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태평어람(太平御覽)》은 북송(北宋) 초 이방(李昉) 등이 태종(太宗)의 명을 받아 편찬한 유서(類書)로 총 1천 권이다. 유서란 기존의 문헌자료들을 주제별로 분류하여 편집한 책을 말한다. 본서를 통해 원하는 주제와 관련된 정보들을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검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대(五代) 이전 유관 문헌자료의 통람도 가능하다. 한편 본서에는 위진남북조, 수당시대의 전적들이 다수 인용되어 있고 이들 문헌들의 상당수는 현재는 망실된 것들이다. 따라서 본서는 위진남북조, 수당시대 연구를 위한 사료의 보고이자 고일서(古逸書)의 집록과 교정을 위한 근거자료로서 그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2. 편저자
(1) 성명:이방(李昉)(925~996)
(2) 자(字):명원(明遠)
(3) 출생지역:심주(深州) 요양(饒陽)(現 중국 하북성(河北省) 형수시(衡水市))
(4) 주요활동과 생애
이방은 오대십국 가운데 하나인 후한(後漢) 건우(乾祐) 연간(948~950) 진사(進士)로 급제하여 비서랑(祕書郎)이 되었다. 이후 직홍문관(直弘文館), 우습유(右拾遺), 집현전수찬(集賢殿修撰) 등을 거쳤다. 후한에서 후주(後周)로 왕조가 교체된 후, 그는 후주의 황제인 세종(世宗)으로부터 그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주객원외랑(主客員外郞), 지제고(知制誥), 집현전직학사(集賢殿直學士)에 발탁되었고 이후 사관수찬(史館修撰)을 가관(加官)으로 하였으며 한림학사(翰林學士)에 이르렀다. 후주에 뒤이은 송(宋)에 와서는 태조 때,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임명되었고 이후 지공거(知貢擧) 등을 지냈다. 태조 개보(開寶) 연간(968~976)에는 《오대사(五代史)》의 편찬에 참여했다. 태종이 즉위한 후, 호부시랑(戶部侍郎)에 임명되었으며 황제의 명에 의해 호몽(扈蒙), 이목(李穆) 등과 함께 《태조실록(太祖實錄)》을 편찬했다. 태평흥국(太平興國) 연간(976~984)에는 공부상서겸승지(工部尙書兼承旨), 문명전학사(文明殿學士)에 임명되었고, 얼마 후에는 재상에 해당하는 참지정사(參知政事)를 거쳐 평장사(平章事)가 되었으며 감수국사(監修國史)를 가관으로 하였다. 태종 순화(淳化) 5년(994) 70세에 특진(特進)하여 사공(司空)으로 치사(致仕)했고, 지도(至道) 2년(996) 72세에 죽었다. 조정에서는 그에게 사도(司徒)를 추증했고, 문정(文正)의 시호를 내렸다.
《송사(宋史)》 권265에는 그의 열전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에 따르면 그는 성품이 온화하고 너그러워 지나간 일들을 마음에 담지 않았으며, 관직에 있을 때는 조심스럽게 법도를 지키고 삼가기만 하여 뚜렷하게 언급할 만한 일을 한 것은 없었다고 한다. 관료로서의 업적에 대한 이 같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서의 편찬에 있어서 중요한 관행을 정비하였다. 그는 태종 때 감수국사에 임명되자 재상이 작성하는 시정기(時政記)를 황제에게 먼저 상주한 후 담당 관리에게 회부하는 관행을 복원하였다. 재상의 시정기 작성은 당대에 시작된 제도인데 정착되지 못했고 당 이후로 중단되었다가 이에 이르러 다시 시작되었다.
(5) 주요저작
이방이 편찬에 참여한 주요 문헌으로는 본서 외에 《개보통례(開寶通禮)》 200권, 《개보본초(開寶本草)》 20권, 《오대사》 150권, 《태조실록》 50권, 《태평광기(太平廣記)》 500권, 《문원영화(文苑英華)》 1,000권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현재까지 그 내용이 전하는 것은 본서와 《오대사》(일명 《구오대사(舊五代史)》), 《태평광기》, 《문원영화》 등이다. 한편 그는 이와는 별도로 문집 50권을 남겼으나 이는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3. 서지사항
본서는 총 1천 권 분량으로 55부(部)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55부 아래에는 5,366개의 하위항목이 설정되어 있다. 본서에 인용된 서적과 문장들은 총 2,579종이다. 송의 황제였던 태종은 기존 유서들의 분류방식이 뒤죽박죽이고 체계가 잘못되었다는 문제의식 하에 이방, 호몽 등에게 조서를 내려 본서의 편찬을 지시했다. 본서는 태평흥국 2년(977) 3월에 편찬이 시작되어 태평흥국 8년(983) 12월에 완성되었다. 이방, 호몽 등을 필두로 하여 총 14명이 본서의 편찬에 참여했고 이들은 북제의 《수문전어람(修文殿御覽)》, 당대의 《예문유취(藝文類聚)》, 《문사박요(文思博要)》 같은 이전시대의 유서(類書)들을 참고하여 본서를 완성했다.
북송 송민구(宋敏求)의 《춘명퇴조록(春明退朝錄)》에 따르면 본서의 원래 명칭은 《태평편류(太平編類)》였으나 본서가 완성된 후, 태종이 하루에 3권씩 열람하여 1년 만에 완독하고 현재의 서명을 내렸다고 한다. 다만 송 《태종실록(太宗實錄)》에 따르면 ‘태평총류(太平總類)’를 ‘태평어람’이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본서의 북송대 판본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가장 오래된 판본은 일본에 남아 있는 촉간본(蜀刊本)으로 남송 경원(慶元)5년(1199) 사천(四川) 지방에서 간행한 것이다. 다만 이 판본은 전체 1,000권 가운데 945권만 남아 있다. 한편 중국에 전하는 판본으로는 명대 요씨(饒氏)의 활자본, 예병(倪炳)의 각본, 청대 포숭성(鮑崇城), 장해붕(張海鵬)의 각본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송대의 원본이 아닌, 전사되어 전해지던 초본(抄本)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에 있어서 이동(異同)이 적지 않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935년 중국의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일명 영송본(影宋本)을 간행했는데 총136책이다. 이는 전술한 남송 경원 연간의 촉간본을 저본으로 하고, 촉간본에 빠져 있는 부분은 일본의 정가당문고(靜嘉堂文庫)에 소장되어 있던 다른 송본의 잔권(殘卷)을 통해 보충한 영인본이다. 이 간본은 《사부총간삼편(四部叢刊三編)》에 자부(子部)에 수록되었다. 이후 1960년 중국의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는 상무인서관의 영송본을 4책으로 축소한 축인본을 간행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중국의 河北敎育出版社에서 본서의 표점본(標點本)을 간행하여 내용의 열람이 매우 편리하게 되었다. 다만 기존의 영인본과 달리 표점본의 글자체는 간체자로 되어 있다.
본서의 맨 처음에는 ‘태평어람경사도서강목(太平御覽經史圖書綱目)(이하 ‘강목’으로 약칭)’이라는 제명 하에 본서에 인용된 서적들의 서명이 열거되어 있다. 이 강목은 남송대의 간본에서 확인된다. 강목에서 열거된 책들은 총 1,689종인데 여기에 시나 문장 같은 문학작품의 상당수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또한 여기에 열거된 책들 가운데는 그 명칭이 중복되는 것들도 있고 실은 같은 책인데 명칭만 다르게 표현된 것들도 있다. 따라서 이 강목은 본서가 완성되고 난 후, 일정 정도의 시간이 경과한 다음 편찬 당사자가 아닌 후인들에 의해 작성되어 삽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강목보다는 표점본의 말미에 첨부된 웅육란(熊毓蘭)의 ‘태평어람인서인문요목(太平御覽引書引文要目)’이 더 정확하고 이용에 편리하다. 이는 《태평어람》에 인용된 문헌과 문장의 書目을 집록한 것으로 본서에 인용된 문헌자료들의 서명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4. 내용
본서의 55부는 천(天), 시서(時序), 지(地), 황왕(皇王), 편패(偏覇), 황친(皇親), 주군(州郡), 거처(居處), 봉건(封建), 직관(職官), 병(兵), 인사(人事), 일민(逸民), 종친(宗親), 예의(禮儀), 악(樂), 문(文), 학(學), 치도(治道), 형법(刑法), 석(釋), 도(道), 의식(儀式), 복장(服章), 복용(服用), 방술(方術), 질병(疾病), 공예(工藝), 기물(器物), 잡물(雜物), 주(舟), 거(車), 봉사(奉使), 사이(四夷), 진보(珍寶), 포백(布帛), 자산(資産), 백곡(百穀), 음식(飮食), 화(火), 휴징(休徵), 구징(咎徵), 신귀(神鬼), 요이(妖異), 수(獸), 우족(羽族), 인개(鱗介), 충치(蟲豸), 목(木), 죽(竹), 과(果), 채(菜), 향(香), 약(藥), 백훼(百卉)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의 아래에는 총 5,366개의 하위항목들을 두었는데, 이 항목은 부의 범주에 속하는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예를 들면 황왕부의 하위에 설정된 항목들로는 서황왕(敍皇王),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등이 있다. 본서는 특정 왕조나 그와 관련된 인물, 사건, 또는 사상 등 단일한 소재를 주제로 하는 전문서적이 아니라 백과전서 형식의 유서인 관계로 편저자의 독창적인 견해는 없다. 대신 각각의 소주제와 관련된 기사들이 다수의 문헌들로부터 채록되어 있다. 문헌을 인용한 방식은 먼저 서명을 쓰고 그 다음에 원문을 나열했는데, 전거의 배치 순서는 시대 순으로 하였다. 만약 같은 항목 내에서 같은 책의 기사가 여러 번 인용되는 경우에는 처음에만 서명이 표기되고, 그 다음부터는 ‘우왈(又曰)’이라 하였다. 다만 본서에서 전거로 삼은 오대 이전시대의 문헌들은 본서의 편찬 당시에 이미 상당수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본서에 인용된 문헌의 기사들은 편저자들이 원서로부터 직접 검출해 낸 것이 아니라 기존의 유서들에 인용되어 있던 것들을 재인용한 것이 다수다.
5. 가치와 영향
본서는 오대 이전 문헌들의 기사를 약 5,000여개의 주제별로 분류하여 재배치해 놓았기 때문에 해당 주제와 관련된 자료들을 검색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본서에 인용된 서적과 문장들은 총 2,579종인데, 이 가운데 원본이 현재 남아 있는 것들은 전체의 10~20퍼센트에 불과하다. 그 결과 망실된 고서들의 면모는 본서의 각 항목에 인용된 문헌들의 기사로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전하지 않는 위진남북조, 수당시대의 문헌들 상당수가 본서에 파편적으로 산재되어 있다. 이러한 까닭에 본서는 비록 송대에 편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진남북조, 수당사 연구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본서에 인용된 문헌들을 통해 사라진 고서들의 집록, 그리고 현전하는 문헌들의 탈루와 착오에 대한 교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청대에 성행한 고일서(古逸書)의 집록과 통행본의 교감은 본서에 의거한 바가 매우 크다.
본서는 원래 황제의 어람용 도서로 편찬되었으나 점차 궁 밖으로 유포되어 민간에서도 이를 소장하는 사람들이 있게 되었다. 남송대의 장서가 진진손(陳振孫)도 본서를 소장했다. 본서의 편찬과 가치는 고려에까지 전해졌다. 《송사》 〈고려전〉에 따르면 송 철종(哲宗)이 즉위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고려에서 파견된 사절이 《태평어람》, 《개보통례》, 《문원영화》 등의 도서를 구매하게 해달라고 청했으나 송에서는 《문원영화》만 주었고, 《속자치통감장편(續資治通鑑長編)》에 따르면 철종 원부(元符) 2년(1099) 고려에서 다시 사신을 파견하여 《태평어람》을 요청하였으나 역시 주지 않았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숙종 6년(1101, 송 철종 원부 4년)에 비로소 송의 황제가 고려로 귀국하는 사신 왕가(王嘏)와 오연총(吳延寵)을 통해 《태평어람》을 보냈다고 한다. 이후 고려 명종(明宗) 22년(1192) 송나라의 상인을 통해 《태평어람》을 은 60근에 구매하고 최선(崔詵)에게 교정을 보게 했다. 이 같은 사실로 보아 숙종 때 입수한 《태평어람》은 황실의 관각본이고, 명종 때 구매한 판본은 방각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시대에 입수된 판본은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세상에 전하는 송 이전의 책들 중에 고서의 일문(逸文)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은 겨우 6~7종이니, 배송지의 《삼국지주》, 역도원의 《수경주》, 유효표의 《세설신어주》, 이선의 《문선주》, 구양순의 《예문유취》, 서견의 《초학기》이며, 그 밖의 하나가 이 책이다.[世所傳宋以前書 可考見古籍佚文者 僅六七種 曰裴松之三國志注 曰酈道元水經注 曰劉孝標世說新語注 曰李善文選注 曰歐陽詢藝文類聚 曰徐堅初學記 其一卽此書也]”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 권135 자부(子部) 45 유서류(類書類)1〉
• “태평어람은 송대의 거대한 저작으로 인용된 경(經), 사(史), 도서(圖書)는 총 일천구백십종인데 지금 전하지 않는 것이 열에 일곱, 여덟이다. 어떤 이는 고적으로부터 집록했다 하고 어떤 이는 유서에 근거했다고 한다. 요컨대 인용된 것들이 매우 방대하여 전대의 언행을 많이 알 수 있으니 진실로 보배로 여길 만하다.[太平御覽爲有宋一大著作 其所引經史圖書凡一千六百九十種 今不傳者十之七八 或謂輯自古籍 或謂原出類書 要之 徵引賅博 多識前言往行 洵足珍也]” 〈장원제(張元濟), 《사부총간삼편(四部叢刊三編)》에 수록된 影宋本 太平御覽 跋文〉
(2) 색인어:태평총류(太平總類), 태평편류(太平編類), 어람(御覽), 북송(北宋), 태종(太宗), 이방(李昉), 고일서(古逸書), 집록(輯錄), 교감(校勘)
(3) 참고문헌:추후 보완 예정
• 《太平御覽》(中華書局 影印本)
• 《太平御覽·太平廣記篇目及引書引得》(聶崇岐 等 編纂, 上海古籍出版社)
• 《太平御覽》(河北敎育出版社 標點本)
• 《중국유서개설(中國類書槪說)》(劉葉秋 저, 김장환 옮김, 학고방(學古房))
• 〈《太平御覽》의 편찬에 대하여-북송초 도서전적의 수집과 관련하여-〉(양진성, 《한국사학사학보(韓國史學史學報)》 제33호)
【양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