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황청경해(皇清經解)》는 청(清)나라 완원(阮元)이 여러 학자들과 함께 도광(道光) 5년(1825) 시작하여 9년(1829)에 완성한 청나라 학자의 경전에 대한 풀이를 모은 책이다. 청대 초기부터 건가(乾嘉) 시기의 주요한 고증학의 정수를 모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전체 182종 1400권이다.
2. 저자
(1) 성명:완원(阮元)(1764~1849)
(2) 자(字)・별호(別號):완원의 자(字)는 백원(伯元), 호(號)는 운대(芸臺) 또는 (雲臺), 뇌당암주(雷塘庵主), 연경노인(揅經老人), 이성노인(怡性老人) 등이 있다. 시호는 문달(文達)이다.
(3) 출생지역:강소(江蘇) 의징(儀徵)(현 중국 강소성(江蘇省) 의징시(儀徵市))
(4) 주요활동과 생애
할아버지 완옥당(阮玉堂)은 호남참장(湖南參將)을 하였고, 아버지 완승신(阮承信)은 《춘추좌전(春秋左傳)》을 공부한 고문학자이다. 완원은 건륭(乾隆) 54년(1789) 진사(進士)가 되어 한림원서길사(翰林院庶吉士), 한림원편수(翰林院編修)를 거쳐 병부(兵部), 예부(禮部), 호부시랑(戶部侍郎), 산동(山東), 절강학정(浙江學政), 절강(浙江), 강서(江西), 하남순무(河南巡撫), 조운(漕運), 호광(湖廣), 양광(兩廣), 운귀총독(雲貴總督) 등을 역임했다. 만년에는 체인각태학사(體仁閣大學士)에 벼슬을 그만둔 후 태부(太傅)를 더하였다. 도광(道光) 29년(1849)에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경적찬고(經籍纂詁)》, 《십삼경주소교감기(十三經注疏校勘記)》, 《황청경해(皇清經解)》, 《연경실집(揅經室集)》 등이 있다.
《황청경해(皇清經解)》는 완원이 양광총독(兩廣總督)일 때 학해당(學海堂)을 세우고 편찬한 것으로, 엄걸(嚴杰) 등 여러 학자의 참여로 이루어진 집체(集體) 작업의 일환이다.
(5) 주요저작
주요 저작으로는 《경적찬고(經籍纂詁)》, 《십삼경주소교감기(十三經注疏校勘記)》, 《황청경해(皇清經解)》, 《연경실집(揅經室集)》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주인전(疇人傳)》을 짓고, 《절강통지(浙江通志)》, 《광동통지(廣東通志)》를 중수(重修)하고, 《산좌금석지(山左金石志)》, 《양절금석지(兩浙金石志)》, 《적고재종정관지(積古齋鐘鼎欵識)》, 《양절유헌록(兩浙輶軒錄)》, 《회해영령집(淮海英靈集)》을 편집(編輯)하였고, 《문선루총서(文選樓叢書)》를 간행하였다.
3. 서지사항
《황청경해(皇清經解)》는 《청경해(清經解)》 또는 《학해당경해(學海堂經解)》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황청(皇清)은 청나라를 높여 부르는 말로 황(皇)은 대(大)의 의미로 풀이된다. 경해(經解)는 경에 대한 해설을 가리킨다. 주소류(注疏類)가 이러한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청경해(清經解)》 또한 청대의 경전 해설이라는 명칭으로, 공경, 존경의 의미인 황(皇)이 빠졌을 뿐이다. 또 다른 명칭인 《학해당경해(學海堂經解)》에서 학해당(學海堂)은 이 책을 편찬했던 곳으로, 완원이 양광총독일 때 세운 서원(書院)이다.
완원이 양광총독으로 부임하고 학해당을 세운 후 도광(道光)5년(1825) 편찬에 착수하였고, 이듬해에 운귀총독(雲貴總督)으로 떠나면서 하수서(夏修恕)와 문인 엄걸(嚴杰) 등에게 지시하여 도광 9년(1829)에 완성하였다. 한당(漢唐) 경전(經典)과 관련한 훈고(訓詁)의 내용은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에 모여 있고, 이와 관련하여서 완원은 절강학정(浙江學政) 때 이미 《경적찬고(經籍纂詁)》를 편찬한 경험이 있었다. 또한 선진(先秦) 한당(漢唐)을 포함한 송원명(宋元明)까지의 경해(經解) 내용은 청나라 초에 서건학(徐乾學), 납란성덕(納蘭成德) 등이 편찬한 《통지당경해(通志堂經解)》에 그 내용이 모여 있다. 정작 청대의 고증학, 특히 가장 전성기로 평가되는 건가(乾嘉)의 경해(經解) 성과에 대한 집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에 완원은 청대의 경전 연구 성과 75가(家) 182종(種)을 모아 편찬하였다. 이후 함풍(咸豐) 10년(1861) 7권을 추가하여 보각(補刻)하였다. 이후 광서(光緒)14년(1888)에 왕선겸(王先謙)이 《황청경해》의 체례를 본따 《황청경해속편(皇清經解續編)》 1430권을 내면서, 유보남(劉寶楠), 유월(俞樾) 등의 내용을 포함하였다. 또한 이 책과 대비하여 완원의 《황청경해》를 《황청경해정편(皇清經解正編)》이라 칭하기도 한다.
판본으로는 도광 9년 완성한 후 발간한 학해당간본(學海堂刊本)이 있다. 이에 더하여 함풍 10년 8권을 추가하면서 보각한 함풍경신보간본(咸豐庚申補刊本)이 있다. 동치(同治) 9년(1870) 광동순무(廣東巡撫) 이복태(李福泰)가 1종을 추가한 경오속간본(庚午續刊本)이 있다. 이 판본이 비교적 널리 유통되었다. 또한 광서(光緒) 13년(1887) 석인본(石印本)이 있다고 하는데, 확인하지 못하였다. 민국(民國)50년(1961) 대만(臺灣) 부흥서국(復興書局)에서 함풍경신보간본을 저본으로 하여 영인하였고, 민국 61년(1972)에 재간(再刊)하였다. 2016년에 이전의 판을 모두 합쳐 중국 제로서사(齊魯書社)에서 《황청경해전편(皇清經解全編)》을 발간했다. 이 속에는 《황청경해(皇清經解)》및 《황청경해속편(皇清經解續編)》과 2011년 65종 749권을 포함한 《청경해삼편(清經解三編)》, 2015년 50종 751권을 포함한 《청경해사편(清經解四編)》을 모두 아우른다.
4. 내용
이 책은 이전 성과를 요약 정리한 것이 아닌 그대로 모아 수록한 것이다. 따라서 각 권을 넘어가면서 별도의 책 제목과 저자가 달라지는 특징이 나타난다. 또한 저자는 대략 활약했던 시대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고염무(顧炎武)를 시작으로 엄걸(嚴杰)을 끝으로 총 75명의 청대 학자의 저작을 수록하였다. 이 책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예를 들어 첫 번째 등장한 고염무의 저작을 보면, 권1~3은 《좌전두해보정(左傳杜解補正)》, 권4는 《음론(音論)》, 권5~7은 《역음(易音)》, 권8~17은 《시본음(詩本音)》, 권18~19는 《일지록(日知錄)》 등 고염무의 저작을 순차적으로 나열하였다. 서문은 싣지 않거나 줄여서 수록하였다. 예를 들어 권1180~1207에 있는 왕인지(王引之)의 《경의술문(經義述聞)》과 권1208~1217에 수록된 《경전석사(經傳釋詞)》의 경우, 모두 본래는 완원(阮元)의 서(序)와 왕인지 자서(自序)가 있으나 《황청경해》의 《경의술문》에서는 완원의 서, 《경전석사》에서는 자서만을 수록하였다.
5. 가치와 영향
이 책은 완원에게 있어서는 《경적찬고(經籍纂詁)》와 더불어 청대 고증학(考證學)의 진수를 느끼게 할 수 있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통지당경해(通志堂經解)》 등의 전통을 이어 청대 고증학의 대표적인 성과를 모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 점은 이후 학자에게 있어 청대 고증학을 연구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황청경해》가 김정희에게 전달된 것은 늦어도 1832년 봄으로, 김정희는 《황청경해》를 탐독, 연구하면서 스승 옹방강(翁方綱)의 《제경부기(諸經附記)》가 누락되었다는 것을 확인, 보각할 것에 대한 내용을 묻는 편지를 보냈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황청경해》가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어 살펴볼 수 있다고 하였다. 《암서집(巖棲集)》에서는 《황청경해》를 통해 청대의 학자들이 주자를 공격하는 내용에 대해 살펴보고 이에 대해 비판하였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황청경해》는 청대 고증학의 면모를 살펴보는 데에 있어 관문의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십삼경교감기》, 《경적찬고》, 《황청경해》 등 180여 종을 저술하였다. 한학(漢學)을 오로지 종주(宗主)로 하여, 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법도로 받든다.[撰十三經校勘記 經籍纂詁 皇清經解百八十餘種 專宗漢學 治經者奉爲科律]” 《청사고(清史稿)》 〈완원전(阮元傳)〉
• “영남(즉 광동)뿐만 아니라 이 책을 가지고서 주소(注疏) 이후에 전체를 살펴볼 수 있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실사구시함에 있어 각 성(省)의 유림들이 또한 이 책을 함께 살펴본다면 평탄하면서도 엄격하고 정밀하면서도 상세함을 더욱이 볼 수 있을 것이다.[不但嶺南 以此爲注疏後之大觀 實事求是 卽各省儒林 亦同此披覽 益見平實精詳矣]” 《황청경해(皇清經解)》 〈하수서서(夏修恕序)〉
• “경을 풀이하는 데에는 고훈(詁訓)에 통달하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광아(廣雅)》는 《이아(爾雅)》에 의거하여 나온 것으로, 왕념손(王念孫)의 《광아소증(廣雅疏證)》은 더욱이 기준으로 받들어야만 할 것이다. 허신(許慎)의 《설문(說文)》은 모든 경전을 연구하는 사람이 문자가 기이할 때에 채용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단옥재(段玉裁)는 수십 년을 몸과 마음을 써서 《설문해자주(說文解字注)》를 만들었다. 근거를 모두 갖추었고, 억지스러운 말과 같은 것이 없다. 이와 같은 여러 종류는 충분히 포함될 만하다.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에서 이르지 못한 것을 보충하였으니, 경학이 무르익은 때가 지금 시대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解經貴通詁訓 廣雅一書依乎爾雅 王觀察之疏證尤宜奉爲圭臬也 許氏說文 凡經師異文莫不畢采 段大令積數十年心力而成是注 悉有根據 不同臆說 諸如此類 並爲編入更足 補注疏所未逮 經術之盛洵 無過於昭代矣] 《황청경해》 〈엄걸서(嚴杰序)〉
(2) 색인어:완원(阮元), 황청경해(皇清經解), 고증학(考證學),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통지당경해(通志堂經解), 황청경해속편(皇清經解續編)
(2) 참고문헌
• 十三經注疏整理本(北京大學出版社)
• 皇清經解全編(齊魯書社)
• 皇清經解(復興書局)
• 皇清經解續編(復興書局)
• 清經解三編(齊魯書社)
• 清經解四編(齊魯書社)
【신원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