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황청경해속편(皇清經解續編)》은 청(清)나라 왕선겸(王先謙)이 주편(主編)으로 광서(光緒) 11년(1885) 시작하여 14년(1888) 완성한 청나라 학자의 경전에 대한 풀이를 모은 책이다. 완원(阮元)의 《황청경해(皇清經解)》의 체례를 모방하였다. 모두 111가(家)의 209종(種) 1430권(卷)을 수록하였다.
2. 저자
(1) 성명:왕선겸(王先謙(1842-1917))
(2) 자(字)·별호(別號):자는 익오(益吾), 호는 규원(葵園)이다.
(3) 출생지역:호남(湖南) 장사(長沙(현 중국 호남성(湖南省) 장사시(長沙市)))
(4) 주요활동과 생애
동치(同治) 4년(1865)에 진사(進士)가 되어 한림원서길사(翰林院庶吉士)가 되었다. 동치 9년(1870) 이후 여러 차례 향시(鄉試) 정부고관(正副考官), 회시동고관(會試同考官)을 역임하였다. 광서(光緒) 6년(1880) 국자감좨주(國子監祭酒)에 올랐다. 이후 강소학정(江蘇學政)으로 남청서원(南菁書院)을 세우고, 고향으로 돌아가 성남서원(城南書院), 악록서원(岳麓書院)의 산장(山長)을 맡았다. 무술변법(戊戌變法) 운동 중에는 강유위(康有爲), 양계초(梁啟超) 등의 급진 사상에 반대하였다. 이후 호남사범관관장(湖南師範館館長), 학무공소의장(學務公所議長), 호남철로국명예총리(湖南鐵路局名譽總理), 호남성자의국회판(湖南省咨議會辦) 등의 직위를 맡았다.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 은거하고 저서에 몰두하였다. 민국(民國) 6년(1917) 장사(長沙)에서 사망하였다.
(5) 주요저작:《한서보주(漢書補注)》, 《후한서집해(後漢書集解)》, 《신구당서합주(新舊唐書合注)》, 《십조동화록(十朝東華錄)》, 《수경주합전(水經注合箋)》, 《순자집해(荀子集解)》, 《장자집해(莊子集解)》, 《시삼가의집소(詩三家義集疏)》, 《석명소증보(釋名疏證補)》, 《허수당문집(虛受堂文集)》(16권), 《허수당시존(虛受堂詩存)》(16권)이 있고, 편찬 작업으로는 《황청경해속편(皇清經解續編)》과 《속고문사류찬(續古文辭類纂)》 등이 있다.
3. 서지사항
《황청경해속편》은 《속황청경해(續皇清經解)》 또는 《속청경해(續清經解)》, 《남청서원경해(南菁書院經解)》라고도 한다. 황청(皇清)은 청나라를 높여 부르는 말로 ‘황(皇)’은 ‘대(大)’의 의미로 풀이된다. 경해(經解)는 경에 대한 해설을 가리킨다. 주소류(注疏類)가 이러한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다른 명칭인 《남청서원경해(南菁書院經解)》에서 남청서원(南菁書院)은 이 책을 간행한 곳으로, 왕선겸이 당시 강소학정일 때 세운 서원(書院)이다
왕선겸은 강소학정 이후 완원(阮元)의 《황청경해(皇清經解)》의 체례를 본떠 《황청경해》에서 누락되었던 건가(乾嘉) 이전의 저작과 《황청경해》 발간 이후의 저작 등을 포괄하여 광서(光緒) 12년(1886) 판각을 시작하여 광서 14년(1888) 6월에 완성하였다. 모두 111가의 209종의 저작을 포함하였다. 앞서 《황청경해(皇清經解)》에서 다룬 인물 중 누락된 저서나, 《황청경해》 발간 이후의 저작을 포괄하였다. 이를 통하여 《황청경해》와 더불어 청대의 중요한 경학 총서로서 역할을 한다. 특히 유보남(劉寶楠), 유월(俞樾) 등 건가 이후의 성과를 포괄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의 존재로 인하여 완원의 《황청경해》를 《황청경해정편(皇清經解正編)》이라 칭하기도 한다.
판본으로는 광서 14년(1888) 남청서원각본(南菁書院刻本)이 있다. 1년 후 광서 15년(1889) 상해비영관석인본(上海蜚英館石印本)이 있다. 민국(民國) 50년(1961) 대만(臺灣) 부흥서국(復興書局)에서 《황청경해》와 더불어 남청서원각본을 저본으로 하여 영인하였고, 민국 61년(1972)에 재간(再刊)하였다. 2014년에 《청경해》와 《청경해속편》을 합쳐 상해서점(上海書店)에서 12책으로 발간하였다. 2016년에 이전의 판을 모두 합쳐 중국 제로서사(齊魯書社)에서 《황청경해전편(皇清經解全編)》을 발간했다. 이 속에는 《황청경해(皇清經解)》 및 《황청경해속편(皇清經解續編)》과 2011년 65종 749권을 포함한 《청경해삼편(清經解三編)》, 2015년 50종 751권을 포함한 《청경해사편(清經解四編)》을 모두 아우른다.
4. 내용
이 책은 완원의 《황청경해》의 체제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따라서 《황청경해》의 특징인 “이전 성과를 요약 정리한 것이 아닌 그대로 모아 수록한 것이다. 따라서 각 권을 넘어가면서 별도의 책 제목과 저자가 달라지는 특징이 나타난다. 또한 저자는 대략 활약했던 시대순으로 나열되어 있다.”는 점 또한 동일하다. 아울러 이전에 수록된 인물의 서적 중 《황청경해》에서 누락된 것을 보충하여 실었고, 《황청경해》 이후 발간된, 예를 들어 유보남(劉寶楠), 위원(魏源), 유월(俞樾) 등의 저작이 포함되어 있다. 《황청경해속편》에서는 고염무(顧炎武)를 시작으로 임이산(林頤山)까지 총 111명의 청대 학자의 저작을 수록하였다. 《황청경해》와 비교해서 함께 보자면 고염무의 경우 《황청경해》에서는 〈좌전두해보정(左傳杜解補正)〉을 시작으로 총 다섯 종류를 수록하였다면, 《황청경해속편》에서는 〈구경오자(九經誤字)〉를 추가하여 누락된 것을 보충하였다. 아울러 《황청경해》에서는 싣지 않았던 왕부지(王夫之)의 저작을 《황청경해속편》에서는 〈주역패소(周易稗疏)〉를 포함한 네 종류를 수록하였다. 또한 《황청경해》에 수록되지 않은 진환(陳奂), 유정섭(俞正燮), 공자진(龔自珍), 진례(陳澧), 유보남(劉寶楠), 진교종(陳喬樅), 위원(魏源), 유육송(劉毓崧), 유월(俞樾) 등의 저작을 수록하였다.
5. 가치와 영향
이 책은 완원의 《황청경해》와 더불어 고증학(考證學)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황청경해》 이후 등장한 도광(道光)에서 광서(光緒)까지의 19세기 경학에 대해서는 《황청경해》가 수록하지 못한 점을 보충하는 역할을 담당하여, 이후 《황청경해》와 《황청경해속편》을 나란히 출간하여 서로 참조할 수 있도록 하였다.
6. 참고사항
(1) 명언
• “왕선겸은 운남, 강서, 절강의 향시 고관(考官)을 역임하며, 여러 인재를 모으는 데에 모든 힘을 쏟았다. 그가 강소학정 일을 하게 되자, 먼저 서국(書局)을 세울 것을 주청하였고, 완원의 《황청경해》의 체례를 모방하여 《황청경해속편》 1,430권을 간각하였다.[先謙歷典雲南江西浙江鄉試 搜羅人才 不遺餘力 旣蒞江蘇 先奏設書局 仿阮元皇清經解例 刊刻續經解一千四百三十卷]” 《청사고清史稿》 〈유림3儒林三〉
• “이제 광동 지방에서 《황청경해》가 발행한 지도 60년이 넘었다. 그 중간에 난리가 여러 차례 일어나고, 위태롭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여러 인사들은 안으로는 곧고 굳은 기운을 품고, 밖으로는 문명의 모습을 밝혀 자리가 편안하고 경전 공부를 끊임 없이 해내어 책을 짓는 성대함이 이러한 평안한 시기를 타고서 여러 차례 추진되지 못하였다. 다행히도 평화로움이 안정되고, 온 세상이 맑고 깨끗하니, 이때에 남은 책들을 모아 지속적으로 간행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면 더욱 오래 되어 책이 흩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어찌 성천자께서 학문을 권고하고 문치를 숭상하는 지극한 뜻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今距粵東刊經之日 踰六十年 中間寇難迭興 熢警和望 而率土人士 內函貞固之氣 外炳文明之姿 枕席可安 弦誦不輟 籑述之盛 視承平時 抑無多讓 幸值神武耆定 寰海鏡清 不於斯時 衰集遺編 賡續刊布 懼彌久散佚 曷以稱聖天子勸學右文至意]” 《황청경해속편》 〈왕선겸서(王先謙序)〉(2) 색인어:왕선겸(阮元), 황청경해속편(皇清經解續編), 남청서원경해(南菁書院經解), 황청경해(皇清經解), 고증학(考證學), 청대(清代
(3) 참고문헌
• 皇清經解全編(齊魯書社)
• 皇清經解續編(復興書局)
• 清史稿(中華書局)
【신원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