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송(宋)나라 때 경전 주석의 대가 형병(邢昺(932~1010))이 당시 임금의 명을 받들어 《효경정의(孝經正義)》를 만들고, 여기에 당 현종(唐玄宗)의 《어주효경(御注孝經)》을 합해서 《효경주소(孝經注疏)》 9권을 편찬하였는데, 이융기의 ‘주’에 형병의 ‘소’를 합친 것이다.
2. 저자
(1) 성명:이융기(李隆基(685~762)), 형병(邢昺(932~1010))
(2) 자(字)·호(號):이융기는 당 현종(唐玄宗)으로 별호는 당 명황(唐明皇)이다. 형병은 자는 숙명(叔明)이다.
(3) 출생지역:이융기는 낙양(洛陽(현재 하남성 낙양)) 사람이고, 형병은 조주(曹州) 제음(濟陰(현재 산동성 정도현(定陶縣))) 사람이다.
(4) 주요활동과 생애
이융기는 측천무후(則天武后(624~705))의 아들 예종(睿宗)의 셋째 아들로 당나라 제6대 황제에 오른 현종(685~762, 712~756 재위)을 가리킨다. 현종은 중국 역사상 가장 태평성세를 이뤘던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600~649, 626~649 재위))의 ‘정관(貞觀)의 치(治)’와 더불어 ‘개원(開元)의 치(治)’라 일컫는 시절을 대표하지만, 말년에 양귀비(楊貴妃(719~756))와의 방탕한 생활로 망국을 자초하기도 했다. 무덤 태릉(泰陵)은 섬서성(陝西省) 포성현(蒲城縣) 동북쪽에 있다.
형병은 북송(北宋) 때의 경학자이다. 태종(太宗) 태평흥국(太平興國) 초기에 구경과(九經科)에 급제하고, 국자박사(國子博士), 국자좨주(國子祭酒) 등을 역임했다.
(3) 주요저작:형병은 두호(杜鎬), 서아(舒雅), 손석(孫奭), 이모청(李慕淸), 최악전(崔偓佺) 등과 함께 황명을 받들어 여러 경전의 의소(義疏)를 교정(校定)하고, 《논어정의(論語正義)》・《이아의소(爾雅義疏)》・《효경정의(孝經正義)》 등을 저술했는데, 모두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에 수록되었다.
3. 서지사항
효(孝)는 유교 사회 최고의 정신적 가치이다. 《논어》에서는 “효제(孝弟)라고 하는 것은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다.”고 했을 정도이다. 소중한 만큼 전하는 판본도 여럿인데, 처음은 《고문효경(古文孝經)》과 《금문효경(今文孝經)》이 대표적이다.
《금문효경》은 하간(河間) 사람 안지(顔芝)가 그 유명한 진 시황(秦始皇)의 분서(焚書)를 피해 몰래 보관하다가 민간의 장서를 금지하는 법률이던 협서율(挾書律)이 폐지되면서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 아들 안정(顔貞)이 조정에 바쳐 빛을 보게 되었다. 예서체로 쓰인 문장은 모두 18장으로 구성되었다.
《고문효경》은 전한 무제(武帝) 때 노(魯)나라 공왕(恭王)이 공자(孔子)의 옛집을 헐고 새로이 확장하는 가운데 벽에서 나왔다. 일명 노벽(魯壁)이라 한다. 여기서 죽간(竹簡)으로 된 여러 다른 경전들과 함께 발견됐는데, 과두체 문장으로 쓰였고, 모두 22장로 구성되었다. 금문・고문 《효경》은 비록 22장과 18장의 구성의 차이는 있어도 내용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고문효경》에 〈규문장(閨門章)〉이 첨가되었을 뿐이다. 추가된 〈규문장〉의 내용도 모두 24글자에 지나지 않다. 따라서 고문은 금문의 18장에서 3장의 편제를 더 늘려서 구성했고, 〈규문장〉 1장이 추가되어 22장으로 이뤄진 것이다.
《고문효경》은 한 무제 때 사람이자 공자의 11세손으로 알려진 공안국(孔安國(?~?))이 일종의 주해서인 전(傳)을 달았고, 《금문효경》은 후한(後漢) 때 정현(鄭玄(127~200))이 주를 달았다. 비록 같은 내용을 갖고 편제만 달리 구성했음에도 학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양한(兩漢) 사회 심화되었던 금고문 논쟁이다. 물론 근본적 원인은 진 시황의 협서율에서 비롯됐으니, 분서만 없었다면 논쟁도 없었을 것이다. 진 시황의 분서 명령은 이를 피하기 위한 온갖 몸부림을 수반했다. 다행히 분서를 피한 책들은 진나라 이전의 육국문자(六國文字)로 이루어져 있었다. 올챙이(과두(蝌蚪))처럼 생긴 글자라 해서 ‘과두문자’라 했고, 이전에 쓰던 글자라서 ‘고문’이라 했다.
한편 경전을 거의 암송하고 있던 오경박사들은 비록 경전이 분서되었어도 경전의 내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고, 이를 회고하며 당대 언어문자, 곧 예서(隸書)로 깔끔히 정리해서 경전을 복원했다. 당대 언어문자로 썼다 해서 ‘금문’이라고 했다.
글자는 다르다 해도 내용이 같다면 금문・고문 어느 쪽이 됐든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런데 일부 내용상, 또 편제상 다른 것이 있어서 논란이 됐다. 한대 금고문 논쟁이자 훈고학(訓詁學) 발흥이다. 금고문 어느 판본이 더 원전에 가까운가에 대한 논쟁이지만 결론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거듭된 논란을 잠재운 것은 당나라 현종이 745년 직접 주해한 《어주효경(御注孝經)》(일명 《천보중주(天寶重注)》)이 나오면서부터이다. 오랫동안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현종이 직접 나서서 《효경》을 풀이한 것이다. 내용은 주로 금문을 인용하고, 고문을 비롯한 다양한 주해서를 참고했다. 일명 개원시주(開元始注)라고 한다. 이후로 금고문 시비논쟁은 사라졌고, 일부 내용을 보완해서 집집마다 《효경》을 소장케 했다. 커다란 돌에도 새겨놓았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 서안 비림박물관 입구에 서 있는 ‘석대효경(石臺孝經)’이다.
그리고 다시 송나라 때 경전 주석의 대가 형병(邢昺(932~1010))이 당시 임금의 명을 받들어 《효경정의(孝經正義)》를 만들고, 여기에 《어주효경》을 합해서 《효경주소(孝經注疏)》 9권을 편찬했다. 이융기의 ‘주(注)’에 형병의 ‘소(疏)’를 합쳐 《효경주소》라 한 것이다.
다음은 지금까지 간행된 《효경주소》 목록이다. 1629년(숭정(崇禎)2) 明代 汲古閣 중국 목판본, 1739년(건륭(乾隆)4) 발행처 미상 중국 목판본, 1790년(관정(寬政)2) 관정재각(寬政再刻) 황도서사(皇都書肆) 옥수당(玉樹堂) 일본 목판본, 1871년(동치(同治)10) 호남성(湖南省) 존경각(尊經閣) 중국 목판본, 1955년(민국(民國)44)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에 수록된 《효경주소(孝經注疏)》(臺北 藝文印書館), 1996년 《십상경주소》 수록된 《효경주소》(三河, 國際文化出版公司), 2000년 이학근(李學勤) 주편(主編) 《십삼경주소 정리본(十三經注疏整理本)》에 수록된 《효경주소》(北京, 北京大學出版社), 유정재(劉玉才) 주편(主編) 《십삼경교감기(十三經校勘記)》에 수로된 《효경주소》(北京 北京大學出版社), 진취방송판(聚珍仿宋版) 중화서국(中華書局) 교간(校刊) 《십삼경주소》(北京 中華書局) 등이 있다.
4. 내용
금고문논쟁은 물론 각종 《효경》 내용에 대한 논란은 《어주효경》 편찬으로 일단락되었고, 이를 근간으로 간행된 《효경주소》가 《효경》의 국가 공인 판본이 되었다.
당 현종은 서문에서 동한(東漢) 때 학자 환담(桓譚)이 저술한 《신론(新論)》에 “효란 부모를 섬기는 것에 대한 명칭이고, 경이란 일관성 있는 행동의 규범이다.”고 한 말을 인용하며 《효경》의 의미를 “일관성 있게 부모 섬기는 도리”라 풀었다. 그 밖에 효를 ‘휵(畜(기르다))’(《예기(禮記)》 〈제통(祭統)〉) ‘호(好(좋아하다))’(《석명(釋名)》) ‘지순(至順(지극히 순종하는 것))’(《주서(周書)》) 등을 인용하고, 결론적으로 “〈효란〉 부모에 대한 도리를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최선을 다해 부모의 안색을 살피며(色養), 마음속으로 (부모에 대해) 기뻐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지니며, (부모의 뜻에) 잘 순종하여 나태함이 없는 것”이라 했다.
다음은 《효경주소》의 목차 내용이다. 흠정사고전서제요(欽定四庫全書提要), 효경주소서(孝經注疏序(형병(邢昺))), 효경서(孝經序), 효경정의(孝經正義), 효경주소서(孝經注疏) 제1장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 제2장 천자장(天子章), 제3장 제후장(諸侯章), 제4장 경대부장(卿大夫章), 제5장 사장(士章), 제6장 서인장(庶人章), 제7장 삼재장(三才章), 제8장 효치장(孝治章), 제9장 성치장(聖治章), 제10장 기효행장(紀孝行章), 제11장 오형장(五刑章), 제12장 광요도장(廣要道章), 제13장 광지덕장(廣至德章), 제14장 광양명장(廣揚名章), 제15장 간쟁장(諫諍章), 제16장 감응장(感應章), 제17장 사군장(事君章), 제18장 상친장(喪親章).
5. 가치와 영향
이융기와 형병의 공동 저술로 알려진 《효경주소》는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 편찬의 일환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그 권위를 더했다. 331권으로 이루어진 십삼경주소는 그간 나온 각종 주석서를 집대성하여 편찬한 것으로 국가공인 유일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로 과거시험 및 각종 공문에 인용된 경전은 모두 십삼경주소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효경주소》도 국가공인 판본이라 할 수 있다.
6. 참고사항
(1) 명언
• “효경은 모든 행실의 으뜸이오, 오교(五敎(父義, 母慈, 兄友, 弟恭, 子孝))의 핵심이다.[孝經者 百行之宗 五敎之要]” 형병(邢昺), 〈효경주소서(孝經注疏序)〉
• “성인은 효로써 다른 사람들을 교화시킬 수 있었음을 알았다.[聖人知孝之可以敎人也]” 현종(玄宗), 〈효경서(孝經序)〉
• “효라는 것이 덕의 근본임을 알겠구나![是知孝者德之本歟]” 현종, 〈효경서>
• “성인은 하늘의 밝음으로 불변의 항상됨[經]을 삼고, 땅의 이로움에 근거하여 의로운 행동을 하기 때문에 엄격함과 삼감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영원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聖人則天之明以爲經 因地之利以行義 故能不待嚴肅而成可久可大之業焉]” 〈효경주소(孝經註疏)〉 형병의 소(疏)
(2) 색인어:효경주소(孝經注疏), 효경(孝經), 이융기(李隆基), 형병(邢昺)
(3) 참고문헌
· 역주 《고문효경》(김덕균 역주, 도서출판 문사철, 2008년)
· 《효경한글역주》(김용옥, 통나무, 2009년)
· 《효경주소》 (이융기, 형병 지음, 길훈섭, 정병섭 옮김, 서울 문사철, 2011년)
· 《孝, 中華倫理範疇》(曾振宇, 齊金江 主編, 北京 中國社會科學院出版社, 2006년)
· 《十三經校勘記》 所收 《孝經注疏》 (劉玉才 主編, 北京 北京大學出版社, 2015년)
· 《孝經的人倫與政治》(干春松, 陳壁生 主編, 中國人民大學出版社, 2015년)
· 《역주 효경주소》(정태현, 강민정 역주, 서울 전통문화연구회, 2018년)
【김덕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