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증국번(曾國藩)은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운동(太平天國運動)을 진압한 지도자이자 양무운동(洋務運動)의 추진자이며 성리학자(性理學者), 문장가(文章家)로도 유명하다. 이 책은 함풍(咸豐) 10년(1860)에 완성된 문장 총집(總集)으로, 어느 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경(經)‧사(史)‧자(子)‧집(集)을 두루 망라하였으며, 자신의 학술사상과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사상을 반영하였다.
2. 저자
(1) 성명:증국번(曾國藩)(1811~1872)
(2) 자(字)·별호(別號):초명(初名)은 거무(居武), 자성(子城), 자는 백함(伯涵), 호는 척생(滌生), 시호는 문정(文正).
(3) 출생지역:호남성(湖南省) 상향(湘鄕)(현 중국 호남성(湖南省) 상향시(湘鄕市))
(4) 주요활동과 생애
도광(道光) 18년(1838)에 진사에 급제하여 한림원(翰林院) 서상관(庶常館)에 배속되었다가 1840년에 한림원 검토(檢討)가 되었고 1849년에는 예부우시랑(禮部右侍郞)에 임명되었다. 태평천국운동이 일어나자 상군(湘軍)을 편성하여 진압에 큰 공을 세움에 따라 직급이 올라 무영전대학사(武英殿大學士), 직예총독(直隸總督)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이홍장(李鴻章)과 함께 강남제조국(江南製造局)을 세우고 유학생을 파견하는 등 양무운동에도 앞장섰다. 동치(同治) 9년(1870)에 천진(天津)으로 가서 교안(敎案)을 처리하다가 간의 상태가 악화되어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으며, 그해 8월에 양강총독(兩江總督)으로 부임하였고 동치 11년(1872)에 병사하였다.
학술 면에서는, 공맹(孔孟)의 도(道)와 정주(程朱) 성리학(性理學)을 지도적 이념으로 삼고 ‘경세치용’과 문학의 시대적 책무 등을 강조함으로써 동성문파(桐城文派)의 중흥을 이끌었다. 이러한 학술 경향은 앞서 요내(姚鼐)가 학술의 주된 세 영역으로 의리(義理), 고거(考據), 사장(詞章)을 표방하였던 것에 다시 경제(經濟)를 추가한 사실을 통해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5) 주요저작
저술로는 《증문정공시문집(曾文正公詩文集)》, 《증문정공주고(曾文正公奏稿)》, 《증문정공잡저(曾文正公雜著)》등이 있고, 엮은 책으로는 《경사백가잡초》, 《십팔가시초(十八家詩抄)》등이 있으며 전집으로는 《증문정공전집(曾文正公全集)》이 있다.
3. 서지사항
이 책은 증국번 사후 4년이 지난 광서2년(1876)에 문하 문인들의 주도 하에 《증문정공전집(曾文正公全集)》(총16책)의 일환으로 처음 출판되었다. 이 판본은 傳忠書局에서 간행되었고, 광범위하게 유통됨으로써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책은 총집으로, 역대 문장을 선별, 수록하고 있으며, 총 26권, 671편의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증국번은, 요내가 엮은 《고문사류찬(古文辭類纂)》이 가진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 고문 학습의 원류를 확대하기 위해 이 책을 엮었다. 책의 앞부분에는 서목(序目)이 있고, 전체 문장은 3문(門) 11류(類)로 나뉘어 실려 있다. 여기서 3문은 저술문(著述門), 고어문(告語門), 기재문(記載門)을 말하며, 그중 먼저 저술문에는 논저류(論著類), 사부류(詞賦類), 서발류(序跋類)가, 고어문에는 조령류(詔令類), 주소류(奏疏類), 서독류(書牘類), 애제류(哀祭類)가, 마지막으로 기재문에는 전지류(傳志類), 서기류(敍記類), 전지류(典志類), 잡기류(雜記類)가 편성되어 있다. 수록된 문장의 경우, 표점은 부기되어 있지만 권점(圈點)과 평어(評語)는 따로 실려 있지 않다.
4. 내용
이 책은 ‘경사백가잡초’라는 책의 제목이 알려주듯, 《고문사류찬》과 달리 경사(經史)를 중시하였으며, 집부(集部) 외에도 경부(經部), 사부(史部), 자부(子部)의 글을 광범위하게 수록하고 있다.
책의 분류방식은 기본적으로 《고문사류찬》의 방식에 의거하였으나, 일정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기도 한다. 곧 논저류, 사부류, 서발류, 조령류, 주소류, 서독류, 애제류, 전지류, 잡기류 등 9부류는 《고문사류찬》과 동일하지만, 그 외 요내가 정사(正史), 사전(史傳)의 문장과 전장제도(典章制度)의 문장을 수록하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증국번은 이 두 부류의 문장도 수록하여 서기류, 전지류(典志類) 두 항목을 따로 추가하였다. 또한 요내는 잠명류(箴銘類), 송찬류(頌贊類)를 각각 하나의 부류로 설정하였지만, 증국번은 둘 다 사부류로 귀속시켰다. 동시에 요내의 분류항목 가운데 하나였던 비지류는 전지류(傳志類)에, 증서류는 서발류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서례(序例)에서는 매 항목마다 분류의 기준과 해당되는 글이 어떤 것인지를 밝혀놓았다. 예컨대 논저류의 경우, 저작 가운데 운(韻)이 없는 글이라고 설명하고, 경전에서는 《대학(大學)》, 《중용(中庸)》, 《맹자(孟子)》 등을, 고문가들의 문장에서는 ‘논(論)’, ‘설(說)’, ‘원(原)’ 등을 해당 문체로 꼽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수록된 문장으로 미루어 볼 때, 요내의 《고문사류찬》이 당송팔가문(唐宋八家文)을 위주로 한 것과 달리, 이 책은 매 분류항목 앞부분에 육경(六經)의 문장을 내세우고, 또한 사전(史傳)의 문장 또한 비교적 많이 수록하는 등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당시 동성파 고문이 점차 현실에서 괴리되어 한적한 기풍을 추구해가는 경향을 바로잡는 데 일조하고, 나아가 고문과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표준과 본보기를 제시함으로써 그 시야를 넓히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하겠다.
또한 역대 문장선집들의 번잡한 분류방식, 곧 송대 여조겸(呂祖謙)의 《송문감(宋文鑑)》이 59류, 명대 서사증(徐師曾)의 《문체명변(文體明辨)》이 127류인 점 등을 고려하면, 증국번이 단 11류로 재편한 것은 역대의 번잡한 분류를 간략히 정리해낸 측면에서 일정한 공로를 세운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나아가 글이 활용되는 방식에 따라 3문으로 나눔으로써 기능적 측면에 주안점을 두어 분류한 점, 또한 크게 보았을 때, 저술문과 기재문은 문학적 글쓰기로, 고어문은 실용적 글쓰기로 나뉠 수 있고, 다시 저술문과 기재문은 기술의 방식에 따라서 둘로 나뉘는 등 분류상 세밀함과 합리성을 제고한 점 역시 특기할 만한 의의라고 할 것이다.
이 책은 첫 출판 당시에 이미 이홍장(李鴻章), 곽숭도(郭嵩燾), 왕개운(王闓運), 왕선겸(王先謙) 등 많은 유명인사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는 국학을 공부하는 입문서로 자리 잡아, 민국(民國) 초년에는 신식학교에서 국문(國文) 교재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마오쩌둥(毛澤東) 또한 이 책을 국학을 연마하는 입문서로 격찬하였고, 특히 이 책이 도(道)와 문(文)을 겸비하였고, 또한 고대로부터 청대 사이의 경ㆍ사ㆍ자ㆍ집의 정수를 전부 망라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 바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근래 문장에 조예가 있는 일부 문사들이 고문을 찬록하면서 위로 육경을 더 이상 다루지 않고는 경전을 중시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문의 명칭이 성립된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려면, 곧 육조(六朝)의 변려문(騈儷文)을 내치고 삼대(三代)·양한(兩漢)의 글로 돌아가야 하는데, 지금은 경전을 버려두고 내려와 찾고 있으니, 이는 효(孝)를 말하는 자가 그 부친과 조부는 공경하면서 그 고조부, 증조부는 잊어버리고, 충(忠)을 말하는 자가 자신은 가신(家臣)일 따름이니 어찌 감히 나라를 알 수 있으랴 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이 어찌 옳겠는가![近世一二知文之士 纂錄古文 不複上及六經 以云尊經也 然溯古文所以立名之始 乃由屏棄六朝駢儷之文而返之於三代兩漢 今舍經而降以相求 是猶言孝者敬其父祖而忘其高曾 言忠者曰我家臣耳焉敢知國 將可乎哉]” 〈경사백가잡초서례(經史百家雜鈔序例)〉
‧ “이 책은 위로 먼 옛날부터 아래로 청대에 이르기까지 4부(四部)의 정수를 모두 망라하였다.[是書上自隆古 下迄淸代 盡掄四部精要]” 마오쩌뚱, 〈소자승(蕭子升)에게 보낸 서신(致蕭子升信)〉(1915.9.6.)(《毛澤東早期文稿》, 1988, 24쪽)
(2) 색인어:경사백가잡초(經史百家雜鈔), 증국번(曾國藩), 동성파(桐城派), 요내(姚鼐), 고문사류찬(古文辭類纂)
(3) 참고문헌
‧ 曾國藩詩文集(曾國藩, 上海古籍出版社)
‧ 桐城派名家評傳(楊懷志‧江小角 主編, 安徽人民出版社)
‧ 淸代學術辭典(趙永紀 主編, 學苑出版社)
‧ 한문문체론(진필상, 이회)
‧ 중체서용의 경세가 증국번(총 샤오룽, 이끌리오)
‧ 증국번 가서-아들에게 보낸 수신학문 처세에 관한 편지(증국번, 술이)
【백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