朕
이 惟古之君天下者
가 必有其要然後
에 能使家齊國治而天下平焉
하나니
宋儒眞德秀가 推衍其義하여 綱擧目張하여 本末具備하니 眞可爲後世人君之鑑戒也라
恭惟我
가 首定家邦
하사 하시고 卽命儒臣
하사 러시니 曁我
가 하시니
雖不得目覩宮墻所書하나 而訓章이 具存하여 載諸寶冊하니 深思皇祖垂訓惓惓之意하여 罔敢怠忘호라
且命就講官하여 講解大學衍義하사 曰 此書가 於人에 深有裨益이니 汝遵予言하여 力爲進學하라
朕
이 러니 不幸皇天
이 降割
하여 하시니 言猶在耳
로되 追念何及
이리오
近日
輔臣
이 請以是書進講
할새 特於五月十三日
에 始命經筵日講官
하여 輪直講讀
하여 以資朕學
하노니
夫眞氏之撰是書也가 首書帝王爲治之序하니 蓋統言之요
次則論堯‧舜以下諸君之學하니 夫學則心志通明하여 事至物來에 無所不達이라
至論格物致知之要엔 先明道術하여 本之天理人倫하니 理明則人慾이 滅하고 倫序則綱常이 正하여 而異端之差와 王覇之異를 有不足辨矣요
次辨人材는 欲以聖賢之觀人과 帝王之知人으로 爲法하니 則君子小人之不同道와 忠直邪媚之不同科가 較然可知요
次審治體는 以昭禮樂刑政之序하고 察民情은 以明撫虐向背之機요
誠意正心之要는 其論崇敬畏‧戒逸欲이 爲詳하고 修身之要는 謹言行‧正威儀가 爲主하고
而齊家之要는 則所謂重妃匹‧嚴內治‧定國本‧敎戚屬者가 無有不備焉하니
然其中謹言行‧正威儀二語가 尤爲親切하니 蓋君身은 萬化之原이라
一言一動이 關繫匪輕하니 自廳政臨朝로 至於祭祀燕享之時에 不可毫髮忽慢이니
言行謹而威儀正
이면 則四海
가 從焉
하며 臣民
이 化焉
하고 否則
니라
嗚呼라 眞西山이 撰述此書하여 其所以望於後之君天下者가 不旣深哉아
自惟下作生民之主하고 上承昊天明命하여 苟不留心大學이면 則無以盡君道之所當爲者니 非但愧居君師之位라
學則聖賢之道와 爲治本末之序가 如指諸掌하여 修齊之功과 治平之效가 未有不得焉이요 如不學이면 則慾盛理微하여 凡百有害于身于家于國于天下者를 罔知戒止하여 危亡之勢가 未有能逃之者矣니라
噫라 是道也는 乃堯‧舜‧禹‧湯‧文‧武之道라 非孔子之私言이며 亦非德秀之臆說也라
朕
이 覽是書
에 見刻寫
가 未精
일새 特命
하여 重刊以遺來世
하노니
《대학연의大學衍義》 중간重刊에 즈음하여 쓴 어제御製 서문序文
짐朕의 생각에, 옛날 천하에 임금 된 이들은 도道를 일으켜 치세治世를 이루는 데 있어 반드시 그 요체가 있은 뒤에야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천하가 평안해지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직 《대학大學》이라는 책이 바로 옛사람들이 자신을 수양하고 천하를 다스렸던 중요한 방도였다.
송宋나라의 유학자 진덕수眞德秀가 이 뜻을 추론推論하고 부연敷衍하여 강綱이 제시되고 목目이 나열되어서 본本과 말末이 모두 갖추어졌으니, 진실로 후세 임금의 감계鑑戒가 될 만하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께서 먼저 나라를 안정시켜서 궁전을 낙성하고는 바로 유신儒臣에게 명을 내려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궁전의 회랑 벽에 써서 그림을 대신하게 하셨는데, 그 뒤 우리 태종太宗 문황제文皇帝 때에 북경北京으로 도읍을 옮기셨다.
짐은 종친으로서 스스로를 돌아볼 때 나이가 어리고 우매함에도 천지天地와 조종祖宗의 보살핌을 받아 황형皇兄인 무종武宗의 명으로 들어와서 대통大統을 이었다.
비록 궁전 회랑 벽에 써 있는 글을 직접 보지는 못하였지만 가르침이 담겨 있는 글이 모두 남아 보책寶冊에 실려 있으니, 황조皇祖(太祖 고황제高皇帝)께서 간곡하게 훈계하신 뜻을 깊이 생각해볼 때 감히 게을리하거나 잊을 수가 없다.
짐이 예전에 잠저潛邸에 거처할 때 황고皇考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는데, 조금 장성하자 곧바로 전각으로 나가 독서하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강관講官에게 나아가서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강해하도록 명하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책은 사람에게 매우 도움이 되니 너는 내 말을 따라 힘써 학문에 정진하도록 하라.
학문은 사람을 저버리지 않으니, 공부를 전일하게 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하셨다.
짐은 절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가르침을 받았는데 불행하게도 하늘이 재앙을 내려 황고皇考께서 돌아가셨으니, 아직도 그 말씀이 귓가에 맴돌지만 황고를 추념追念한들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근일에 내각內閣의 보신輔臣들이 이 책을 진강進講하자고 청하기에 특별히 5월 13일에 경연의 일강관日講官에게 처음으로 명을 내려 돌아가며 숙직하면서 강독하게 함으로써 짐의 학문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진덕수眞德秀가 이 책을 저술할 때 ‘역대 성왕聖王이 치세治世를 이룩해갔던 단계[帝王爲治之序]’를 맨 먼저 기록하였는데, 이는 총괄적으로 말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요堯임금과 순舜임금 이하 여러 임금들의 학문을 논하였는데, 학문을 하면 마음이 환하게 밝아져서 사물을 접할 때 통달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학문에 힘쓰는 것은 임금 된 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사물의 원리를 깊이 연구하여 지성知性의 힘을 극대화하는 핵심적인 방법들[格物致知之要]’을 논한 항목에서는 ‘도道를 분명히 밝힘[明道術]’이라는 항목을 먼저 제시하고 그 근본을 천리天理와 인륜人倫에 두었으니, 천리가 분명해지면 인욕人慾이 없어지고 인륜이 질서 잡히면 강상綱常이 바르게 되어 이단의 오류, 왕도王道와 패도霸道의 차이를 구분할 필요가 없게 된다.
다음으로 ‘인재를 구별하는 방법들[辨人才]’을 논한 항목에서는 성현이 인재를 가려내는 방법과 역대 성왕聖王이 인재를 알아보았던 사례들을 법法으로 삼고자 하였으니, 이렇게 하면 군자와 소인은 도道가 같지 않고 충직한 사람과 간사한 사람은 등급이 같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치국의 강령을 살핌[審治體]’을 논한 항목에서는 예악禮樂과 형정刑政의 순서를 밝혔고, ‘여론을 살피는 방법[察民情]’을 논한 항목에서는 백성들을 어루만지느냐 학대虐待하느냐에 따라 백성들이 지지하느냐 이반하느냐의 기미를 밝히고 있다.
‘생각을 성실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요체[誠意正心之要]’를 논한 항목에서는 ‘공경함과 두려워함을 존숭함[崇敬畏]’과 ‘안일과 욕심을 경계함[戒逸欲]’을 논한 부분이 상세하고, ‘자신을 수양하는 요체[修身之要]’를 논한 항목에서는 ‘언행을 삼감[謹言行]’과 ‘위의를 바르게 함[正威儀]’을 위주로 하였다.
그리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요체[齊家之要]’를 논한 항목에서는 이른바 ‘배필을 중히 여김[重妃匹]’, ‘궁위宮闈와 환관에 대한 단속을 엄히 함[嚴內治]’, ‘국본을 정함[定國本]’, ‘외척을 교화함[敎戚屬]’ 등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이 조목들은 모두 자신을 수양하는 것에 근본을 두고 있다.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이 모두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이니, 자신이 수양되면 교화가 집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언행을 삼감[謹言行]’, ‘위의를 바르게 함[正威儀]’이라는 두 마디 말이 더욱 직접적이고 절실한데, 임금의 몸은 모든 교화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그 관계됨이 가볍지 않으니, 정사政事를 보고 조회朝會에 임하는 때로부터 제사祭祀를 지내고 연향燕享하는 때에 이르기까지 털끝만큼도 소홀히 하거나 태만해서는 안 된다.
언행이 삼가지고 위의가 바르게 되면 온 천하가 임금을 따르게 되고 신민臣民들이 교화되며, 그렇지 않으면 임금이 내리는 명령이 임금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가 되어 백성들이 따르지 않게 된다.
그러나 언행을 거짓으로 행할 수는 없는 것이며 위의를 꾸며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요체는 생각이 성실해지고 마음이 바르게 되어 자신이 저절로 수양되느냐에 달려 있다.
아, 서산西山 진덕수眞德秀가 이 책을 저술하여 후세의 천하에 임금 된 이들에게 바란 것이 참으로 깊지 않은가.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에 관한 항목까지 언급하지 않은 것은, 나라와 천하에 시행할 때 이상의 도리를 따르면 되기 때문이다.
짐은 덕이 부족하기에 이 책을 볼 때마다 마음에 두려움이 생긴다.
스스로 생각해볼 때 아래로는 백성들의 주인이 되고 위로는 하늘의 밝은 명을 받들고서 진실로 《대학》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임금이 당연히 행해야 할 도리를 다할 수 없게 되니, 임금의 지위에 있는 것이 부끄러운 정도에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어찌 하늘을 저버리는 일이 되지 않겠으며, 조종祖宗을 저버리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어보면 전대前代의 치세治世와 난세亂世의 원인이 모두 학문을 하였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근본을 두고 있을 뿐임을 알게 된다.
학문을 하면 성현의 도와 치세를 이룩하는 본말의 순서가 마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보는 것처럼 분명하여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공효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결과가 얻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학문을 하지 않으면 인욕人慾은 커지고 천리天理는 희미해져서 자신과 집안과 나라와 천하에 해가 되는 온갖 것들에 대해 경계하고 금지할 줄 모르게 됨으로써 위망危亡의 형세를 피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아, 이 도道는 바로 요堯임금‧순舜임금‧우왕禹王‧탕왕湯王‧문왕文王‧무왕武王의 도이지 공자孔子의 개인적인 말이 아니며 진덕수眞德秀의 억설臆說도 아니다.
짐은 이 책을 볼 때 판각板刻과 글씨가 정精하지 않음을 보았기 때문에 특별히 사례감司禮監에 명하여 이 책을 중간重刊하여 후세에 남겨 주노라.
글씨와 판각이 볼만하면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자들이 싫증을 낼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간행이 이루어짐에 첫머리에 서문을 써서 향학向學을 권면하는 짐의 뜻을 밝히는 바이다.
가정嘉靖 6년(1527) 6월 초하루에 서문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