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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洋古典解題集

동양고전해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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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씨역전(程氏易傳)》은 북송(北宋) 시대 유학자 정이(程頤)가 《주역(周易)》을 주석한 책이다. 의리역학(義理易學)의 대표적인 저서이며, 북송 시대 최고의 《주역》 주석서이다. 송대에 이미 학궁(學宮)의 교과서로 사용되었다.

2. 저자

(1) 성명:정이(程頤)(1033~1107)
(2) 자(字)·호(號):자는 정숙(正叔), 호는 이천(伊川), 시호는 정공(正公)이다.
(3) 출생지역:북송(北宋) 낙양(洛陽)(現 하남성(河南省) 낙양시)
(4) 주요활동과 생애
정이는 낙양에서 태어났지만 말년에 이천으로 이사했기 때문에 ‘이천선생’이라고 불렸다. 정이의 형은 유명한 정호(程顥)(1032~1085, 호는 명도(明道))이다. 흔히 ‘명도는 춘풍과 같고, 이천은 추상과 같다’고 할 정도로 대조적인 성품을 지니고 있었으며, 명도는 호방하고 이천은 치밀한 학풍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 형제는 주돈이⸱소식⸱장재와 함께 북송오자(北宋五子)로 불린다.
그는 형인 정호와 함께 주돈이(周敦頤)에게 수학하였으며, 1059년에 진사 시험을 보았으나 정시(廷試)에 합격하지 못했다. 그 이후에는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그는 관직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부정적인 인식도 갖고 있었다. 철종(哲宗) 초에 사마광 등의 추천으로 국자감 교수가 되었고, 교서랑숭정전설서(校書郞崇政殿說書) 등에 발탁되기도 하였으나 왕안석⸱소식 등과 뜻이 맞지 않았으며, 당화(黨禍)를 입어 사천성 부주(掊州)에 유배를 가기도 했다.
이천의 학문은 송대 성리학을 ‘정주학(程朱學)’이라고도 부를 만큼 송대 신유학을 형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주희는 그를 사숙하고 존경하여 ‘자정자(子程子)’라고 부르며 경전 해석의 준거로 삼았으며, 정이의 학설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자신의 이론체계를 구축하였다. 특히 그는 만물의 존재와 운동의 근거(소이(所以))가 되는 ‘리(理)’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송대 성리학의 획기적 이론인 이기론(理氣論)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5) 주요저작:《이정전서(二程全書)》, 《역전(易傳)》

3. 서지사항

《정씨역전》의 본래 명칭은 《역전》이다. 《정전(程傳)》 또는 《이천역전(伊川易傳)》이라고도 한다. 여기에서 ‘전(傳)’이란 경문에 대한 해석서라는 뜻이다. 성인이 하신 말씀의 뜻을 후대에 전해준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정이가 《정씨역전》을 지은 동기에 대하여, “경은 남아 보존되어 있으나 전대의 유자들이 뜻을 잃어버리고 말만 전하여 후학들이 말만 외우고 의미를 잊어버렸다.”라고 비판한 것은 《역전》이 《주역》의 올바른 뜻을 전해주기 위하여 지은 것임을 시사한다.
정이는 부주로 유배 갔을 때에 이 책을 이미 완성하였지만 공개하지 않고 만년까지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하였다. 그리하여 1099년 이 책을 완성하고 서문인 〈역전서(易傳序)〉를 지었다. 후대의 학자들은 이 책을 정이 학문의 정수로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의 판본은 다양하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명대 가정간(嘉靖間) 건령간(建寧刊本), 청대 광서 10년에 간행한 〈고일총서(古逸叢書)〉 덕정당간본(積德堂刊本), 청대 동치 10년에 간행한 산동서국개조(山東書局開雕) 상지당본(尙志堂本)이 있다.
이 책은 64괘(卦)와 이에 대한 〈단전〉, 〈상전〉, 〈문언전〉에 대해서만 주석하였다.

4. 내용

《역전》은 맨 처음에 〈역서〉가 실려 있다. 이 서문은 저자 미상의 〈역서(易序)〉와 더불어 《주역》의 종지宗旨를 가장 잘 설명한 명문장으로 꼽힌다.
64개의 각 괘에 대하여는 먼저 괘명을 중심으로 괘 전체의 내용을 설명하고 난 다음에 괘사를 주석하고 각 괘에 해당하는 〈단전〉, 〈상전〉에 대하여 주석하고 있다. 그리고 6개의 효사와 이에 해당하는 〈상전〉을 주석하고 있다.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에는 〈문언전〉을 마지막에 배치하고 주석한다. 〈계사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에 대해서는 주석하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건‧곤괘 이외의 괘를 주석할 때에 맨 처음에 〈서괘전〉을 인용하여 이전 괘와의 연관성을 강조한 점이다.

5. 가치와 영향

《주역》 해석학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하도⸱낙서 등 도상(圖象) 및 괘와 효의 상(象), 그리고 수리(數理)를 중심으로 하는 ‘상수역학(象數易學)’이며, 다른 하나는 철학적인(주로 윤리적인) 입장에서 경문의 의미(문의(文義))를 위주로 하는 ‘의리역학(義理易學)’이다. 정이는 당시에 유행하던 상수역학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수리역학의 대가인 강절(康節) 소옹(邵雍)과 빈번하게 교유하였으나 그의 학설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비판하였다. 아울러 의리역학의 핵심적 문헌인 왕필(王弼)의 《주역주(周易注)》를 사람들에게 일독하도록 권했으나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왕필은 노장사상으로 《주역》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정이는 ‘리(理)’를 최고의 범주로 삼아 왕필의 ‘무(無)’와 상수학파의 ‘수(數)’를 대체하여 자신의 역학체계를 수립하였다. 또한 당송 변혁기 이 시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사대부의 의리’를 중시하여 정치⸱ 사회적 맥락에서 지식인의 올바른 행위 양식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주역》을 독해하여 ‘유가적 의리역학’을 정립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정이가 상수역학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다. 본래 《주역》에는 상수와 의리 양면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 상수역학적 요소를 수용하여 《주역》을 해석하였다.
사대부가 정국과 사회 전반을 주도해 나갔던 조선에 있어 《역전》은 유학자들의 행위 준칙으로 받아들여졌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역은 변역이니, 때에 따라 변역하여 도를 따르는 것이다.[易 變易也 隨時變易以從道]” 〈역전서(易傳序)〉
• “지극히 은미한 것은 리(理)요, 지극히 드러나는 것은 상(象)이니 본체와 작용이 하나의 근원이며, 드러남과 은미함에 간격이 없다.[至微者理也 至著者象也 體用一源 顯微無間]” 〈역전서〉
• “천지가 교합하여 그 가운데에서 만물이 태어난 뒤에 천지인 삼재三才가 갖추어 지는데, 인간이 가장 영명하기 때문에 만물의 우두머리가 된다.[天地交而萬物生於中 然後三才備 人爲最靈 故爲萬物之首]”(비괘(否卦) 괘사(卦辭) ‘비지비인(否之非人)’ 주석)
• “소멸하고 성장하는 것이 서로 원인이 되는 것이야말로 하늘의 이치이다.[消長相因 天之理也]”(복괘(復卦) 〈단전(彖傳)〉 ‘復見天地之心乎’ 주석)
• “인간은 마음속이 텅 비면 받아들일 수 있고, 꽉 차면 받아들일 수 없으니 ‘마음속을 비운다’는 것은 아집이 없는 것이다.[夫人中虛則能受 實則不能入矣 虛中者无我也]”(함괘(咸卦) 〈대상전(大象傳)〉 주석)
(2) 색인어:이천(伊川), 정이(程頤), 역전(易傳), 상수(象數), 의리(義理), 유가(儒家)
(3) 참고문헌
• 《周易程傳》(黃忠天, 高雄復文圖書出版社)
• 《주역》(심의용, 글항아리)
• 《周易傳義》(전4책)(최영진 외, 전통문화연구회)
• 《한국주역대전》(임옥균 외, 학고방)
• 《역학철학사》3(주백곤, 김학권 외 번역, 소명출판사)
• 〈정이 《역전》에 나타난 사대부의 의리〉(심의용, 숭실대 박사학위논문)

【최영진】



동양고전해제집 책은 2023.10.3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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