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난성집(欒城集)》은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소철(蘇轍)이 지은 시문별집(詩文別集)이다. 《소문정공문집(蘇文定公文集)》·《소문정공문(蘇文定公集)》·《소문정공난성집(蘇文定公欒城集)》·《소철집(蘇轍集)》이라고도 한다. 난성(欒城)은 하북(河北) 난성현(欒城縣)으로, 자신의 선조인 소미도(蘇味道)가 살았던 곳이어서 소철(蘇轍)이 옛 선조의 고향을 생각하며 자신의 호(號)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2. 저자
(1) 성명:소철(蘇轍)(1039~1112)3. 서지사항
소철의 《난성집(欒城集)》은 송대에는 여러 판본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응조집(應詔集)》 12권을 《난성집(欒城集)》에 포함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84권의 《난성집(欒城集)》과 96권의 《난성집(欒城集)》으로 나뉜다. 최초의 판본은 송각본(宋刻本)인 《소문정공문집(蘇文定公文集)》으로, 《전집(前集)》 50권, 《후집(後集)》 24권, 《삼집(三集)》 10권, 《응조집(應詔集)》 12권 모두 96권으로 이루어졌으며, 지금은 46권만 남아 있다. 이 외에 명청몽헌각본(明清梦軒刻本)인 《소문정공난성집(蘇文定公欒城集)》도 있는데, 송각본(宋刻本)인 《소문정공문집(蘇文定公文集)》과 구성은 대체로 동일하다. 또 청(清) 도광(道光) 인진(壬辰)년(1832)에 판각된 미주(眉州) 삼소사각본(三蘇祠刻本)도 있지만, 책의 권수나 문자 등은 몽헌각본(梦軒刻本)과 차이가 있다. 또 《응조집(應詔集)》 12권이 포함되지 않은 송각(宋刻) 체수본(遞修本)인 《소문정공집(蘇文定公集)》과 《난성집(欒城集)》이 있는데, 10권과 21권이 각각 남아 있다. 이 외에 명(明) 가정(嘉靖) 20년 촉왕(蜀王) 주양허(朱讓栩) 판본의 《난성집(欒城集)》이 있는데, 《전집(前集)》 50권, 《후집(後集)》 24권, 《삼집(三集)》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4. 내용
《난성집(欒城集)》은 《전집(前集)》 50권, 《후집(後集)》 24권, 《삼집(三集)》 10권으로 된 84권의 《난성집(欒城集)》과 《응조집(應詔集)》 12권이 포함된 96권의 《난성집(欒城集)》이 있다. 더러는 《전집(前集)》 50권만을 《난성집(欒城集)》이라고도 한다. 《전집(前集)》 50권은 상서좌승(尙書左丞)에 있을 때 원우(元祐)년간(1086~1094) 이전의 시문저작들을 모아 편찬한 것이고, 《후집(後集)》 24권은 소철의 나이 68세 때인 숭령(崇寧)4년(1105)에 만년에 지은 문장을 24권으로 묶어 《난성후집(欒城後集)》이라 하였다. 《삼집(三集)》 10권은 5년 뒤 정화(政和) 원년(元年) 다시 유고(遺稿)를 정리하여 부류별로 묶어 《난성제삼집(欒城第三集)》이라고 하였다. 《응조집(應詔集)》 12권은 논책(論策)과 응시(應試)할 때의 저작(著作)을 모은 것이다.5. 가치와 영향
소철(蘇轍)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한유(韓愈)·유종원(柳宗元)·구양수(歐陽修)·소식(蘇軾) 만큼 큰 호응은 받지 못하였지만, 그의 독특한 풍격의 작품들이 당송고문(唐宋古文)의 선집(選集)에 수록되어 꾸준한 관심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종(中宗) 때에 여러 차례 간행된 《당송사대가문초(唐宋四家文抄)》·《당송팔대가문초(唐宋八大家文抄)》 등을 통해 그의 작품들이 널리 읽혔으며, 조선(朝鮮)의 정조(正祖)가 손수 뽑아 만든 《당송팔자백선(唐宋八子百選)》에 실려 있는 〈노자론(老子論)〉·〈군술책(君術策)〉·〈상추밀한태위서(上樞密韓太尉書)〉·〈제주민자묘기(齊州閔子廟記)〉·〈소곡전(巢谷傳)〉 등과 같은 소철(蘇轍)의 문장이 우리나라 사대부들 사이에서 많이 애독되기도 하였다. 실제 정사에서도 연산군 때 대간(臺諫)들이 임사홍(任士洪)의 등용을 저지하면서, 소철이 신종(神宗)에게 올린 글인 〈상신종서(上神宗書)〉 중 “간악한 사람의 시초는 대간으로 꺾어도 충분하지만 커진 다음에는 간과(干戈)로 막아도 부족하다.[奸人之始,以臺諫折之而有餘,及其旣盛,以干戈禦之而不足]”고 한 말을 인용하였고, 광해군 때 홍문관에서 과거응시자의 강직한 발언을 용서해주어 언로를 넓힐 것을 청하면서, 소철이 과거에서 인종(仁宗)에게 극간(極諫)했는데도 용납된 일을 인용하기도 하였다.6. 참고사항
(1) 명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