나라 이전은《음부경》을 숭산(嵩山)의 동굴[石室] 속에서 얻었는데, 이는 북위의 도사 구겸지(寇謙之)(365-448)가 숨겨둔 것으로서 황제(黃帝)로부터 유래한 것이라 주장했다. 소옹은 전국시대의 책이라고 여겼고, 정이천 은주(殷周) 시대의 것이라고 여겼다. 한편, 황정견과 주자는 《음부경》은 이전이 위작한 것이라 여겼고, 경문의 언어가 지엽적이고 암시적이므로 읽는 사람이 각자 자기 견해로 해석하게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채원정은 글의 ‘기상(氣象)’으로 판단하면 고대의 서책은 아닐 수도 있지만 도리에 깊은 이해가 있는 자가 아니면 지을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고, 지엽적인 부분만을 보고 통일적인 의미를 보지 못하고, 암시적인 부분만 보고 명확한 내용을 간과하는 것이라 하며, 이전위작설(李筌僞作說)에 대해 보류적인 입장을 취했다.
4. 내용
《음부경》의 첫 구절은 “하늘의 도를 보고, 하늘의 운행을 장악하면……우주가 손 안에 있다.[觀天之道 執天之行……宇宙在乎手]”라고 시작한다. 이전은 음부경 삼백자의 내용 중 처음 백자는 ‘도(道)’에 대해, 다음 백자는 ‘법(法)’에 대해, 마지막 백자는 ‘술(術)’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요약했다. 이 중 도란 ‘신선포일(神仙抱一)’의 도를 말하며, 법이란 ‘부국안민(富國安民)’의 법을 말하고, 술이란 ‘강병전승(强兵戰勝)’의 술을 말한다. 즉 신선의 도, 통치의 방법, 전쟁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에 대해 채원정은 이들 세 가지는 분리될 수 없으며 매 구절마다 세 가지가 일체를 이루고 있다고 보았다.
채원정은 《음부경》의 핵심이 지무(至無)를 중심으로 하고 천지(天地)의 문리(文理), 즉 현상세계에 나타난 패턴과 질서에서 수리(數理)(법칙성)를 읽어내었다고 보았다[大要 以至無爲宗 以天地文理爲數]. 천하의 모든 것이 무에서 유로 생겨나니 인간이 감각기관을 고요한 상태로 되돌려 유에서 무로 돌아간다면, “우주가 손 안에” 있게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천지는 만물의 도적이고 만물은 인간의 도적이며 인간은 만물의 도적[天地萬物之盗 萬物人之盗 人萬物之盗]”이라는 《음부경》의 구절은 천지와 만물,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채원정은 생육(生育)과 살상(殺傷)이 적절한 균형을 이룸으로써 자연과 인간, 만물이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보았다.
5. 가치와 영향
《음부경》은 육조(六朝)시대에는 도교의 일체경인 도장(道藏)의 핵심부인 삼동경(三洞經)에 포함된 적이 없다. 6세기말의 도교 백과전서인 《무상비요(無上秘要)》에도 《음부경》에 대한 언급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4-6세기 경까지 도교의 핵심 경전이 아니었던 것이다.
《음부경》이 유행하고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7세기 이후 당대부터이다. 당나라 때 편찬된 도장경 안에서 《음부경》의 주석, 즉 《천기경(天機經)》을 얻었다는 기록이 보이니(장과주본(張果注本)), 당대에 편찬된 도장에 수록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확인할 수는 없다. 북송 대중상부(大中祥符) 9년(1016) 《대송천궁보장(大宋天宮寶藏)》의 편찬에 이르러 성조(聖祖), 즉 황제(黃帝)의 저술로 간주되어 사보(四輔)에서 동진부(洞眞部)로 격상되어 편입되었다(《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 86). 《천궁보장》의 다이제스트판인 《운급칠첨(雲笈七籤)》 권15의 〈삼동경교부(三洞經敎部)〉에는 《황제음부경(黃帝陰符經)》(장과주)과 《천기경》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도교사적 흐름 속에서는 신선의 도와 통치의 법술을 갖춘 것으로 읽혔으며 내단(內丹) 수양론서로서도 읽혔다.
한편 《음부경》의 주석 중, 태공(太公), 범려(范蠡), 귀곡자(鬼谷子), 장량(張良), 제갈량(諸葛亮) 등, 주나라 이래의 역대 군사(軍師)에 가탁된 집주본(集注本)이 존재한다. 이 역시 이전이 편집했다. 이는 《음부경》이 병서(兵書)로 인식된 것과 관련이 있다. 전국시대부터 존재한 《태공음부(太公陰符)》라는 병서와의 연관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병서 《태공음부》의 내용은 《음부경》과 무관하다.
북송 신유학자들이 《음부경》을 은주시대 또는 전국시대 이전의 책이라 평가하고 주자 역시 참조할 부분이 있다고 평가하면서 유학자들 사이에서 인정받게 되었다. 주자는 이전위작설에 손을 들어 주었지만 내용면에서는 취할 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채원정의 주석이 주자의 것으로 오인되고, 《음부경》이 주자학이 인정한 도경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문인들에게 수용되어 널리 읽혔다. 청대에 이르러서는 도교에 관심이 깊은 문인 엘리트층 사이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도교 경전으로서 《도덕경》, 《음부경》, 《참동계》가 손꼽히게 되면서 《대동진경(大洞眞經)》이나 《도인경(度人經)》 등 삼동경의 중핵경전보다 중시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하늘의 도를 보고 하늘의 운행을 파악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하늘에는 오적(오행)이 있으니 이를 보면 창성한다. 오적은 마음에 있으며 하늘에 시행되니 우주가 손 안에 있고 만물의 조화가 몸에서 생겨난다.[觀天之道 執天之行 盡矣 天有五賊 見之者昌 五賊在心 施行于天 宇宙在乎手 萬化生乎身]” 〈상편〉
• “하늘이 낳고 하늘이 죽이는 것은 도의 이법이다. 천지는 만물의 도적이고 만물은 사람의 도적이며 사람은 만물의 도적이다. 세 도적이 바르면 천지인(天地人) 삼재가 안정된다.[天生天殺 道之理也 天地萬物之盗 萬物人之盗 人萬物之盗 三盗既宜 三才既安]” 〈중편〉
• “자연의 도는 고요하다. 그러므로 천지 만물이 생겨난다. 천지의 도는 서로 스며든다. 그러므로 음양이 서로 작용한다. 음양이 서로를 좇아 작용하므로 변화가 순조롭다.[自然之道靜 故天地萬物生 天地之道浸 故陰陽勝 陰陽相推 而變化順矣]” 〈하편〉
(2) 색인어:음부경(陰符經), 도경(道經), 황제(黃帝), 채원정(蔡元定), 주자성서(朱子成書)
(3) 참고문헌
• 陰符經の一考察(宮川尚志, 《東方宗敎》, 日本道敎學會, 1984)
• 陰符經考異撰者考(末木恭彦, 《中哲文學會報》10, 東大中哲文學會, 1985)
• 宋代に於ける『陰符經』の受容について(山田俊, 《東方宗敎》123, 日本道敎學會, 2014)
• 陰符經集成(道敎典籍選刊, 中華書局, 王宗昱 集校, 2019)
• 도교 음부경의 사상(김백희, 《한국학》30-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