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중국 남송(南宋)의 사방득(謝枋得)이 편찬한 산문(散文) 선집(選集)이다. 초학자가 모범으로 삼을 만한 당송대(唐宋代)의 문장과 삼국시대(三國時代)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덧붙여 총 69편을 뽑고, 각 문장에 비평(批評)과 주석(註釋)을 달았다. 특히 비평은 중국 문학비평사(文學批評史)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총 7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립 연대는 미상이며, 송나라가 망한 뒤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명대(元明代) 이후에 인기가 높아져 왕양명(王陽明)이 서문을 쓰기도 하였다. 조선에서도 문장의 모범서로 애독되어 몇 차례 간행되었다.
2. 편자
(1)성명:사방득(謝枋得)(1226~1289)
(2)자(字)·별호(別號):자는 군직(君直)‚ 호는 첩산(疊山), 의재(依齋), 시호는 문절(文節)
(3)출생지역:강서성(江西省) 신주(信州) 익양현(弋陽縣)
(4)주요활동과 생애
사방득은 남송(南宋) 말기의 명유(名儒)로, 남송이 멸망한 뒤 원(元)나라에 굴복하지 않고 절개를 지키다가 순절하였다. 백부(伯父) 사정명(謝征明)은 원나라에 대항하다가 전사하였다. 부친 사응수(謝應琇)는 심주첨판(潯州僉判)을 지낼 때 권귀(權貴)인 동괴(董槐)의 미움을 받아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사방득은 1256년 문천상(文天祥)과 함께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는데, 직언(直言)을 좋아하여 가사도(賈似道)에게 미움을 받아 쫓겨났다가 1267년에 사면되었다. 1275년에 신주(信州)를 맡았을 때, 원나라 군대가 침공하여 성이 함락을 당하자, 당석산(唐石山)에 은둔하여 제자를 가르치며 살았다. 송나라가 망한 뒤, 원나라 조정에서 누차 출사를 권했으나 굳게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원나라 지방관이 억지로 붙잡아 북경(北京)에 억류해두었으나, 굴복하지 않고 단식하다가 죽었다. 문인들이 문절(文節)이라는 사시(私諡)를 올렸다. 그의 작품에는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내용이 많아 애국시인(愛國詩人)으로 칭찬받는다. 《송사(宋史)》에 열전이 있다.
(5)주요저작:문집으로 원래 《첩산집(疊山集)》 64권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사라지고 현재 5권만 남아 있다. 또 《천가시(千家詩)》·《시전주소(詩傳注疏)》·《예경강의(禮經講義)》 등이 전한다.
3. 서지사항
‘궤범(軌範)’은 어떤 일을 행하거나 판단하는데 모범이 되는 규범이나 법도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문장궤범(文章軌範)》은 ‘문장의 규범이나 모범’이라는 의미이다.
총 7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권의 명칭은 각각 후(侯)·왕(王)·장(將)·상(相)·유(有)·종(種)·호(乎)로 구분되어 있다. 이는 진(秦)나라 말에 농민반란을 일으킨 진섭(陳涉)과 오광(吳廣)이 민중을 흥기시키며 “왕과 제후와 장군과 재상이 되는 사람이 어찌 씨를 따로 타고 나겠는가.[王侯將相 寧有種乎]”라고 했던 말에서 착안한 것이다. 각 권의 첫머리에는 수록된 문장에 대한 전반적인 평어(評語)를 붙였고, 한 문장이 끝나면 그 말미에 다시 평어를 붙이기도 하였는데, 송나라 여조겸(呂祖謙)의 《고문관건(古文關鍵)》‚ 누방(樓昉)의 《숭고문결(崇古文訣)》과 함께 비평을 붙인 문장 선집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또 각 문장의 배열순서는 벼슬하기 전의 마음가짐, 벼슬살이에서의 행동 지침, 벼슬에서 물러난 뒤의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 등으로 구분하여 내용에 따라 배열하였다.
《문장궤범》의 판본은 원나라 때 간행된 원간본(元刊本)을 비롯하여 명나라 때 간행된 명대계광각본(明戴計光刻本), 명왕수인서왕무명교정본(明王守仁序王懋明校正本) 등 8종이 있고, 청나라 때에도 13종의 판본이 전한다. 조선에서는 1475년 경상북도 영천(榮川)에서 간행된 본이 있고 간행년도 미상의 목판본도 존재한다. 일본에서도 총 13회에 걸쳐 간행되었다. 각 판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謝枋得 《文章軌範》 版本略述〉(張智華, 安徽師範大學學報, 2000)를 참조.
4. 내용
총 7권 중 권1과 권2에는 ‘방담문(放膽文)’, 권3~권7까지는 ‘소심문(小心文)’이라는 부제(副題)가 있다. 이는 사방득이 권1 〈소서(小序)〉에서 밝힌 것처럼 “무릇 문장을 배울 때 처음에는 대담해야 하고 마지막에는 조심해야 한다.[凡學文 初要膽大 終要心小]”라는 뜻으로 붙인 것이다. 수록된 문장의 작가와 편수를 정리하면, 당나라 한유(韓愈) 31편‚ 유종원(柳宗元) 5편‚ 원결(元結) 1편, 두목(杜牧) 1편, 송나라의 소식(蘇軾) 13편‚ 구양수(歐陽脩) 5편‚ 소순(蘇洵) 4편‚ 범중엄(范仲淹) 2편‚ 호전(胡銓)·이구(李覯)·이격비(李格非)·신기질(辛棄疾)·왕안석(王安石)이 각 1편씩이다. 또 제갈량(諸葛亮)의 〈전출사표(前出師表)〉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도 실려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일지라도 내용에 따라 ‘방담(放膽)’과 ‘소심(小心)’으로 구분하여 그 성격에 따라 각 권에 분산 수록하였다.
5. 가치와 영향
《문장궤범》은 송나라 진덕수(眞德秀)의 《문장정종(文章正宗)》·《고문진보(古文眞寶)》와 함께 널리 읽힌 문장 선집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 시기 산문 연구 및 문장 선집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는 명(明)나라 이정기(李廷機)가 평훈(評訓)을 붙이고, 왕양명(王陽明)이 서문을 쓴 판본들이 유행하며, 추수익(鄒守益)은 이 책의 속편(續篇) 7권을 편찬하기도 하였다. 또 일본에서도 널리 읽혀 여러 가지 복각본(覆刻本)과 훈해본(訓解本)들이 나와 있다. 《문장궤범(文章軌範)》이 우리나라에 수입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조선 초의 문인 손소(孫昭)(1433~1784)가 발문을 붙인 《문장궤범》이 1475년 경상북도 영천(榮川)에서 간행된 것으로 보아 조선 초에 이미 들어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첩산선생비점문장궤범(疊山先生批點文章軌範)》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차례 간행되기도 하였는데,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독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명언
• “햇볕이 뉘엿뉘엿 지려할 제 외로운 소나무 어루만지며 서성이누나.[景翳翳以將入 撫孤松而盤還]” 도연명(陶淵明) 〈귀거래사(歸去來辭)〉
• “아! 선비는 곤궁해져야 그 절의를 볼 수 있다.[嗚呼 士窮 乃見節義]” 한유(韓愈)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
• “《춘추》의 법은 악행을 한 자로 하여금 요행으로 벗어날 수 있게 하지 않았다.[春秋之法 使爲惡者 不得幸免]” 구양수(歐陽脩) 〈춘추론(春秋論)〉
(2)색인어:문장궤범(文章軌範), 사방득(謝枋得), 방담문(放膽文), 소심문(小心文), 비평(批評), 후왕장상유종호(侯王將相有種乎), 첩산집(疊山集), 의재(依齋).
(3)참고문헌
• 〈孫昭의 〈文章軌範跋〉과 古文復古〉(손오규, 《韓國詩歌硏究》 24)
• 〈첩산선생비점문장궤범(疊山先生批點文章軌範) 어학해제〉(김영진,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文章軌範 研究〉(鄧婉瑩, 復旦大學 碩士學位論文)
• 〈謝枋得之散文及《文章軌範》 研究〉(李慧芳, 國立中央大學 碩士學位論文)
• 〈謝枋得 《文章軌範》 綜合研究〉(叶蕾, 南京大學 碩士學位論文)
• 〈謝枋得 《文章軌範》 版本略述〉(張智華, 安徽師範大學學報)
【이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