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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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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전한(前漢) 초기에 회남(淮南) 지역의 제후였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빈객과 방술가(方術家) 수천을 모아 도가의 도(道) 사상을 중핵으로 하여, 그들이 보유한 해박한 지식을 널리 결집해서 편찬한 백과전서로 신화(神話)와 전설(傳說)에 관한 연구자료의 보고이다.

2. 저자/편자

(1)성명:유안(劉安)(B.C. 179~B.C. 122)
(2)자(字)·별호(別號):회남왕(淮南王)
(3)출생지역:미상(未詳)
(4)주요활동과 생애
한 고조(漢高祖)의 손자이며 회남왕 유장(劉長)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작위를 이어받아 회남왕이 되어 수춘(壽春)에 도읍하였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해서 유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에 두루 능했고 음악을 즐겼으나, 말 타고 사냥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학자를 귀하게 여겨 수천 명의 식객을 두기도 했다. 사상적으로 노장을 주축으로 여러 학파의 사상을 통합하려 했고, 도가사상에 의거한 통일된 이론으로 당시 유교 중심의 이론과 대항하려 했다. 무(武)보다는 문(文)을 더 좋아한 회남왕 유안은 이렇듯 천하의 인재들을 불러 모아 그들과 함께 수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그중의 하나가 《내서(內書)》 21편, 즉 오늘날 우리가 보는 《회남자》이다. 《사기(史記)》나 《한서(漢書)》에 따르면, 아버지 유장(劉長)이 모반에 연루되어 형 문제(文帝)에 의해 낙인이 찍혀 봉국을 몰수당하고 촉(蜀)에 유배 가던 도중 스스로 굶어죽었다고 한다. 유안은 그 한으로 반역의 뜻을 가슴에 품고 무제(武帝) 때 반란을 획책했으나 발각되어 체포되기 전에 자살했다.
(5)주요저작:미상(未詳)

3. 서지사항

《회남자》는 《내서(內書)》, 《내편(內篇)》, 《회남(淮南)》, 《회남내(淮南內)》, 《홍렬(鴻烈)》, 《회남홍렬(淮南鴻烈)》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회남자(淮南子)’라는 말이 처음 쓰인 것은 남북조 시대 양(梁)나라 사람 오균(吳均)이 지은 《서경잡기(西京雜記)》라는 책에서부터이다. 이후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서도 《회남자》라는 서명이 사용되었으며, 당·송 시대에는 공적이든 사적이든 거의 모든 기록에서 《회남자》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명대의 주석가들은 《회남홍렬(淮南鴻烈)》이라는 명칭을 더 자주 사용하였다.
《회남자》의 저술에 직접 참여한 사람은 대략 10여 명 정도로 보인다. 《회남자》의 초기 주석가 중 한 사람인 고유(高誘)가 쓴 〈서목(敍目)〉에는 그 구체적 인물로 다음과 같은 이들을 언급하였다. “천하의 방술가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이에 마침내 소비(蘇飛)·이상(李尙)·좌오(左吳)·전유(田由)·뇌피(雷被)·모피(毛彼)·오피(五被)·진창(晉昌) 등 여덟 사람, 그리고 대산(大山)·소산(小山)의 무리와 같은 여러 유학자들과 함께 도덕(道德)을 논의하고 인의(仁義)를 총괄하여 이 책을 지었다.” 이렇게 하여 《회남자》라는 거작이 회남왕 유안 자신의 직접적인 참여와 그의 빈객으로 있던 다수 지식인들의 공동 노력에 의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독존유술(獨尊儒術) 정책이 진행된 이래, 《회남자》는 그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서한 말기 유향(劉向)이 궁중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회남자》를 발굴하여 그의 도서목록인 《별록(別錄)》에 기록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후한(後漢)의 학자 허신(許愼)이 이 책에 대한 전면적인 주석 작업을 하였고, 허신의 주석 이후에 마융(馬融)·연독(延篤)·노식(盧植)·고유 등의 주석이 잇달아 나왔다. 그러나 이들 주석서들은 대부분 소실되고 단지 허신주본(許愼註本)과 고유주본(高誘註本)만이 당말 송초까지 개별적으로 전해졌다. 지금은 고유주본만 남아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주석서로는 당시 전해져 오던 7개의 판본을 비교·분석한 소송(蘇頌)의 《교회남자제서(校淮南子題序)》가 있다. 현존하는 주석서들은 대부분 명·청대 그리고 중화민국 수립 이후에 나온 것들이다. 오늘날 가장 권위 있는 연구와 주석서로 평가받는 책은 왕념손(王念孫)과 그의 아들 왕인지(王引之)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는 《독서잡지(讀書雜誌)》에 실려 있다. 이후 허신과 고유의 주를 분석, 비판한 도방기(陶方琦)의 《회남자허주이동고(淮南許注異同詁)》가 나왔고, 정양수(鄭良樹)에 의해 《회남자각리(淮南子斠理)》, 《회남자통론(淮南子通論)》이 나왔으며, 우대성(于大成)의 《회남자교석(淮南子校釋)》이 나왔다. 그 외에 유문전(劉文典)의 《회남홍렬집해(淮南鴻烈集解)》와 유가립(劉家立)의 《회남집증(淮南集證)》, 하녕(何寧)의 《회남자집석(淮南子集釋)》, 장쌍체(張雙棣)의 《회남자교석(淮南子校釋)》, 하녕(何寧)의 《회남자집석(淮南子集釋)》, 진광충(陳廣忠)의 《회남자역주(淮南子譯注)》 등이 있다.

4. 내용

《회남자》는 〈내서(內書)〉 외에도 〈외편(外書)〉, 〈중편(中篇)〉도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내서〉 21편만 전하고 있다. 형이상학적 내용부터 천문·지리·시령(時令) 등 자연과학의 내용까지 포함하였으며, 일반 정치학에서 병학(兵學), 개인의 처세훈(處世訓)까지 열거하였다. 책의 마지막에는 총정리한 요략(要略) 1편을 붙여서 방대한 내용을 통일하였다.
편명에 따라 대략적인 내용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원도훈(原道訓)〉은 도를, 〈숙진훈(俶眞訓)〉은 도의 실상을 설명하고, 〈천문훈(天文訓)〉, 〈지형훈(地形訓)〉, 〈시칙훈(時則訓)〉은 동양의 천문학적 지식과 지형과 지리에 대한 내용, 그리고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삶을 상호 연결시켜 설명한다. 〈남명훈(覽冥訓)〉, 〈정신훈(精神訓)〉, 〈본경훈(本經訓)〉, 〈주술훈(主術訓)〉 등은 상을 넓게 보는 방법과 만물 속에서 인간의 유래, 세월이 가도 불변하는 진리와 제왕의 통치 기술을 서술한다. 끝으로 인간 사회의 존재 방식으로 언어와 역사적 특수성에 기초하여 특수와 보편의 문제를 다루는 〈제속훈(齊俗訓)〉과 그 뒤의 11편은 만물을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 방식은 결국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를 합일하는 천도(天道)와 인사(人事)의 통합으로 돌아간다.
《회남자》는 제자백가의 학설을 집성한 것이기 때문에 사상적 통일성은 약하다. 예컨대 〈원도훈〉·〈숙진훈〉 등은 도가의 주장을, 〈천문훈〉·〈시칙훈〉 등은 음양가의 주장을, 〈주술훈〉은 법가의 주장을, 〈수무훈(修務訓)〉·〈태족훈(泰族訓)〉 등은 유가의 주장을, 〈병략훈(兵略訓)〉 등은 병가의 주장을 각기 채집하여 넣고 있다.
《회남자》가 저술되던 한대 초기의 사회 및 정치 영역을 주도한 지배이념은 이른바 황로사상이었다. 도가 사상을 중심으로 유가·법가·음양가 등 여러 사상들을 융합하는 특성을 지닌 이 황로사상은 한대 초기의 사상 전반을 지배한 이론적 사유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 이념이 한대 초기의 정치 현장에서 실제로 실현되는 통치 이념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회남자》는 당시에 유행한 이러한 사조를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기존에 단편적으로 흩어져 있던 우주론 또는 생성론에 관련된 사고들을 하나로 끌어 모아, 기론을 중심으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우주 생성론을 완성시켰다.
또 이 책은 인간이 자연을 닮았다는 근거로 자연계의 구조와 인간 신체의 구조가 서로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천인감응론(天人感應論)’을 제기하면서 자연과 인간은 상호 반응하고 감응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회남자》는 ‘무위’ 개념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 상황에 적합한 무위정치론을 전개한다. 또 《회남자》는 생명의 기본 요소로 형(形), 기(氣), 신(神) 세 가지를 제시하면서 인간의 생명 활동이 모두 이들 형·기·신의 작용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5. 가치와 영향

《회남자》에 인용된 문헌들은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등의 도가 계통의 서적들 그리고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등을 중심으로 하는 유가의 경전들과, 그 외에 법가 계통의 전적, 음양오행가의 주장, 《묵자》, 심지어는 황노(黃老)의 저작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과 《여씨춘추(呂氏春秋)》 등 매우 다양하고 광범하여 실로 잡다하기까지 하다. 이 때문에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서는 핵심적인 사상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잡가류(雜家類)에 넣고 있으나, 후대에는 《회남자》의 사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여러 사상과의 유기적 연관성에 입각하여 평가하고 있다. 특히 양계초(梁啓超)는 《회남자》 자체의 유기적 체계를 인정한다. 즉 《회남자》는 미리 세워진 계획 아래 심혈을 기울여 저술되었으며, 따라서 거기에는 일정한 조리와 체계가 있다는 것이다. 《회남자》는 한나라 초기에 성행한 다양한 학술 내지 사상의 흐름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는 면에서 특징적이다. 또한 《회남자》에서 다루고 있는 형이상학은 매우 발전된 수준이며 명확하다. 따라서 이 책의 우주론의 개략적인 내용은 도가에서만이 아니라 후대의 유학자들도 정설로 채택했다. 아울러 이 책은 형이상학과 우주론에 본질적으로는 합리적 정신으로 접근함으로써 합리주의적인 신도가의 출현을 예비했다는 평가도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도란 것은 하늘을 덮고 땅을 싣고 있으면서 사방팔방으로 무한대로 퍼지며,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夫道者 覆天載地 廓四方 柝八極 高不可際 深不可測]” 〈원도훈(原道訓)〉
• “해는 양곡에서 떠올라 함지에서 목욕한다.[日出于暘谷 浴于咸池]” 〈천문훈(天文訓)〉
• “초목이 낙엽 지기 전에는 도끼를 산림 안에 들여놓으면 안 된다.[草木未落 斧斤不得入山林]” 〈주술훈(主術訓)〉
• “목욕할 준비를 하면 벼룩과 이가 서로 애도하고, 큰 집이 이루어지면 제비와 참새가 서로 하례한다.[湯沐具而蟣蝨相弔 大厦成而燕雀相賀]” 〈설림훈(說林訓)〉
• “물의 성질은 더러움을 씻어 맑게 해주는 것이다. 막힌 골짜기처럼 오염된 곳에 물때가 생기는 것은 그 본성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水之性 淖以淸 窮谷之汚 生以靑苔 不治其性也]” 〈태족훈(泰族訓)〉
(2)색인어:회남자(淮南子), 유안(劉安), 회남왕(淮南王), 홍렬(鴻烈), 회남홍렬(淮南鴻烈), 내서(內書), 내편(內篇), 회남내(淮南內), 무위(無爲)
(3)참고문헌
• 淮南子(劉安 等撰, 高誘 註, 藝文印書館)
• 淮南子全譯(劉安 等 著, 許匡一 譯註, 貴州人民出版社)
• 淮南子直解(劉康德 著. 復旦大學出版社)
• 新譯 淮南子(劉安 著, 熊禮匯 注譯, 侯逎慧 校閱, 三民書局)
• 淮南子(劉安 著, 李錫浩 譯, 乙酉文化社)

【함현찬】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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