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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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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자안집(王子安集)》은 당(唐)나라 왕발(王勃)이 초당(初唐) 시기 재야문인으로 활동하면서 지었던 시문을 모아놓은 책이다. 《왕발집(王勃集)》이라고도 부른다.

2. 저자

(1) 성명 : 왕발(王勃)(650-676?).
(2) 자(字) 호(號) : 자는 자안(子安), 호는 미상(未詳)이다.
(3) 출생지역 : 강주(絳州) 용문(龍門). (現 산서성(山西省) 하진현(河津縣))
(4) 주요활동과 생애
그는 6세에 이미 문장을 잘 지었고, 9세에 안사고(顔師古)가 주를 단 《한서(漢書)》를 얻어 읽고 나서 《지하(指瑕)》라는 책을 지어 그 잘못을 지적하였다. 인덕(麟德) 원년(元年)(664)에 유상도(劉祥道)가 관내를 순행하는 중 상서하여 스스로를 알리니 류상도가 대신하여 조정에 표문(表文)을 올렸다. 그는 높은 성적으로 대책(對策)에 들었으나 나이가 어려서 조산랑(朝散郞)을 제수받았다. 패왕(沛王) 이현(李賢)이 왕발의 명성을 듣고서 자신의 왕부(王府)로 불러들여 시독(侍讀)으로 삼았다. 왕발은 이곳에서 패왕의 요청에 따라 《평대비략(平臺秘略)》 10편을 편찬하여 유가(儒家) 도덕(道德)에 기초한 군주(君主)의 이상향(理想像)을 제시해 주었다. 당시 제왕들이 닭싸움을 통하여 서로 승부내기를 하였는데, 왕발이 장난삼아 〈격영왕계문(檄英王鷄文)〉을 지었다. 고종(高宗)이 그것을 읽고서 크게 노하면서 ‘이는 정말로 재앙을 초래하는 징조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날로 왕발을 왕부에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왕부를 나와 조부 왕통(王通)의 유문을 보수 정리하였다. 이후 서남쪽으로 여행을 떠나 성도(成都)를 거쳐 구농(九隴)까지 갔다가 면주(綿州)를 거쳐 다시 장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장안에서 다시 괵주참군(虢州參軍)의 관직을 얻었지만 관노(官奴) 중에 죄를 지은 자를 숨겨주었다가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한 나머지 죽이고 말았다. 얼마 후 이 사실이 발각되어 죽음을 면키 어려웠으나 사면을 받고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그의 부친인 복치(福畤)는 이 일로 인하여 교지(交趾)로 좌천되고 말았다. 상원(上元) 2년(675)에 그는 부친으로 뵈려고 교지로 가는 도중에 장강을 내려가며 〈채련부(採蓮賦)〉를 지어 울적한 심정을 밝히기도 하였으나 바다를 건너던 배가 가라앉아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5) 주요저작
《전당시(全唐詩)》, 〈등왕각서(滕王閣序)〉, 〈속서(續書)〉가 전하고 있다.

3. 서지사항

양형(楊炯)은 〈왕발집서(王勃集序)〉에서 《왕발집(王勃集)》에 대해 “이십 권으로 분류할 수 있다.(分爲二十卷)”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구당서(舊唐書)》에서는 “왕발집 30권”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신당서(新唐書)》를 보아도 같은 내용이다. 송대(宋代)의 〈숭문총목(崇文總目)〉에도 역시 30권으로 되어 있다. 조공무(晁公武)의 《군재독서지(郡齋讀書志)》 권4 上에는 20권으로 기록하였고, 홍매(洪邁)의 《용재사필(容齋四筆)》 권5의 〈왕발문장(王勃文章)〉 조에서는 “왕발의 문장은 지금 27권이 남아있다.”라고 하였다. 《송사(宋史)》에는 “왕발집 30권 외에 왕발시 8권이 있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판본들은 후세에 모두 사라져서 그 정황을 알 길이 없다. 그의 문집은 명대(明代)에 이미 모두 산실되었다가 가정(嘉靖) 31년(1552)에 영가(永嘉) 장손업(張遜業)이 《왕발집(王勃集)》을 간행하여 겨우 시부(詩賦) 두 권을 얻게 되었다. 후인이 편집한 《왕자안집(王子安集)》 16권본이 왕발의 시문을 온전하게 수록하고 있다. 이 책은 숭정(崇禎) 연간에 장주(漳州) 장섭(張燮)이 영가(永嘉) 장손업본(張遜業本)을 기초로 하고 다시 《문원영화(文苑榮華)》 등의 책들을 수집하여 16권본으로 편찬하였다. 청(淸) 항가달(項家達)은 장섭의 16권본을 교간(校刊)하여 《초당사걸집(初唐四傑集)》을 합각(合刻)하였다. 청대(淸代)에 편찬한 《사고전서(四庫全書)》는 산동순무채진본(山東巡撫采進本)을 기초로 하여 《왕자안집(王子安集)》 16권을 수록하였다. 청(淸) 동치(同治) 13년에 오현(吳縣) 장청익(蔣淸翊)이 20권으로 나누어 《왕발전집전주(王勃全集箋注)》를 편찬하였다. 그 가운데 시 부분은 장손업본을 따랐고, 사부잡문(詞賦雜文)은 《문원영화》 등을 근거로 하여 왕발의 시문을 상세하게 주석한 것으로 최초의 주본(注本)이라고 하겠다.

4. 내용

초당 중기 문인인 왕발의 시문을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권1 부(賦), 권2는 부(賦), 사언고시(四言古詩), 오언고시(五言古詩), 칠언고시(七言古詩), 육언고시(六言古詩), 권3은 오언율시(五言律詩), 오언배율(五言排律), 오언절구(五言絶句), 칠언절구(七言絶句), 권4는 서(序), 권5는 서(序), 권6은 서(序), 권7은 서(序), 권8은 표(表), 권9는 서(書), 권10은 논(論), 권11은 송(頌), 권12는 송(頌), 권13은 비(碑), 권14는 비(碑), 권15는 비(碑), 권16은 비(碑)로 구성되어 있다.


5. 가치와 영향

《왕자안집》의 저자인 왕발은 초당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는 명문 가문의 자손이었고 조숙한 나이에 이미 문재(文才)를 떨치어 문단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궁정에서 지은 시문이 고종(高宗)의 심기를 건드려 벼슬길과 멀어졌고 부친도 연루되어 멀리 좌전을 당했으며 부친을 뵈러 가는 도중에 결국 물에 빠져 사망하게 되었다. 그의 시는 중국문학에서 근체시 격률 발전에 커다란 공을 세웠다고 평가된다. 특히 오언율시와 오언절구의 형식이 왕발에 의해 격률이 갖춰지게 되었으니 당시 시단에 끼친 공로는 지대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근체시 작품들은 초당 말엽의 궁정문인들에게 계승되었고, 성당에 이르러 두보에 의해 근체시 형식이 완비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삼진이 둘러싸고 있는 장안 성궐에서, 바람과 안개 아득한 오진을 바라본다. 그대와 이별하는 이 마음, 우린 다 같이 버슬살이로 떠도는 사람이지. 해내에 지기만 있다면야, 하늘 끝도 이웃과 같으리니. 헤어지는 갈림길에서, 아녀자와 같이 눈물로 수건을 적시지 마세.[城闕輔三秦, 風煙望五津. 與君離別意, 同是宦遊人.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 無爲在歧路, 兒女共霑巾.]
• “거문고를 안고 들의 문을 열어놓고, 술잔을 잡고 정인을 대하고 있네. 숲속의 연못과 꽃핀 달밤은, 또 다른 하나의 봄세계.[抱琴開野室, 携酒對情人. 林塘花月下, 別是一家春.]” 〈산비야좌(山扉夜坐)〉
• “구월구일은 중양절이라, 문을 여니 국화가 피어있네. 누가 술을 보낸 것인지 모르겠는데, 이 곳이 마치 도연명의 집 같구나.[九日重陽節, 開門有菊花. 不知來送酒, 若個是陶家.]“ 〈구일(九日)〉
• “지는 노을 외로운 오리와 함께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가지 색이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 〈등왕각서(縢王閣序)〉
(2) 색인어
《왕자안집(王子安集)》, 왕발, 등왕각서, 초당사걸, 양형(楊炯), 〈송두소부지임촉주〉, 왕적(王積)
(3) 참고문헌
• 《王子安集註》(蔣淸翊, 上海古籍出版社)
• 《初唐四傑詩選》(倪木興, 人民文學出版社)
• 《增訂四庫簡明目錄標注》(卲懿辰, 上海古籍出版社)
• 《初唐四傑詩選》(倪木興, 人民文學出版社)
• 《初唐四傑詩選》(任國緖, 陝西人民出版社)
• 《初唐四傑硏究》(駱祥髮, 東方出版社)
• 《初唐四傑年譜》(張志烈, 巴蜀書社)
• 《唐詩史硏究》(安炳國, 에피스테메)
• 《舊唐書》(景仁文化社編)
• 《新唐書》(景仁文化社編)
• 《全唐詩》(北京 中華書局)
• 《中國詩律學》(송용준 옮김, 소명출판)
• 《唐詩硏究》(沈松勤, 胡可先, 陶然著 折江大學出版社)
• 《唐詩槪論》(安炳國編著, 靑年社)
• 《唐詩通論》(劉開揚, 臺北,木鐸出版社)

【안병국】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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