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명(明)나라 시기 원곡(元曲) 선본(選本) 중에서 《원곡선(元曲選)》이 가장 유행하였고, 또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보았다. 원극(元劇)의 주요 작가와 작품이 거의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원곡선》 안에는 편자의 정리와 교정을 거쳐 과(科)와 백(白)이 모두 갖추어져 읽기에 가장 편하다.
2. 저·편자
(1) 성명:장무순(臧懋循)(1550~1620)
(2) 자(字)·별호(別號):자는 진숙(晉叔), 호는 고저(顧渚)
(3) 출생지역:절강성(浙江省) 장흥현(長興縣)
(4) 주요활동과 생애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다섯 살 때 어른들과 능히 대련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세 때 부친이 별세 한 후에도 계속 과거에 응시했다. 24세 때 향시에서 급제했으나 그 후 두 번의 낙제 끝에 31세에 진사가 되었다. 이후 관직생활이 시작되었다. 승상 요광유(姚光裕)는 그의 고향으로 보내려고 했으나 장무순은 이를 거절하여 승상의 눈 밖에 났다. 형주부학교수(荊州府學敎敎授)를 거쳐 남경국자감박사(南京國子監博士)로 옮겼다. 행동이 거침없고 신중하지 못해 탄핵을 받고 귀향했다. 탕현조(湯顯祖), 왕세정(王世貞) 등과 교유했다. 박학다식했고 시문(詩文)에 뛰어났으며, 특히 곡(曲)에 뛰어나 오가(吳稼), 모유(茅維), 오몽양(吳夢陽) 등과 더불어 ‘사자(四子)’로 불렸다.
57세 때 조학전(曹學全), 진방첨(陳邦瞻) 등 10여 명과 금릉사(金陵社)를 결성하였다. 만력(萬曆) 연간에 순식간에 이름이 나고, 현존하는 전겸익(錢謙益)의 《열조시집(列朝詩集)》, 주이존(朱彝尊)의 《명시종(明詩綜)》, 진전(陳田)의 《명시기사(明詩紀事)》에 모두 장무순의 작품이 실려 있다.
(5) 주요저작:시문집인 《부포당집(負苞當集)》과 《고시소(古詩所)》, 《당시소(唐詩所)》 등이 있다. 출판한 서적은 주로 문학류로 대작들이었다. 《원곡선(元曲選)》을 편찬했는데, 잡극(雜劇) 1백 편을 수록했다. 그 외에 《고일사(古逸詞)》 24권,《고시선》 56권,《당시선(唐詩選)》 47권,《원곡선(元曲選)》 100권,《교정고본금차기(校正古本金釵記)》, 《옥명당사몽(玉茗堂四夢)》, 《육박쇄금(六博碎金)》 등을 출간했다.
3. 서지사항
원대의 작품 94종과 명초의 작품 6종, 도합 100종이 수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원잡극이 1백 5,60종이므로 대부분의 작품이 수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장무순 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 외에 각지의 소장자들을 방문하여 좋은 선본을 구하고, 본인이 100종을 선별하고 교정까지도 보았다. 1615년, 1616년 두해에 걸쳐 간행하였다. 민국 후에 수수삼(隋樹森)이 《원곡선외편(元曲選外編)》을 편찬하여 《원곡선》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 62종을 수록하였다.
4. 내용
《원곡선》에는 원대 사람의 작품 94종과 명초 사람의 작품 6종, 도합 100종이 수록되어 있다. 100종을 다 소개할 수는 없고 중요작품과 작가를 언급해본다. 우선 ‘원곡사대가(元曲四大家)’인 관한경(關漢卿)·마치원(馬致遠)·정광조(鄭光祖)·백박(白樸)의 작품이 있다. 관한경은 잡극의 대가로 당시에 명성이 자자하였다. 사회책임감이 강했던 작가로 민중의 고통을 동정하였다. 그의 작품으로는 《두아원(竇娥冤)》, 《구풍진(救風塵)》, 《망강정(望江亭)》, 《노재랑(魯齋郎)》, 《호접몽(蝴蝶夢)》 등이 있다. 그의 역사극 《단도회(單刀會)》와 애정극 《배월정(拜月亭)》은 중국 희곡사상 불후의 명작이다. 《오동우(梧桐雨)》와 《장두마상(牆頭馬上)》은 백박의 대표작이다.
마치원은 ‘곡장원(曲狀元)’이라고 칭해지는데 대표작은 《한궁추(漢宮秋)》다.
정광조는 후기 극작가로 유명작품은 《천녀유혼(倩女幽魂)》이 있다. 이 작품은 《서상기》, 《배월정》, 《장두마상》과 함께 원잡극의 4대 애정비극이라고 한다.
왕실보의 대표작은 《서상기》로 최앵앵(崔鶯鶯)과 장생(張生)의 애정혼인 이야기다.
역사를 제재로 한 극본이 원잡극에는 많은데 기군상(紀君祥)의 《조씨고아(趙氏孤兒)》도 역사극의 걸작이다.
상중현(尚仲賢)의 《유의전서(柳毅傳書)》와 이호고(李好古)의 《장생자해(張生煮海)》는 원대잡극 중 신화를 제재로 한 모범작품이다.
원잡극중에는 가정생활을 묘사한 극본도 많은데 양현지(楊顯之)의 《소상야우(瀟湘夜雨)》,석군보(石君寶)의 《추호희처(秋胡戲妻)》가 있다.
명대 후기는 사회경제가 번영하여 제련, 방직, 자기 등이 발전하였으며 자본주의의 부분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문화사업도 마찬가지였다. 대량으로 사람을 고용할 수 있어서 출판업을 분업으로 할 수 있었다. 당시에 모진(毛晉)(《육십종곡(六十種曲)》 편찬자)의 집안에는 노동자들의 숙소가 있었다고 하는데, 장무순 역시 수많은 농민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사회적인 조건으로 인해 《원곡선》이 출간될 수 있었다.
5. 가치와 영향
《원곡선》은 좋은 작품을 후대인이 편집하여 보존해온 중국고대 희곡문학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으며 잡극의 총집이다. 이 작업은 마치 양(梁)나라 소통(蕭統)이 《문선(文選)》을 편집한 것과 같이 훌륭한 일이다. 이후 모진(毛晉)이 편집 출판한 《육십종곡》과 함께 일반인이 읽을 수도 있고 동시에 희곡연구자의 필독서가 되었다. 장무순의 편찬 역시 성공적이어서 원잡극을 당시(唐詩)나 송사(宋史)처럼 문학사에 크게 자리매김하도록 하였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양귀비는 새벽녘에 여지향에 취하고, 당 현종(玄宗)은 가을밤에 오동나무의 빗소리 듣누나.[楊貴妃曉日荔枝香 唐明皇秋夜梧桐雨]” 〈당명황추야오동우(唐明皇秋夜梧桐雨) 정명(正名)〉
• “나리께서는 더위가 한창이니 눈이 올 리 없다하는군요. 추연의 일로 오뉴월에 서리 내렸다는 말도 못 들어보셨나요? 만일 제 원망이 불꽃같다면 분명 유월에 얼음꽃이 솜처럼 내려서 제 송장을 덮을 겁니다.[你道是暑氣暄 不是那下雪天 豈不聞飛霜六月因鄒衍 若果有一腔怨氣噴如火 定要感的六出冰花滾似錦 免著我屍骸現.]” 〈감천동지두아원(感天動地竇娥冤) 3절(折)〉
(2) 색인어:장무순(臧懋循), 원곡선(元曲選), 한궁추(漢宮秋), 오동우(梧桐雨), 장두마상(牆頭馬上), 추호희처(秋胡戲妻), 호접몽(蝴蝶夢), 두아원(竇娥冤), 천녀유혼(倩女幽魂)
(3) 참고문헌
• 元曲選(4冊)(臧晉叔 編, 中華書局)
• 元曲選校註(王學奇主編, 河北敎育出版社)
• 古本戱曲叢刊(編輯委員會編, 鄭振鐸 주관)
• 원잡극선(김우석, 홍영림 공역, 을유문화사)
【강영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