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증국번(曾國藩)은 청말(淸末) 정치가·군사가·학자로 태평천국운동(太平天國運動)을 진압하고 양무운동(洋務運動)을 추진한 핵심인물이다. 본서는 증국번의 학술(學術)·시문(詩文)과 수제(修齊)·치평(治平)·군사(軍事)의 경세(經世) 등 ‘삼불휴(三不虧)’의 업적이 결집된 책으로 후대의 학자와 정치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 저자
(1) 성명:증국번(曾國藩)(1811~1872)
(2) 자(字)·별호(別號):자가 백함(伯涵), 호가 척생(滌生), 시호가 문정(文正)
(3) 출생지역:호남성(江蘇省) 장사부(長沙府) 상향현(湘鄕縣)(현 중국 호남성 누저시(婁底市) 쌍봉현(雙峰縣))
(4) 주요 활동과 생애
1838년에 진사(進士)로 한림(翰林)의 관직들을 거쳐 예부(禮部)와 병부(兵部)의 우시랑(右侍郞)이 되었다. 1852년 모친의 복상 가운데 황명으로 상군(湘軍)을 편성, 병부시랑(兵部侍郎)·양강총독(兩江總督)으로 군사를 거느려 1864년 태평천국(太平天國)을 무너뜨리고 의용후(毅勇侯), 태자태보(太子太保), 무영전대학사(武英殿大學士)에 봉해졌다. 동시에 양무운동(洋務運動)을 추진하여 안경(安慶)과 상해(上海)에 무기군수공장을 설립하고 처음으로 미국에 유학생을 파견하였다. 직례총독(直隸總督)으로 천진교안(天津敎案)을 진압하였고, 양강총독으로 재임하다 병사하였다.
그의 학술은 송학적(宋學的) 의리(義理)를 중심으로 고문적(古文的) 사장(詞章), 한학적(漢學的) 고증(考證)과 함께 경제(經濟)에 예학(禮學)을 절충한 것이었다. 이는 당감(唐鑑) 왜인(倭仁) 등 주자학에 경도된 호남(湖南)의 학풍과 동성파(桐城派) 요내(姚鼐)의 학술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그의 주자학을 중심으로 하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실학은 태평천국운동의 진압과 양무운동을 추진하는 기반이 되었다.
(5) 주요저작:《십팔가시초(十八家詩鈔)》, 《경사백가잡초(經史百家雜鈔)》, 《시문집(詩文集)》 등이 있고, 기타 《주고(奏稿)》, 《독서록(讀書錄)》, 《서찰(書札)[書信]》, 《일기(日記)》, 《가서(家書)》, 《가훈(家訓)》 등이 있다. 《증문정공전집》에 전한다.
3. 서지사항
본서는 증국번의 아우 증국전(曾國荃), 이한장(李瀚章)·이홍장(李鴻章) 형제, 제자 여서창(黎庶昌) 등이 편찬하고 교감하여 1876년 전충서국(傳忠書局)에서 158권으로 발행되었다. 이어 《가서》, 《가훈》, 《대사기(大事記)》, 《영애록(榮哀錄)》 등이 추가되었다. 전충서국본이 발행된 60년 뒤 장사중정도서관(長沙中正圖書館)에서 중간(重刊)되었다.
1877년의 전충서국본과 1888년의 홍문서국본(鴻文書局本)에는 《경사백가잡초》, 《경사백가간편(經史百家簡編)》, 《십팔가시(十八家詩)》, 《시문집》 등이 포함되어 있다(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소의 해제 참조). 1928년 상해 홍보재서국본(鴻寶齋書局本)(13권)은 《구궐재독서록(求闕齋讀書錄)》, 《비독(批牘)》, 《일기》, 《가훈》, 《가서》, 《대사기》, 《잡저(雜著)》, 《연보(年譜)》로 구성되어 있다. 2011년 중국서점본(中國書店本)은 전충서국본을 간자체(簡字體)로 교감한 것이다. 《수권(首卷)》 1권, 《주고》 30권, 《서찰》 33권, 《십팔가시초》 28권, 《경사백가잡초》 26권, 《비독》 6권, 《문집》 4권, 《시집》 4권, 《명원당논문(鳴原堂論文)》 2권, 《경사백가간편》 2권, 《구궐재독서록》 10권, 《구궐재일기류초(求闕齋日記類抄)》 2권, 《연보》 10권 등 158권, 12책이다. 그밖에 대만에서 1991년 대만(臺灣) 세계서국(世界書局本) 《증문정공전집》 5책도 있다. 1책에는 《문집》 《시집》 《서독(書牘)》 2·3책에는 《주고》, 4책에는 《가서》 《가훈》 《일기》, 5책에는 《비독》 《잡저》 《증국번전(曾國藩傳)》 《연보》가 실려 있다. 본서는 이본과 출판사가 다양하고, 목차나 내용이 달라 일괄적으로 상론하기 어렵다. 국내에는 본서의 번역서가 없고, 《가서》 가운데 주로 아들 등에게 보낸 일부만을 발췌하여 번역한 《증국번 가서》가 있다.
4. 내용
1995년 악록서국본(岳麓書局本)(2쇄) 《증국번전집》 30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본서는 황제에게 올리는 글의 초고로 《주고》 1~12권, 예하 관서나 관료에게 보내는 공문서인 《비독》 13권, 《시문》 14권, 《독서록》 15권, 《일기》 16~18권, 《가서》 19~20권, 《서신(書信)》 21권~3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시문》에는 《잡저》, 《명원당논문》, 《맹자요록(孟子要錄)》이 포함되어 있다.
《주고》와 《비독》은 청말 중앙과 지방의 정치, 태평천국 진압군의 군사 활동, 양무운동과 반기독교운동의 추진 등 근대 중국의 사정을 이해하는 중요 자료이다. 《시문》 《독서록》 《가서》에는 고증학에 비판적인 증국번의 학술과 청말 학계의 동향뿐만 아니라 호남 사대부 가문의 독서와 교육, 수신과 제가, 경제 문제와 일상생활상 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기》와 《서신》은 학문 이외에도 수신, 군사, 유람, 인적 교류 등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본서의 특징은 《시문》과 《독서록》을 제외하면 모두가 황제 기년과 월일의 순서로 정리되어 있고 구두를 표기한 간자체로 이루어진 점이다. 다만, 아래의 명언에서는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한문 정자체로 정리한다.
참고로 증국번의 학술과 사상은 한국의 개화운동과 애국계몽운동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1881년 영선사(領選使) 김윤식(金允植)은 천진에 있는 증국번의 사당을 참배하고 〈알증문정공사(謁曾文正公國藩祠)〉(《운양속집》 제1권)라는 시를 지었고, 애국계몽운동기 《서북학회월보》도 증국번의 일과(日課)나 자제 교육, 의력(毅力) 등을 주목하였다.
5. 가치와 영향
본서는 청말 사대부 집안의 수신제가라는 실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태평천국운동의 진압이나 양무운동의 시작 등 청말의 정치 격동을 이해하는 중요 자료이다. 또한 청말의 학술 경향이나 중앙의 정계와 학계에서 호남집단의 대두를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이홍장, 왕선겸(王先謙), 양계초(梁啓超), 장개석(蔣介石), 모택동(毛澤東) 등 근현대의 정치가와 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6. 참고사항
(1) 명언
• “근세 건가(乾嘉) 연간 유자들은 〈학술 연구에〉 호박(浩博)을 힘썼다. 혜동(惠棟)과 대진(戴震)의 무리는 고훈(詁訓)을 연구하고 하간헌왕(河間獻王)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뜻에 근본하며 송현(宋賢)을 공소하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대저 이른바 사(事)란 물(物)이 아닌가? 시(是)란 리(理)가 아닌가? 실사구시란 주자가 말한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아닌가?[近世乾嘉之間, 諸儒務爲浩博, 惠定宇戴東原之流, 鉤硏詁訓, 本河間獻王實事求是之旨, 薄宋賢爲空疏. 夫所謂事者, 非物乎? 是者, 非理乎? 實事求是, 非卽朱子所稱卽物窮理者乎?]” (《시문(詩文) 문》 14권, 〈서학안소지후(書學案小識後)〉)
• “월비(粤匪)〈태평천국〉가……중국 수 천 년 예의·인륜·시서(詩書)·전칙(典則)을 하루아침에 모조리 일소하였다. 이는 어찌 우리 대청의 변란일 뿐이겠는가? 바로 개벽 이래 명교(名敎)의 기변(奇變)이니, 우리 공자 맹자가 구원(九原)에서 통곡하는 바이다. 무릇 책을 읽고 문자를 아는 자가 또한 어찌 팔짱을 끼고 편안히 앉아 한 번 잘 하는[一爲] 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粤匪……擧中國數千年禮義人倫詩書典則, 一旦掃地蕩盡. 此其獨我大淸之變, 乃開闢以來名敎之奇變, 我孔子孟子之所痛哭于九原. 凡讀書識字者, 又烏可袖手安坐, 不思一爲之所也!]” (《시문 문》 14권, 〈토월비격(討粤匪檄)〉)
• “너희들이 객지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늘 근(勤)과 검(儉) 두 글자로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사람을 대할 때는 겸손하고 신중해라. 무릇 근면하지도 않고 검소하지도 않은 세가(世家)는 그 가족들에게서 징험하면 모두 다 드러난다.[爾等奉母在寓, 總以勤儉二字自惕, 而接物出以謙愼. 凡世家之不勤不儉者, 驗之于內眷而畢露]” (《가서 2》 20권, 〈1221, 유기택기홍(諭紀澤紀鴻)〉)
• “독서는 가난한 사인(士人)의 본업이니, 절대로 벼슬하는 집안의 풍미를 지니지 말라.……대대로 벼슬하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모름지기 대대로 사민(士民)이 되려고 생각해라.[讀書乃寒士本業, 切不可有官家風味.……莫作代代做官之想, 須作代代做士民之想.]” (《가서 2》 20권, 〈1345, 유기택(諭紀澤)〉)
• “밤 12시 경[三更三點] 동생 증국전(曾國筌)〈沅弟〉의 자문(咨文)을 접하고서 16일 정오〈午刻〉에 남경〈金陵〉의 함락을 알았다. 전후를 생각해보니, 기쁨과 두려움·슬픔과 환희의 만단(萬端)이 뒤섞여 모여 밤이 새도록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三更三點接沅弟咨文, 知金陵于十六日午刻克復. 思前想后, 喜惧悲歡, 萬端交集, 竟夕不復成寢.]” (《일기 2》 17권, 〈동치(同治) 3년 6월 18일〉)
(2) 색인어:증국번(曾國藩), 증문정공전집(曾文正公全集), 상군(湘軍), 태평천국(太平天國), 양무운동(洋務運動), 이홍장(李鴻章), 증국전(曾國荃), 증기택(曾紀澤), 증기홍(曾紀鴻)
(3) 참고문헌
• 증국번 가서(曾國藩, 허권수 역, 술이)
• 曾文正公全集(曾國藩, 中國書店)
• 曾文正公全集(曾國藩, 世界書局)
• 曾國藩全集(曾國藩, 岳麓書社)
• 曾國藩學術傳論(無道房, 北京師範大學出版集團 安徽大學出版社)
• 曾國藩評傳(梁紹輝, 南京大學出版社)
• 曾國藩(隋麗娟, 哈爾濱出版社)
• 曾國藩(近藤秀樹, 人物往來社)
• 〈曾國藩의 經世禮學과 그 歷史的 機能〉(曺秉漢, 《東亞文化》 제15집)
【이원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