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은 고양생(高陽生)이 쓴 《맥결(脈訣)》을 바탕으로 여러 시대 의가(醫家)들이 주석을 달아놓은 원대(元代)의 책을 조선 광해군(光海君) 때 허준(許浚)이 교정하여 만든 의서이다. 《찬도방론맥결집성》은 당시 전의감(典醫監)의 과거시험 교재로 쓰이고 있던 동일한 책의 오류를 바로잡은 것이다. 이 책은 의과를 지원하는 의생들의 기본 서적이었으며, 진단의 근간이 되는 맥진을 설명한 책으로 조선시대 전체를 통해 중요한 기초의학서적으로 평가된다.
2. 저자
(1) 성명:고양생(高陽生(?~?)), 허준(許浚(1539~1615))
(2) 자(字):고양생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허준은 자가 청원(淸源), 호가 구암(龜巖),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3) 출생지역:고양생에 대해서는 미상이고, 허준은 경기도 파주시, 전남 부안 등 여러 설이 있음.(4) 주요활동과 생애
맥학서(脈學書)는 3세기 말의 진(晉)나라 왕숙화(王叔和)의 《맥경(脈經)》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 이후 암송의 편리를 위해 일정한 절구에 맞춰 지어진 가결(歌訣) 형식의 맥결(脈訣)이 만들어져 크게 유행하게 되는데, 그것은 수당(隋唐) 시대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질병변화를 관찰하고 결정하는 도구로써 수많은 의학자들에게 애용되어왔다. 또한 수당 전후로 많은 종류의 맥결 이름을 가진 저작들이 존재하였는데,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보이는 《서씨맥경결(徐氏脈經訣)》과 《숭문총목(崇文總目)》에 보이는 《쇄금맥결(碎金脉訣)》, 그 외에 《화타맥결(華陀脈訣)》, 《부자맥결(夫子脈訣)》, 《황제맥결(黃帝脈訣)》, 《맥결(脈訣)》 등으로 이는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맥결》은 고양생이 왕숙화의 이름을 가탁하여 지은 것이라 사료된다. 고양생의 생몰연대는 육조(六朝)나 삼국시대(三國時代) 등으로 생몰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나, 하나 분명한 것은 송대(宋代) 교정의서국에서 《맥경》이 출간된 직후 바로 그 자취를 감추고 고양생의 《맥결》이 출현하게 된다. 즉, 쉽게 익힐 수 있는 《맥결》이 만들어져 의가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였고, 이로 인해 《맥경》은 사라지고 《맥결》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맥결》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이 많아지게 된다. 그리하여 원말명초에는 여러 의가들이 《맥결》과 상반되는 《맥경》의 의미를 추구하고자 복고주의를 주창하게 된다. 하지만 이미 《맥결》에 익숙해져 버린 의가들은 《맥경》을 응용하지 못하였고, 이시진(李時珍)이나 이중재(李中梓) 등 많은 의가들이 《맥결》에 비판을 하지만 통일성 있는 맥학서의 출현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개인 의견을 주장하는 맥학서들만 존재하였다.
이를 토대로 《맥결》의 저작년대를 북송 시기라 추정한다. 고양생의 활동 시기는 이 시기라 사료된다. 이러한 《맥결》의 유행에 통진자(通進子)와 진언(陳言), 결고(潔古)나 희범(希范) 등 많은 의가들이 당시 유행한 《맥결》에 주석을 붙였고, 그러한 과정에서 1349년 원대(元代)에 노릉죽평서당각본(盧陵竹評書堂刻本)에서 이러한 주석서를 한데 묶어 서적을 출간하게 되는데 그 서명이 《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는 여말선초 의학의 자주화로 중국의학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국에 맞는 의학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적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허준의 《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의 저술로 완성되는 것이다.
허준은 뼈대 있는 무관의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허론(許碖)과 양반 가문 출신인 어머니 영광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어머니의 신분이 정실(正室)이 아니었기에, 그의 신분은 중인으로 규정되었고, 이러한 신분은 문・무관보다 천하다고 여겨진 의관의 길을 택하는 데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훌륭한 가문의 배경 덕에 허준은 어려서부터 경전・역사・의학에 관한 소양을 충실히 쌓을 수 있었다. 허준이 언제, 어떻게 의학을 공부했으며, 또 의관으로 나아갔는지를 일러주는 자료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관직으로 볼 때, 허준의 장년 이후의 삶은 세 시기로 나뉜다. 첫째, 내의원 관직을 얻은 1571년부터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까지이다. 이 21년 동안 허준은 내의(內醫)로서 크게 이름을 얻기는 했지만, 최고의 지위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1590년(선조 23) 허준은 왕세자의 천연두를 치료한 공으로 당상관 정3품의 품계를 받았다. 이 품계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이 규정한 서자 출신인 허준이 받을 수 있는 최고 관직인 정3품의 한계를 깰 정도의 큰 상이었다. 둘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승하하던 1608년(선조 41) 때까지이다. 허준이 선조의 의주 피난길에 동행하여 생사를 같이함으로써 그는 선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다. 1596년(선조 29) 왕세자의 난치병을 고친 공으로 중인 신분에서 벗어나 양반 중 하나인 동반(東班)에 적을 올렸다. 1604년(선조 37)에는 임진왜란 공신 책봉이 있었는데, 허준은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책정되는 한편, 그는 본관인 양천(陽川)의 읍호(邑號)를 받아 양평군(陽平君)이 되었다. 이와 함께 품계도 승진하여 종1품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다. 1606년(선조 39) 선조의 중환을 호전시킨 공으로, 선조는 그에게 조선 최고의 품계인 정1품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를 주고자 했으나, 사간원・사헌부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쳐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셋째, 1608년(선조 41)부터 그가 죽던 해인 1615년(광해 7)까지이다. 이 7년은 시련기로 선조 승하의 책임을 지고 벼슬에서 쫓겨나고 먼 곳으로 귀향을 가는 등 불운이 있었고, 귀양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권세가 없는 평범한 내의로 지내다 고요하게 삶을 마쳤다. 1608년(선조 41) 선조가 병으로 죽자, 그것이 수의(首醫)인 그의 잘못이라는 탄핵을 받아 허준은 삭탈관직 되는 한편, 의주 유배형이 처해졌다. 그의 유배는 1년 8개월이 지난 1609년(광해 1)에 풀렸으며, 6년 후인 1615년(광해 7) 세상을 떴다. 사후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인정하여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추증했다. 의관 허준의 출세는 조선의 역사에서 거의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파격의 연속이었다. 이는 그의 의술 솜씨와 우직한 충성이 빚어낸 성취였다. 이와 함께 이를 질시한 양반계급의 불만도 작지 않았다. ‘양반에게 굽실거리지 않으며, 임금의 은총을 믿고 교만스럽다.’는 세평(世評)도 존재했다.
(5) 주요저작:고양생은 《찬도맥결》 이외에 미상이다. 허준은 《언해태산집요(諺解胎産集要)》, 《언해구급방(諺解救急方)》, 《언해두창집요(諺解痘瘡集要)》, 《신찬벽온방(新纂辟溫方)》, 《벽역신방(辟疫神方)》, 《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 《동의보감(東醫寶鑑)》, 《언해납약증치방(諺解臘藥症治方)》 등이다.
3. 서지사항
《찬도방론맥결집성》은 《경국대전》을 비롯한 법전에서 ‘찬도맥(纂圖脈)’이라 약칭하고 있다. 4권 4책으로 《맥결》의 원문 약 343조문 아래에 희범(希范), 결고(潔古) 등 12명 의가들의 주석과 허준이 교정하면서 직접 붙인 주석이 있다.
선조 14년(1581)에 명의 허준이 왕명을 받아 교정하여 편찬하고, 후에 이 책이 《선조실록(宣祖實錄)》에 등장함으로써 세상에 많이 알려졌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1626년경 인출된 후쇄본이 현존 최고본으로써 보물 1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2006년경 조선전기에 사용해온 《찬도맥(纂圖脈)》의 조선각본(朝鮮刻本)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원대(元代)에 나온 《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으로 추론되며 저자불명이다. 현재 남아 있는 판본순으로 살펴보면 원대본(元代本)(1349년)과 16세기 판본, 규장각본(奎章閣本)(1612)이 존재한다. 모두 4권 4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대본과 16세기 본을 기초하여 허준이 교정한 규장각본이 있다.
4. 내용
한의학의 맥진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서명(書名)을 보면 도(圖)와 방론(方論), 그리고 맥결(脈訣)을 모아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서명과 달리 도해가 없으며 ‘고양생맥결(高陽生脉訣)’이라고 불리는 약 343조의 맥결에 여러 의가들이 주석을 붙인 방론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4권 4책으로 맥결의 원문 약 343조문 아래에 ‘희범왈(希范曰)’, ‘결고왈(潔古曰)’ 등 12명의 주석과 허준이 교정하면서 직접 붙인 주석이 있다.
이러한 방론은 송・금・원 시대 제가의 맥론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로 《내경(內經)》과 《난경(難經)》을 근거로 맥결 원문에 자세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권1 진맥입식(診脈立式)
권2 오장맥(五臟脈)(심(心)・간(肝)・신(腎)・폐(肺)・비(脾)), 좌우수진맥(左右手診脈)권3 칠표(七表), 팔리(八裏), 구도(九道)
권4 ① 진잡병생사후(診雜病生死候) 및 폭병후(暴病候), ② 형이상반(形以相反), ③ 진사시병오행상극(診四時病五行相克) ④ 진사시허실(診四時虛實), ⑤ 논상한(論傷寒), ⑥ 제병생사(諸病生死), ⑦중경왈수맥불시칙생악창(仲景曰數脈不時則生惡瘡), ⑧ 찰색관병인생사후(察色觀病人生死侯), ⑨ 오장찰색후(五臟察色候), ⑩ 진임부(診姙婦), ⑪ 진임부루태후(診姙婦漏胎候), ⑫ 진임부심복급통후(診姙婦心腹急痛候), ⑬ 진임부도손상(診姙婦倒損傷), ⑭ 진산난생사후(診産難生死候), ⑮ 진임부상한(診姙婦傷寒), 소아생사후(小兒生死候)(⑩~⑮는 부인과, 은 소아과)
이는 한의학의 진단법의 기초가 되는 맥진에 관한 기초부터 심화의 내용으로 여러 의가들의 맥진에 대한 설명을 주석에 넣어 의학자들이 정확히 내용을 알 수 있게 설명을 하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찬도방론맥결집성》은 조선 광해군 때 허준이 교정한 의서로 당시 전의감(典醫監)의 과거시험 교재로 쓰이고 있던 동일한 책의 오류를 바로잡은 것이다. 이 책은 여말선초 조선의학의 자주화에 싹을 틔운 밑거름이 되는 책이다. 세종 12년(1430)부터 고종 2년(1215), 즉 조선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찬도맥(纂圖脈)’이라는 과목으로 의과시험에 이 책이 적용된 것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시기에 의과를 지원하는 의생들의 기본 서적이었으며, 진단의 근간이 되는 맥진을 설명한 책으로 조선시대 전체를 통해 중요한 기초의학서적으로 평가된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좌수(左手)로 혈(血)의 성쇠(盛衰)를 살피고 우수(右手)로 기(氣)의 성쇠(盛衰)를 살핀다.[左心小腸肝膽腎 右肺大腸脾胃命]” 권1 〈진맥입식(診脈入式)〉
• “관전(關前)은 양(陽)이고 촌구(寸口)라 명하고, 관후(關後)는 음(陰)이 되고 바로 아래 취한다.[關前爲陽名寸口 關後爲陰直下取]” 권1 〈진맥입식(診脈入式)〉
• “지자(智者)는 능히 오장의 화(和)를 조절하고 제가의 병을 살펴 인증한다.[智者能調五臟和 自然察認諸家病]” 권1 〈진맥입식(診脈入式)〉
(2) 색인어:찬도방론맥결집성(纂圖方論脈訣集成), 고양생(高陽生), 허준(許浚), 전의감(典醫監)의 과거시험 교재, 도(圖), 방론(方論), 맥결(脈訣)
(3) 참고문헌
• 〈《纂圖方論脈訣集成》의 의사학적 연구〉(허종,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 〈《纂圖方論脈訣集成》 편찬과 朝鮮中期의 脈學의 成就〉(허종・안상우, 한국의사학회지, 2002)
• 〈《纂圖方論脈訣集成》이 朝鮮中期 醫學에 미친 영향〉, 허종, 2008
• 찬도방론맥결집성연구, 동의보감기념사업단, 2009
【허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