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남당이주사(南唐二主詞)》는 남당(南唐)(937~975)의 중주(中主)인 이경(李璟)과 그의 아들 후주(後主)인 이욱(李煜)의 사(詞)를 모아 엮은 사집(詞集)이다. 이경과 이욱은 남당의 군주이자 사인이었다. 그들은 화간사(花間詞)의 부염(浮艶)하고 조탁(彫琢)적인 색채를 일소하고, 청신하면서도 자연스러움을 갖춘 깊은 서정(抒情)의 사를 창작했다. 높은 문학성을 갖춘 《남당이주사》는 사의 창작 주체가 가기(歌妓)와 악공(樂工)들에서 사대부로 바뀌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하여 사사(詞史)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2. 저자
(1) 성명:이경(李璟)(916~961), 이욱(李煜)(937~978)
(2) 자(字)·별호(別號):이경의 자는 백옥(伯玉), 어릴 때 이름은 이경통(李景通), 개명 전 이름은 이요(李瑤), 이후 이경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욱의 자는 중광(重光),어릴 때 이름은 종가(從嘉), 호는 종은(鍾隱) 또는 연봉거사(蓮峰居士)이다.
(3) 출생지역:이경은 서주(徐州)(현 중국 강소성(江蘇省) 서주(徐州)), 이욱은 금릉(金陵)(현 중국 강소성(江蘇省) 남경(南京))
(4) 주요활동과 생애
이경은 남당의 두 번째 군주로 943년에 즉위한 후 대외 정벌을 통해 초(楚)와 민(閩)을 복속시키고 남당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다. 그러나 사치가 심하고 정치적으로 부패하여 국력이 쇠락해 후주(後周)에게 강북의 땅을 빼앗기면서 수도를 금릉에서 홍주(洪州)로 옮기게 되었다. 이경은 책 읽기를 좋아하고,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다. 자주 신하인 한희재(韓熙載)와 풍연사(馮延巳) 등과 주연을 열고 사를 창작했다. 전해지는 작품으로는 진진손(陳振孫)의 《직재서록해제(直齋書錄解題)》에 실려 있는 《남당이주사》 가운데 4수의 사가 전부이다. 그의 사는 언어의 조탁을 거치지 않아 감정이 진솔하고 풍격이 청신(淸新)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욱은 남당의 세 번째 군주이자 마지막 군주이다. 송(宋)나라 태조(太祖) 개보(開寶) 8년(975), 송나라에게 패하여 변경(汴京)에 포로로 잡혀가 태평흥국(太平興國) 3년(978) 7월 7일 변경에서 죽게 되었다. 남당 후주(南唐後主) 또는 이후주(李後主)라 통칭한다. 이욱은 서예와 회화에 뛰어났으며 음률에도 정통했다. 시문에서도 높은 수준을 보였는데, 그 중 사의 예술적 성취가 가장 뛰어났다. 이욱의 사는 온정균(溫庭筠)과 위장(韋莊) 등 만당(晩唐) 오대(五代) 화간사의 전통을 계승했으며, 이경과 풍연사의 영향도 받았다. 이욱의 사는 생동감 있는 묘사와 분명한 언어로 감정표현을 하고 있다. 특히, 남당이 멸망하고 변경에 포로로 잡혀간 후 지어진 사들은 제재가 넓고 심원하여 깊은 함숙미를 담고 있어 만당오대사(晚唐五代詞)의 일가를 이루었으며 후대 사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5) 주요저작
이경(李璟)의 주요작품에는 《탄파완계사(摊破浣溪沙)》, 《망원행(望遠行)》, 《응천장(應天長)》 등이 있고, 이욱(李煜)의 주요작품에는 《완계사(浣溪沙)》, 《일곡주(一斛珠)》, 《옥루춘(玉樓春)》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서현(徐鉉)(916~991)의 기록에 따르면 이욱에 대하여 박학다예하고 성인지능이 높다고 칭했으며 그의 《문집(文集)》 30권과 《잡설(雜說)》 100편이 있다고 한다. 조경무(晁公武)의 《군재독서지(郡齋讀書志)》에 《이욱집(李煜集)》 10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송사(宋史)》 〈예문지(藝文志)〉에도 《남당이후주집(南唐李後主集)》 10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모두 전해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것에는 진진손의 《직재서록해제》에 《남당이주사》 1권이 있는데 여기에는 이경의 사 4수와 이욱의 사 34수를 수록하고 있다.
전해지는 판본으로는 명(明)나라 만력(萬曆) 48년(1620) 묵화재본(墨華齋本)이 있고, 집주본(集注本)으로는 청대(淸代) 유계증(劉繼增)이 쓴 《남당이주사전(南唐二主詞箋)》이 있다. 남당이주사의 판본은 후대에도 계속해서 편찬 되어져 기록물의 진위가 뒤섞이면서 창작물의 문장이 더욱 복잡해 졌다. 때문에 여러 관련 문헌을 수집하고, 자세히 고증하여 근래에는 당규장(唐圭璋)이 《남당이주사휘전(南唐二主詞彙箋)》, 왕중문(王仲聞)이 《남당이주사교정(南唐二主詞校訂)》, 첨안태(詹安泰)가 《이경이욱사(李璟李煜詞)》, 양민여(楊敏如)가 《남당이주사신역집평(南唐二主詞新譯輯評)》을 내놓았다. 이 중에서도 왕중문의 《남당이주사교정》 책 뒤편에는 유실된 남당이주사의 작품을 모아 기록하고, 역대 평가와 본 저서의 기록과 관련된 고증문 등이 함께 편집되어 있기 때문에 이전의 판본보다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후 남당이주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기초 자료로 사용되어지고 있다.
4. 내용
이경의 사는 비록 4수만 전해져 오고 있지만 운자(韻字)의 쓰임에 함의가 깊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경물에 기탁하여 사의 표현력을 한층 더 끌어 올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사물에 기탁함에 있어서 억지스럽거나 화려한 문구로 꾸민 티가 나지 않는 자연스러운 기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대표작 《응천장(應天長)》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을 보면, 쇠락하는 자신의 나라를 여인의 마음으로 교묘하게 표현하였는데 이 표현을 아주 자연스럽게 경물에 기탁하여 나타냈다. 때문에 이 구절이 역대 주석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이욱의 사는 내용적으로 송나라에 나라를 빼앗기고 포로가 되기 이전의 사와 그 이후의 사로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남당이 망하기 이전의 사들은 주로 궁정 생활이나 남녀지간의 사랑과 그리움을 다룬 것들이 많다. 그 풍격은 기려(綺麗)하고 유미(柔靡)하다. 아직 화간사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인물(人物)과 정경(情景)의 묘사는 화간사보다 훨씬 뛰어난 예술성을 보인다. 그리고 일부 망국 이전의 사에서는 깊은 우수(憂愁)가 서려있다. 〈청평악(清平樂) 별래춘반(別來春半)〉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욱의 후기 사는 망국의 슬픔을 담고 있는데 그 내용이 애완(哀婉)하고 처량(凄涼)하기 그지없다. 이욱 자신이 포로의 신분으로 변경(개봉(開封))에 억류되어 있었기 때문에 내면의 근심과 고뇌를 표현한 작품들이 많다. 이러한 사는 풍격이 심원(深遠)하고 높은 예술적 경계를 보이고 있다.
5. 가치와 영향
남당사의 대표 작가 이경과 이욱은 모두 군주의 신분으로 높은 정치적 지위와 문화소양을 갖고 있어서 화간파와 차별된다. 또한 남당사를 통해 사의 표현영역이 넓어졌다. 이전의 화간사가 염정(艷情)을 담아내는 작품이었다면, 남당사 중에서도 이욱의 사는 심경의 술회나 시국과 자신의 처지를 토로하였다. 또 작품 속 언어가 진솔하고 깊은 서정이 담겨있어 사를 통해 시인의 뜻을 담아낼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중국 문학에서 전통적으로 시의 영역이었는데, 이욱은 사가 새로운 시체(詩體)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언어가 자연스럽고, 정련하며 표현력이 풍부하다. 이욱은 소박하고 간략한 백묘(白描) 기법으로 그의 생활 속 느낌을 사로 적었다. 적적한 비유를 사용하여 추상적인 감정을 형상화 하여 구체적으로 적었다. 또한 참신하고 유려하면서 완곡한 예술 특징을 가지고 있다.
풍격적인 측면에서 화간사와 남당사(南唐詞)가 완곡함이 뛰어났다면, 이욱의 사는 굳셈과 부드러움이 함께 있어서 만당오대사 중에서 새로운 기풍을 만들었다.
후대에 왕국유(王國維)는 이욱의 사를 두고 의미 있는 평가를 했다. 그는 “온정균의 사는 구절구절이 뛰어나고, 위장의 사는 골격이 뛰어나며, 이욱의 사는 정신이 빼어났다.”라고 했고 또 “사는 이후주에 이르러 그 안목이 비로소 넓어졌으며, 감개가 깊어져, 악공들이 변화시켜 사대부의 사로 만들었다.”, “당과 오대의 사는 구절만 있고 완성된 한편이 없다. 남송의 유명한 사인의 사는 완성된 글만 있고, 좋은 구절이 없다. 구와 문장이 완전한 것은 오직 이후주가 송에 항복한 후 지은 작품과 구양수(歐陽脩), 소식(蘇軾), 진관(秦觀), 주방언(周邦彦), 신기질(辛棄疾)뿐이다.”라고 했다.
또한 이경과 이욱은 오대 군주로써 그들의 사 품격과 미려함, 완약함 등의 문학 특성이 당대 문사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어, 당시 고려에 보낸 외교 문서에서 그 특성이 드러났다는 추측의 연구가 있다. 이밖에도 현재까지 남당사에 대한 화자연구, 완약성과 표현 등에 관련된 많은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경과 이욱의 사를 한글 번역본으로 출간하여 많은 독자들이 남당이주사를 접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찍이 전문적으로 당송시사를 연구하는 저명한 한학가(漢學家)인 무라카미데츠미(村上哲见)가 논문 《이욱》과 《관어이후주사적시론(關於李後主詞的討論)》을 발표하여 계속해서 당오대사(唐五代詞) 연구를 해오고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연꽃 향기 사라지고, 푸른 잎은 시들어가고, 가을바람은 시름과 함께 푸른 파도 사이에서 출렁이네. 또한 아름다운 얼굴은 빛과 함께 초췌해 지니, 차마 볼 수 없구나.[菡萏香銷翠葉殘,西風愁起綠波間 還與韶光共憔悴 不堪看]” 〈탄파완계사(攤破浣溪沙)〉
• “주렴 밖에 비가 줄줄 내리니, 봄 생각 다하는구나. 비단 이불로도 새벽 추위를 견디지 못하네. 꿈속에서는 이 몸이 나그네인 줄 알지도 못하고, 잠시의 기쁨을 탐하는구나.[簾外雨潺潺 春意闌珊 羅衾不耐五更寒 夢裏不知身是客 一嚮貪歡]” 〈낭도사(浪淘沙)〉
• “봄꽃 가을 달 언제였던가, 잊지 못할 옛 일 많고 많구나. 초라한 누각에 어젯밤 또 봄바람이 불었네, 밝은 달 바라보며 고향 생각에 못 견디어라.[春花秋月何時了 往事知多少 小樓昨夜又東風 故國不堪回首月明中]” 〈우미인(虞美人)〉
• “바람 타고 향 가루 날리는 이 누구인가, 취해서 난간 두드리니 흥이 더욱 절절해지네. 돌아갈 때 촛불은 밝히지 말아야지, 밝은 밤 달빛 아래 말발굽 밟게 하네,[臨風誰更飄香屑 醉拍闌干情味切 歸時休放燭花紅 待踏馬蹄清夜月]” 〈옥루춘(玉樓春)〉
(2) 색인어:남당이주사(南唐二主詞), 이경(李璟), 이욱(李煜), 남당사인(南唐詞人), 남당사파(南唐詞派)
(3) 참고문헌
• 南唐二主詞校訂(著 王仲聞, 中華書局)
• 中國文學史(游國恩, 人民文學出版社)
• 南唐二主詞賞析(陳慶元, 雅典娜書房)
• 李清照李後主詞欣賞(莊惠宜, 文國書局)
• 〈李煜詞 硏究〉(이동향, 韓國中國語文學會)
• 〈李煜 豪放詞 硏究〉(하현정, 이화여자대학교)
【정태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