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중국 진(晉)나라 때의 시인이자 은사(隱士)인 도잠(陶潛)의 시문집이다. 원래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이 편찬한 것으로 총 8권이며, 시(詩)와 산문과 부(賦) 등을 포함하여 총 142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는 청신한 풍격과 담담한 정취를 품고 있으며, 시의 제재를 농촌의 일상생활까지 확대하여 자연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활달한 심경을 표현함으로써 전원문학(田園文學)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창시하였다.
2. 저자
(1)성명:도잠(陶潛)(365~427)
(2)자(字)·별호(別號):자는 연명(淵明),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
(3)출생지역:강주(江州) 심양군(尋陽郡) 시상현(柴桑縣)(현 강서성(江西省) 구강(九江) 성자현(星子縣))
(4)주요활동 및 생애
도잠은 29세 때 강주(江洲)의 좨주(祭酒)로 취임한 것이 첫 번째 관료생활이었으나 곧 사임했다. 35세 때 당시 진(晉)나라 최대 북부군단(北府軍團)의 진군장군(鎭軍將軍)인 유뢰지(劉牢之)의 참모가 되었다가 역시 금방 사직하였고, 36세 무렵 형주자사(荊州刺史) 환현(桓玄)의 막료로 취임했다가 모친상을 당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41세(405년) 때 팽택현령(彭澤縣令)이 되었는데, 순찰사가 순찰을 올 것이니 의관을 갖추고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관료의 말을 듣고 그날로 사임한 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여 년간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고향에 은거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갑작스런 화재로 생가가 타버리자 그는 일가를 거느리고 고향을 떠나 심양(尋陽)의 남쪽 근교로 이사하여 만년을 보내며, 전원생활에 대한 정회를 아름다운 시로 읊어내었다.
(5)주요저작:미상(未詳)
3. 서지사항
원래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이 편찬한 것으로 총 8권이었는데, 북제(北齊)의 양휴(陽休)가 〈오효전(五孝傳)〉과 〈사팔목(四八目)〉을 더하여 10권이 되었다. 〈사팔목〉은 〈성현군보록(聖賢群輔錄)〉을 말한다. 그런데 양휴가 추가한 〈오효전〉과 〈사팔목〉은 후인의 위작임이 분명하므로, 《사고전서총목(四庫全書總目)》에서는 8권이라고 확정하였다.
총 8권 중 현재 남아 있는 시는 사언시(四言詩) 9수, 오언시(五言詩) 115수와 산문 11편이다. 이 중 저작연대가 명확하거나 대강 알 수 있는 것은 80수뿐이다. 그 밖의 것은 중년기 이후, 즉 그가 은둔생활을 보낸 약 20여 년간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도연명집》은 십 수종의 판본이 전한다. 그 중 중요한 판본으로는 송나라 증집(曾集)이 간행한 양책본(兩冊本), 명나라 초횡(焦竑)이 번각(飜刻)한 8권본, 광서(光緖) 연간에 장씨(章氏)가 급고각(汲古閣)에서 간행한 판본 등이다.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도연명집》은 모두 10종이 전한다. 《수계교본도연명시집(須溪校本陶淵明詩集))》(1483년 간행), 《전주정절선생집(箋註靖節先生集)》 2종, 《정간보주동파화도시화(精刊補注東坡和陶詩話)》와 《도연명집》 8권본, 9권본 2권본, 《도정절집(陶靖節集)》 3종 등이다.
4. 내용
권1은 〈정운(停雲)〉·〈시운(時運)〉을 비롯한 사언시(四言詩)가 실려 있다. 권2~권4까지는 〈형증영(形贈影)〉·〈영답신(影答神)〉·〈의고(擬古)〉·〈잡시(雜詩)〉 등 오언시(五言詩)가 실려 있다. 권5에는 〈도화원기(桃花源記)〉와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등이 실려 있고‚ 권6은 〈감사불우부(感士不遇賦)〉·〈한정부(閒情賦)〉가 실려 있다. 권7은 〈선상화찬(扇上畫贊)〉과 〈여자엄등소(與子儼等疏)〉가 있다. 권8은 〈제정씨매문(祭程氏妹文)〉·〈제종제경원문(祭從弟敬遠文)〉·〈자제문(自祭文)〉이 실려 있다. 이 작품들 중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과 〈자제문(自祭文)〉은 자전문학사(自傳文學史)에서 중시하는 작품이다. 《도연명집》에 수록된 시의 배열은 시체별(詩體別)로 이루어져 있다.
5. 가치 및 영향
도잠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손수 논밭을 일구고 가꾸면서 전원생활의 정취를 읊은 작품들은 역대 중국의 어느 시인의 작품보다도 더 많이 애송(愛誦)되고 그만큼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화도시(和陶詩)’라는 특별한 시가 창작되었는데, 도잠의 시에 화운(和韻)하는 시 형식으로 소식(蘇軾)에 의해 가장 먼저 시도된 이래 한·중·일의 많은 작가들이 이 형식을 빌려 시를 지었다. 한편 〈음주(飮酒)〉 시에서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캐다가 느긋하게 남산을 바라보네.[彩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고 노래한 이후 국화는 은자(隱者)를 상징하는 꽃이 되기까지 하였다. 또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세 갈래 오솔길은 황폐해져 가는데,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 남아있네.[三徑就荒 松竹猶存]”라고 읊은 이래 동양 회화(繪畫)에서 소나무와 함께 서 있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도잠을 상징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화도시’를 1수 이상 지은 문인들은 약 67인이며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화답한 시를 창작한 문인까지 합산하면 약 134인 정도가 된다고 한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50세 되던 해 은퇴를 결심하고 도연명의 시에 화운(和韻)한 〈음주(飮酒)〉를 지었는데, 이 점은 우리 문인들의 도잠에 대한 평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6. 참고사항
(1)명언
• “마음이 멀리 있으면 사람 많은 곳에 있어도 그곳은 산중이나 마찬가지이네.[心遠地自偏]” 〈음주(飮酒) 5수(首)〉
• “새들도 깃들 곳이 있어서 좋겠지만, 나도 내 오두막을 사랑한다오.[衆鳥欣有托 吾亦愛吾廬]” 〈독산해경(讀山海經)〉
• “어이해 가고 머묾을 마음대로 하지 않고, 어찌하여 황급히 어디를 가려고 하는가.[曷不委心任去留 胡爲乎遑遑欲何之]” 〈귀거래사(歸去來辭)〉
(2)색인어:도연명집(陶淵明集), 도잠(陶潛), 귀거래사(歸去來辭), 음주(飮酒), 전원문학(田園文學), 시상현(柴桑縣), 국화(菊花)
(3)참고문헌
• 도연명전집(陶淵明全集)(이성호 옮김, 문자향)
• 陶淵明集全譯(郭維森, 包景誠 譯注, 貴州人民出版社)
• 〈도연명집(陶淵明集) 해제〉(설순남,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도연명(陶淵明)에 대한 존모(尊幕) ‘화도시(和陶詩)’〉(이영숙, 《선비문화》24)
• 〈도연명시 연구〉(김창환,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 〈한국본 도연명집의 서지적 연구〉(황선주, 《과학과 문화》9, 2012)
【이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