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총 21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문산집(文山集)은 남송(南宋) 시대 문인인 문천상(文天祥)의 문장과 시 등이 수록되어 있는 개인 문집이다. 문천상은 남송 말기 원(元)과의 대치 속에서 항전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인물로, 그의 작품들에는 이렇듯 왕조에 대한 충성과 굽히지 않는 그의 절개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2. 저자
(1) 성명 : 문천상(文天祥)(1236~1282)
(2) 자(字)·별호(別號) : 자는 송서(宋瑞)와 이선(履善)이며, 호는 문산(文山)이다.
(3) 출생지역 : 길주(吉州) 여릉(廬陵)(지금의 강서성(江西省) 길수현(吉水縣))
(4) 주요활동과 생애
문천상은 남송 말엽에 활동했던 문인으로, 원나라에 끝까지 항전한 육수부(陸秀夫), 장세걸(張世杰)과 함께 ‘송말삼걸(宋末三杰)’로 칭해지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보우(寶祐) 원년(元年)(1256년) 진사과에 수석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여러 벼슬을 역임하였으나, 당시 권신이었던 가사도(賈似道)와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벼슬을 그만두었다. 덕우(德祐) 원년(元年)(1275년) 원나라의 군대가 남송의 수도 임안(臨安)에 가까이 오자 근왕병(勤王兵)을 모아 항전하였다. 이후 원나라와의 강화를 위해 적진에 들어갔다가 원나라 군대의 총수(總帥) 백안(伯顔)에 의해 구금되었는데, 북송(北送)되던 중 탈출하였다. 덕우 2년(1276년) 탈출에 성공한 문천상은 복주(福州)에서 육수부, 장세걸 등과 함께 도종(度宗)의 서자였던 조하(趙昰)를 익왕(益王)으로 옹립하고는 항전을 이어나갔으나, 상흥(祥興) 원년(1278년) 12월 오파령(五坡岭)에서 결국 원나라 군사들에게 붙잡혀 대도(大都)(지금의 북경(北京))로 압송되었다. 3년의 수감 생활동안 원 왕조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절개를 지키다가 지원(至元) 19년(1282년) 결국 사형 집행으로 생을 마감하였다.
(5) 주요저작 : 문천상이 남긴 많은 작품들이 후대에 그의 문집인 《문산집》으로 편찬되었다.
3. 서지사항
원나라 때에 문천상의 고향 사람이 그의 유작을 모아 《문산집(文山集)》(전집(前集) 30권, 후집(後集) 7권)을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명(明)나라 초기에 이미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현존하는 최초의 문천상 문집은 명나라 가정(嘉靖) 31년(1552) 언무경(鄢懋卿) 각본(刻本)의 《문산선생전집(文山先生全集)》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명나라 만력(萬曆) 3년(1575)의 호응고(胡應皐)본의 《문산선생전집(文山先生全集)》 및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되어 있는 21권 본이 전해진다. 《사부총간(四部叢刊)》에는 집두시(集杜詩)와 부록을 합하여 모두 2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4. 내용
사고전서본 《문산집(文山集)》은 모두 21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권1부터 권2는 시, 권3부터 권 17까지는 서(書), 표(表), 소(疏), 제발(題跋) 등 다양한 문장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권18에서 권20까지는 《지남록(指南錄)》이, 권21에는 《기년록(紀年錄)》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권18부터 권20에 수록되어 있는 《지남록》은 문천상이 원나라 군대에 억류되었다가 압송되는 과정에서 탈출해 송 왕조의 멸망을 안타까워하며 지은 시들을 모아 만든 작품집이다. “지남(指南)”이라는 편명이 그의 〈양자강(揚子江)〉이라는 시 가운데 “신의 마음은 한 조각 나침반과 같아서, 남쪽을 가리키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으리.〔(臣心一片磁針石) (不指南方不肯休)〕”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지남록》에는 나라가 멸망해가는 상황 속에서 문천상이 경험한 고난과 비애가 묘사되어 있다.
이 밖에도 《문산집》에는 〈과영정양(過伶仃洋)〉, 〈정기가(正氣歌)〉, 〈금릉역(金陵驛)〉 등 송나라 멸망에 즈음하여 당시의 혼란한 시대적 상황과 그 속에서 방황하던 문천상의 심사가 표현되어 있는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왕조의 어그러짐 속에 고통 받던 한 문인의 비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 가치와 영향
《문산집》에는 〈어시책일도(御試策一道)〉와 같은 철학적 논저를 포함한 다양한 문체의 글들이 수록되어 있어 문천상의 세계관과 시대 인식 등을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240여수의 시가(詩歌) 작품들은 호방하면서도 농후한 감정 표현을 통해 송 왕조 부흥에 대한 희망과 이를 실현하지 못하는 것에 좌절하는 한 문인(文人)의 감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한다.
조선의 선조(宣祖)는 이원익(李元翼)의 청을 받아 《문산집》의 간행을 명하면서, 문천상을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이후 신하의 모범이 될 충신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문천상은 특히 조선 문인들에게 원 왕조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절개를 지킨 충절지사의 대표로 인식되었던 바, 조선에서의 《문산집》 간행은 당시 강조되었던 유교적 가치 가운데 ‘충(忠)’ 관념의 강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자고로 인간으로 태어나 누가 죽지 않겠는가? 충정(忠情)만을 남기어 청사(靑史)를 비추리라.[人生自古誰無死 留取丹心照汗靑]” 〈권19 과영정양(過伶仃洋)〉
• “들판 가득한 갈대꽃은 나와 함께 늙어 가는데, 고향 집 제비는 뉘 곁으로 날아가리? 지금부터 강남을 떠나지만, 피 토하는 두견새 되어 돌아오리라.[滿地蘆花和我老 舊家燕子傍誰飛 從今却別江南路 化作啼鵑帶血歸]” 〈권19 금릉역(金陵驛)〉
• “국운이 태평할 때에는, 조화로운 기운 밝은 조정에 펼치지만, 곤궁할 때에는 절개를 보여, 하나하나 역사에 드리워야 하리.[皇路當清夷 含和吐明庭 時窮節乃見 一一垂丹青]” 〈권20 정기가(正氣歌)〉
(2) 색인어 : 문천상(文天祥), 문산집(文山集), 남송(南宋), 원(元), 지남록(指南錄). 정기가(正氣歌), 양자강(揚子江), 과영정양(過伶仃洋)
(3) 참고문헌
• 文天祥全集(文天祥, 中國書店)
• 文天祥硏究資料集(劉文源 編, 中國社會科學出版社)
• 文天祥詩集校箋(劉文源 校箋, 中華書局)
• 文天祥評傳(修曉波, 南京大學出版社)
• 文天祥年谱(丁功誼·李仁生, 江西人民出版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