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송(宋)나라 때까지의 한시(漢詩)와 산문(散文)들을 뽑아 분류한 책으로 전집(前集)과 후집(後集)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전집은 시이고, 후집은 산문이다. 원래 제목은 《상설고문진보대전(詳說古文眞寶大全)》이다. 편찬자 및 편찬시기와 과정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일본판(日本板)에 실린 정본(鄭本)의 서(序)와 청려재(靑藜齋)의 발(跋)에는 송나라 말기의 학자인 황견(黃堅)이 편찬하였고, 원(元)나라의 임정(林楨)이 교정(校正)과 주해(註解)를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각 시대의 다양한 문체로 쓰인 훌륭한 시와 산문이 수록되어 있어 문장 학습서로 널리 보급되었다. 14세기 무렵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래 널리 애독되고 간행되었으며, 언해본(諺解本)과 현토본(懸吐本)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2. 편자
미상(未詳). 송(宋)나라 말의 학자 황견(黃堅)으로 추정된다.3. 서지사항
《고문진보(古文眞寶)》에서 ‘고문(古文)’은 선진양한(先秦兩漢) 이래 문언(文言)으로 쓴 산문(散文)을 지칭하는 말이다. 위진시대(魏晉時代)의 화려한 수식을 위주로 지어진 변려문(騈儷文)을 ‘시문(時文)’, 즉 당시에 유행하는 문장이라고 부른 것에 대응하기 위해 쓰인 명칭으로, 수식이나 기교보다는 ‘문장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충실한 문장’이라는 뜻이며, ‘누구나 모범으로 삼아야 할 문장’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진보(眞寶)’는 ‘참다운 보배’라는 뜻이다. 따라서 《고문진보》는 ‘고문의 참다운 보배’라는 뜻이 된다.4. 내용
전집(前集)에는 시(詩)가 총 228제(題) 244수(首)‚ 사(辭) 1편이 실려 있다. 권1은 권학문(勸學文) 8제 8수‚ 오언고풍단편(五言古風短篇) 40제 42수이다. 권2~3은 오언고풍단편(五言古風短篇) 50제 55수‚ 권4~6은 칠언고풍단편(七言古風短篇) 57제 57수‚ 권7은 장단구(長短句) 19제 20수‚ 권8은 가류(歌類) 16제 16수‚ 권9는 가류(歌類) 9제 14수‚ 권10은 행류(行類) 10제 10수‚ 권11은 행류(行類) 13제 13수‚ 권12는 음류(吟類) 3제 3수‚ 인류(引類) 3제 3수‚ 곡류(曲類) 3제 6수‚ 사(辭) 1편이 수록되어 있다.5. 가치와 영향
《고문진보》는 중국에서 간행되었으나 오히려 중국보다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더욱 많이 애독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차례 중간(重刊)되었는데, 고려(高麗) 말 전록생(田祿生)이 최초로 《고문진보》를 들여와 간행하였고, 조선(朝鮮)에는 1420년(세종2), 1452년(문종2), 1612년(광해군4)‚ 1803년(순조3)에 간행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국가 차원에서 학자들에게 《고문진보》를 하사한 기록이 많이 보인다. 《선조실록(宣祖實錄)》에 선조가 율곡(栗谷) 이이(李珥)에게 “그대의 문장을 보니 매우 좋은데, 젊었을 때 문장을 익힌 적이 있는가?”라고 묻자, 율곡은 “한유(韓愈)의 문장과 《고문진보》와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읽은 적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한 대목도 있다. 또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사칠논쟁(四七論爭)을 벌인 것으로 유명한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은 자신을 경계한 글인 〈자경설(自警說)〉에서 “《고문진보》 전집(前集)을 읽고 또 고부(古賦)를 읽고는 끊이지 않고 줄줄 외웠는데, 그때가 무술년(1538)이었다.……《고문진보》 후집(後集)을 수백 번 읽고 나니 때는 7월이었다. 그대로 이듬해 10월까지 읽어 마치고 나니, 기해년(1539)이었다.”라고 술회하였다. 시문의 창작보다는 학문에 매진했던 학자들까지 《고문진보》를 읽었음을 볼 때 나머지 문인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으며, 지금까지도 한문(漢文)에 입문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로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문진보》의 학습을 위해 《고문진본언해(古文眞寶諺解)》, 《현토비지고문진보(懸吐備旨古文眞寶)》 등이 간행되었다.6. 참고사항
(1)명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