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이의산문집》의 저자 이상은(李商隱)은 당(唐)나라 말기의 시인이자 산문가이다. 본서는 전 10권으로 1708년에 처음 간행되어 후에 문연각(文淵閣) 사고전서(四庫全書)에 포함되었다. 전주본(箋注本) 형태의 이상은 문집으로, 서수곡(徐樹穀)과 서형(徐炯) 두 사람이 이상은의 변려문(騈儷文)과 산문을 한데 모아 간단한 주석을 붙였다.
2. 저자
(1) 성명:이상은(李商隱)(812~858)
(2) 자(字)·별호(別號):자는 의산(義山), 호는 옥계생(玉溪)(谿)生, 번남생(樊南生).
(3) 출생지역:형양(滎陽)(현 중국 하남성(河南省) 형양(滎陽)).
(4) 주요활동과 생애
이상은은 시와 변려문(騈儷文)에 모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으나, 당쟁(黨爭)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일생의 상당 기간 동안 막부(幕府)를 전전하다 47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면서 영호초(令狐楚)와 최융(崔戎)의 막부에서 변려문 형식의 공문서를 작성하는 일에 종사하다, 과거에 급제한 뒤에는 미관말직을 전전했다. 그러던 중 영호초와 당파를 달리 했던 왕무원(王茂元)의 사위가 된 일이 배은망덕한 행위로 몰려 배척당하고, 정아(鄭亞), 노홍정(盧弘正), 유중영(柳仲郢) 등의 막부를 오가다 생을 마감했다.
이상은은 10세 때 부친을 여의고 숙부에게 고문(古文)을 배웠고, 16세 때는 〈재론(才論)〉과 〈성론(聖論)〉 두 편을 지어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의 재주를 높이 평가한 영호초의 막부로 들어가 그로부터 공문서의 문체였던 변려문을 배웠다. 《번남갑집(樊南甲集)》의 서문 등에 따르면 그가 지은 변려문은 800편이 넘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353편에 불과하다. 변려문에 능했던 까닭에 여러 막부의 절도사(節度使)로부터 공문서 작성을 담당하는 속관(屬官)으로 초빙을 받았다.
(5) 주요저작:《이의산시집(李義山詩集)》, 《번남갑집(樊南甲集)》, 《번남을집(樊南乙集)》 등. 그의 산문집은 간본(刊本)이 전해지지 않다가 청대에 이르러 서수곡(徐樹穀) 형제의 《이의산문집전주(李義山文集箋注)》 10권과 풍호(馮浩)의 《번남문집상주(樊南文集詳注)》 8권 등이 간행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3. 서지사항
이상은은 막부에 근무하면서 두 차례 자신의 글을 모아 문집을 펴낸 적이 있고, 이를 저본으로 여러 판본이 나왔으나 시대가 흐르면서 모두 산실되었다. 그러다 청나라 때인 1644년에 수초본(手抄本) 《이의산문집》 5권이 나와 민국(民國) 시기에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영인 출판했다. 전주본(箋注本) 《이의산문집》은 모두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1,2는 표(表), 권3은 장(狀), 권4,5는 계(啓), 권6,7은 제문(祭文), 권8은 축문(祝文)과 잠(箴), 권9는 서(序), 권10은 기타 잡문을 실었다. 서수곡(徐樹穀)과 서형(徐炯) 형제가 《이의산문집》에 붙인 주석 중에는 다소 번잡하거나 잘못된 부분도 없지 않았다. 그래서 풍호(馮浩)가 《이의산문집》을 보완한 것이 《번남문집상주(樊南文集詳注)》다. 그러나 풍호는 미처 《전당문(全唐文)》과 《영락대전(永樂大全)》에 수집된 이상은의 산문 203편을 확인하지 못했기에, 전진륜(錢振倫) 형제가 이를 묶어 《번남문집보편(樊南文集補編)》을 펴냈다. 1988년에 《번남문집상주》와 《번남문집보편》을 아우른 《번남문집》이 간행되면서 《이의산문집》이 크게 보완되었다.
4. 내용
《이의산문집》에 실린 이상은의 글은 모두 149편으로, 현전하는 353편의 40퍼센트에 상당한다. 계(啓)가 41편으로 가장 많고, 장(狀) 25편, 표(表) 23편, 축문 22편, 제문 19편 등이 다음을 차지한다. 이 가운데 90퍼센트 이상이 변려문으로서, 이상은의 능수능란한 솜씨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변려문의 별칭(別稱)이라 할 ‘사륙문(四六文)’이라는 말이 이상은의 《번남사륙갑집(樊南四六甲集)》과 《번남사륙을집(樊南四六乙集)》에서 유래되었듯, 변려문은 이상은 산문을 대표하는 형식이다.
《이의산문집》에 실린 이상은 산문의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먼저 대구(對句)의 사용이 대단히 치밀하다. 서로 짝을 이루는 표현을 찾아내는 능력이 기발할 뿐만 아니라 허자(虛字)를 교묘하게 사용해 감칠맛을 더한다. 다음으로 전고(典故)를 활용하는 수준이 뛰어나고 화려하다. 고사를 다양하게 인용하면서도 전하고자 하는 뜻과 조화를 이루는 데다 정면(正面)과 반면(反面)의 활용을 넘나드는 솜씨가 뛰어나다. 또 이러한 전고를 서사, 서정, 의론(議論)과 결합시켜 글의 흐름이 매끄럽고 아름답다. 한편으로 이상은은 시인으로서의 감수성도 산문에 십분 발휘해 서정성이 짙은 산문이 적지 않다.
5. 가치와 영향
《이의산문집》은 이상은의 산문을 제대로 모은 첫 번째 간본(刊本)이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또 여기에 붙인 주석이 간명하고 정확해 후대의 여러 주석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후로 청나라 풍호(馮浩)의 《번남문집상주(樊南文集詳注)》와 현대 학자 유학개(劉學鍇)와 여서성(余恕誠)의 《이상은문편년교주(李商隱文編年校注)》 등이 나와 이상은의 산문을 350여 편까지 확충했으나, 이상은 산문의 본령은 이미 《이의산문집》에서 충분히 드러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상은의 시에 비하면 산문의 가치나 영향은 그에 다소 못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의산문집》에 실린 〈헌시랑거록공계(獻侍郎巨鹿公啓)〉, 〈상최화주서(上崔華州書)〉 등을 중심으로 이상은의 문학론을 자세하게 탐구해 왔으며, 이는 조선의 이수광(李睟光)도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하운청 등의 연구자가 《이의산문집》에 실린 글을 단편적으로 연구했고, 일본에서는 아라이 켄(荒井健)이 《이의산문색인(李義山文索引)》 등의 관련 연구서를 펴내며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6. 참고사항
(1) 명구
• “저는 글을 써도 뛰어난 자질이 아니고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이 반반도 못되나, 어렵게 작은 이름을 이루고 간신히 9품의 벼슬을 하였는데, 글을 올려 간신을 지적하는 것은 멀리 매복(梅福)에게 부끄럽고, 몽둥이를 들어 위세를 드러내는 것은 가까이 무제(武帝)에게 창피합니다.[某文非勝質 黠不半癡 辛勤一名 契闊九品 獻書指佞 遠愧南昌 懸棒申威 近慚北部]” 〈권3, 상화주주시랑장(上華州周侍郞狀)〉
• “아, 옛날에 천금을 중시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고 지름이 한 자인 보배도 오히려 가볍게 여긴 사람이 있었으며, 어떤 이는 백 명을 감당할 인물로 불리고 어떤 이는 만인을 대적할 장수로 여겨졌다.[嗚呼 古有不重千金 殊輕尺璧 或號百夫之防 或作萬人之敵]” 〈권6, 제장서기문(祭張書記文)〉
• “만약 진실로 그러하다면 하늘은 높고 아득하고 상제는 존엄하니, 또한 이 세상을 능가하는 인물과 문채(文采)가 있어야 마땅할 것이거늘, 어찌 유독 이하(李賀)에게만 마음을 써 그를 오래 살지 못하도록 했더란 말인가?[苟信然 則天之高邈 帝之尊嚴 亦宜有人物文采愈此世者 何獨眷眷於長吉而使其不壽耶]” 〈권10, 이하소전(李賀小傳)〉
(2) 색인어:이상은(李商隱), 이의산문집(李義山文集), 번남문집(樊南文集), 번남갑집(樊南甲集), 번남을집(樊南乙集), 변려문(騈儷文), 사륙문(四六文)
(3) 참고문헌
• 李義山文集(文淵閣 四庫全書)
• 樊南文集詳注(馮浩, 上海古籍出版社)
• 李商隱文編年校注(劉學鍇‧余恕誠, 中華書局)
• 騈體文鈔(李兆洛, 商務印書館)
• 李商隱碑銘考(河運淸, 人文科學硏究)
• 李商隱文集版本考略(匙亞楠, 牡丹江大學學報)
• 李商隠詩文論(加固理一郎, 筑波大学 博士論文)
【김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