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는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과 명장인 위국공(衛國公) 이정(李靖)이 병법과 군사 문제 전반에 대하여 문답한 내용을 정리한 병서(兵書)이다.
2. 저자
(1)성명:이정(李靖)(571~649)
(2)자(字)·별호(別號):본명은 약사(藥師)
(3)출생지역:옹주(雍州) 삼원(三原)(현 섬서성)
(4)주요활동과 생애
이정은 당(唐)나라 초기 유명한 장수로서 당시 중국의 가장 큰 위협이었던 북방 돌궐족을 격파하여 당나라에 복속시켜 당나라의 초기 안정에 기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려서 문무의 재력(才力)이 있었고 특히 병법에 뛰어났다. 수(隋)나라 말기에 작은 고을인 마읍(馬邑)의 승(丞)으로 있다가 수나라 조정에 반기를 든 당 고조(唐高祖) 이연(李淵)의 휘하에 들어 삼위(三衛)가 되었다. 619년에 이정은 왕세충(王世充)의 반란을 토벌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개부(開府)의 벼슬을 받았다, 621년에는 강릉에 웅거하던 소선(蕭銑)의 40만 군대를 격파하고 625년에는 태원 지방을 침략한 돌궐(突厥)의 침입을 격파하여 검교안주도독(檢校安州都督)이 되었다. 태종이 즉위하자 형부상서(刑部尙書)에 임명되고 태종 정관(貞觀) 3년(629)에 병부상서(兵部尙書)가 되었다. 그 후 대주도행군총관(代州道行軍摠管)이 되어 변경을 위협하던 돌궐의 우두머리인 힐리가한(頡利可汗)이 머물고 있던 정양(定襄)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 전공으로 대국공(代國公)에 봉해졌고 이어 정양도행군총관(定襄道行軍摠管)이 되어 돌궐을 격파하고 철산(鐵山)에 웅거하던 힐리가한을 사로잡아 북방을 안정시켰다. 그 공으로 좌광록대부(左光祿大夫)를 거쳐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로 승진되었다. 637년에 이정은 위국공(衛國公)에 봉해지고 복주자사(濮州刺使)에 임명되었다.
(5)주요저작
이정의 저작으로는 《이위공문대》 이외에 《송사(宋史)》 〈예문지(藝文志)〉에 의하면 《음부기(陰府機)》 1권, 《도금비술(韜鈐秘術)》 1권, 《도금총요(韜鈐總要)》 3권, 《위국공수기(衛國公手記)》 1권, 《궁결(弓訣)》 1권, 《병금신서(兵鈐新書)》 1권, 《육군경(六軍鏡)》 3권 등 7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위공문대》 이외에는 현존하지 않는다.
3. 서지사항
《이위공문대》는 《당태종이위공문대(唐太宗李衛公問對)》, 약칭하여 《당이문대(唐李問對)》, 《이공문대(李公問對)》, 《문대(問對)》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북송 시대인 1080년 4월 송 신종(神宗)은 이 책과 《손자(孫子)》, 《오자(吳子)》, 《사마법(司馬法)》, 《육도(六韜)》, 《삼략(三略)》, 《위료자(尉繚子)》 등을 교정하여 간행하도록 하였다. 이에 당시 추밀원 검상관 왕진(王震) 등이 그 책임을 맡아 앞서 열거한 일곱 가지 병서를 골라 무학(武學)의 경전으로 삼고 이를 ‘무경칠서(武經七書)’라고 불렀다. 《이위공문대》는 송(宋)나라 신종(神宗)대 편찬된 ‘무경칠서’에는 세 권으로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으나 현재 북송(北宋) 시대 이전의 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지금 남아 있는 오래된 판본은 12세기 말 남송대(南宋代) 판본으로 이후 많은 주석서는 이를 대본으로 한 것이다.
4. 내용
이 책은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내용상 구분과는 상관없이 분량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모두 당 태종의 98가지 질문과 이에 대한 이정의 대답이 수록되어 있으며 모두 1만 3백여 자로 되어 있다. 각 권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상권〉은 19장으로 기정(奇正)의 운용, 고대 진법인 구진(九陣)과 팔진(八陣)의 포진 방법, 병거(兵車)의 운용, 고대의 군사제도, 한병(漢兵)과 번병(藩兵)의 운용 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특히 〈상권〉의 가장 앞에는 당 태종이 고구려를 토벌하기 위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자 이정이 정병을 이용하여 고구려를 토벌하겠다고 답하고 있다. 즉 돌궐의 정벌 이후 당 태종의 가장 심각한 군사적 위협이 고구려였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매우 흥미 있다. 〈중권〉은 17개 장으로 허실(虛實)의 형세, 대오의 편성, 육화진(六花陣), 장수의 위엄, 첩자의 활용 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특히 육화진은 이정이 창안한 진법으로 그 형태는 여섯 갈래로 갈라진 꽃모양과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하권은 13개 장으로 지형의 활용, 병력의 분산과 집중, 장수의 통솔, 음양설의 활용 등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5. 가치와 영향
《이위공문대》는 돌궐 토벌에 큰 공을 세운 이정이 중국의 역대 병법을 실전 사례를 적용하여 해설하고, 아울러 그가 창안한 육화진을 소개하는 등 당나라 초기 최고 수준의 병학 사상을 반영하는 책으로 의미가 적지 않다. 이를 통해 중국 고전 진법과 군사제도 등에 대한 많은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특히 송대 이후 ‘무경칠서’의 한 종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무과 시험의 한 과목인 강경(講經)의 주요 대상이 되었다. 조선의 무과에서 무경칠서가 강경 과목의 대상이 되면서 조선의 무관 교육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6. 참고사항
(1)명언
• “용병을 잘하는 자는 정병 아닌 것이 없고 기병 아닌 것이 없어서 적으로 하여금 전혀 예측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정병으로도 승리하고 기병으로도 승리하는 것입니다.[善用兵者 無不正 無不奇 使敵莫測 故正亦勝 奇亦勝]” 〈상(上)〉
• “기와 정은 적의 허실을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적의 세가 실하면 우리는 반드시 정병으로 대응하고 적이 허하면 우리는 반드시 기병으로 대응하여야 하니, 장수가 만일 기와 정을 알지 못하면 비록 적의 허실을 안다하더라도 어찌 적을 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奇正者 所以致敵之虛實也 若敵實 則我必用正 敵虛 則我必用奇 苟爲裝者 不知用奇正之術 則雖知敵人之虛實 亦安能致其來而破之]” 〈중(中)〉
(2)색인어:당태종(唐太宗), 이정(李靖), 팔진(八陣), 육화진(六花陣), 한병(漢兵), 번병(藩兵), 기정(奇正).
(3)참고문헌
• 李衛公問對校注(吳如嵩, 中華書局)
• 施氏七書講義(中國兵書集成8, 解放軍出版社)
• 唐太宗李衛公問對直解(漢文大系, 富山房)
• 이위공병법(이현수 역, 홍익출판사)
• 역주 이위공문대직해(성백효 외 역, 전통문화연구회)
【노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