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은 만당(晩唐)의 시인이자 시론가인 사공도(司空圖)의 저작이다. 시의 풍격(風格)과 의경(意境)을 2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서술한 본서는, 도가와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자연’, ‘충담’ 등의 심미적 관점을 제시하며 중국시학의 미학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2. 저자
(1)성명:사공도(司空圖)(837~918)
(2)자(字)·별호(別號):자는 표성(表聖)이며, 만년에 지비자(知非子), 내욕거사(耐辱居士)라 자칭했다.
(3)출생지역:하중(河中) 우향(虞鄕)(현 산서성(山西省) 운성(運城) 영제(永濟))
(4)주요활동과 생애
사공도는 당나라 의종(懿宗) 함통(咸通) 10년(869)에 과거에 급제했고, 광록시(光祿寺) 주부(主簿),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예부낭중(禮部郞中), 지제고(知制誥),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역임했다. 그런데 황소(黃巢)의 난 이후 조정의 힘이 약해지고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중조산(中條山) 왕관곡(王官谷)에 은거했다. 이후 줄곧 조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고, 당 애제(哀帝)가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끼니를 끊고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난세에 살았던 사공도는 유(儒)·불(佛)·도(道) 3가의 사상을 겸비했지만 은거 뒤에는 도가와 불가에 더욱 침잠했다. 이것은 그의 처세뿐만 아니라 시 창작 및 시 이론에도 영향을 끼쳤다. 시인으로서의 위치가 그리 두드러지지 않지만, 산림 생활의 정취나 시대 상황에 대한 슬픔을 노래하며 한적하고 담원한 격조를 보이는 작품을 주로 남겼다.
(5)주요저작:《사공표성문집(司空表聖文集)》 10권, 《사공표성시집(司空表聖詩集)》 5권, 《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 1권이 있다.
3. 서지사항
사공도의 《이십사시품》은 《시품》이라고도 하며 한 권이다. 책 전체를 통해 시의 풍격과 의경을 24가지 유형인 ‘웅혼(雄渾)’, ‘충담(沖淡)’, ‘섬농(纖穠)’, ‘침착(沈着)’, ‘고고(高古)’, ‘전아(典雅)’, ‘세련(洗煉)’, ‘경건(勁健)’, ‘기려(綺麗)’, ‘자연(自然)’, ‘함축(含蓄)’, ‘호방(豪放)’, ‘정신(精神)’, ‘진밀(縝密)’, ‘소야(疏野)’, ‘청기(淸奇)’, ‘위곡(委曲)’, ‘실경(實境)’, ‘비개(悲慨)’, ‘형용(形容)’, ‘초예(超詣)’, ‘표일(飄逸)’, ‘광달(曠達)’, ‘유동(流動)’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각 풍격과 의경마다 12구 4언의 운어(韻語)로 묘사와 해석을 시도했다.
시론 등과 관련하여 책 안에 수록되어 있던 《이십사시품》은 많은 판본이 전하는데 대표적인 판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명 정통(正統) 연간(1436~1449) 사잠(史潛) 판각의 《신편명현시법(新編名賢詩法)》 내의 《우시서시법(虞侍書詩法)》과 성화(成化) 2년(1466)에 간행한 《시가일지(詩家一指)》 내의 《이십사시품》(현재 조선(朝鮮) 간행본만 전함), 성화 16년(1480) 양성교(楊成校) 간행의 《시법(詩法)》(이후 《시가일지》에서 분리해 사공도와 《이십사시품》을 연계시킨 단독 판본들이 명 후기 모진(毛晉)‧정곽(鄭郭)‧비경우(費經虞) 등에 의해 간행됨), 청 건륭 35년(1770)의 《역대시화(歷代詩話)》본, 건륭 59년(1794)의 《용위비서(龍威秘書)》본, 가경 10년(1805)의 《학진토원(學津討原)》본 등이 있다.
4. 내용
사공도의 《이십사시품》은 시 이론 및 비평 저작으로서 형식적으로 매우 독특하다. 24가지 시의 풍격과 의경을 설명하면서도 추상적인 경계 설정이나 비논리적인 해석은 전혀 없고, 시적 언어와 시적 상상으로 각 풍격과 의경을 구현함으로써 독자들이 복잡한 심미적 체험을 경유해 스스로 그 특정한 취지를 파악하게끔 하였다.
《이십사시품》은 다양한 시품에 대해 서술을 전개하면서도 비교적 일관된 미학적 관점을 견지하였다. 그리고 ‘자연(自然)’을 중시하여 자연을 각 시품들에 대해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내적 요건으로 보았으며, 담원(淡遠)하고 초일(超逸)한 심미적 품격을 각 시품들 속에 함유시켰다.
그밖에 주목할 만한 내용으로 허(虛)와 실(實)이 상생하는 의경의 특징, 감정과 외적 사물의 결합으로 조화로운 이미지의 구성 등을 거론했다.
5. 가치와 영향
사공도의 《이십사시품》은 깨달음을 중시하고 사변(事變)을 경시하는 중국 고대 시 이론의 전통을 더 극단적인 경지로 몰고 가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성황을 이뤘던 당대(唐代) 시 창작에 영향을 받아, 다양한 시 풍격과 의경을 세밀하게 귀납·개괄함으로써 대단히 총체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시의 풍격과 의경을 해설하고 시의 예술적 규칙을 탐색한 성과는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남송의 엄우(嚴羽)와 청대 왕사정(王士禎)의 시론은 모두 사공도의 《이십사시품》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이십사시품》의 특수한 형식을 모방한 작품들도 후대에 많이 창작되었다. 청대 원매(袁枚)의 《속시품(續詩品)》, 고한(顧閑)의 《보시품(補詩品)》, 양기생(楊虁生)의 《속사품(續詞品)》, 마영조(馬榮祖)의 《문송(文頌)》, 허봉은(許奉恩)의 《문품(文品)》, 위겸승(魏謙升)의 《이십사부품(二十四賦品)》 등이 모두 이에 속한다.
한편 《이십사시품》은 18세기 조선의 문예 전반에도 다양한 영향을 끼쳤는데, 겸재 정선의 《사공도시품첩(司空圖詩品帖)》이나 정약용의 《다산송철선증언첩(茶山送鐵船贈言帖)》 등이 모두 그 구체적 사실을 증명한다. 이 밖에도 이광사, 신위, 김정희, 오세창 등이 미학의 근거로 ‘시품’을 활용했다.
6. 참고사항
(1)명언
• “한 글자도 쓰기 전에 풍류를 다 얻는다.[不著一字 盡得風流]” 〈함축(含蓄)〉
• “유지할 때 억지가 없어야 다가옴이 끝이 없다.[持之匪强 來之無窮]” 〈웅혼(雄渾)〉
• “본성이 닿은 곳은 오묘하여 스스로 찾지 않아도 된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것은 조용히 스치는 미묘한 음이다.[情性所至 妙不自尋 遇之自天 泠然希音]” 〈실경(實境)〉
(2)색인어:이십사시품(二十四詩品), 사공도(司空圖), 만당(晩唐), 사언시(四言詩), 시론(詩論), 의경(意境), 자연(自然), 충담(沖淡)
(3)참고문헌
• 궁극의 시학(안대회, 문학동네)
• 譯註 歷代詩話(김규선, 소명출판)
• 二十四詩品譯注評析 (杜黎均, 北京出版社)
• 司空圖詩品解說(祖保泉, 黃山書社)
• 詩品通釋(曹冷泉, 三秦出版社)
【김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