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도화선(桃花扇)》은 중국 청대(淸代) 문인 공상임(孔尙任)이 1699년에 완성한 총 40척(齣)의 장편 전기(傳奇) 극본이다. 문인 후방역(侯方域)과 명기(名妓) 이향군(李香君)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명조(明朝)의 멸망과 남명(南明) 홍광조(弘光朝)의 흥망을 결합하여 그려낸 역사극으로, 청대의 대표적인 희곡 작품의 하나로 꼽힌다.2. 저자
(1) 성명:공상임(孔尙任)(1648~1718)3. 서지사항
‘도화선’이란 제목은 남주인공 후방역이 여주인공 이향군에게 사랑의 증표로 준 시선(詩扇)이 작품 전체를 통해 중요한 상징물이 되고 있는 데 기인하며, 전기 갈래의 극본인 까닭에 일명 《도화선전기(桃花扇傳奇)》라고도 한다. 총 40척이나, 상본(上本)과 하본(下本)의 첫머리와 끝에 일종의 프롤로그와 마무리 대목으로서 〈시일척(試一齣) 선성(先聲)〉, 〈윤이십척(閠二十齣) 한화(閑話)〉, 〈가이십일척(加二十一齣) 고음(孤吟)〉, 〈속사십척(續四十齣) 여운(餘韻)〉을 덧붙이고 있어 실제로는 44척인 셈이다. 강희 무자(戊子) 개안당각본(介安堂刻本)(1708)이 가장 오래된 판본이다. 공상임의 서재 이름을 따서 명명한 이 각본은 서문과 제사(題辭), 범례, 평어 등을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으며 《도화선》의 원각본(原刻本)으로 공인되고 있다. 《고본희곡총간・5집 古本戲曲叢刊五集》(鄭振鐸 主編, 商務印書館, 1957) 수록 영인본 및 《속수사고전서(續修四庫全書)》(上海古籍出版社, 2002) 수록 영인본 모두 이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청대에는 이밖에도 많은 판본들이 있었지만, 후대 판본 가운데 손꼽을 만한 것으로는 중국 근대의 저명한 희곡 연구가인 유세형(劉世珩)(1875~1962)이 간행한 난홍실각본(暖紅室刻本)을 들 수 있다. 난홍실각본은 류세형이 기존 선본들을 두루 참고하여 정밀하게 교감하고 10여 폭의 삽화와 평어 등을 더해 간행한 매우 정교한 판본으로 평가된다. 1914년 초각본(初刻本)과 1916년 중각본(重刻本)이 있다. 현대의 교주본으로는 왕계사(王季思)・소환중(蘇寰中)・양덕평(楊德平)이 공동으로 교주하여 1959년 인민문학출판사(人民文學出版社)에서 출판한 《도화선(桃花扇)》이 가장 대표적이다. 개안당각본, 난홍실각본 등 주요 선본을 토대로 교감하고 표점과 함께 풍부한 주석을 달아 널리 읽히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주본으로 자리 잡았다.4. 내용
작품은 명말 진보적 지식인 집단인 복사(復社) 문인 후방역과 남경(南京) 진회(秦淮)의 명기(名妓) 이향군의 사랑 이야기를 줄거리로 하여 명의 멸망과 남명 홍광조의 흥망 과정을 그려낸 역사극이다. 환관(宦官) 위충현(魏忠賢)을 위시로 한 명말 부패세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완대성(阮大鋮), 마사영(馬士英) 등이 복왕(復王)을 내세워 남명 정권을 수립하면서, 명말 개혁세력인 동림당(東林黨)을 계승한 복사 문인 및 그들이 옹호하는 명의 충신 사가법(史可法) 등과 대립, 투쟁하는 가운데 남명 정권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이 과정에서 후방역과 이향군의 사랑은 완대성 등의 방해와 박해로 기구한 역정을 겪게 되고, 훗날 두 사람은 재회하기는 하지만 결국 인연을 끊고 각자 도가(道家)에 귀의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5. 가치와 영향
작품이 탈고된 후 왕공 및 사대부들이 다투어 베껴 읽고 강희제도 소문을 듣고 구해 읽었으며, 한때 무대 공연으로서도 큰 인기를 끌을 만큼 당시 문화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대의 역사적 사실을 명작 희곡으로 탄생시킨 《도화선》의 성공은 명대 후기의 《명봉기(鳴鳳記)》, 《청충보(清忠譜)》 등 시사성이 강한 기존 역사극의 기반과 영향에 힘입은 바 큰 것으로 평가되나, 예술적인 면에서 이전의 성과를 크게 뛰어넘어 중국의 대표적인 희곡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도화선》은 지금은 실전된 고채(顧彩)(1650~1718)의 전기(傳奇) 《남도화선(南桃花扇)》과 같은 모방작을 낳은 것을 비롯해서 그 직간접적인 영향 하에 동용(董榕)(1711~1760)의 《지감기(芝龕記)》, 구힐(瞿頡)(1743~1818?)의 《학귀래(鶴歸來)》, 황섭청(黃燮淸)(1805~1864)의 《제녀화(帝女花)》 등과 같은 역사극 창작을 이끈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18세기 중반(약1740년) 《도화선》과 같은 제목의 개작 중편소설이 출현했는가 하면, 이후 청말(淸末)에 이르러서도 역시 기녀를 주인공으로 삼은 위수인(魏秀仁)(1819~1874)의 《화월흔(花月痕)》, 소수의 인물을 중심으로 동시대의 문제를 폭넓게 다룬 증박(曾朴)(1872~1935)의 《얼해화(孼海花)》, 임서(林紓)(1852~1924)의 《검성록(劍腥錄)》 등 소설 작품들에까지 직간접적인 영향을 낳은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도화선》 자체의 인기로 인해 이후 다양한 극종이나 소설로 다시 각색되었는가 하면, 현대에 와서도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하였다. 희곡의 전통이 미약했던 국내에서는 큰 영향을 낳았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18세기 중반 이후 전래되어 근대에 이르기까지 제한적으로나마 지속적으로 향유되었던 흔적이 확인된다. 일본의 경우 최초의 전래 시기는 알기 어려우나 역시 근대 이전에 전래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1920년대에 이미 번역본이 3종이나 출현한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로써 《도화선》이 근현대시기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적 영향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다.6. 참고사항
(1) 명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