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북송(北宋)의 문인 황정견(黃庭堅)의 문집(文集)으로, 그가 제작한 시(詩)와 사부(辭賦), 산문(散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2. 저자
(1) 성명:황정견(黃庭堅)(1045~1105)
(2) 자(字)·별호(別號):자는 노직(魯直)이고 호는 산곡(山谷) 혹은 부옹(涪翁)이며 예장선생(豫章先生)으로 불렸다.
(3) 출생지역:홍주(洪州) 분녕(分寧)(지금의 강서성(江西省) 수수현(修水縣))
(4) 주요활동과 생애 : 황정견은 철종(哲宗) 때 정치적으로는 사마광(司馬光), 소식(蘇軾), 정이(程頤) 등과 함께 구법당(舊法黨)에 속하여 왕안석(王安石)의 신법당(新法黨)에 맞섰고, 이 때문에 여러 차례 폄적되었으며, 휘종(徽宗)이 즉위한 후에도 지방관으로 전전하다 객사하였다. 시(詩)에 뛰어나 강서시파(江西詩派)의 개산조(開山祖)로 일컬어지며 사(詞)도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진관(秦觀), 장뢰(張耒), 조보지(晁補之)와 함께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로 불리며, 소식(蘇軾)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병칭된다. 행서(行書)와 초서(草書)에 일가를 이루어 채양(蔡襄), 소식, 미불(米芾)과 북송사대가(北宋四大家)로 일컬어진다.
(5) 주요저작:문집 《산곡집》 외에 사(詞)를 따로 모은 《산곡사(山谷詞)》가 있으며, 《부옹잡설(涪翁雜說)》, 《두시전(杜詩箋)》, 《식시오관(食時五觀)》 등이 《설부(說郛)》에 실려 있다. 많은 법첩(法帖)을 남겼는데 〈송풍각시첩(松風閣詩帖)〉, 〈제상좌첩(諸上座帖)〉 등이 대표작이다.
3. 서지사항
황정견의 문집은 1128년 조카 홍담(洪炎)이 편집한 내집(內集) 30권, 남송(南宋) 효종(孝宗) 연간(1163-1189) 이동(李彤)이 편집한 외집(外集) 14권, 1182년 손자가 편집한 별집(別集) 20권과 사(詞) 1권 및 간척(簡尺) 2권, 연보(年譜) 3권이 있다. 송대(宋代)의 판본 《예장선생문집(豫章黄先生文集)》 30권이 내집에 해당한다. 이와 별도로 송의 임연(任淵)이 주석을 단 《산곡내집시주(山谷內集詩註)》가 있는데 20권이다. 1111년 임연의 서문과 1155년 허윤(許尹)의 서문이 실려 있으며 목록(目錄)과 연보도 함께 실려 있다. 송의 사용(史容)이 외집과 별집에 주석을 붙였는데 《산곡외집시주(山谷外集詩註)》와 《산곡별집시주(山谷別集詩註)》가 그것이다. 《산곡외집시주》는 17권이며 1522년 전문자(錢文字)의 서문이 붙어 있고, 《산곡별집시주》는 2권이며 양렴(楊廉)의 서문이 붙어 있다. 임연과 사용이 주석을 단 3종을 삼가주(三家註)라 하고 이를 합친 판본은 《산곡시집주(山谷詩集註)》라 한다.
미국 국회도서관에 《산곡내집시주이십권 외집주십칠권 별집주이권(山谷內集詩註二十卷外集註十七卷別集註二卷)》으로 된 판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조선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한 것으로, 송대의 간본과 유사한 가장 온전한 《산곡시집주》라 할 수 있다. 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산곡시집주》는 내집만 남아 있는데 1232년 송대의 판본을 복각(覆刻)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추정된다. 중국 국가도서관에 《산곡황선생대전시주(山谷黃先生大全詩註)》가 있는데 송말(宋末)의 간본으로 추정되며, 내집 중 20권만 남아 있다. 또 규장각에 《산곡내집시주》와 《산곡외집시주》도 소장되어 있고 《산곡별집시주》는 고려대 등에 소장되어 있는데 후쇄본(後刷本)인 듯하다. 또 중국 국가도서관에 《황문절산곡선생문집(黃文節山谷先生文集)》이 있는데 1603년 간행한 중국 목판본으로 내집 30권, 외집 14권, 별집 20권, 연보 15권으로 되어 있다. 동일한 계열의 판본이 규장각에도 소장되어 있는데 내집에 해당하는 30권만 전한다. 명대에 간행된 《산곡노인도필(山谷老人刀筆)》 20권이 중국 국가도서관 등에 전하는데 체제가 앞에서 말한 판본과는 전혀 달라, 〈산곡노인전(山谷老人傳)〉이 권두에 있고 이어 서간문을 싣고 있다.
4. 내용
황정견의 문집에는 부(賦)와 초사(楚詞), 그리고 고시(古詩), 율시(律詩), 육언시(六言詩) 등의 여러 형식의 시, 그리고 명(銘), 찬(贊), 송(頌), 서(序), 기(記), 서(書), 표(表), 문(文), 묘지명(墓誌銘), 비명(碑銘), 제발(題跋) 등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그의 시는 대개 두보(杜甫)의 현실주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용자(用字), 구법(句法), 장법(章法)을 중시하였다.
5. 가치와 영향
황정견의 문집은 이인로(李仁老), 이규보(李奎報) 등 고려 중기의 문인들이 읽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조선에 들어서는 안평대군(安平大君)이 그의 시선집 《산곡정수(山谷精髓)》를 편찬하였으며 《중종실록(中宗實錄)》에 《황산곡집》의 판목이 함양군(咸陽郡)에 있었다는 기록이 보이거니와 이보다 앞서 성종 때에는 《황산곡시집(黃山谷詩集)》을 한글로 번역하게 한 기록이 《성종실록(成宗實錄)》에 보인다. 특히 조선 전기에는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으므로 그의 시가 널리 읽혔다고 하겠다.
6. 참고사항
(1) 명언
• “가슴속 깨끗하기가 맑은 바람과 갠 날의 밝은 달빛과 같다.〔胸中灑落 如光風霽月)” 〈염계시(濂溪詩)〉 서문
• “거친 차와 밋밋한 밥이라도 배부르면 바로 쉬고, 해진 옷 기워 입어도 추위를 막아 따뜻하면 바로 쉬고, 평온한 마음으로 평온하게 지내면서 과하다 싶으면 바로 쉬고, 욕심내지 않고 시기하지 않으면서 늙으면 바로 쉰다. …… 이것이 곧 안락법(安樂法)이니 욕심이 적은 것은 불벌(不伐)(자랑하지 않는다는 뜻)의 집이 되고, 만족함을 아는 것은 극락(極樂)의 나라가 된다. 〔麤茶淡飯飽卽休 補破遮寒暖卽休 三平二滿過卽休 不貪不妬老卽休……此安樂法也 夫少欲者 不伐之家也 知足者極樂之國也〕” 〈사휴거사시(四休居士詩)〉
• “옥(玉)을 차고 있더라도 마음에 아무런 욕심이 없어야 하고 조정에 벼슬하더라도 마음은 동산(東山)에 있어야 한다.〔佩玉而心若槁木 立朝而意在東山〕” 〈소리가 고목 도사를 그린 그림에 붙인 부(蘇李畫枯木道士賦)〉
•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이 한번 참는 것만 못하다.〔百戰百勝 不如一忍〕” 〈장훈(숙화)를 보내며(贈送張叔和塤)〉
(2) 색인어:황정견(黃庭堅), 노직(魯直), 산곡(山谷), 부옹(涪翁), 예장선생(豫章先生), 강서시파(江西詩派), 소황(蘇黃)
(3) 참고문헌
• 黃庭堅詩集注(劉尙榮 校點, 中華書局, 2003)
• 朝鮮刊 〈黃山谷集〉考(金學主, 東亞文化 27, 1989)
• 黃庭堅詩硏究(吳台錫, 慶北大學校出版部, 1991)
• 黃庭堅詩選(吳台錫, 문이재, 2002)
• 黃庭堅評傳(黃寶華, 南京大學出版社,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