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시원(古詩源)》은 가장 대표적인 당(唐) 이전의 고시(古詩) 선본집(選本集)이다. 편자는 청나라 심덕잠(沈德潛)이고 강희(康熙) 58년(1719)에 편성되었으며 총 14권으로 선진(先秦)부터 수대(隋代)까지의 고시 753수를 수록했다. 심덕잠은 시를 논할 때 격조설(格調說)을 주장했고 당시(唐詩)를 추앙했다. 〈自序〉에 의하면 그는 명나라 전후칠자(前後七子)가 당시(唐詩)만 주수(株守)하고 근원(根源)을 궁구하지 못하였기에 시를 배우는 자를 위해 고시의 원류(源流)까지 인도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고시원》을 편찬한 것이라고 했다.
2. 저자
(1) 성명:심덕잠(沈德潛)(1673~1769)
(2) 자(字) · 별호(別號):자는 확사(確士), 호는 귀우(歸愚) 또는 현산(峴山)
(3) 출생지역:장주(長洲)(현 강소성(江蘇省) 소주시(蘇州市))
(4) 주요활동과 생애
심덕잠은 23세에 가업을 이어 교편을 잡고 40여 년 동안 훈장을 했다. 이른 나이에 섭섭(葉燮)을 따라 시를 배웠고 시학의 조예가 있었다. 강희 33년(1694) 장주현(長洲縣)의 상생(庠生)이 되기까지 40여 년 동안 계속 급제하지 못했다. 17차례 과거시험을 치러 건륭 4년(1739)년 67세 나이에 박학홍사과(博學鴻詞科)로 진사 급제했다. 한림원(翰林院) 편수(編修), 좌중윤(左中允), 시독(侍讀), 좌서자(左庶子), 시강학사(侍講學士), 예부시랑(禮部侍郎) 등을 역임했다. 자주 건륭 황제와 시학을 논해 높이 평가되었고 집안 3대가 봉호를 받았다. 건륭황제가 몸소 그의 시문집 《귀우시문초(歸愚詩文鈔)》를 위해 서문을 써주기도 했으며 그에게 써준 증시로 수십 수가 있고 이백(李白), 두보(杜甫), 고계(高啓), 왕사정(王士禎) 등에 비했다. 77세에 관직을 떠난 뒤 소주(蘇州) 자양서원(紫陽書院)의 주강(主講)으로 있었고 후학에게 시문을 가르치면서 저술에 전념했다. 97세에 별세한 뒤 태자태사(太子太師)로 추봉되었다. 시호는 문각(文慤)으로 현량사(賢良祠)에 모셔졌다. 시의 격조(格調)를 중요시했고 인심교화에 도움이 되는 중정(中正)하고 돈후한 작품을 선호해 시교(詩敎)를 행하고자 했다. 그의 이런 격조설(格調說)은 왕사정(王士禛)의 신운설(神韻說)과 원매(袁枚)의 성령설(性靈說), 옹방강(翁方綱)의 기리설(肌理說) 등과 함께 청대시학 이론의 4대 문파를 이룬다.
(5) 주요저작:《오조시별재(五朝詩別裁)》, 《당시별재집(唐詩別裁集)》, 《명시별재집(明詩別裁集)》, 《청시별재집(清詩別裁集)》, 《귀우시문초(歸愚詩文鈔)》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고시원》은 1718년부터 1720년 사이 심덕잠이 진강(鎭江)에서 훈장으로 있던 기간에 편찬한 책이다. 서문에 의하면, 시는 당나라 때 극성(極盛)에 이르지만 그 발원은 고시(古詩)에 있다고 하면서 시가의 원류를 탐구하려는 목적으로 편찬했기에 《고시원》이라고 명명했다고 했다. 주로 명대 풍유눌(馮惟訥)의 《고시기(古詩紀)》를 바탕으로 하여 편찬했고, 선진부터 수나라까지의 시가와 민요 총 753수를 수록했으며 작품 뒤에 평어를 달아 자신의 평가와 견해도 기술했다. 총 14권으로 되어 있고 연대 순로 분권되어 있으며, 구체적으로 고일(古逸) 1권 105수, 한시(漢詩) 3권 138수, 위시(魏詩) 2권 65수, 진시(晉詩) 3권 127수, 송시(宋詩) 2권 99수, 제시(齊詩) 44수와 양시(梁詩) 86수를 합쳐 2권으로, 그리고 진시(陳詩)(22수)와 북위시(北魏詩)(11수)와 북제시(北齊詩)(11수)와 북주시(北周詩)(17수)와 수시(隋詩)(28수) 등을 합쳐 1권으로 만들었다. 시체(詩體)를 제한하지 않고 당대 이전의 시가 명편은 《시경(詩經)》, 《초사(楚辭)》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수록했으며, 강희 연간 원각본의 영인본인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나온 《사부비요(四部備要)》에 수록되어 있다.
4. 내용
심덕잠의 서문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수(隋)나라와 진(陳)나라에서 거슬러 올라가 황제(黃帝)와 헌원제(軒轅帝) 시대까지 미치는 것이 모두 300편이 있고 《시경(詩經)》과 《초사(楚辭)》 이외 교묘(郊廟)의 악장부터 마을의 동요와 속언까지 채록하지 않은 것이 없다. (중략) 고일(古逸) 부분은 그 대략을 보존했고 한경(漢京) 부분은 자세하게 기록했으며 위진(魏晉) 부분은 그 화려함을 포착했고 송(宋)과 제(齊) 이후의 시인도 버리지 않았다. 시를 편선하기도 하고 세상을 논하기도 하여 독자로 하여금 근본을 궁구하게 하고 변화를 알게 하며 남겨진 풍아(風雅)의 의미를 알게 하고자 한다.”
시의 원두(源頭)를 궁구하는 의미로 고일(古逸)을 맨 앞에 두었고 한나라 때에는 오언시와 악부시를 구별해서 《문선(文選)》을 보완하는 의미로 조사서사(措詞敘事)에 장(長)한 악부시(樂府詩)를 많이 수록했다. 건안(建安) 시기의 시인 가운데 조조(曹操)와 조식(曹植)을 중요시하고 동서진(東西晉) 시대에 좌사(左思)와 도연명(陶淵明)을 중시했으며, 유송(劉宋) 시대에는 사령운(謝靈運)과 사조(謝脁)와 포조(鮑照)를 숭상했고 북조(北朝) 때에는 유신(庾信)을 중시했다. 복고적인 경향이 있고 시의 선택과 평가 등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유약하고 화려하게 꾸미는 것보다 자연스럽고 소박한 풍격의 작품을 선호했으며, 사회생활과 관련이 깊은 작품들을 많이 뽑았다. 작품 뒤에 시인이나 작품에 대한 평어를 달아 자기의 견해를 밝혔으며 정곡을 찌르는 내용이 많다.
5. 가치와 영향
당 이전 역대의 대표 작품을 거의 수록하고 있고 평어도 달려 있어 시학을 공부하는 자에게 좋은 자료가 된다. 심덕잠의 시학 이론이 선본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어 그의 격조설(格調說)를 연구하는 데에 대표적인 문헌 자료가 될 수 있다. 상고시대부터 수나라 때까지 시가 작품의 정화를 보여주는 선본으로 당대 이전 시가의 발전 궤도를 살필 수 있다. 현실생활을 반영한 작품도 다수 수록해 당시 사회를 연구하는 데에도 사료적 가치가 있다. 청나라 주정진(朱庭珍)의 《소원시화(筱園詩話)》 권2에서 이르기를 “오직 《고시원》 하나만 선찬이 근엄하고 적당하며 가히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평생 힘을 기울여서 해낸 것으로 매우 힘을 들인 것이라 그렇게 된 것이다.(唯《古詩源》一集, 矜慎平允, 可云公當. 蓋生平得力所自, 用心良苦.)”라고 평가했다. 《고시원》 권3 한(漢)나라 악부(樂府) 상화가사(相和歌辭) 부분에 고조선(古朝鮮) 곽리자고(霍里子高)의 아내 여옥(麗玉)이 지은 〈공후인(箜篌引)〉도 수록되어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시는 이(理)를 논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찌 이(理)를 어길 수 있겠는가? [詩非談理 亦烏可悖理也]” 〈例言〉
• “시는 당나라에 이르러 극성(極盛)을 이뤘지만 시의 성대함이 시의 근원은 아니다. [詩至有唐爲極盛 然詩之盛 非詩之源也]” 〈序〉
• “무릇 물을 구경하는 사람은 바다를 구경하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바다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바다 가까이에 구하(九河)가 있고 그 위에 홍수(洚水)가 있고 맹진(孟津)이 있으며, 더 위로는 적석산(積石山)을 거쳐 곤륜산(崑崙山)의 수원에 이른다.……당나라 이전의 시는 곤륜산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이다.[今夫觀水者 至觀海止矣 然由海而溯之 近于海爲九河 其上爲洚水 爲孟津 又其上由積石以至崑崙之源……唐以前之詩 崑崙以降之水也]” 〈序〉
(2) 색인어:심덕잠(沈德潛), 시론(詩論), 고시원(古詩源)
(3) 참고문헌
• 古詩源(沈德潛 編, 台灣商務印書館)
• 古詩源箋注(沈德潛 編, 王莼父 箋注, 華正書局)
• 古詩源(沈德潛 編, 中華書局)
• 新譯古詩源(沈德潛 編, 馮保善 注釋, 三民書局)
• 沈德潛詩學研究(陳岸峰 著, 齊魯書社)
• 沈德潛詩學思想研究(王宏林 著, 人民出版社)
• 清代詩學(李世英⋅陳水雲 著, 湖南人民出版社)
• 文學百科大辭典(胡敬署 主編, 華齡出版社)
• 中華藝術文化辭典(嚴雲受 主編, 安徽文藝出版社)
• 沈德潛格調說的範本—古詩源(周軍, 平頂山學院學報)
【김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