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경의고(經義考)》는 명말청초(明末淸初) 경학가(經學家) 주이준(朱彝尊)이 청(淸) 강희(康熙) 시기 다양한 학술 경험을 통해 섭렵한 고증학적(考證學的) 지식에 의거해 중국 역대 경학(經學) 문헌(文獻) 관련 정보를 체계적(體系的)으로 분류(分類) 집성(集成)한 책이다.
2. 저자
(1) 성명:주이준(朱彝尊(1629~1709))
(2) 자(字)·호(號):자(字)는 석창(錫鬯), 호(號)는 죽타(竹垞), 어방(醧舫), 소장려조어사(小長廬釣魚師)
(3) 출생지역:절강(浙江) 수수(秀水)(현(現) 중국 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
(4) 주요 활동과 생애
주이준은 명말청초(明末淸初)를 대표하는 경학가(經學家), 문학가(文學家)이다. 명(明) 숭정(崇禎) 2년(1629)에 출생하고 청(淸) 강희(康熙) 48년(1709) 향년 81세에 사망하였다. 그는 개인장서고인 폭서루(曝書樓)에 8만여 권의 서적을 소장한 바 있다. 초년에 박학(博學)에 전념하고, 중년에 천하를 유람하며, 고염무(顧炎武)‧황종희(黃鍾禧)‧염약거(閻若璩)‧서건학(徐乾學)‧납란성덕(納蘭性德) 등 당대 재야와 조정의 저명한 학자 및 문인들과 교유하였다
그는 강희 18년(1679)에 박학홍사과(博學鴻詞科)에 응시 선발되어 한림원(翰林院) 검토(檢討)에 제수되고 《명사(明史)》 편찬에 참여하며, 강남(江南) 지역의 향시를 주관하였다. 그 후 탄핵을 받아 파면되자 낙향하여 저술에 전념하였다. 강희 25년(1686)에 《경의존망고(經義存亡考)》 저술을 시작하고, 강희 38년(1699)에 초고가 완성되었으며, 강희 44년(1705)에 초간본(初刊本)이 간행되었다. 이후 후학(後學)들이 이를 증보(增補)하면서 《경의고(經義考)》로 개명하였다.
(5) 주요저작:《폭서정집(曝書亭集)》(80권), 《일하구문(日下舊聞)》(42권), 《사종(詞綜)》(30권), 《명시종(明詩綜)》(100권), 《영주도고록(瀛州道古錄)》, 《길금정석기(吉金貞石記)》, 《분묵춘추(粉墨春秋)》 등.
3. 서지사항
《경의고》의 원서명(原書名)은 《경의존망고(經義存亡考)》이다. 강희 38년(1699) 초고가 완성되고 강희 44년(1705)에 초간본(初刊本) 167권이 간행되었다. 건륭(乾隆) 18년(1753) 노견증(盧見曾)이 주이준의 손자 주도손(朱稻孫)의 거처에서 초간본에 수록되지 않은 주이준의 원고를 발견하자 이를 증보(增補)하기로 결정하고 범례(凡例)를 추가하였다. 건륭 19년(1754) 마왈관(馬曰琯) 형제가 130권을 증보하고, 다시 권286 〈(宣講)〉‧〈(立學)〉, 권299 〈(家學)〉, 권300 〈(自序)〉 등 3권을 추가하여 총 300권으로 편찬하고는 《경의고(經義考)》로 개명하였다. 이것이 현전하는 《경의고》 판본의 원형이다. 이후 옹방강(翁方綱)의 《경의고보정(經義考補正)》 12권, 나진옥(羅振玉)의 《경의고목록부교기(經義考目錄附校記)》 9권, 심정방(沈廷芳)의 《속경의고(續經義考)》 등이 편찬되었으나, 함풍(咸豐) 연간의 전란에 의해 훼손되었다.
4. 내용
이 책은 선진(先秦) 시대부터 청초(淸初) 시대까지 중국 역대 경학(經學) 문헌(文獻) 8,400여 종(種) 관련 정보를 고증학적(考證學的) 지식에 의거해 체계적(體系的)으로 분류(分類)하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은 중국 역대 경학 문헌의 유래(由來)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목록화(目錄化)한 것이다. 즉 각 문헌에 대한 저자‧서명‧권수 및 그 존망 여부를 ‘존(存)’‧‘일(佚)’‧‘궐(闕)’‧‘미견(未見)’으로 기술하고, 원서의 서발문(序跋文)을 수록하며, 관련 문헌을 병기하고, 주이준 자신의 견해를 부기하였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역(易)〉, 〈서(書)〉, 〈시(詩)〉, 〈주례(周禮)〉, 〈의례(儀禮)〉, 〈예기(禮記)〉, 〈통례(通禮)〉, 〈악(樂)〉, 〈춘추(春秋)〉, 〈논어(論語)〉, 〈효경(孝經)〉, 〈맹자(孟子)〉, 〈이아(爾雅)〉, 〈군경(群經)〉, 〈사서(四書)〉, 〈일경(逸經)〉, 〈비위(毖緯)〉, 〈의경(擬經)〉, 〈승사(承師)〉, 〈선강(宣講)〉, 〈입학(立學)〉, 〈간석서벽(刊石書壁)〉, 〈누판(鏤版)〉, 〈저록(著錄)〉, 〈통설(通說)〉 등 26분류로 편성하였다.
5. 가치와 영향
《경의고》는 건륭 42년(1777) 4월에 건륭제(乾隆帝)가 그 학술적 성과를 크게 표창하면서, 청(淸)나라 서적 편찬의 표본이 되었다. 이 책은 중국 역대 경학(經學)의 집대성(集大成)일 뿐 아니라 문헌학(文獻學), 목록학(目錄學), 교감학(校勘學) 등 온갖 고증학적(考證學的) 성과가 집약되어 있다. 따라서 이는 전근대 동아시아 서적 편찬 뿐 아니라 고증학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까닭에 《경의고》는 동아시아 경학 뿐 아니라 고증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된 것이다.
6. 참고사항
(1) 명언
• “공자(孔子) 문하에서 자하(子夏)가 육예(六藝)를 겸비한 것 외에도 자목(子木)이 《주역(周易)》을 전수받고, 자개(子開)가 《서경(書經)》을 습득하며, 자여(子輿)가 《효경(孝經)》을 기술하고, 자공(子貢)이 음악을 질문하며, 중궁(仲弓)‧민자건(閔子騫)‧언유(言游)가 《논어(論語)》를 편찬하며, 〈사상례(士喪禮)〉를 전한 바는 실로 유비(孺悲)의 공로이다. [蓋孔門自子夏兼通六藝而外 若子木之受易 子開之習書 子輿之述孝經 子貢之問樂 有若仲弓閔子騫言游之撰論語 而傳士喪禮者 實孺悲之功也]” 〈《경의고》 권281 〈승사(承師)1〉〉
• “살펴보건대 《공안국상서전(孔安國尙書傳)》 중 〈회숙신지명(賄肅慎之命)〉 주(注)에 ‘동해(東海)의 구려(駒驪)‧부여(扶餘)‧간맥(馯貊)의 등속이 무왕(武王)이 상(商)을 정벌하자 모두 통도(通道)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일주서(逸周書)》 〈왕회해(王會解)〉편(篇)을 상고해보건대, 북방에 직신(稷愼)이 있고 동방에 예랑(濊良)이 있을 뿐이니, 이때 필시 구려‧부여의 국명이 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더구나 ‘구려의 군주 주몽(朱蒙)이 한(漢) 원제(元帝) 건소(建昭) 2년에 비로소 국호를 세웠다’고 《동국사략(東國史略)》에 기재되어 있다. 공안국이 황명을 받아 《상서전》을 지을 때도 구려‧부여의 명칭이 아직 상국(上國)에 통하지 못한 것 같거늘, 하물며 무왕이 상(商)을 정벌할 때임에랴.[按 安國書傳 於賄肅慎之命注云 東海駒驪扶餘馯貊之屬 武王克商 皆通道焉 攷周書王㑹篇 北有稷慎 東則濊良而已 此時未必即有駒驪扶餘之名 且駒驪主朱䝉 以漢元帝建昭二年 始建國號 載東國史畧 安國承詔作書傳時 恐駒驪扶餘之稱尙未通於上國 况武王克商之日乎]” 〈《경의고》 권76 〈공씨안국상서전(孔氏安國尙書傳)〉〉
(2) 색인어:주이준(朱彝尊), 주석창(朱錫鬯), 주죽타(朱竹垞), 폭서정(曝書亭), 경의고(經義考), 경의존망고(經義存亡考), 경의고보정(經義考補正), 경의고목록부교기(經義考目錄附校記), 속경의고(續經義考)
(3) 참고문헌
• 《經義考》(《文淵閣四庫全書》 677, 臺灣商務印書館, 1988)
• 《曝書亭集》(《文淵閣四庫全書》 1317, 臺灣商務印書館, 1988)
• 《點校補正經義考》(中央研究院中國文哲研究所, 1999)
• 《經義考硏究》(張宗友, 鳳凰出版社, 2020)
• 《乾嘉考据学硏究》(漆永祥, 中国社会科学出版社, 1998)
• 〈《經義考》學術成就及影響簡論〉(張宗友, 《중국어문학지》 41권)
• 〈조선후기 지식인과 朱彝尊〉(신재식, 《동양한문학연구》 50권)
• 〈조선후기 古文尙書 논변과 朱彛尊의 영향〉(신재식, 《대동문화연구》 100권)
【신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