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엄주산인사부고(弇州山人四部稿)》는 명(明)나라 왕세정(王世貞)의 시문집으로, 《엄주사부고(弇州四部稿)》라고도 한다. 174권본과 180권본이 전한다. 엄주산인(弇州山人)은 왕세정의 호(號)이며, 사부(四部)는 부(賦)・시(詩)・문(文)・설(說) 4종의 문체에 따라 편차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2. 저자
(1) 성명:왕세정(王世貞(1526~1590))
(2) 자(字)・별호(別號):왕세정의 자는 원미(元美),호는 봉주(鳳洲) 또는 엄주산인(弇州山人)이다.
(3) 출생지역:소주(蘇州) 태창(太倉(지금의 중국 강소성(江蘇省) 태창시(太倉市)))
(4) 주요활동과 생애
왕세정은 가정(嘉靖) 5년(1526)에 태어나 만력(萬曆) 18년 사망하였다. 13세 때 《왕수인집(王守仁集)》을 읽고 몹시 기뻐하여 삼소(三蘇)보다 뛰어나다고 하였으며, 가정 26년(1547) 세 번째 도전 끝에 회시(會試)에 합격하고 같은 해 전시(殿试)에도 합격하였다. 대리시 좌시(大理寺左寺)・형부 원외랑(刑部員外郎)・산동 안찰부사(山東按察副使)・청주 병비사(青州兵備使)・절강 좌참정(浙江左參政)・산서 안찰사(山西按察使) 등을 역임했고, 만력(萬曆) 연간에는 호광 안찰사(湖廣按察使)・광서 우포정사(廣西右布政使)・운양순무(鄖陽巡撫) 등을 지냈는데, 장거정(張居正)의 미움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장거정 사후 복귀하여 응천부윤(應天 府尹)・남경 병부시랑(南京兵部侍郎)을 거쳐 남경 형부상서(南京刑部尚書)에 이르렀으며, 태자소보(太子少保)에 추증되었다.
이반룡(李攀龍)・서중행(徐中行)・양유예(梁有譽)・종신(宗臣)・사진(謝榛)・오국륜(吳國倫)과 더불어 후칠자(後七子)로 일컬어졌고, 이반룡 사후 20여 년간 문단의 영수로 추앙받았으며, 조선과 일본 문단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만년에는 여도사로 이름난 왕석작(王錫爵)의 딸 왕도정(王燾貞)을 스승으로 섬기며 선도(仙道)에 심취하여 탄핵을 당하기도 하였다. 내각수보(內閣首輔) 장거정과는 불화하였으나 척계광(戚繼光)・왕도곤(汪道昆)・호응린(胡應麟) 등과는 교분이 깊었다. 부친 왕여(王忬)는 문관 출신으로 왜적(倭賊)을 방어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아우 왕세무(王世懋)와 아들 왕사기(王士騏)도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5) 주요저작:왕세정은 평생 방대한 분량의 저술을 남겼다. 《엄주산인사부고》(174권) 외에 《엄주산인속고(弇州山人續稿)》(207권), 《엄산당별집(弇山堂別集)》(100권)과 《독서후(讀書後)》(8권), 《봉주필기(鳳洲筆記)》, 《전명시화(全明詩話)》, 《고불고록(觚不觚錄)》, 《가정이래수보전(嘉靖以來首輔傳)》, 《황명기사술(皇明奇事述)》 등이 있다. 또한 《엄주산인사부고》에 수록되어 있는 《예원치언(藝苑卮言)》(본집 8권, 부록 4권)은 문학사적 가치가 높아 별도로 인행되기도 하였다.
3. 서지사항
명나라 만력 5년(1577) 세경당(世經堂) 각본이 가장 이른 판본으로, 저자가 직접 편찬한 것이다. 174권본과 180권본이 전하는데, 《문연각사고전서(文淵閣四庫全書)》에는 174권본이 수록되어 있다. 이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권1~2 부(賦), 권3~54 시(詩), 권55~138 문(文), 권139~174 설(說)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207권으로 이루어진 《엄주산인속고》까지 포함하기도 하는데, 《속고》에는 ‘설’・‘부’가 없으므로 《속고》 이전에 편찬된 전집(前集)만이 사부고라는 명칭에 부합한다. 《속고》는 왕세정이 치사한 후 직접 편찬한 시문을 모은 것으로, 숭정(崇禎) 연간(1628-1644)에 간행되었다.
4. 내용
명대 문단을 풍미한 복고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시문집으로, 분량이 방대한 만큼 다양한 유형의 시문이 수록되어 있다. ‘부부(賦部)’는 소(騷)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대체로 한부(漢賦)의 특징을 띠고 있다. ‘시부(詩部)’에서도 《시경(詩經)》을 모방한 〈명아(明雅)〉, 악부(樂府)를 모방한 〈의고악부(擬古樂府)〉를 비롯해 고체시(古體詩)가 상당히 많아 복고주의적 문학관이 실제 창작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권23부터 53권 전반까지는 율시(律詩)와 절구(絶句)가 수록되어 있으며, 그 뒤에 잡체시(雜體詩)와 사(詞)가 수록되어 있다.
‘문부(文部)’의 경우, 서(序), 기(記), 서사(書事), 기행(紀行), 지(志), 전(傳), 묘지명(墓誌銘), 묘표(墓表), 신도비(神道碑), 묘비(墓碑), 비(碑), 행장(行狀), 송(頌), 찬(贊), 명(銘), 뇌(誄), 애사(哀辭), 제문(祭文), 주소(奏疏), 표(表), 공이(公移), 사론(史論), 논(論), 변(辨), 설(說), 잡기(雜記), 의(議), 독(讀), 잡저(雜著), 책(策), 서독(書牘), 잡문발(雜文跋), 묵적발(墨蹟跋), 비각발(碑刻跋), 묵각발(墨刻跋), 화발(畫跋) 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문학 방면에서는 〈증이우린서(贈李于鱗序)〉, 〈종자상집서(宗子相集序)〉, 〈장급사시집서(章給事詩集序)〉, 〈장초보집서(張肖甫集序)〉, 〈조선사한소서(朝鮮詞翰小序)〉, 〈이우린선생전(李于鱗先生傳)〉 등이 자주 인용되는 글이며, 관료로서의 경세의식을 보여주는 글로는 〈신명지방직수사의소(申明地方職守事宜疏)〉, 〈지진소(地震疏)〉, 〈탐관학민소(貪官虐民疏)〉, 〈산서책(山西策)〉, 〈호광책(湖廣策)〉 등이 주목할 만하다.
‘설부(說部)’에 수록된 《찰기내편(劄記內篇)》, 《찰기외편(劄記外篇)》, 《좌일(左逸)》, 《단장(短長)》, 《예원치언》, 《치언후록(卮言附錄)》, 《완위여편(宛委餘篇)》은 모두 단일 저작으로 간주할 만한 저술로, 왕세정이 운양순무(鄖陽巡撫)로 재직할 때 지은 것이다.
5. 가치와 영향
왕세정은 시에 있어서는 성당(盛唐)을 본받아야 한다고 했으나 질박한 한위(漢魏)의 고시(古詩)를 가장 높이 평가하였으며 송시(宋詩)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설리(說理)에 치우친 시를 ‘귀도(鬼道)’라 혹평하였는데, 이는 당시 시단에 만연한 대각체(臺閣體)와 도학체(道學體)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다. 왕세정의 문학관에 대해서는 호오가 크게 갈려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예남영(艾南英)이 《천용자집(天傭子集)》에서 한 말을 인용해 ‘왕세정의 문집이 출간된 뒤부터 배우는 자들이 마침내 왕세정을 표절하여 《사부고》에서 따와 글을 지었는데, 언뜻 보면 아름다워 보여도 자세히 보면 진부한 투식일 뿐’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당시 문단은 물론 조선과 에도시기 일본에서도 고문사파가 형성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였으며, 많은 문인들에게 전범(典範)으로 간주되었다. 한편 당시 강남 지역에서 성행하던 하서(賀序)의 일종인 수서(壽序)를 가장 많이 지은 작가이기도 한데, 이는 그가 복고만을 주창한 것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를 자신의 문학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했음을 보여주는 예증 가운데 하나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성당(盛唐)의 시는 기운이 완정하며, 소리는 아름다우면서도 화평하고 색은 고우면서도 전아하며, 힘은 침착하면서도 웅건하고 뜻은 혼융하여 자취가 없다. 때문에 성당이 시의 준칙이라 하는 것이다.[盛唐之於詩也 其氣完 其聲鏗以平 其色麗以雅 其力沈而雄 其意融而無迹 故曰盛唐其則也]” 《엄주산인사부고(弇州山人四部稿)》 권65 〈서여사시집서(徐汝思詩集序)〉
• “무릇 사람의 마음은 거짓 꾸밈이 아니라 본성에서 발현되니, 어진 사람은 항상 너무 과한 것이 문제고 모자란 사람은 항상 미치지 못한 것이 문제다.[凡人之情 不假飾而發於性 賢者恒任其過 而不肖者恒任其不及]” 《엄주산인사부고》 권61 〈위효렴고도통추수부모서(爲孝廉顧道通追壽父母序)〉
• “천지간에는 역사 아닌 것이 없다. ……《육경》은 역사 중에서 이치를 말한 것이다. 편년(編年)・본기(本紀)・지(志)・표(表)・서(書)・세가(世家)・열전(列傳)은 역사의 정문(正文)이다. 서(敘)・기(記)・갈(碣)・명(銘)・술(述)은 역사의 변문(變文)이다. 훈(訓)・고(誥)・명(命)・책(冊)・조(詔)・령(令)・교(敎)・차(劄)・상서(上書)・봉사(封事)・소(疏)・표(表)・계(啓)・전(牋)・탄사(彈事)・주기(奏記)・격(檄)・노포(露布)・이(移)・박(駁)・유(喩)・척독(尺牘)은 역사의 용(用(활용))이다. 논(論)・변(辨)・설(說)・해(解)・난(難)・의(議)는 역사의 실(實(열매))이다. 찬(贊)・송(頌)・잠(箴)・애(哀)・뇌(誄)・비(悲)는 역사의 화(華(꽃))이다. 그러나 송은 사시(四詩)의 하나이며, 찬・잠・명・애・뇌는 모두 그 여음(餘音)이다. 나는 이것들을 문장에 귀속시키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으레 사용하여 왔으므로 일단 대중의 설을 따른다.[天地間 無非史而已……六經 史之言理者也 曰編年曰本紀曰志曰表曰書曰世家曰列傳 史之正文也 曰敘曰記曰碣曰銘曰述 史之變文也 曰訓曰誥曰命曰冊曰詔曰令曰敎曰劄曰上書曰封事曰疏曰表曰啓曰牋曰彈事曰奏記曰檄曰露布曰移曰駁曰喻曰尺牘 史之用也 曰論曰辨曰說曰解曰難曰議 史之實也 曰贊曰頌曰箴曰哀曰誄曰悲 史之華也 雖然 頌即四詩之一 贊箴銘哀誄 皆其餘音也 附之於文 吾有所未安 惟其沿也 姑從衆] 《엄주산인사부고》 권144 〈예원치언(藝苑卮言) 1〉
(2) 색인어:엄주산인사부고(弇州山人四部稿), 엄주사부고(弇州四部稿), 예원치언(藝苑卮言), 왕세정(王世貞), 복고파(復古派), 후칠자(後七子)
(3) 참고문헌
• 王世貞年譜(鄭利華, 中國 復旦大學出版社, 1993)
• 前後七子硏究(鄭利華, 中國 上海古籍出版社, 2015)
• 王世貞書目類纂(許建平, 中國 鳳凰出版社, 2012)
• 王世貞文學硏究(酈波, 中國 中華書局, 2011)
• 明代前後七子의 詩論 硏究(원종례,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89)
• 17세기 명대문학론의 유입과 한문산문의 “조선적” 전개에 대한 일고(노경희, 《古典文學硏究》 27, 한국고전문학회, 2005)
【김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