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완적집(阮籍集)》은 위진(魏晉) 교체기의 대표적 문인 완적(阮籍)의 시와 문장을 후인이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다. 《완적집》에는 완적의 사상적 측면을 볼 수 있는 〈악론(樂論)〉, 〈통역론(通易論)〉, 〈달장론(達莊論)〉, 〈통로론(通老論)〉, 〈대인선생전(大人先生傳)〉 등 문장 외에, 90여 수에 달하는 〈영회시(詠懷詩)〉가 수록되어 있다. ‘영회(詠懷)’, 즉 ‘회포를 노래함’이라는 제목하에 묶인 그의 시들은 위(魏)에서 진(晉)으로의 정권 교체를 앞두고 권력 간 암투가 극에 달한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불우한 지식인의 내적 갈등과 고통을 오롯이 담고 있다.
2. 저자
(1) 성명:완적(阮籍)(210~263)
(2) 자(字)·별호(別號):자는 사종(嗣宗). 보병교위(步兵校尉)의 관직을 맡은 바 있어 ‘완보병(阮步兵)’으로 불리기도 한다.
(3) 출생지역:진류군(陳留郡) 위씨현(尉氏縣)(현 중국 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
(4) 주요활동과 생애
완적은 건안(建安) 문단을 대표하는 ‘건안칠자(建安七子)’ 중 한 사람인 완우(阮瑀)(?~212)의 아들이다.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어려운 형편에서 성장하였으나 완씨(阮氏)가 대대로 유학(儒學)을 가학(家學)으로 하는 유서 깊은 가문이었던 만큼 완적 또한 유가 문인의 소양을 기르고 일찍부터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뜻을 품었다. 하지만 당시 유약한 천자를 두고서 벌어진 대신들 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으로 수많은 지식인들이 정쟁의 제물로 희생되는 상황에서 완적을 비롯한 지식인들은 경세제민의 포부를 펼치기는커녕 일신의 안위도 예측할 수 없는 극도로 불안정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불합리한 현실에 맞서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타협할 수도 없는 끝없는 무기력감 속에서 완적은 혜강(嵇康)(223~262), 산도(山濤)(205~283) 등과 함께 자연을 벗 삼아 거문고를 타고 술에 취하고 청담(淸談)을 일삼으며 정치와는 거리를 두었다. 관직에 있더라도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고 방달(放達)의 태도로 일관하였다. 세간에서는 이들을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일컬었는데, 완적과 혜강을 중심으로 하는 죽림의 명사들은 허울뿐인 세속의 위선적인 예법을 조롱하고 질타하며 그에 대한 반항으로 기행에 가까운 일탈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들의 의도적인 일탈 행위는 암울한 현실에 대한 소극적인 저항이라 할 수도 있고, 또 정치적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도피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바탕에는 일체의 위선적 속박을 벗어나 ‘자연(自然)’의 결에 따르고자 하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추구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3. 서지사항
완적의 시문집은 양대(梁代)에는 《완적집(阮籍集)》 13권이 있었다 하는데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는 위(魏) 보병교위(步兵校尉) 《완적집》 10권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에는 《완적집》 5권, 《송사(宋史)》 〈예문지(藝文志)〉에는 10권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상으로 볼 때 완적의 시문은 수당대에 이미 적지 않게 망실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명대(明代) 이후 여러 각본(刻本)이 나왔는데, 명대의 각본은 크게 두 계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가정(嘉靖)(1522~1566) 연간 진덕문(陳德文)·범흠(范欽) 각본(刻本) 《완사종집(阮嗣宗集)》 2권 본으로 현재 전해지는 가장 이른 각본이다. 문(文)과 시(詩)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력(萬曆)(1573~1620)·천계(天啓)(1621~1627) 연간 왕사현(汪士賢)이 편각(編刻)한 《한위제명가집(漢魏諸名家集)》의 《완사종집》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천계(天啓)(1621~1627)·숭정(崇禎)(1628~1644) 연간 장섭(張燮)의 《칠십이가집(七十二家集)》에 수록된 《완보병집(阮步兵集)》 6권 본이다. 명말 장부(張溥)가 편집한 《한위육조백삼명가집(漢魏六朝百三名家集)》에 수록된 《완보병집》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1987년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출판한 진백군(陳伯君)의 《완적집교주(阮籍集校注)》는 범흠·진덕문 계열의 각본과 장섭 계열의 각본들을 참고하여 비교적 완전하게 현재 전하는 완적의 저작을 수록, 교주하였다. 《완적집교주》에는 사언(四言) 〈영회시(詠懷詩)〉 13수, 오언(五言) 〈영회시〉 82수 외에 부(賦) 6편, 전(牋) 1편, 주기(奏記) 2편, 서(書) 2편, 논(論) 4편, 전(傳) 1편, 찬(贊) 1편, 뢰(誄) 1편, 문(文) 1편, 첩(帖) 1편이 수록되어 있다.
4. 내용
완적의 대표작 오언 〈영회시〉는 82수에 달하는 장편의 조시(組詩)인데, 이는 어느 특정한 시기에 쓰인 것이 아니라 완적이 일생에 걸쳐서 마음에 감흥이 일어날 때마다 쓴 것을 모은 것으로 일종의 수감록(隨感錄)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내용은 혼탁한 시대에 대한 울분과 비판, 그리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내면의 고통과 적막감을 토로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영회시〉 외에 〈악론(樂論)〉, 〈통역론(通易論)〉, 〈통로론(通老論)〉, 〈달장론(達莊論)〉과 〈대인선생전(大人先生傳)〉 등을 주목할 수 있는데, 완적의 사상 및 위진(魏晉) 현학(玄學)의 한 경향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들이다.
5. 가치와 영향
우선 문학사적인 측면에서 완적의 오언 〈영회시〉는 오언시(五言詩)가 문인 서정의 주요 체제로 자리 잡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이전에도 오언시는 활발히 창작되었으나 여전히 악부(樂府) 민가(民歌)의 풍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완적에 이르러 비유와 상징을 통한 함축적인 언어로 내면의 깊은 정감을 집중적으로 노래하기 시작하면서 민가풍의 기존 면모를 일신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완적은 오언 조시(組詩) 체제로 내면적 울분과 갈등을 독백하듯이 토로하였는데, 이와 같은 유형의 창작은 이후 도잠(陶潛)(365?~427)의 〈음주(飮酒)〉 20수, 유신(庾信)(513~581)의 〈영회시(詠懷詩)〉 27수, 나아가 당대(唐代) 진자앙(陳子昻)(659?~700)의 〈감우(感遇)〉 38수, 이백(李白)(701~762)의 〈고풍(古風)〉 59수 등으로 이어졌다. 모두 완적 〈영회시〉의 맥을 잇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장자 사상에 관한 논의는 완적과 혜강 이전에는 거의 공백이나 다름없었다고 할 정도로 장자는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 받지 못하였는데 혜강과 완적에 와서 본격으로 장자를 논하기 시작하였다. 완적은 〈달장론〉과 〈대인선생전〉에서 장자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물(齊物)’과 ‘소요(逍遙)’의 의미를 말하였는데, 비록 장자 사상 자체보다는 장자 사상을 바탕으로 현실을 비판하는 데 주력하고 있어 이론적으로 장자 사상을 심화·확대하였다고 할 수는 없으나, 본격적으로 장자를 논하기 시작한 초기 저작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의의가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깊은 밤 잠 못 이루고, 일어나 금(琴)을 탄다. 엷은 휘장에 비치는 달빛, 맑은 바람 옷깃에 불어든다. 외기러기 먼 들녘에서 울고, 새들은 날아올라 북쪽 숲을 돌며 울어대고. 배회한들 무엇이 보이겠는가, 근심으로 혼자 상심할 밖에는.[夜中不能寐 起坐彈鳴琴 薄帷鑑明月 淸風吹我衿 孤鴻號外野 翔鳥鳴北林 徘徊將何見 憂思獨傷心]” 〈영회시(詠懷詩)〉 제1수•
• “봉지(蓬池)를 서성이다, 고개 돌려 대량(大梁)을 바라보니. 푸른 물결 큰 파도 일고, 잡초 무성한 들판은 아득하구나. 들짐승들 이리 저리 달아나고, 날짐승들 뒤따라 날아오르네. 때는 바야흐로 순화성이 정남에 이르고, 해와 달이 마주보는 15일. 삭풍은 매섭고, 음기에 서릿발 날리네. 나그네 길 벗할 이 하나 없이, 그저 서글픔만 안고 가네. 소인은 공을 계산하고, 군자는 한결같은 도리를 말한다 하였지. 어찌 초라한 삶이 한스러워, 이 노래를 길게 부르는 것이겠는가. [徘徊蓬池上 還顧望大梁 綠水揚洪波 曠野莽茫茫 走獸交橫馳 飛鳥相隨翔 是時鶉火中 日月正相望 朔風厲嚴寒 陰氣下微霜 羈旅無儔匹 俯仰懷哀傷 小人計其功 君子道其常 豈惜終憔悴 詠言著斯章] 〈영회시(詠懷詩)〉 제16수
• “현담(玄談)으로 울분을 달래고, 구속 없이 마음껏 번뇌를 푼다. 서북으로 부주(不周)산에 올라, 동남으로 등림(鄧林)을 굽어보매. 광야는 구주(九州)로 나눠지고, 큰 산 높은 봉우리들이 다투어 솟았다. 밥 한 술 시간이 만 년처럼 더디게 지나가다, 천 년 세월이 두어 번 넘실대는 물결에 흘러가기도 한다. 누가 옥과 돌이 같다고 하는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멈출 수가 없구나.[夸談快憤懣 情慵發煩心 西北登不周 東南望鄧林 曠野彌九州 崇山抗高岑 一餐度萬世 千歲再浮沈 誰云玉石同 淚下不可禁]” 〈영회시(詠懷詩)〉 제54수
(2) 색인어:완적(阮籍), 죽림칠현(竹林七賢), 영회시(詠懷詩), 오언시(五言詩), 위진현학(魏晉玄學), 청담(淸談), 방달(放達)
(3) 참고문헌
• 완적집(심규호 역주, 동문선)
• 영회시(심우영 옮김, 지식을 만드는 지식)
【안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