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석호거사시집(石湖居士詩集)》이라고도 한다. 《석호시집(石湖詩集)》은 남송(南宋)의 범성대(范成大)의 시집이다. 중국시사(中國詩史)에서 남송사대가(南宋四大家)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범성대(范成大)는 《송사(宋史)》 〈예문지(藝文志)〉에 따르면 《석호대전집(石湖大全集)》 136권을 지은 것으로 나오는데 범성대가 죽던 해에 직접 정리한 것을 그의 아들이 편찬했다고 한다. (《석호시집》의 마지막에 실린 범성대의 아들 범신(范莘)과 범자(范兹)가 지은 발문(跋文)에는 가태(嘉泰) 3년(1203)에 완성했다고 나온다.) 《석호시집》은 그 가운데에서 시 부분을 따로 모은 것이다.
범성대는 만년에 자신의 모든 시를 직접 모아서 정리하였다. 명대(明代)에 이르자 이미 《석호대전집》은 이미 망실된 것으로 보이는데, 누군가 범성대의 시만 뽑아서 정리한 《석호시집》은 이미 명대에 활자본과 초본(抄本)이 있었고 청(淸)에 들어서도 여러 판본이 있었다. 이 가운데에서 청의 강희(康熙) 연간의 고사립(顧嗣立)이 정리한 각본(刻本)을 다시 《사고전서(四庫全書)》에서 수록하였다. 현재 통행하는 《석호시집》은 고사립의 각본을 영인한 상해상무인서관(上海商務印書館)의 《사부총간(四部叢刊)》 판본이다.
2. 저자
(1) 성명:범성대(范成大(1126~1193))
(2) 자(字)·호(號):범성대의 자는 지능(至能) 또는 치능(致能)이다. 호는 석호거사(石湖居士)다. 젊었을 때는 차산거사(此山居士)라고 스스로 부르기도 하였다. 시호(諡號)는 문목(文穆)이다.
(3) 출생지역:북송(北宋) 평강부(平江府) 오현(吳縣)(현 강소성(江蘇省) 소주시(蘇州市))
(4) 주요활동과 생애
범성대는 일찍 양친을 여의고 초년에 벼슬에 뜻이 없다가 비교적 늦게 소흥(紹興) 24년(1154) 28세에 진사(進士)가 되었다. 그는 처주지부(處州知府(1167)), 정강부지부(靜江府知府(1171)), 사천제치사(四川制置使(1175)), 명주지부(明州知府(1180)), 건강지부(建康知府(1181)) 등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는데, 정치적인 치적이 자못 있었다. 조정에서는 선후로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1154)),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1169)), 중서사인(中書舍人(1170)), 참지정사(參知政事(1178)) 등의 관직을 맡았다. 남송 효종(孝宗) 건도(乾道) 6년(1170) 44세에 금(金)으로 사신을 가서, 금나라 군신 앞에서 당당히 맞서 조야(朝野)의 칭송을 받았으며, 만년(1183)에는 은퇴하여 석호(石湖)에 거하였다.
범성대는 남송의 저명한 시인의 한사람이다. 중흥사대시인(中興四大詩人), 또는 남송사대가(南宋四大家)의 하나로 불린다. 그는 남송의 고위 관료이자 정치가로서 민생을 걱정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황제에게 충성하였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지식인이면서도 다른 사람과 화합하는 인격자였다. 범성대의 시가(詩歌) 창작은 그 풍격이 매우 다양하며 내용도 풍부하다. 그의 시에 대한 전통시대의 긍정적인 평가는 그의 총체적인 인생 성취와 주로 관련이 된다. 그의 시가 창작은 크게 3가지로 분류하는데, 민생질고(民生疾苦)를 반영하고 애국감정을 서사(抒寫)하고 전원생활을 표현하였다. 다른 송대의 시인과 비슷한 경향이지만, 인생 경험의 축적이 그의 시가 창작을 성숙시켰다.
(5) 주요저작:금(金)으로 사신을 갈 때 지은 시를 모은 《북정집(北征集)》, 금으로 사신을 다녀오면서 쓴 일기문인 《남비록(攬轡錄)》, 정강부 지부(靜江府知府)로 갈 때 쓴 시를 모은 《남정소집(南征小集)》, 기행문을 모은 《참란록(驂鸞錄)》, 사천(四川)으로 부임하러 갈 때 쓴 시를 모은 《서정소집(西征小集)》, 그 과정에서의 풍토와 기행을 쓴 《계매우형지(桂海虞衡志)》, 사천에서 돌아오며 쓴 기행문 겸 지방기록인 《오선록(吳船錄)》 등이 있다. 석호(石湖)에 은거할 때에는 1년 동안 쓴 전원시를 모은 《사시전원잡흥(四時田園雜興)》이 있고, 석호의 매화에 대해 쓴 《매보(梅譜)》, 국화에 대해 쓴 《국보(菊譜)》, 오(吳)지역에 대해 기록한 남송의 대표적인 지방지(地方志)인 《오군지(吳郡志)》가 있다. 여기에서 시들은 모두 《석호시집(石湖詩集)》에 들어있다.
3. 서지사항
《석호시집(石湖詩集)》은 범성대의 문집인 《석호대전집(石湖大全集)》에서 추출한 것으로 《증정사고전서간명목록표주(增訂四庫全書簡明目錄標注)》(1911)에는 남송(南宋) 가정(嘉定) 연간(1208~1224)에 나왔다고 되어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전집이 나온 뒤 오래지 않아 시만 모은 전집이 나왔음을 추측할 수 있다. 송(宋)과 명(明)에 《석호거사문집(石湖居士文集)》과 《석호거사시집(石湖居士詩集)》이 있었다고 하는데 모두 《석호시집(石湖詩集)》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명(明)나라 오관(吳寬(1435~1504))의 수초본⼿(鈔本)(《석호거사문집(石湖居士文集)》34권)과 명나라 홍치(弘治) 6년(1503)의 활자본(《석호거사집(石湖居士集)》34권)이다. 그 이외에도 활자본과 초본 등 여러 판본이 명대와 청대에 있었고 현재도 잔본(殘本)이 남아있다. 청(淸) 강희(康熙) 27년(1688)에 고사립(顧嗣立)이 송판(宋板)의 초본(抄本)을 포함한 이전의 판본을 참고하여 애여당각본(愛汝堂刻本)(34권)(《석호거사시집(石湖居士詩集)》)을 냈다. 같은 해에 황창구(黄昌衢)가 여조루각본(藜照樓刻本)(20권)(《석호시집(石湖詩集)》)을 냈다. 현대의 범성대 연구자들은 고사립의 각본을 저본으로 삼고 황창구의 각본을 참고서로 활용한다. 그 예로 《범석호집(范石湖集)》(부수손(富壽蓀) 표교(標校), 상해고적출판사(上海古籍出版社), 1981. 2006년에 재출판.)이 있다. 그 뒤에 건륭(乾隆) 연간(1711~1799)에 《사고전서(四庫全書)》를 만들면서 고사립의 각본을 《석호시집》으로 수록하였다. 《사고전서》에서는 고사립의 각본을 수록하면서 고사립의 서문과 《송사(宋史)》 〈범성대전(范成大傳)〉을 삭제하였다. 1929년에 상해상무인서관(上海商務印書館)에서 《사부총간(四部叢刊)》 시리즈를 편찬하면서(사부총간초편(四部叢刊初編)) 고사립의 각본을 5책(제1180~1184책(冊))의 《석호거사시집(石湖居士詩集)》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이 사부총간본(四部叢刊本)은 고사립의 애여당각본과 동일하여 서문과 《송사》 〈범성대전〉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사부총간본의 목차에는 범성대의 사(詞)가 제35권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 책의 내용에는 35권이 없다. 고사립의 애여당각본의 목차가 본래 35권까지였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부(賦)와 초사(楚辭)를 실은 제34권, 사(詞)를 실은 제35권에는 ‘사출(嗣出)(이어서 뒤에 내겠다)’이라는 단어가 있고, 고사립의 서문에는 시가 모두 33권이고 그 뒤에 부와 초사 1권과 악부(樂府) 1권을 덧붙인다고 하였으니, 고사립은 사와 악부를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4. 내용
이 책은 34권으로 되어있으며 1권에서 33권까지는 범성대(范成大)가 평생 지은 시를 수록하였고 34권에는 범성대의 부(賦)와 초사(楚辭)를 수록하였다. 고사립(顧嗣立)의 서문에 따르면 33권까지 수록한 범성대의 시는 모두 1916수이다. 34권에는 부를 6수, 초사를 4수 수록하였다. 시에 비해 양이 적다. 다른 책이지만 《범석호집(范石湖集)》에서 수집한 범성대의 사(詞)의 수가 90수 남짓인 것으로 보면 범성대는 주로 시를 지었다고 할 수 있다.
시는 시체(詩體)를 나누지 않고 편년식(編年式)으로 기록하였다. 1권에서 4권까지는 주로 벼슬하기 전에 쓴 시들이다. 유명한 작품으로 애민시(愛民詩) 겸 사회시인 〈최조행(催租行)〉, 〈소사행(繅絲行)〉 등이 있다. 5권에서 22권까지는 벼슬을 하던 시기의 작품들이다. 앞의 주요저작에서 말한 작품들도 들어있고 〈후최조행(後催租行)〉, 〈형저제상(荊渚堤上)〉 등의 애민시 겸 사회시, 민가풍의 〈기주죽지가(夔州竹枝歌)〉 9수 등이 유명하다. 23권에서 33권까지는 주로 은퇴를 한 시기의 작품들이다. 범성대의 필생의 대표작이자 중국 고대 전원시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사시전원잡흥(四時田園雜興)〉 60수가 있다. 그 외에 사회시인 〈위전탄(圍田歎)〉, 애국시인 〈제부차묘(題夫差廟)〉 등이 있다.
5. 가치와 영향
범성대는 남송의 고위 관료이자 정치가로서 애국과 애민의 삶을 산 훌륭한 인격자였다. 그의 시가 창작에는 전통시대 고급 지식인의 이상적인 시의 세계가 반영되어 있다. 그는 나라를 대표해서 외교에서 군주를 욕되게 하지 않았고, 항상 백성을 생각하는 바른 정치를 하였으며, 지방 민속에 대한 관심으로 많은 기록을 하였다. 중앙에서나 지방에서나 훌륭한 치적을 남겼고, 부 재상급인 참지정사(參知政事)의 직위에 오르는 동안 큰 정치적인 불화를 겪지 않았다. 성공적인 관료 생활에서 은퇴하여 석호(石湖)에서 소박하지만 넉넉하게 은거하였고 또다시 잠시 관리를 지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범성대의 일생은 ‘공성신퇴(攻成身退)’와 ‘청백리(淸白吏)’의 유가적 이상에 부합한다. 전통 사회에서 범석호(范石湖)는 관리로 성공한 다음에 소박하게 전원에 은거한 고급 문인 관료의 대명사였다. 이것은 조선 사회에서 양반 사대부에게 요구하던 어떤 이상적인 모습과 일치하였다.
그의 애민시(愛民詩), 사회시(社會詩), 항금시(抗金詩) 등의 작품들은 그 평가가 갈리는데, 부정적인 평가는 그가 적극적인 참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긍정적인 평가는 이러한 종류의 시의 존재 자체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의 시는 내용과 풍격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기 쉽지 않다. 분명히 고금(古今)의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그의 은일시(隱逸詩), 즉 전원시(田園詩)이다. 그의 〈사시전원잡흥(四時田園雜興)〉 60수는 비슷한 종류의 시작(詩作) 가운데에서 가장 유명하다. 범성대의 시가 이런 종류의 작품의 최초는 아니지만(계절에 따른 시가 창작은 그 연원을 《시경(詩經)》에서 찾는다.), 범성대 이후에는 범성대의 시가 가장 유명하다. 이 〈사시전원잡흥〉은 단지 농촌에서 범성대가 느낀 감회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농촌 민속 풍경들과 사회상들이 들어있다. 전통시대 중국이나 조선의 시가 창작에서 특별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농촌 풍경을 노래한 창작들, 농촌에서의 은거를 노래한 시작들, 또는 1년 4계절의 은거 생활을 노래한 시가 창작들은 많은 경우 범성대의 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아래쪽 논에선 물을 길어 강류로 내보내고, 높은 쪽 밭에선 강물을 끌어올려 위 도랑으로 거슬러 보내네. 지세는 고르지 않고 사람의 힘도 다했는지, 장정은 오래도록 수차 위에 있네. [下田戽水出江流 高壟翻江逆上溝 地勢不齊人力盡 丁男長在踏車]” 〈하일전원잡흥(夏日田園雜興)〉6
• “낮에는 밭에서 김을 매고 밤에는 베를 짜며, 마을 남녀들 저마다 집안일 꾸려가네. 어린애들 밭 갈고 베 짜기 할 줄 모르지만, 자기들도 뽕나무 그늘에서 오이 심기 배운다네. [晝出耘田夜績麻 村莊兒女各當家 童孫未解供耕織 也傍桑陰學種瓜]” 〈하일전원잡흥〉7
• “연꽃 뒤덮인 드넓은 연못에서 노를 저으며 노닐다가, 꽃이 깊어 길을 잃고 늦도록 돌아갈 것 잊었네. 집안사람이 어둠 속에 내 배 간 곳 알았는지, 문득 작은 오리가 놀라서 난다네. [千頃芙蕖放棹嬉 花深迷路晩忘歸 家人暗識船行處 時有驚忙小鴨飛]” 〈하일전원잡흥〉10
• “마름 따기 힘들어 쟁기질 호미질 관뒀는데, 피멍 든 손가락엔 붉은 피 흐르고 비루하게 말라 가네. 밭을 살 여력이 없어 그저 물에라도 심었더니, 요즘은 호수 위에도 세금을 매기네. [采菱辛苦廢犁鉏 血指流丹鬼質枯 無力買田聊種水 近來湖面亦收租]” 〈하일전원잡흥〉11
• “동짓날 시골 골목에 마을 인정 드러나니, 이웃 노인장이 예를 차려 사립문 앞에서 인사하네. 삼베 장삼이 서리와 눈처럼 하얀데, 자기 집 베틀로 직접 짜서 만들었다 하네. [村巷冬年見俗情 鄰翁講禮拜柴荊 長衫布縷如霜雪 云是家機自織成]” 〈동일전원잡흥(冬日田園雜興)〉12
(2) 색인어:범성대(范成大), 범석호(范石湖), 범문목공(范文穆公), 석호시집(石湖詩集), 석호거사시집(石湖居士詩集), 고사립(顧嗣立), 애여당(愛汝堂), 사시전원잡흥(四時田園雜興), 전원시(田園詩)
(3) 참고문헌
• 石湖居士詩集 (范成大 撰, 顧嗣立 等 訂, 上海商務印書館, 1929) 影印本
• 石湖居士詩集 (范成大 撰, 顧嗣立 等 訂, 臺灣商務印書館, 1968) 活字本
• 石湖詩集, 范石湖詩集注, 志道集 (沈欽韓 注, 中華書局, 1985) 影印本
• 范石湖集 (范成大 著, 富壽蓀 标校, 上海古籍出版社, 2006)
• 石湖詞 (范成大 著, 廣陵書社出版, 2010) 影印本
• 宋詩選注 (錢鍾書 選注, 人民文學出版社, 1988)
• 〈范成大四時田園雜興六十首硏究〉, (李漢偉, 《臺南師範學報》, 第24期, 1991)
• 〈范成大『石湖大全集』の亡佚と『石湖居士詩集』の成立〉 (戸崎哲彦, 《島大言語文化:島根大学法文学部紀要. 言語文化学科編》23, 2007)
【서용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