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효경대의(孝經大義)》는 남송(南宋) 때 인물인 동정(董鼎)이 주희(朱熹)(1130~1200)의 《효경간오(孝經刊誤)》를 바탕으로 짓은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유행하여 조선 사회에서 《효경》이라 말함은 보통 《효경대의》를 가리켰다.
2. 저자
(1) 성명:동정(董鼎(?~?))
(2) 자(字)·호(號):미상
(4) 주요활동과 생애
《효경대의》의 저자는 남송 말엽 동정(董鼎)이다. 동정의 생몰년은 미상이고, 송나라 사람이라는 설, 원나라 사람이라는 설 등이 있다. 대략 주희의 재전제자, 혹은 3전제자라고 한다면 대략 송말원초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선에서 《효경(孝經)》은 곧 《효경대의》라 할 정도로 《효경》보다 《효경대의》가 대종을 이뤘다. 따라서 《효경》의 저자를 함께 정리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알려진 《효경》의 저자는 공자자찬설(孔子自撰說), 증자저작설(曾子著作說), 증자문인설(曾子門人說), 자사설(子思說), 한대유자설(漢代儒者說) 등이 있다. 그 가운데 증자문인의 저작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이때 저자가 누구인가도 중요하지만 13경 가운데 《효경》은 《시경(詩經)》 《서경(書經)》과 더불어 ‘경(經)’이란 글자가 붙은 몇 안 되는 권위를 지닌 서책이다. 그것도 ‘효’라는 핵심 주제어를 붙여서 ‘경’이라 했으니, 다른 경전과는 구별되며, 주석서도 13경 가운데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5) 주요저작:미상
3. 서지사항
《효경간오(孝經刊誤)》・《효경언해(孝經諺解)》・《효경대의(孝經大義)》는 모두가 《효경》과 직접적으로 관계 있는 책들이다. 때로는 이들 책을 통틀어서 《효경》이라 말한다. 《효경》이란 책명은 〈삼재장(三才章)〉에 “대저 효란 하늘의 법칙이고, 땅의 질서이며, 백성들이 행해야할 것이다.[夫孝 天之經 地之義 民之行]”란 말에서 나왔다. ‘효’를 ‘하늘의 법칙’ ‘경(經)’이라 한 것이다. ‘경’은 법칙, 도리, 영구불변의 이치로, 위(緯(씨실))와 대비되는 날실에 해당한다. 효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책명으로 활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 25년에 ‘예(禮)’를 설명하며 쓴 표현과 똑같다. 주어만 ‘효(孝)’로 바꿨을 뿐이다. 이를 두고 《효경대의》에서는 “문장의 형세가 도리어 《춘추좌씨전》의 관통(貫通)된 것만 못하고, 조목(條目)이 《춘추좌씨전》의 완비된 것만 못하니, 여기(《효경》)에서 《춘추좌전》의 글을 따다 쓴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효경》에서 《춘추좌전》의 내용을 주어만 바꿔서 그대로 갖다 썼다는 설명이다.
동정(董鼎)의 《효경대의》는 주희(朱熹(1130~1200))의 《효경간오》를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서 저술했다. 조선 사회에서 《효경》이라 말함은 보통 《효경대의》를 가리켰고, 실제로 조선시대 간행된 《효경대의》 대부분의 표지가 《효경》이라 되어 있다. 지역도 중앙뿐만 아니라 전주, 태인, 달성(현 대구)에서도 간행되어 그 유행정도를 알려준다.
송말원초 동정의 《효경대의》가 나온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간행한 《효경대의》는 1580년(선조13) 유성룡(柳成龍(1542~1607))이 발문을 쓰고 효경대자(孝經大字)와 을해자체경서자(乙亥字體經書字)로 인출한 《내사효경(內賜孝經)》이 있는데, 이것은 《효경대의》와 《효경언해(孝經諺解)》의 합본 형태이다. 1590년(선조23)의 활자본(活字本(존경각문고尊經閣文庫 소장)), 1613년(광해군5) 경오자체(庚午字體) 훈련도감자본(訓鍊都監字本), 1631년(인조9) 목판본, 1636년(인조14) 무신자본(戊申字本) 훈련도감자본, 1666년(현종7) 내사기(內賜記) 목판본, 1730년경 《효경대의》 필사본, 1737년(영조13) 《효경대의》 시강원(侍講院) 목판본, 1740년(영조16) 《효경대의》 필사본, 1754년(영조30) 갑술보양청중간(甲戌輔養廳重刊) 목판본, 1760년경 《효경대의》 필사본, 1803년(순조3) 전이채(田以采)・박치유(朴致維)가 판각한 태인본(泰仁本) 목판본, 1819년(순조19) 기묘신간춘방장판(己卯新刊春坊藏板) 목판본, 1840년(헌종6) 필사본, 1874년(고종11) 원자 교육을 맡아보던 보양청(輔養廳) 목판본, 1879년(고종17) 세자 교육을 하던 시강원(侍講院) 목판본, 1884년 광인사공소간행(廣印社公所刊行) 신식활자, 1910년 선우일(鮮于日) 집편 《효경대의》(한성 광학서포(廣學書鋪)), 1913년 달성(현 대구) 재전당서포(在田堂書鋪) 1책, 1916년 달성 재전당서포(在田堂書鋪) 1책, 1917년 박문서관(博文書館) 《효경대의》, 1919년 경성(京城) 천일서관(天一書館) 《효경대의》, 1987년 내각본(內閣本(보경문화사 영인본)), 1996년 정태현 역주 현토완역 《효경대의》(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05년 김시황・김정화 편, 《효경대의》(대구 동양예학회) 등이 있다. 이상 조선에서 근대사회에 이르기까지 《효경대의》 편찬은 목판, 필사, 활자본 등 다양하게 이루어졌으며, 그것도 중앙과 지방(주로 태인, 전주, 달성)에서 간행되면서 효의 중요성이 얼마나 강조되었는가를 알게 한다.
4. 내용
《효경대의》는 주희(朱熹)의 《효경간오(孝經刊誤)》에 의거해서 쓴 책이다. 주희는 금문, 고문 《효경》의 편제나 내용에 다소 문제가 있음을 간파하고 이를 바로 잡으려는 의도에서 경(經) 1장(금문:〈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서인장(庶人章)〉, 고문:〈개종명의장〉~〈효평장(孝平章)〉)과 전(傳) 14장(금·고문:〈삼재장(三才章)〉~〈상친장(喪親章)〉)의 체제로 재편했는데, 그것이 바로 《효경간오》이다. 여기서 ‘경’이란 성인이 지은 것이고, ‘전’이란 ‘경’을 해설한 것을 말한다. 《효경간오》의 저본은 《송본효경(宋本孝經)》이라고도 하는 사마광(司馬光(1019~1086))의 《효경지해(孝經指解)》이니 주희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자료는 본래의 금고문 《효경》이 아닌 《효경지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판본으로 동정이 《효경대의》를 저술한 것이다.
5. 가치와 영향
조선사회는 성리학을 국시로 삼았다. 성리학을 중심 가치로 삼고 중심에 주희를 최고로 여기던 조선사회에서 주희가 찬한 《효경간오》를 통용하지 않고 대신 《효경대의》를 주로 읽고 권장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효경간오》는 단 한 차례의 언급도 없지만, 《효경대의》는 두 차례 언급되었다. 《승정원일기》에서는 《효경대의》는 모두 5회 나오지만, 《효경간오》는 단 한차례만 나온다. 일부 서지학자들은 조선에서 유통된 《효경》은 주로 《효경간오》였고, 16세기말 《효경대의》 간행 이후로는 이것이 중심을 이뤘다고 말하는데, 이를 근거로 말하자면 두 책의 관계는 연속선상에 있다고 봄이 타당할 것 같다. 참고로 왕조실록에 언급된 《효경》은 모두 117회이고, 역시 효를 강조한 《소학(小學)》은 794회인 것으로 보아, 조선에서 효에 대한 공부는 《효경》보다는 《소학》이 중심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막상 《세종실록》 권43(1429년, 세종11)에서는 “《효경》과 《소학》은 모두 처음 배우는 자들이 마땅히 먼저 익혀야할 책입니다. 〈그런데〉 《소학》은 과거 볼 때 〈많이〉 나오기 때문에 선비들이 모두 이를 읽고 있지만, 《효경》은 초학자들이 전혀 읽지 않습니다. 청컨대 경연에서 자구를 풀이한 《효경》을 내다가 간행하여 초학자들을 가르치게 하소서.”란 상소가 있을 정도였다. 아마 당시에도 오늘날 입시와도 같은 과거시험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효경》보다 《소학》을 더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조선에서의 《효경》은 금고문의 《효경》 원판도, 주희의 《효경간오》도 아닌 동정의 《효경대의》가 중심이었음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후로 나온 유성룡이 주관한 《효경언해(孝經諺解)》도 《효경대의》를 따른 것이다.
6. 참고사항
(1)명언
•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 효이다. 사람의 행실에는 효보다 큰 것이 없다.[善事父母爲孝 人之行 莫大於孝]” 《효경대의》 주문공간오(朱文公刊誤) 파양동정주(鄱陽董鼎註)
• “효경(孝經)이라 이름한 것은 이 책이 천하 만세불변의 법(法)이라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名之曰孝經者 以其可謂天下萬世常法也]” 《효경대의》 주문공간오(朱文公刊誤) 파양동정주(鄱陽董鼎註)
• “효는 덕행의 근본이고, 교화가 이로 말미암아 나오는 바이다.[夫孝 德之本也 敎之所由生]” 《효경대의》 〈경1장(經一章)〉
• “군자는 친족을 친애하고서[親親] 백성에게 인자한 마음을 베풀고[仁民], 백성에게 인자한 마음을 베풀고서 만물을 사랑하니[愛物], 한 가지 마음이 끝없이 일어나는 것이 마치 나무에 뿌리가 있어 가지와 잎이 끊임없이 자라고 피어나는 것과 같다.[君子親親仁民 仁民而愛物 一念之發 生生不窮 猶木之有根也]” 《효경대의》 〈경1장(經一章)〉
(2) 색인어:효경(孝經), 효경대의(孝經大義), 효경간오(孝經刊誤), 주희(朱熹), 동정(董鼎)
(3) 참고문헌
• 《현토완역 효경대의》(정태현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2001년 3판)
• 《효경대의》(김시황, 김정화 공편, 대구 동양예학회, 2005년
• 역주 《고문효경》(김덕균 역주, 도서출판 문사철, 2008년)
• 《효경한글역주》(김용옥, 통나무, 2009년)
• 《孝, 中華倫理範疇》(曾振宇, 齊金江 主編, 北京 中國社會科學院出版社, 2006년)
• 《孝經的人倫與政治》(干春松, 陳壁生 主編, 中國人民大學出版社, 2015년)
• 〈조선시대 효경의 간행과 그 刊本〉 (이재영, 《서지학연구》 제38집, 2007년 12월)
• 〈효경간오, 효경대의, 효경언해의 간행본과 그 계통 연구〉(옥영정, 《정신문화연구》 제35권 제1호, 2012년 2월)
【김덕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