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의 여러 공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일찍이 형명과 법술을 익혀 중앙집권적 봉건전제정치 체제를 적극적으로 창도한 법가 이론의 집대성자인 한비(韓非)의 저작이다. 그는 순자(荀子)의 문하에서 배운 뒤 조국 번영을 위해 법가 사상을 집대성했다.
2. 저자/편자
(1)성명:한비(韓非)(B.C. 280?~B.C. 233)
(2)자(字)·별호(別號):존칭으로 한비자(韓非子) 또는 한자(韓子)라고 칭한다.
(3)출생지역:한(韓)나라 신정(新鄭)(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신정시(新鄭市))
(4)주요활동과 생애
한비는 중국 전국시대 하남성 서쪽에 위치했던 한(韓)나라의 왕족 출신이었다. 젊어서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에게 배워 뒷날 법가(法家) 사상을 집대성하였다. 한비는 자신의 견해가 한나라 왕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의 견해를 저술로 남겼다.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는 한비의 글을 읽고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침공하자, 한나라의 마지막 군주 안(安)은 한비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진시황의 환심을 사서 한나라에 대한 공격을 늦추고 대신 조, 위나라부터 정벌하도록 설득하여 시간을 벌어보고자 하였다. 진왕은 한비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에게 높은 직위를 주고 머물게 하여 중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진의 재상이자 한비와 같이 수학한 이사와 요가(姚賈)라는 자가 한비를 모함하여 그를 투옥시켰고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게 하였다.
(5)주요저작 : 미상(未詳)
3. 서지사항
원래는 한비를 ‘한자(韓子)’로 불렀고 그의 저술도 《한비》로 불렀으나, 후세에 당(唐)나라의 한유(韓愈)가 한자(韓子)로 불리게 되자 혼동을 피하기 위해 한비자라 부르게 되었다.
《한비자》는 전국시대 말 한비 저술의 결집이며 법가사상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저작으로, 군주의 관료 통제술을 강조한 신불해(申不害)의 주장과 무차별적인 성문법의 적용 및 극단적 법치주의을 강조한 상앙(商鞅)의 주장, 군주의 도덕성보다는 존엄한 위세가 권력 유지의 비결이라는 신도(愼到)의 주장 등을 종합하여 법가적 통치 이론을 확립한 후, 그것을 계통적으로 피력하였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는 《한자》 55편이라고 되어 있고, 당나라 때 장수절(張守節)이 저술한 《사기정의(史記正義)》에서는 원효서(阮孝緒)의 《칠록(七錄)》을 인용하여 《한자》 20권을 실었는데, 편수나 권수가 모두 지금의 판본과 부합한다. 유독 왕응린(王應麟)의 《한예문지고증(漢藝文志考証)》에 56편이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전사하는 과정의 오류가 아닌가 싶다.
송대(宋代) 이전 《한비자》를 주해(注解)한 사람으로는 북위(北魏)의 유병(劉昞)이 있고, 북위인(北魏人)으로 추정되는 이찬(李瓚)의 주석이 있으며, 《당서(唐書)》 〈예문지(藝文志)〉에는 윤지장(尹知章)이 《한자주(韓子注)》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해는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간본으로 송대 건도(乾道) 연간의 《한자주》가 있는데, 작자는 미상이다. 명대의 조용현(趙用賢)이 남긴 〈한비자서서(韓非子書序)〉‚ 〈한자범례(韓子凡例)〉‚ 〈한자총평(韓子總評)〉 등은 《사고전서(四庫全書)》‚ 《십자전서(十子全書)》 등을 통해 널리 유통되었다.
4. 내용
55편 20책의 거질로 되어 있다. 원래 《한자(韓子)》라 불렀는데, 후에 당(唐)의 한유(韓愈)를 한자(韓子)라고 부르고 그 문집을 《한자(韓子)》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와 혼동을 막기 위해 《한비자(韓非子)》로 통용되어 왔다. 이 책은 한비가 죽은 이후 전한(前漢) 중기 이전에 지금의 형태로 정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대부분의 선진(先秦) 시기 저작물과 마찬가지로 계획된 체계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니므로 동일한 관점과 내용이 전편을 통해 중복되기도 한다. 따라서 양계초(梁啓超)‚ 여사면(呂思勉) 등의 학자들이 본서의 분류를 시도한 바 있고 주훈초(周勛初) 역시 이 책을 내용‚ 논지와 체재에 의해 새로 편차를 정하고자 하였다.
책의 내용은 거의가 법의 지상(至上)을 강조하지만 55편을 논점에 따라 성질이 다른 10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오두(五蠹)〉‚ 〈팔설(八說)〉‚ 〈육반(六反)〉‚ 〈궤사(詭使)〉‚ 〈망징(亡徵)〉의 5편은 한비의 주요논점이 펼쳐지는 편들로서‚ 특히 〈오두〉에는 역사진화론의 입장에서 옛날과는 시대상황이 다르므로 법(法)·세(勢)·술(術)에 의하지 않고는 왕권 통치를 유지할 수 없다는 한비의 주장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간겁시신(姦劫弑臣)〉‚ 〈설의(說疑)〉‚ 〈애신(愛臣)〉‚ 〈팔간(八姦)〉‚ 〈비내(備內)〉의 5편은 권세 있는 간신과 총애 받는 측근자들의 음모술수가 왕권통치에 얼마나 위협적인가를 집중적으로 논의하였으며 따라서 제왕은 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며 법도를 엄수하고 상공벌죄(賞功罰罪)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분(孤憤)〉‚ 〈설난(說難)〉‚ 〈난언(難言)〉‚ 〈화씨(和氏)〉‚ 〈인주(人主)〉‚ 〈문전(問田)〉 6편은 새로운 법치를 실천하는데 따르는 각종 어려움을 논하고 있으며‚ 〈팔경(八經)〉‚ 〈정법(定法)〉‚ 〈유도(有度)〉‚ 〈심도(心度)〉‚ 〈수도(守道)〉‚ 〈제분(制分)〉‚ 〈칙령(飭令)〉‚ 〈이병(二柄)〉‚ 〈남면(南面)〉‚ 〈용인(用人)〉‚ 〈안위(安危)〉‚ 〈삼수(三守)〉‚ 〈난세(難勢)〉‚ 〈공명(功名)〉 14편은 한비의 정치이론의 구체적인 전개를 다루고 있다.
〈현학(顯學)〉‚ 〈충효(忠孝)〉‚ 〈식사(飾邪)〉‚ 〈문변(問辯)〉 4편 역시 정치이론의 일부분으로 중앙집권적 통치를 위한 사상문화정책을 논하는 내용이며 극단적인 문화전제주의를 펴고 있다. 〈양권(揚權)〉‚ 〈주도(主道)〉‚ 〈해로(解老)〉‚ 〈유로(喩老)〉‚ 〈대체(大體)〉‚ 〈관행(觀行)〉은 철학적 논문으로 황로학파를 직접 이어받고 있으며, 제자백가의 학문적 성취를 받아들여 통일된 전제정치에 유용한 사상을 제시하고 있다. 〈난일(難一)〉‚ 〈난이(難二)〉‚ 〈난삼(難三)〉‚ 〈난사(難四)〉는 논박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것으로 주로 독서 차기(箚記)이다.
〈내저설(內儲說)〉 상·하편‚ 〈외저설(外儲說)〉 좌상·좌하편‚ 〈외저설(外儲說)〉 우상·우하편의 여섯 저설(儲說)은 역사 고사와 민간전설을 집대성한 것이며, 〈십과(十過)〉는 이와 체례는 유사하나 한비의 저술이 아닌 것으로 추정한다. 〈설림(說林)〉 상·하는 한비가 수집한 것으로 그의 사상과 저술의 원시자료에 해당된다. 〈존한(存韓)〉‚ 〈초견진(初見秦)〉은 한비의 사적(事蹟)에 결부시켜 책 첫머리에 편입되어 있으나, 〈존한〉은 한비의 작품을 모방한 상주문(上奏文)이 포함된 것이며, 〈초견진〉은 타인의 저작이 혼합되어 있어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고, 부록과 같은 성격의 글로 이해할 수 있다.
5. 가치와 영향
한비자의 사상은 전국시대를 끝내고 통일 제국을 이루고자하는 사회 정세의 반영이었으며 그의 사후 12년 뒤에 통일을 이룩한 진(秦)의 지배는 그의 사상이 구체화된 것이었다. 이 책에는 한비자의 사상뿐만 아니라 춘추전국시대 법가들의 주장과 행적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따라서 《한비자》는 법가의 제왕학은 물론 부국강병론, 체제개혁론과 함께 인간과 권력에 대한 색다른 철학을 담고 있는 명저라고 할 수 있다. 진시황은 그가 쓴 〈고분〉과 〈오두〉 등을 읽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까지 감탄했다고 한다.
한비는 유가의 인의(仁義)를 중시하는 주장과, 묵가의 겸애(兼愛)사상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비판하고, 군웅할거(群雄割據)하는 약육강식의 전국시대에는 오히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한 때 권모술수(權謀術數)의 대가로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 중국에서는 법가가 시대의 사상으로 재평가되어 《한비자》와 관련된 주석서와 연구서가 많이 출판되고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항상 강한 나라도 없고, 항상 약한 나라도 없다, 법을 받드는 것이 강하면 강한 나라가 되고, 법을 받드는 것이 약하면 약한 나라가 된다.[國無常强 無常弱 奉法者强則國强 奉法者弱 則國弱]” 〈유도(有度)〉
•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적인 법으로 나아가게 한다면 백성이 편안하고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으며 사사로운 행위를 버리고 공적인 법을 시행하면 자기의 군사는 강해지고 적은 약해진다.[能去私曲就公法者 民安而國治 能去私行 行公法者 則兵强而敵弱]” 〈유도(有度)〉
• “현명한 군주가 그 신하를 인도하고 제어하는 것은 두 개의 칼자루일 뿐이다. 두 개의 칼자루란 형벌과 덕이다.[明主之所導制其臣者 二柄而已矣 二柄者 刑德也]” 〈이병(二柄)〉
• “천지가 3년 만에 나뭇잎 하나를 만들어 낸다면, 나뭇잎을 가진 식물은 별로 없을 것이다.[使天地三年而成一葉 則物之有葉者寡矣]” 〈유로(喩老)〉
• “지금 오늘날 세상에서 요·순·탕·무·우의 도를 찬미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오늘날 성인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今有美堯舜湯武禹之道於當今之世者 必爲新聖笑矣]” 〈오두(五蠹)〉
(2)색인어:한비자(韓非子), 한비(韓非), 진시황(秦始皇), 순자(荀子), 이사(李斯), 상앙(商鞅), 법(法), 법가(法家), 군주론(君主論)
(3)참고문헌
• 韓非子全譯(韓非 著, 張賞 譯注, 貴州人民出版社)
• 韓非子(劉安 等 著, 許匡一 譯註, 貴州人民出版社)
• 韓非子(韓非 著, 鄭之聲·江濤 編著, 中國傳統文化讀本)
• 韓非子(李相一 譯, 河西出版社)
• 韓非子(南晩星 譯註, 玄岩社)
【함현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