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진덕수(眞德秀)는 남송(南宋) 후기 대표적인 정주이학자(程朱理學者)이다. 《문장정종(文章正宗)》은 2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송 영종(寧宗)이 죽고 이종(理宗)이 즉위하는 시점인 대략 1224년에 완성되었다고 추정된다. 남송 후기 정주이학 사상의 문학관이 투영된 대표적인 산문선집이다. 성리학의 본체와 작용의 개념을 문체와 내용의 관계에 적용시켜 문장을 분석한다.
2. 저자
(1) 성명:진덕수(眞德秀)(1178~1235)
(2) 자(字)·별호(別號):처음 자는 실부(實夫), 뒤에 경원(景元), 희원(希元)으로 바꾼다. 호는 서산(西山)이다.
(3) 출생지역:복건(福建) 포성(浦城)(지금 복건성 포성현(浦城縣) 선양진(仙陽鎮))
(4) 주요활동과 생애
진덕수는 송 효종(孝宗) 순희(淳熙) 5년(1178)에 태어나 송 이종(理宗) 단평(端平) 2년(1235)까지 살았던 남송의 대표적 정주이학자이다. 경원 5년(1199)에 진사에 합격하고 관직생활을 시작하여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생을 마칠 때까지 30년 가까이 관직생활을 하였으며 강직하다는 평을 들었으며 시국과 정치 환경에 대한 주소문(奏疏文)을 많이 남겼다. 또 후인들의 귀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문장정종》에 공문(公文)을 많이 실었다.
주희(朱熹)의 재전제자(再傳弟子)로 평생 주자(朱子)를 사숙(私淑)하여 그가 지은 《대학연의(大學衍義)》는 《대학장구(大學章句)》에 비견된다는 평을 들었다. 경원당금(慶元黨禁) 이후 정주이학의 정통적 지위를 다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5) 주요저작:《진문충공집(眞文忠公集)》, 《서산문집(西山文集)》(《서산선생진문충공문집(西山先生眞文忠公文集)》), 《독서기(讀書記)》, 《서산집편(四書集編)》, 《대학연의(大學衍義)》 등이 전한다.
3. 서지사항
총 20권으로 되어 있으며 사명(辭命), 의론(議論), 서사(敍事), 시부(詩賦)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선진양한(先秦兩漢)의 사서(史書)로부터 당(唐)나라 말엽까지 모범이 될 만한 고문(古文)과 고체시(古體詩)를 골라 평가한 시문선집이다. 이치를 논하는 것을 위주로 하고 문장의 미적기능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다. 《속문장정종(續文章正宗)》 20권은 모두 북송(北宋) 시대의 문장으로 편집되었으며 시부와 사명 두 부분은 없고 서사와 의론으로만 되어 있다.
4. 내용
《문장정종》은 진덕수가 춘추전국(春秋戰國)시기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당나라 말엽까지의 시문을 골라 문체가 아닌 내용에 따라 사명(辭命), 의론(議論), 서사(敍事), 시부(詩賦)의 네 가지로 분류하여 평을 한 책이다. ‘정종’의 의미는 문장의 바른 표준이 되는 근원[源]과 변천과정[流]을 말한다. 진덕수는 독자들이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문장의 근원과 변천과정을 이해하는 가운데 ‘정종’의 의미를 인식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문장정종》을 편찬했다. ‘사명’은 문장의 효용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현대의 ‘실용문(實用文)’에 가깝다. ‘의론’은 역사적 사실을 포폄(褒貶)하고 현실상황에 대해서 의리를 밝힌 문장으로 현대의 ‘의론문(議論文)’에 가깝다. ‘서사’는 기본적으로는 의론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사실을 포폄하고 현실에 대해서 밝히는 등 실제상황에 맞게 기술한 세상의 쓰임에 절실한 문장유형으로 현대의 ‘기서문(記敍文)’에 가깝다. ‘시부’는 역대의 시문집에 비해 시부의 편수를 많이 줄이고 유가의 온유돈후(溫柔敦厚)의 특징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부를 가려 뽑았는데 현대의 ‘서정문(抒情文)’에 가깝다.
특히 문장자체보다 이학(理學)을 중시하는 도학가(道學家)의 입장에서 시문을 가려 뽑고 제일 뒤에 배치한 점은 전통적인 순문학 위주의 시문선집인 《문선(文選)》이나 《당문수(唐文粹)》의 시문선별기준과 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진덕수는 《문장정종》에서 고대의 각 문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단히 변한다고 보았으며, 문체의 변화를 체용(體用)의 관계에서 풀어낸다. 여기서 ‘체(體)’는 내용, ‘용(用)’은 문장의 형식을 뜻한다. 송명이학에 있어 ‘체’는 사물의 존재와 발생의 근거로 규정하는데, 진덕수는 이를 활용하여 ‘체’는 각종 예의등급의 규범을 종합하는 명칭으로 보았다. 예를 들어 《문장정종》 권2의 〈사천하령(赦天下令)〉에서 “5년에는 항적을 평정하고 아직 즉위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詔)라고 하지 않았다.[五年 時方平項籍 未卽位 故不言詔]”라고 했는데, 이때 유방은 천자의 자리에 즉위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한 문체가 ‘조(詔)’가 아니고 ‘령(令)’인 것은 예에 부합한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진덕수는 ‘체’, 즉 예의 규범에 합당한지 여부에 따라 각 문체적용의 기준을 정하였다.
5. 가치와 영향
문장정종은 송대 도학가들의 문학관에 따라 문장을 분류하여 문학의 미적 기능을 없앴다고 할 수 있지만, 기존의 문체 분류와 다른 거시적이고 창의적인 시도를 한 점은 후대의 문체 분류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특히 명대 오눌(吳訥)의 《문장변체(文章辨體)》와 청대 증국번(曾國藩)의 《경사백가잡초(經史百家雜鈔)》 등 일부 문장 선집의 편찬과 실제 문체 분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기존의 순문학 중심의 시문선집이 아닌 도학가의 시문선집의 편집에도 깊은 영향을 끼친다.
여타 문장선집에 비해 편찬체제나 문장선록에 있어 기준이 엄정한데다 의리(義理)를 강조하는 송대 도학가(道學家)들의 영향을 받아 문학의 가치를 부정하여 크게 유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문체론과 문체분류에 있어 포괄적 방식과 구체적 방식을 혼용한 점과 의리(義理)를 근본취지로 삼은 점은 도학파 문장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여겨진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사(士)에게 배움이란 이치를 궁구하고 쓰임을 이루는 바이다. 문(文)도 배움의 일부분이긴 하지만 또한 이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편집한 내용은 의리를 밝히고 세상의 쓰임에 절실히 할 것을 위주로 한다.[夫士之於學 所以窮理而致用也 文雖學之一事 要亦不外乎此 故今所輯 以明義理切世用爲主]” 〈문장정종강목(文章正宗綱目)〉
• “정종(正宗)은 후대 문사에 많은 변화가 생겼으므로 배우는 사람이 근원과 변천과정의 바름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正宗者 以後世文辭之多變 欲學者識其源流之正也]” 〈문장정종강목(文章正宗綱目)〉
• “위진 이후의 문장은 문사가 잡스럽고 수준이 낮아 더 이상 순수하고 온후한 뜻이 없었다. 변려문이 성행하자 고문과 더욱 멀어졌다.[蓋魏晉以降 文辭猥下 無復深純溫厚之指 至偶儷之作興 而去古益遠矣]〈문장정종강목(文章正宗綱目)〉
(2) 색인어:정종(正宗), 정주(程朱), 정백(程柏), 진덕수(眞德修), 사문(斯文), 문이재도(文以載道), 체용(體用)
(3) 참고문헌
• 〈조선후기 古文選集의 편찬·간행과 의미〉(김철범, 《동양한문학연구》 第28集)
• 〈한문 문체 분류의 전개양상〉(김종철, 《大同漢文學》 第20集)
• 〈여말선초 시문선집 편찬의식으로서의 "동인의 문명의식"과 "왕화의식"〉(김종철, 《東方漢文學》 第26集)
• 〈《文章正宗》의 編纂體制와 眞德秀 文體論의 獨創性 硏究〉(제해성, 《中國語文學誌》 第59集)
• 〈고려대 소장본≪속진문충공문장정종(續眞文忠公文章正宗)≫문헌에 관한 일고찰(一考察)〉(차영익, 《中國學論叢》 第31集)
• 《문선역주》(김영문, 김영식 외 3명, 《소명출판》, 2010년)
• 《역주 고문진보 전집》(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2001년)
【차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