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두아원(竇娥寃)〉은 원대(元代) 희곡 작가 관한경(關漢卿)의 불후의 명작이다. 원대에는 희곡이 성행하여 많은 작가들이 나와 훌륭한 희곡 작품을 많이 창작하였다. 〈두아원〉은 원대의 희곡 작품 중에서는 물론 현존하는 관한경의 18편의 작품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대표작이다. 〈두아원〉은 중국문학사에서 “4대 희곡”, “10대 대 비극”의 반열에 들고, 세계 10대 비극의 하나로 지칭되고 있다.
2. 저자
(1) 성명 : 본명 미상. 호를 사용하여 관한경(關漢卿)(1234년 이전~약 1300년)이라 호칭함
(2) 자(字)·별호(別號):자 漢卿. 호 이재(已齋) 또는 이재수(已斋叟)
(3) 출생지역 : 해주(解州)(현재의 산서성(山西省) 운성(运城)) 또는 대도(大都)(현재의 북경(北京)) 설
(4) 주요활동과 생애
관한경은 원대의 희곡 작가로 대도(大都)(現 북경(北京)) 사람이다. 원대의 희곡 작가들이 모두 그렇듯이 관한경도 자세한 기록이 없다. 종사성(鐘嗣成)이 《녹귀부(錄鬼簿)》에서 “선배가운데 이미 죽은 사람으로 유명한 재인(才人)[前輩已死名公才人]”에 포함시킨 것으로 미루어보면 1200~1300년에 살았던 인물인 듯 하다. 그는 마치원(馬致遠), 정광조(鄭光祖), 백박(白樸)과 더불어 “원곡사대가(元曲四大家)”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희곡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여러 문헌 기재를 종합하면 그는 잡극(雜劇)(원대 희곡의 명칭) 60여 편을 창작하였고 지금까지 18편이 전해지고 있다. 그는 또 당시의 시가문학인 산곡(散曲)에도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걸출한 희곡 작품을 창작하였을 뿐 아니라 직접 연출을 맡기도 하였고 때로는 배우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현실사회를 핍진(逼眞)하게 반영하였고, 무대효과와 관중의 반응을 중시하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3. 서지사항
〈두아원〉 극본은 한대(漢代)의 “동해효부(東海孝婦)”의 이야기를 근거로 창작되었다. 《한서(漢書)》 〈우정국(于定國傳)〉에 최초로 보이는 이 이야기는 ‘원옥(冤獄) 사건’, 그로 인한 ‘3년간의 대가뭄’, ‘원옥의 신원(伸冤)’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민간에 유전되었다. 간보(干寶)의 《수신기(搜神記)》에도 이 이야기가 기록이 있다. 〈두아원〉은 전대(前代)의 기록을 빌려 암울했던 원대 사회의 여러 문제를 반영하였다. 〈두아원〉의 판본으로는 《고금명가잡극(古今名家雜劇)》, 《원곡선(元曲選)》, 《뇌강집(酹江集)》, 《원인잡극전집(元人雜劇全集)》본 등이 있다.
4. 내용
〈두아원〉은 본제목인 《감천동지두아원(感天動地竇娥寃)》에서 명시하였듯이 “천지를 감동시키는 두아의 원한”이 서사의 축이 된다.
두천장(竇天章)이라는 가난한 유생이 채(蔡) 노파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해 어린 딸인 두아(竇娥)를 노파에게 민며느리로 주고 노자를 얻어 과거에 응시하러 갔다. 두아는 18살이 되어 노파의 아들과 혼례를 올렸지만 남편이 죽고 시어머니와 수절하였다. 그 후 건달 장려아(張驢兒) 부자가 두 과부를 각각 차지하려고 협박을 하였다. 장려아는 두아가 혼인을 완강히 거부하자 강제로 차지하기 위하여 노파를 독살할 계획을 세웠는데 도리어 자기의 아버지가 죽는다. 살인사건을 맡은 부패하고 무능한 판관은 두아를 사형에 처하였다. 사형에 앞서 두아는 자기의 피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깃발 위의 하얀 천을 적시고, 삼복(三伏)이지만 서설(瑞雪)이 시체를 덮어주고, 초주(楚州)에 3년간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세 가지 맹서를 하였다. 3년 후 과거에 급제한 두천장이 초주 관청을 감찰할 때 두아의 원혼이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두천장은 원옥 사건을 재심하여 두아의 원한을 풀어주었다.
〈두아원〉은 리얼리즘과 낭만주의 수법을 고도로 결합시켜 전례 없이 암울하고 잔혹하고 혼란했던 원대사회를 핍진하게 반영하였다. 고리대금업의 병폐, 돌팔이 의원의 횡행, 건달의 횡포와 만행. 관리의 무능과 부패 등이 가세하여 도덕적으로 선량한 두아를 사형으로 몰아넣어 원옥이 조성되고 다시 정의의 판관에 의해 신원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사악한 세력의 징치(懲治)와 탐관오리의 척결 과정을 통하여 과거제도가 폐지되어 사회의 하층에 처했던 당시 지식인들의 분노, 가치추구, 책임감이 폭넓게 반영되었다.
5. 가치와 영향
〈두아원〉은 후세의 문학과 연극에 끼친 영향이 매우 컸다. 우선 명대의 섭헌조(葉憲祖)가 〈두아원〉을 〈금쇄기(金鎖記)〉로 개편하였다. 그 후 곤곡(崑曲)에서 〈두아원〉의 사형집행 과정을 다룬 “형장”의 연출이 성행하였다. 경극(京劇)에 와서도 “형장”의 연출은 계속되었는데, 〈유월설(六月雪)〉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또 〈두아원〉은 중국 희곡 작품 중 최초로 서구에 번역 소개된 작품의 하나이며 영어판과 불어판 등이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예로부터 관아의 문은 남쪽으로 열려있지만, 그 안에는 억울하지 않은 일이 하나도 없다.[衙門從古向南開 就中無個不寃哉]” <제4절 수강남(收江南)>
‧ “관리들이 법을 바르게 집행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백성들은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다.[這都是官吏每無心正法 使百姓有口難言]” 〈제3절 일살(一煞)〉
‧ “천지신명이여,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해야 할 것인데, 어찌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지 못하십니까?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단명한데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도리어 부귀하며 수를 다 누립니다.[天地也 只合把淸濁分辨 可怎生糊突了盗跖颜渊 爲善的受貧窮更命短 造惡的享富貴又壽延]” 〈제3절 곤수구(滚绣球)〉
(2) 색인어:관한경(關漢卿), 두아원(竇娥寃), 감천동지두아원(感天動地竇娥寃), 잡극(雜劇), 원곡사대가(元曲四大家)
(3) 참고문헌
‧ 元雜劇硏究 (商韜, 齊魯書社)
‧ 中國戱曲曲藝辭典(上海藝術硏究所 編, 上海辭書出版社)
‧ 三百種古典名劇欣賞(徐培均, 上海辭書出版社)
‧ 明雜劇史(徐子方, 中華書局)
‧ 元曲選校主(王學奇, 河北敎育出版社)
‧ 中國戱曲史(張庚‧郭漢城, 中國戱曲出版社)
‧ 元曲選(臧懋循 編, 中華書局)
‧ 元雜劇論(奚海, 河北敎育出版社)
‧ 文化紊流中的文學與文士(許明, 河南人民出版社)
【김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