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창랑시화(滄浪詩話)》는 송(宋)나라 때의 은자 엄우(嚴羽)가 지은 전문 시론서이다. 도덕이나 교화의 관점이 아닌 순(順)문학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전개했는데, 다양한 시론이 활발하게 전개된 송대 시화 중에서 가장 체계적이고 큰 성과를 누린 것으로 평가된다.
2. 저자
(1)성명:엄우(嚴羽)(대략 1192〜1243)
(2)자(字)·별호(別號):자가 의경(義卿), 단구(丹邱)이고 자호(自號)가 윤랑포객(淪浪逋客)이다.
(3)출생지역:소무(邵武) 거계(莒溪)(현 복건성 소무시(邵武市) 거계(莒溪))
(4)주요활동과 생애
엄우의 정확한 출생연대는 미상인데 대체로 송나라 영종(寧宗), 이종(理宗) 시기에 활동했다.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시골에 은거해서 사적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엄우보다 조금 나이가 많았던 대복고(戴復古)가 일찍이 그와 주고받은 시에서 “엄우는 바탕이 고매하여, 과거(科擧)에 관심을 두려하지 않았다. 풍아(風雅)(시경)와 이소(離騷)만 가슴에 들어 있었다. 문제는 지론이 너무 고상하여, 세상과 잘 맞지 않았다. 장편에 고시의 기풍이 넘쳐서, 스스로 문호를 세웠다.”라고 한 것에서 그의 깨끗하고 탈속적인 성격과 그로 인해 강호에 묻혀 홀로 시를 즐겼던 삶을 짐작해볼 수 있다.
(5)주요저작:엄우는 시론집 《창랑시화》 외에 시집인 《창랑선생음권(滄浪先生吟卷)》(《창랑음(滄浪吟)》)과 《창랑집(滄浪集)》이 있으며 고체와 근체시 146수가 실려 있다. 그밖에 〈답출계숙임안오경선서(答出繼叔臨安吳景仙書)〉 또한 주요 시론 저작이다.
3. 서지사항
시집의 부록으로 들어 있는 《창랑시화》는 명·청 시대에 다양한 판본이 간행됐는데 대표적인 판본으로 《백천학해(百川學海)》본, 《진채비서(津逮秘書)》본, 《역대시화(歷代詩話)》본, 《설부(說郛)》본, 《담예주총(談藝珠叢)》본 등이 있다. 주석본으로는 청(淸) 호감(胡鑑)의 《창랑시화주(滄浪詩話注)》, 왕위경(王瑋慶)의 《창랑시화보주(滄浪詩話補注)》, 근대기 호재보(胡才甫)의 《창랑시화전주(滄浪詩話笺注)》, 곽소우(郭紹虞)의 《창랑시화교석(滄浪詩話校釋)》 등이 있다.
《창랑시화》는 모두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시변(詩辨)’으로, 시 창작과 감상, 비평의 기본 이론을 검토하는, 책 전체의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둘째, ‘시체(詩體)’는 역대 시들의 체제상 특징, 변화, 분류에 관해 서술했다. 셋째, ‘시법(詩法)’은 시 창작의 기본 법칙을 검토, 총괄하며, 넷째, ‘시평(詩評)’은 역대 시인들과 그들의 작품을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고증’은 역대 시인 및 작품의 시대, 진위, 오류 등을 고증, 판별했다.
4. 내용
《창랑시화》는 강서시파(江西詩派), 강호시파(江湖詩派), 사령시파(四靈詩派)를 겨냥한 것으로, 지나치게 세밀한 데에 집착해 청고(淸高)함을 해치는 폐단을 지적한 데에서 출발한다. 그러면서 “시의 종지를 정하고”, “성당(盛唐)의 시를 법으로 삼는” 한편, 시를 쓰는 것도 참선과 같아서 ‘묘오(妙悟)’를 통해 성당의 ‘흥취(興趣)’의 높은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강조했다. ‘묘오’는 특수한 심미적 감지력과 예술적 창조력을 뜻한다.
엄우는 시 창작을 세 단계로 나누어 말했는데, “시를 배우는 데는 세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작품을 써놓으며 붓 가는 대로 쓴다. 점차 부끄러운 줄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두려워하고 움츠려드는데 작품을 완성하기가 극히 어렵다. 그러다가 투철(透徹)의 경지에 이르면 자유자재로 움직여 손 가는대로 써도 하나하나가 법칙이 된다.” 엄우는 세 번째 단계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투철의 깨달음’, ‘제일의(第一義)의 깨달음’이며, 그 전의 두 단계는 ‘절반만 이해하는 깨달음[一知半解]’, ‘제이의(第二義)의 깨달음’일 뿐이라고 했다.
시는 마땅히 형상성과 서정성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 엄우는 시 창작에서 형상적 사유와 논리적 사유를 각기 주된 것과 부차적인 것으로 설정하고 양자를 상보적인 관계로 간주했으며, 아울러 시를 깨치기 위해선 장기간의 연구와 학습이 필요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5. 가치와 영향
《창랑시화》는 특별히 ‘흥취(興趣)’로 시를 이야기하는데 ‘흥’은 대체로 외적 사물의 촉발로 인해 생겨난 시인의 감정과 생각을 가리키며, ‘취’는 정취로서 시의 운미(韻味)에 해당한다. 엄우는 흥과 취를 결합시켜 하나의 개념으로 만들고 미학 이론의 핵심으로 삼았다. 흥취설(興趣說)은 종영의 자미설(滋味說)과 사공도의 운미설(韻味說)을 계승하여 한 걸음 더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유학(儒學)의 정치적 이념과 교육적 목표를 배제한 엄우의 순문학적 태도는 예술 규칙에 대한 원인 탐구와 시의 본질에 대한 인식으로서, 시 창작의 예술적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분명한 역할을 하였다.
《창랑시화》는 이후 명·청 양대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쳐서, 명 칠자(七子)의 복고 이론, 경릉파(竟陵派)의 설불출론(說不出論), 그리고 왕사정의 신운설(神韻說)이 모두 그 영향 아래 발생하였다.
6. 참고사항
(1)명언
• “글은 끝나도 의미는 끝이 없다.[言有盡而意無窮]” 〈시변(詩辯)〉
• “영양(羚羊)이 뿔을 나무에 건 것처럼 자취를 찾을 수 없다.[羚羊挂角 無迹可求]” 〈시변(詩辯)〉
• “선(禪)의 도는 오직 묘오에 달려있는데, 시의 도 역시 묘오에 달려있다.[禪道惟在妙悟 詩道亦在妙悟]” 〈시변(詩辯)〉
(2)색인어:창랑시화(滄浪詩話), 엄우(嚴羽), 송대시론(宋代詩論), 강서시파(江西詩派), 시화(詩話), 별재(別才), 묘오(妙悟), 흥취(興趣)
(3)참고문헌
• 창랑시화(郭紹虞 교석, 김해명·이우정 공역, 소명출판)
• 譯註 歷代詩話-滄浪詩話(김규선, 소명출판)
• 滄浪詩話箋注(胡才甫, 浙江古籍出版社)
• 滄浪詩話校箋(郭紹虞, 人民文學出版社)
• 滄浪詩話箋校(張健, 上海古籍出版社)
• 滄浪詩話評注(陳超敏, 上海三聯書店)
• 滄浪詩話研究(王術臻, 學苑出版社)
【김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