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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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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계집(梁谿集)》은 송(宋) 휘종(徽宗) 때의 명신인 이강(李綱)의 문집이다. 이강은 금나라가 송나라에 군사적 압박을 가하자 항전을 주장했던 남송사명신(南宋四名臣) 중 한 사람이다. 본서는 180권 구성으로 이강이 송 황제에게 올린 주의(奏議)가 주를 이루는데, 이를 통해 이강의 우국충정을 엿볼 수 있다.

2. 저자

(1) 성명:이강(李綱)(1083~1140)
(2) 字·別號:자는 백기(伯起), 호는 양계(梁谿).
(3) 출생지역:복건성(福建省) 소무(邵武).
(4) 주요활동과 생애
이강은 조정(趙鼎), 이광화(李光和), 호전(胡銓)과 더불어 금나라에 대항하기를 주장한 남송사명신 중 한 사람이다. 정화(政和) 2년(1112) 진사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정화 5년(1115)에 감찰어사(監察御史)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가 되었으나 조정의 잘못을 논의하다 파직당하고 부원외랑(部員外郎)으로 전임되었다. 그 후 여러 관직을 전전하다가 선화(宣和) 7년(1125)에 병부시랑(兵部侍郎)에 임명되어 정강(靖康) 원년(1126) 금나라의 침입을 물리쳤다.
그러나 주화파(主和派)의 견제로 곧 좌천되어 수도인 개봉(開封)이 함락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고, 건염(建炎) 원년(1127) 고종(高宗)에 의해 중서시랑(中書侍郎)으로 기용되었다가 이윽고 폄직되어 여러 관직을 전전하였다. 소흥(紹興) 9년(1139)에는 조정이 금나라와 화의를 맺자 울분을 못이겨 다음 해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사후 여러 차례 증직(贈職)되었으며, 순희(淳熙) 16년(1189)에 충정(忠定)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5) 주요저작: 《역전(易傳)》, 《논어상설(論語詳說)》, 《정강전신록(靖康傳信錄)》, 《건염시정기(建炎時政記)》, 《건염진퇴지(建炎進退志)》 등 다양한 저술을 편찬하였으며, 문집인 《양계집(梁谿集)》과 그의 주의(奏議)만을 따로 편집한 《송승상이충정공주의(宋丞相李忠定公奏議)》가 있다.

3. 서지사항

최초에는 이강의 작은 아들 수지(秀之)가 주의 80권을 편집하여 진준경(陳俊卿)과 주희(朱熹)의의 서문(序文)을 받았는데, 이것이 필사본의 형태로 가장(家藏)되어 전해지다가 1208년 손자 이대유(李大有)와 1213년에 소무지군(邵武知軍) 진팽수(陳彭壽)에 의해 간행되었다. 1220년에는 권지소무(權知邵武) 강주(姜注)가 결락된 부분을 보충하고 시·문(詩)·文 등을 더하여 문집 170권과 부록인 정강전신록 3권, 건염시정기 3권, 건염진퇴지 4권으로 현재의 180권 구성을 완성하였다. 이를 ‘가정소무각본(嘉定邵武刻本)’이라 한다. 현재 중국 상해도서관에 1213년 진팽수가 간행한 주의 80권 중 38권이 남아 있는데, 명대의 유명한 장서가 안국(安國)과 모진(毛晉)을 거쳐 청대의 장서가 이매(李枚)와 황비열(黃丕烈)이 소장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원·명대(元)·明代에는 180권 구성의 《양계집》이 간행되지 않고 선집(選集)과 주의(奏議)만이 간행되었다. 이 시기에 가장 앞서 간행된 것은 1516년 간본 《송승상이충정공주의(宋丞相李忠定公奏議)》로 주의 69권, 부록 9권 구성이며, 해당 판본은 1622년에 중간(重刊)되기도 했다. 가정연간(嘉靖年刊)(1522~1566)에는 180권에서 뽑아낸 선집이 한 차례 간행되었으나 현재는 실전(失傳)된 상태이다. 만력연간(萬曆年刊)(1573~1619)에는 이사현(李嗣玄)이 선집을 간행하였는데, 1639년에 이사현이 편찬한 만력간본(萬曆刊本)을 좌광선(左光先), 이춘희(李春熙) 등이 재차 정리하여 편찬하였으며 이는 《송이충정공주의선(宋李忠定公奏議選)》 15권, 《송이충정공집선(宋李忠定公集選)》 29권 구성이다.
청대(淸代)에는 선집과 주의가 아닌 온전한 《양계집》이 간행되었고, 이는 사고본(四庫本)(《사고전서(四庫全書)》) 계통과 도광본(道光本)(도광연간(道光年刊) 간본) 계통으로 분류된다. 두 판본을 비교해 보면 사고본의 경우 1781년에 왕여조(汪如藻)의 가장본(家藏本)을 간행한 것으로 180권 구성이며, 도광본의 경우 1834년에 진정지(陳征芝)의 가장본을 간행한 것으로 180권, 부록 6권의 구성이다. 앞서 청나라 말기의 장서가 전증상(傳增湘)이 사고본과 도광본을 교감한바 있는데, 도광본은 사고본에 비해 오류는 많지만 송판본(宋板本)의 모습을 유지하였고, 사고본은 도광본에 비해 오류는 적지만 후대에 수정된 부분이 있어 송판본의 모습을 다소 잃었다고 밝혔다.

4. 내용

《양계집》의 계통에서 가장 엄정한 교감이 이루어진 사고본(四庫本)을 기반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권1~4가 부(賦), 권5~32가 시(詩), 권33~34가 표본조서(表本詔書), 권35~38이 의제조(擬制詔), 권39~102가 표차주의(表箚奏議), 권103~104가 차자(箚子), 권105~107이 장(狀), 권108~129가 서(書), 권130~131이 계(啓), 권132~133이 기(記), 권134~139가 서(序), 권140~141이 찬(贊), 권142가 송잠명사(頌箴銘辭), 권143~144가 논(論), 권145~154가 우론(迂論), 권155~160이 잡저(雜著), 권161~163이 제발(題跋), 권164~165가 제문사소(祭文辭疏), 권166~170이 비지(碑誌), 권171~173이 정강전신록(靖康傳信錄), 권174~177이 건염진퇴지총서(建炎進退志總序), 권178~180이 건염시정기(建炎時政記)이다. 도광본(道光本)에 부록으로 추가된 6권은 연보(年譜) 1권, 행장(行狀)·시의(諡議)·사기(祠記)·제문(祭文)·만시(挽詩)·상찬(像讚)·서발(書跋) 등이 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시한 바를 살펴보면 본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조령·주의류(詔令)·奏議類에 해당하는 표본조서·의제조·표차주의·차자·장·서·계 등이다. 앞서 본서의 최초 편찬이 주의 80권으로 이루어졌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는 이강 그 자신이 외세의 침략을 당한 시점에 관원(官員)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여 수 많은 상소를 올렸기 때문이다. 그의 상소문은 주희(朱熹)를 비롯하여 후대의 학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5. 가치와 영향

《양계집》의 전승과정을 살펴보면 주의 80권을 시작으로 송대에 180권이 처음 간행되고, 원·명대에는 주의와 선집만이 간행되었으며, 청대에 이르러서야 다시금 180권 구성의 《양계집》이 간행되는 정황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비교적 끊임없이 유통된 배경에는 이강이 사직지신(社稷之臣)이자 충신(忠臣)으로 높은 평가를 받음과 동시에 그의 주의가 당나라 때 명신인 육지(陸贄)의 《육선공주의(陸宣公奏議)》에 비견될 정도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비록 조선에서는 180권 구성의 《양계집》이 간행된 바 없으나 호란(胡亂) 이후 복수설치의 이념이 충만하던 조선후기에 이강의 주의만을 선별, 16권 구성의 《송이충정공주의(宋李忠定公奏議)》를 금속활자로 간행하여 경연(經筵) 등에 활용하였다. 이는 이강의 주의가 복수설치의 이론적 근거 중 하나로서 기능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조정의 신하로서 용기를 내어 돌아보지 않고 천하의 중임을 몸소 맡은 자가 바로 이강이니, 이른바 사직지신(社稷之臣)이라 하겠다. [在廷之臣 奮勇不顧 以身任天下之重者 李綱是也 所謂社稷之臣也]” 〈《송사(宋史)》 권455 열전(列傳)〉
• “송나라가 남도(南渡)한 이래 인재로는 마땅히 이강이 제일이요, 무장으로는 악비(岳飛)를 꼽을 수 있다. 두 사람에게는 송나라의 구토(舊土)를 회복하는 중임을 맡길 수 있으나 그 나머지는 탁월한 인재가 보이지 않는다. [南渡後人才 當以李伯紀爲第一 武將則岳武穆 二人者可當恢復之責 其餘則未見有卓然可倚者]” 〈《서애선생문집(西厓先生文集)》 권13, 독사여측(讀史蠡測)〉
• “나라 위한 일편단심 사리를 봄이 분명하니, 고종(高宗)은 어찌 깊은 정성에 감동하지 않았으리. 지금 펼쳐 읽으매 사람들에게 탄식을 자아내게 하니, 황권(黃券)(書冊)의 편서(編書) 속에 위대한 이름 남기었다. [爲國丹心見理明 高宗胡弗感深誠 于今展讀令人慨 黃卷編中垂大名]” 〈《영조실록(英祖實錄)》 권38, 10년(1734) 6월 5일, 어제시(御製詩)〉
(2) 색인어:이강(李綱), 남송사명신(南宋四名臣), 주전파(主戰派), 주의(奏議), 복수설치(復讐雪恥)
(3) 참고문헌
• 欽定四庫全書(集部4, 別集類3, 梁谿集)
• 王路璐, “《梁溪先生文集》版本概述”, 『黑龙江史志』 23期(2013年).
• 只诚, “《梁溪集》版本问题初探”, 『黑龙江史志』 03期(2014年).
• 김민현, “조선시대 「宋李忠定公奏議」의 간행과 활용에 대한 연구”, 『서지학연구』 제64호, 한국서지학회, 2015, 229-253쪽.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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