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嘗摭取聖賢格言
하야 爲心經一編
호되 首危微精一十有六言
하고 而以
尊德性之銘
으로 終焉
하니 每敬誦之
에 蓋儼乎若上帝之下臨
하고 聖師之在目也
라
然猶疑其註中
에 或稱
로되 而凡程朱大儒開示警切之言
이 多不在卷
하니 意此經
이 本出先生
이나 而註則後人雜入之故邪
아
之暇
에 謹爲之參校
하고 且附註其下
하고 而識其首曰
人之得名爲人
하야 可以參
而出
者
는 以能不失其本心而已
라
性學不明
이라 人心
하야 하고 騰理于口舌
하니 此先生之所深悲而心經所由述也
라
蓋嘗反覆
하야 得程子之說
하니 曰 天德王道 其要只在謹獨
이라하시고
敬者는 聖學始終之要也라하시니 蓋是經所訓이 不出敬之一言이라
故其語約而義精
하고 其功簡而效博
하니 誠所謂
요 요 이라
이 何所知識
이리오 輒手錄成帙
하야 以告同志者
호되 而於言敬之說
에 特加詳焉
하노니 豈敢以是求多于先生之書哉
아
서산선생西山先生 진문충공眞文忠公이 일찍이
성현聖賢의
격언格言을 뽑아 《
심경心經》 한 편을 만들면서
를 앞에 놓고
자주자子朱子의 〈
존덕성재명尊德性齋銘〉으로 끝마쳤으니, 나는 공경히 이것을 욀 때마다 엄숙하여
상제上帝가
하강下降한 듯하고
성사聖師가 눈앞에 계신 듯하였다.
그러나 그 주註 가운데에 《서산독서기西山讀書記》라고 칭하였으나 모든 정주程朱 대유大儒들이 열어 보여주고 간절히 경계한 말씀은 대부분 이 권卷에 들어 있지 않은 점이 의심스러우니, 생각하건대 이 《심경心經》은 본래 선생先生에게서 나왔으나 주註는 후인後人들이 뒤섞어 넣었기 때문인가 보다.
서재에 거처하는 여가에 삼가 이것을 참고參考하여 교정校正하고 또 그 아래에 주註를 붙이고는 그 머리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람이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어서 삼재三才에 참여되어 만 가지 조화造化를 낼 수 있는 것은 본심本心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다만 한번 생각하는 잠깐 사이에 〈마음을〉 잡아 보존하고 놓아 버리며 얻고 잃어서 성인聖人과 광인狂人, 순舜임금과 도척盜蹠이 여기에서 나누어지니, 두려워할 만함이 이와 같다.
옛사람은 이 때문에 본원本原을 함양涵養하는 계책이 지극하여 감히 거문고와 비파를 거두지 않고 좌우左右에 경계하는 글을 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체體가 확립되고 용用이 넓어지며 드러남과 은미함이 두 가지가 되지 않게 하여 성인聖人을 바라고 하늘을 바라는 지극한 공부에 이르렀으니, 바로 이 때문이다.
성리학性理學이 밝지 못하므로 사람들의 마음이 빠져서 성명性命의 올바름을 귀와 눈의 욕망에 맡겨두고, 입과 혀로만 이치理致를 말하고 있으니, 이것이 선생이 깊이 슬퍼하여 《심경心經》을 지으신 이유이다.
그렇다면 배우는 자가 어디에 힘을 쓴 뒤에야 사람이라는 이름에 욕됨이 없겠는가.
일찍이 반복하여 생각해서 정자程子의 말씀을 얻었으니, 말씀하기를 ‘천덕天德과 왕도王道는 그 요점이 다만 근독謹獨에 있다’ 하였고,
또 말씀하기를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경敬을 가지고 마음을 곧게 하여 함양涵養하여야 하니, 마음을 곧게 하는 것이 근본根本이다’ 하였고,
주자朱子 또한 말씀하기를 ‘정선생程先生이 후학後學들에게 가장 공功이 있는 것은 경敬이라는 한 글자이다.
경敬은 성학聖學의 시始와 종終의 요점이다’ 하였으니, 이 《심경心經》에서 가르친 것은 경敬 한 글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말이 간략하면서도 뜻이 정밀하고 그 공부가 쉬우면서도 효과가 넓으니, 진실로 이른바 ‘냇물을 막는 지주산砥柱山이요 남쪽을 가리키는 수레요 어둠을 밝히는 거울’이란 것이다.
그리하여 이 도道에 크게 공功이 있어서 조차造次와 전패顚沛에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만생晩生 말학末學이 무엇을 알겠는가마는 곧 손수 기록하여 책을 완성해서 동지同志들에게 고告하되 경敬을 말한 내용을 특별히 상세하게 하였으니, 어찌 감히 이것을 가지고 선생先生의 책보다 더 낫기를 바라겠는가.
성경현전聖經賢傳의 가운데에 마음을 두어서 몸을 검속檢束하여 욕심을 막고 익숙히 반복하는 터전으로 삼기를 꾀할 뿐이다.
홍치弘治 5년(1492) 임자壬子 7월 보름에 후학後學 신안新安 정민정程敏政은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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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부주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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