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서상기(西廂記)》는 중국 원대(元代) 희곡 작가 왕실보(王實甫)의 대표작이자 중국 고전 희곡을 대표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이며, 총 5본(本) 21절(折)로 이루어진 장편 잡극(雜劇) 극본이다. 서생 장군서(張君瑞)와 재상가 외동딸 최앵앵(崔鶯鶯)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재자가인(才子佳人)의 사랑을 그린 수많은 이야기들 가운데서도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2. 저자
(1) 성명:왕덕신(王德信)(?~?)
(2) 자(字)·별호(別號):자(字)는 실보(實甫)
(3) 출생지역:정흥(定興)(현 중국 하북성(河北省) 보정시(保定市) 정흥현(定興縣))
(4) 주요활동과 생애
왕실보는 대략 원(元) 성종(成宗) 원정(元貞) 연간(1295~1296)과 대덕(大德) 연간(1297~1307)에 창작활동을 했던 원대를 대표하는 극작가로, 사랑 이야기를 다룬 희곡 작품 창작에 뛰어났다. 당시 몽골족 지배하의 많은 한족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왕실보 역시 관기나 희곡 배우들과 밀접한 교류를 하였고, 그것이 그가 희곡과 무대, 하층 백성들의 정서에 대해 잘 알게 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평가된다. 일찍이 관직에 몸담기도 했으나 벼슬길이 순조롭지는 못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5) 주요저작:잡극 14종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서상기》 외에 《여춘당(麗春堂)》, 《파요기(破窯記)》 등 3종 및 《한채운사죽부용정(韓彩雲絲竹芙蓉亭)》, 《소소경월야판차선(蘇小卿月夜販茶船)》 두 작품의 일부만 전한다.
3. 서지사항
작자와 관련하여, 일설에는 관한경(關漢卿)이 지었다고도 하고, 왕실보가 전(前) 4본을 쓰고 관한경이 제5본을 이어 썼다고도 하며, 반대로 관한경이 전 4본을, 왕실보가 제5본을 속작했다고도 한다. 원 잡극이 보통 1본 4절의 편폭이었던 데 비해, 《서상기》는 5본 21절(제2본 제1절을 일종의 막간극인 설자(楔子)로 보아 전체를 총 20절로 보기도 한다)의 장편으로 파격적인 면모를 보인다. 《서상기》는 명청(明淸)시대 간행본만 해도 1백 종 이상에 달할 만큼 널리 유행했다. 현존하는 가장 이른 판본은 명(明) 홍치(弘治) 11년(1498) 금대(金臺)(북경(北京)) 악씨(岳氏) 간본 《신간기묘전상주석서상기(新刊奇妙全相注釋西廂記)》이다. 《서상기》의 원제는 ‘최앵앵대월서상기(崔鶯鶯待月西廂記)’이며, ‘장군서대월서상기(張君瑞待月西廂記)’, ‘북서상(北西廂)’ 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제목에서 ‘서상(西廂)’은 작품의 주요 공간 배경인 보구사(普救寺) 곁에 딸린 별채로, 여주인공 최앵앵과 그 가족이 머무는 공간이다. 통행되는 주요 판본으로는 기존 선본을 두루 참고하여 원작에 가깝게 교감하고 대표적인 평어들과 함께 주석을 수록한 왕계사(王季思)의 교주본 《집평교주서상기(集評校注西廂記)》(上海古籍出版社, 1987)와 청대(淸代) 초기 김성탄(金聖歎)의 평비본(評批本)인 소위 ‘제육재자서(第六才子書)’ 《서상기》 교점본을 꼽을 수 있다.
4. 내용
서생 장군서는 과거시험 길에 보구사에서 그곳 서상에 머물고 있던 재상가의 외동딸 최앵앵을 우연히 만나 서로 첫눈에 반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앵앵의 시녀 홍랑(紅娘)의 도움에 힘입어 두 사람은 사사로운 정을 나누게 되는데, 이를 알게 된 앵앵의 모친 노부인(老夫人)이 장군서의 과거급제를 혼인의 조건으로 내세워 두 사람은 가슴 아픈 이별을 하게 된다.(제4본까지의 내용) 제5본은 장군서가 드디어 급제하고 돌아와 정항(鄭恒)의 방해를 물리치고 결국 대단원을 이루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唐)나라 전기(傳奇)인 원진(元稹)의 〈앵앵전(鶯鶯傳)〉(일명 회진기(會眞記))의 이야기가 그 원형이다. 이 이야기는 이후 여러 장르로 변용되는데, 그 가운데 ‘동서상(董西廂)’이라고도 불리는 금대(金代) 동해원(董解元)의 설창(說唱) 형식의 작품 《서상기제궁조(西廂記諸宮調)》가 가장 중요하며, 이는 잡극 《서상기》의 형성에 결정적인 밑바탕이 된다. 원진의 〈앵앵전〉이 비극으로 끝나는 데 비해 《동서상》은 대단원의 결말을 맺는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왕실보의 《서상기》는 《동서상》을 바탕으로 하되 여러 인물이 연기하는 잡극으로 각색하면서 더욱 긴밀한 구성과 높은 예술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5. 가치와 영향
《서상기》는 출현 이후 줄곧 큰 인기를 끌며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이후 수많은 속서와 개작을 낳았으며, 후대의 많은 작품들, 특히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한 희곡과 소설에 사상적·예술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서상기》는 특히 아름답고 섬세한 곡사(曲詞)로 사랑받았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사회에서 봉건 예교에 반대하는 청춘남녀의 자유롭고 참된 사랑을 성공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사랑이야기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였다.
한편 청대(淸代) 초기 김성탄(金聖歎)이 무수한 역대 전적 중에서 《서상기》를 재자(才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최고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치켜세우며 풍부한 평어를 달아 간행한 《관화당제육재자서(貫華堂第六才子書)》는 이후 근대시기까지 가장 널리 유행한 판본이 되었다. 김성탄본은 상연을 위한 극본이 아닌 독본으로, 조선시대 국내에도 전래되어 중국 희곡 가운데 유독 큰 사랑을 받았다. 희곡의 전통이 없던 국내에서 《서상기》 독서열(讀書熱)을 형성하여, 각종 주해본(註解本), 번역본, 소설체 개역본(改譯本), 어록해(語錄解) 등 수많은 ‘조선독본(朝鮮讀本)’을 낳았다. 또 《서상기》는 한국의 《춘향전(春香傳)》 등 일부 서사문학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도 하며, 이옥(李玉)의 《동상기(東廂記)》 등의 희곡이 그 영향하에 창작되기도 하였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온 천하에 사랑하는 이여, 가족을 이루소서.[願普天下有情的都終成了眷屬]” 《서상기(西廂記)》 〈제5본〉
• “새로운 잡극과 옛 전기를 통틀어 《서상기(西廂記)》가 천하의 으뜸이다.[新雜劇舊傳奇 西廂記天下奪魁]” 가중명(賈仲明), 《능파선(凌波仙)》
• “《서상기(西廂記)》는 사랑가의 으뜸이다.[西廂爲情詞之宗]” 능몽초(凌濛初), 《담곡잡찰(譚曲雜札)》
• “근세의 재사(才士)와 빼어난 유자(儒者)가 대부분 《수호전(水滸傳)》과 《서상기(西廂記)》 등의 책에서 발을 빼지 못하였으므로 그 문장이 다 화려하고 구슬프며 뼈를 찌르고 살을 녹인다.[近世才士秀儒 率未免拔跡於水滸傳西廂記等書 故其文皆靡曼淒酸 刺骨銷肌]” 정약용(丁若鏞),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
(2) 색인어:서상기(西廂記), 왕실보(王實甫), 앵앵전(鶯鶯傳), 장군서(張君瑞), 최앵앵(崔鶯鶯), 원잡극(元雜劇), 김성탄(金聖歎), 제육재자서(第六才子書), 재자가인(才子佳人)
(3) 참고문헌
• 鶯鶯傳(元稹)
• 董解元西廂記(凌景埏 校注, 人民文學出版社)
• 貫華堂第六才子書西廂記(金聖歎 評批)
• 集評校注西廂記(王季思 校注, 上海古籍出版社)
• 鮮漢雙文西廂記(高裕相, 匯同書館)
• 西廂記(이가원 역주, 일지사)
• 서상기(양회석 역, 진원)
【김효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