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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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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기질(辛棄疾)은 중국 남송(南宋)의 호방파(豪放派) 사인(詞人)이다. 그는 역사상 가장 걸출한 애국사인 중 한 명으로, 소식(蘇軾)의 전통을 계승했다. 장단구(長短句)에 능하고, 격렬하고 비장감이 감도는 작품을 많이 지었다. 《가헌사(稼軒詞)》는 신기질이 남긴 사집(詞集)으로, 《가헌장단구(稼軒長短句)》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620여 수에 달하는 작품이 실려 있다. 이로 인해 신기질은 "다작사인(多作詞人)" 으로도 일컬어진다.

2. 저자

(1) 성명:신기질(辛棄疾)(1140~1207)
(2) 자(字)·별호(別號):자는 유안(幼安), 호는 가헌(稼軒), 별호는 가헌거사(稼軒居士), 신충민(辛忠敏)
(3) 출생지역:산동성(山東省) 제남(濟南)
(4) 주요활동과 생애
신기질은 어릴 적부터 경전에 능통하고 시문을 잘 썼으며 병서와 무예에도 탁월함을 보였다. 그는 금(金)나라에서 태어났지만, 금의 횡포가 심해지자 의병을 일으켜 금에 저항하고 후에 송(宋)으로 귀순했다. 신기질은 중국 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무인 출신의 문인이다. 송에서 일찍이 관직 생활을 했지만, 금나라에서 송으로 귀순한 신기질을 향한 의심과 멸시의 눈초리가 많았기에 주로 외지로 임지를 배정받았으며 두 차례 파직을 당하기도 하였다. 관직생활을 하면서 《미근십론(美芹十論)》과 《구의(九議)》를 적어 전쟁과 방어의 책략 기술을 올렸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또한, 파직 기간 동안의 은거 생활을 통해 전원 풍경과 농촌사회를 직접 체험하면서 많은 농촌사(農村詞)를 창작했다. 이후 다시 재등용되어 북벌(北伐)에 참여하여 중원회복(中原恢復)을 바랐지만, 1207년 68세에 병사했다.
신기질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원대한 포부를 실현하지 못하였으나, 혼란한 시기에 군사 전략가이자 사(詞) 작 가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며,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 문인(文人)들과는 다른 내용의 풍격(風格)을 그의 작품에 담을 수 있었다. 또한 사의 새로운 경계를 개척함과 동시에 문학적 지위를 향상시켰으며, 소식(蘇軾)의 흐름을 담은 사의 명수(名手)로서 남송 호방파(豪放派) 제1인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의 애국정신과 시대를 반영한 작품들로 인해 애국사인(愛國詞人)으로도 추앙받고 있다.
‘사인 중의 용[詞中之龍]’, 소식(蘇軾)과 함께 ‘소신(蘇辛)’, 이청조(李清照)와 함께 ‘제남이안(濟南二安)’(청초(淸初) 작가이자 시론가인 왕사진(王士禎)이 제남출신의 두 작가 이청조(호(号) 이안거사(易安居士))와 신기질(자(字) 유안(幼安))을이안(二安)이라 칭하였다), 남송의 유영(柳永)과 주방언(周邦彥), 북송의 강기(姜夔)와 어울려 ‘사대사인(四大詞人)’ 등으로 불린다.
(5) 주요저작:산문(散文)에는 《미근십론(美芹十論)》, 《구의(九議)》 등이 있고, 사(詞)에는 〈수룡음(水龍吟)〉, 〈영우락(永遇樂)〉, 〈청옥안(靑玉案)〉, 〈모위아(摸魚兒)〉, 〈만강홍(萬江紅)〉, 〈심원춘(沁園春)〉, 〈서강월(西江月)〉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가헌사(稼軒詞)’는 620여 수의 사(詞)를 수록하고 있는 신기질의 사집이다. 중국 송대는 사문학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이다. 그 중 신기질의 사는 중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호방한 성격을 띠고 있지만, 서정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작품도 많이 수록되어 있다. 신기질의 사는 이처럼 양적인 측면과 아울러 사상과 예술적 성취에서 모두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그의 사는 다소 산문에 가까운 형식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표현수법이 풍부하고 내용과 제재가 폭넓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존하는 가헌사(稼軒詞) 중 가장 오래된 것은 4권으로 된 《가헌사(稼軒詞)》로 갑(甲)·을(乙)·병(丙)·정(丁)으로 나뉘어 있다. 신기질이 사망한 후 그의 사를 추가적으로 보충하여 12권으로 구성된 《가한장단구(稼軒長短句)》도 간행되었다. 현대에는 등광명(鄧廣銘)이 《가헌장단구(稼軒長短句)》를 중심으로 교정·수집하여 재구성한 것을 보완하여 편집한 《가헌사편년전주(稼軒詞編年箋注)》가 가장 완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 내용

가헌사(稼軒詞)는 신기질이 당시 자신이 경험한 것을 솔직담백하게 묘사하여 작품으로 창작한 것으로 호방(豪放)한 작품 이외에 완약(婉約)한 감정을 묘사한 작품들도 많다. 가헌사는 당시 사회 문제를 근심하는 작품으로 금(金)에 항거하고, 중원(中原)을 통일하고자 하는 애국사상(愛國思想)을 중심 주제로 삼았다. 또한 정치적 지향을 실현하기 어려웠던 현실을 향한 무한한 슬픔과 분노를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화친파의 안일추구와 조정의 우매함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다.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사상적 배경은 북녘에 자리한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잃어버린 땅을 되찾겠다는 맹세 등으로 집약할 수 있다. 또한, 은거시기에 경험했던 농촌 생활과 전원의 풍경을 선명하게 묘사했다.
가헌사에서 〈목란화만(木蘭花慢)〉, 〈염노교(念奴嬌)〉, 〈만강홍〉 등은 조정으로부터 무시당하고 정치적 실의에 빠진 것을 비유를 통해 나타낸 저항사(抵抗詞)에 속하며, 〈완계사(浣溪詞)〉, 〈서강월〉, 〈청평악(清平樂)〉, 〈자고천(鷓鴣天)〉 등은 농촌의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평화로운 농촌경치 속 은거에 대한 번민과 울분을 토로한 농촌사 분류된다. 〈청옥안〉, 〈수룡음〉, 〈파진자(破阵子)〉등은 일부 구문에 따라 애정사(愛情詞)로 분류하기도 한다.

5. 가치와 영향

신기질은 사의 경계를 확대하여 완약(婉約)한 틀을 깸으로써 사풍(詞風)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애국사(愛國詞) 창작에 힘을 쏟았는데 이러한 창작 경향은 후에 애국사파(愛國詞派)를 형성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육유(陸游), 진량(陳亮) 등은 신기질의 호방(豪放)한 풍격과 애국정신을 이어받아 애국사(愛國詞)를 창작하였는데 연구자들은 이들을 ‘신파사인(辛派詞人)’이라 칭한다. 각 시대의 이름을 날린 문인들(유민사인(遺民詞人), 원호문(元好問), 진유숭(陳維崧), 양계초(梁啓超) 등)도 신기질을 추앙하였으며, 그의 사(詞)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중국 최대의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百度]의 이름도 신기질의 〈청옥안〉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신기질의 사는 사의 내용을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으로부터 독립시켜 문학으로서의 생명력을 얻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남(濟南) 대명호(大明湖)에는 신기질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 있다. 사당 내에는 그의 조각상 및 각종 서적과 서화 등이 보존되어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천고의 이 강산에, 손권(孫權)같은 영웅은 찾을 곳이 없구나. 춤추고 노래하며 놀던 누대에, 풍류는 비바람에 씻기어 사라졌구나.[千古江山 英雄無覓孫仲謀處 舞榭歌台 風流總被雨打風吹去]” 〈영우락(永遇樂)〉
• "인파 속을 천 번 만 번 찾아 헤매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이 있었네요, 희미한 등불아래.[衆裏尋他千百度 驀然回首 那人卻在 燈火闌珊處]" 〈청옥안(靑玉案)〉
• "애석하게 흐르는 세월, 걱정과 비바람 속에, 나무도 이같이 변했네! 누구에게 청해, 아름다운 여인 불러와, 영웅의 눈물 닦게 하나![可惜流年 憂愁風雨 樹猶如此 倩何人喚取 紅巾翠袖 搵英雄淚]" 〈수룡음(水龍吟)〉
(2) 색인어:신기질(辛棄疾), 가헌사(稼軒詞), 가헌사장단구(稼軒長短句), 호방파(豪放派), 애국사인(愛國詞人)
(3) 참고문헌
• 辛棄疾論叢(劉乃昌, 齊魯書社)
• 稼軒詞硏究(陳滿銘, 文津出版社)
• 稼軒詞編年箋注(鄧廣銘, 上海古籍出版社)
• 稼軒辛棄疾詞硏究(이동향, 서울대학교박사논문)
• 辛棄疾詞選(이치수 역, 지식을만드는지식)

【정태업】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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